[양길현 칼럼]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자본 그리고 제주다움

왜 사회적 자본인가?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적 자본이 화두이다. 다들 앞에다 ‘사회적’이다. 무언가 돌파를 위해 새로운 영역 찾기에는 ‘사회적’이라는 접두어가 가장 적합한 모양이다. 이들 ‘사회적’의 공통점은 ‘친 공공성’이다. 그래서 공공경제, 공공기업, 공공자본으로 읽어도 무방해 보이고 더 쉬워 보인다. 다만 정부 영역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이고, 그래서 제3의 지대로 지칭되고 있다.  

제3섹터와 관련해 보면 ‘사회적’은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개인적’의 대응으로서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업적 접근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적’의 대응으로 시민사회 내 공동체적 특성을 반영하는 공유적 시각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자본은 개인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며 시장도 아니다. 그것은 시민사회이고 지역공동체 영역의 의식, 관계 그리고 망(network)일 것이다. 

사회적 자본은 특정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신뢰 정도, 규범의 공유 여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소통 수준, 공식 및 비공식적 네트워크 정도 등을 지칭하는 무형 자산을 일컫는다. 사회적 자본에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사회적 자본의 핵심 요소로 간주되는 신뢰의 정도가 사회의 안정과 민주적 정부 운영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해 주는 주요 기제로 널리 인식되면서였다. 

대표적으로 제도와 법 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너무 낮으면,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집행에서 쓸데없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불신이야말로 사회적 만병의 근원이다. 기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것도 일차적으로는 국정농단과 부정부패로 정부 신뢰가 최악으로 내려갔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향후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첫걸음은 정치권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부정부패가 더 이상 자리하지 못하도록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우리 모두 앞장서는 일이다. 

지난 27일 토요일 도내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제주도가 주최한 ‘2017 제주 사회적 자본 토론대회’가 있었는데, 열심히 준비해 온 학생들이 사회적 자본은 소통으로 시작한다며 목소리 내는 것 보고 대견함을 느꼈다. 제주의 밝은 미래가 소통으로부터 시작해 신뢰 그리고 참여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적 자본 가꾸기에서 나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터넷의 유용성과 제주지역사회의 면대면 공동체적 특성에 새삼 주목하고 기대하면서 토론 열기를 보여준 자리였다.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자본에 기초해야 

취임하자마자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와 함께 사회적 경제를 전담할 일자리 수석을 신설해 사회적 경제를 통한 일자리 확대를 최우선 국정 목표로 제시하였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 널리 합의되고 있지 않은 가운데서도, 사회적 경제를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소해 줄 공공적 접근의 하나로 여기는 일련의 흐름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지난 10년에 비해서는 진보적인 정부이기에 그리고 취임 초의 멋진 행보에 기대어 문재인 정부의 공공성 지향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2007년에 제정된 이래 어느덧 10년이 되어 가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의 추진 과정을 제대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근사한 융복합적 함의로 치장된 사회적 경제가 기대처럼 잘 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의 경우 정부 주도형이라는 태생적 결함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에서 정부주도형은 적합성이 크게 떨어진다. 정부주도에서 시민사회 주도로 조속한 이전이 요청된다.  

사회적 경제가 찐빵이라면, 사회적 자본은 찐빵에서의 ‘앙꼬’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앙꼬’에 대한 고려가 없이 맛있는 찐빵 만들 수 있다면  덤벼든게 지난 10년의 경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기초 체력 없이 마라톤 잘 해 보자고 부지런떠는 모양새이다. 

그래서 만약 문재인 정부도 국민들 간의 상호신뢰와 함께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어떻게 강화시켜 나갈 것인가의 큰 기획 없이 그냥 일자리 늘리는 방편으로 사회적 경제를 밀어붙인다면, 그 성공 가능성은 밝지 않다. 사회적 경제를 바라보고 대하는 국민들의 이해나 열정 또는 수고에 대한 고려와 대책이 없이 정부 예산으로 밀어붙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접근으로는 공염불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장의 실패 못지않게 정부의 실패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영역을 찾아 나서고자 하는 게 사회적 경제인데, 이를 정부가 다시 개입해 정부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건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을 깎아내릴 우려가 크다. 신뢰나 연대와 같은 사회적 자본의 뒷받침이 없이 정부 부처 어디선가 약간의 행-재정적 지원을 하면 쉽게 공유나 협업이 이루어지리라보는 건 어쩌면 사회적 자본에 대한 모욕이다.  

앞으로 우리는 사회적 자본을 토대로 하는 사회적 경제이고, 나아가 사회적 자본을 동력 삼아 국민통합으로 나아가야 할 과제를 맞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 나가는 길일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 별도의 다른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육성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정부가 개입해 국민이 뒤따라오도록 하는 방식은 더더욱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 사회적 자본의 동태와 미래 

제주에서는 2013년 도의회의 ‘사회적 자본 관리 및 육성 조례’ 제정과 2015년 도 차원의 ‘사회적자본육성위원회’가 설립돼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문득 생각나는 반걸음에 머물고 있다. 신뢰와 협력 등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자본의 이모저모에 대해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사회적 자본의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제주도정 역시도 어떤 다른 기획에 의해서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라는 데 있다. 제주도정은 사회적 자본이 소통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고교생들의 토론대회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제주도정에 대한 도민들의 신뢰가 미비한 데 도정이 나서서 사회적 자본을 육성하겠다고 하면, 코웃음 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회적 자본을 육성하겠다는 윗자리에서 내려와 도민들 스스로의 사회적 자본 확충을 지원하고 후원해 주겠다는 낮은 자세가 요청된다. 사회적 자본은 주체가 시민사회이고 제주공동체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현가능한 하나의 안으로는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연계하는 사회적자본 범도민협의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제주도 시민사회 내의 각종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제주의 사회적 자본을 증진해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수고를 다하고 있노라면, 어느 날 신뢰와 협력, 참여 등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 제주 지역사회의 ‘앙꼬’로 자리하게 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사회적 자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보면 도민사회 내부로부터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풀뿌리 아래로부터의 주체적 용틀임이 부재한데, 조례 제정과 위원회 설립만으로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증진되어 나갈 수 있는지 매우 회의적이다. 물론 조례 제정과 위원회 구성은 사회적 자본을 향한 제주 도정 차원의 하나의 정책적 산물인 것으로 편하게 바라보고 격려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주체가 마치 도정이나 의회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사회적 자본의 육성은 물론이고 사회적 자본을 통한 공공성 강화는 공염불일 가능성이 높다. 반복하건대, 사회적 자본에 관한 한, 도정은 뒷바라지 하고 후원하는 서포터스로 자리해야 한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드물게 ‘사회적 자본 육성 5개년 기본계획(2016-2020)’을 수립해 사회적 자본 육성에 한걸음 나서고 있다. 도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기본계획은 사회적 자본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척박한 현실에서 나름 열심히 만들어진 기획물이다. 제주의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 무언가 시작으로서 공부하고 싶은 도민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사회적 자본이 무엇인지를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 참여’ 4가지 구성요소에 맞추어 개념화하면서 제주지역 사회조사 및 사회지표를 활용해 위의 4가지 구성요소별로 제주지역 사회적 자본의 현황을 적절히 잘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린 제주의 사회적 자본 육성 추진전략과 실천과제 그리고 5개년 계획은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덤이다. 그러나, 세상사 모든 사안이 그렇듯이, 이 기본계획 역시 2% 부족이다. 도정의 용역보고서라 그런지 초점이 아래가 아니라 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기본계획이 너무 지나치게 도정의 업무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형 사회적 자본은 제주도민의 일상적 삶에 주목하고 그 현장에서 제주 특유의 사회적 자본의 미래 가능성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원론적 생각을 해 본다. 예를 들면 제주의 괸당문화의 긍정적 부분을 어떻게 사회적 자본화할 것인가의 기획에 전 도민의 관심과 성원 그리고 참여가 요청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괸당문화에 녹아있을 제주다움을 찾아서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자본 못지않게 ‘제주다움’이 제주의 미래를 살릴 수 있는 핵심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공공성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제주 특유의 문화, 자연보전과 생태우선으로 인식의 전환을 해 나가는 보편적 미래 흐름에의 동참 등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무언가의 또 하나의 ‘앙꼬’를 제주다움으로 뭉뚱그려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월 제주국제협의회 주최 ‘사회적 자본과 제주다움’에서 서영표 교수의 특강은 다음에 또 다시 더 보강해서 듣고 얘기 나누고 할 주제였다. 

사회적 자본과 관련해 괸당문화의 가능성도 적극 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찬반 여부를 떠나서, 괸당문화는 혈연과 지역으로 똘똘 뭉친 섬 특유의 정서이자 삶의 양식이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날에는 제주섬 특유의 배타성과 집단적 보호 본능으로 인해 폐쇄적인 결속형의 사회적 자본이 주를 이루었다. ‘괸당이 정당보다 세다’고 널리 회자될 정도였다. 

그러나 괸당문화 속에 녹아 있는 연대와 협동이라는 전통적인 제주형 사회적 자본에 의거해 지역발전과 미래찾기에서 괸당문화가 순기능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 괸당문화가 점차 외부와의 공유를 확산시켜 주는 교량형의 사회적 자본을 가능하게 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는 황경수 교수의 지적이 그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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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길현 제주대 교수.
그렇다면 결속형에서 교량형의 사회적 자본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괸당문화 속에 내재해 있는 연대와 협동이라는 제주다움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축으로 해 ‘도민 스스로 자활하는 비공식적 상호관계’를 어떻게 추동해 나갈 것인가에, 제주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사회적 자본은 도민 스스로 공부하고 깨쳐나가는 사안이자 일상에서의 제주다움의 생활화에 달려있다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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