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취임 6개월 허영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영혼이 깃든 육체, 그런 조직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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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이 취임 6개월을 맞아 그간의 성과와 향후 기업지원 방향과 구상을 밝혔다. ⓒ제주의소리

지난 해 11월 1일. 지역산업 싱크탱크인 제주테크노파크(JTP)의 제3대 원장에 ‘허영호’라는 이름 세 글자가 새겨졌다.

두 달 간 원장 공석 사태 끝에 맞이한 변화에 대해 지역사회에선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 앞서 두 차례의 원장 선발 공모에서 적격자를 찾지 못해 진행된 세 번째 공모에서 대기업 CEO를 지낸 제주출신의 기업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제주시 회천동이 고향인 허 원장은 오현고와 서울대를 거쳐 1977년 LG전자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까지 올랐다. IMF 이후 심각한 위기를 겪던 LG마이크론을 회생시키고, LG이노텍을 연매출 5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13년간 최장수 대기업 전문CEO를 역임하는 등 역량만으로 따지면 한국 대표 경영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자리를 옮긴 회사마다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것은 물론 글로벌 우량 기업으로 육성해낸 거물급 인사의 영입인 만큼 기대감이 컸다. 그 자신도 늘 빚을 진 것 같은 부채의식을 가졌던 고향 제주에 돌아와 자신의 작은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40여년 만의 제주살이가 특별했을 것이다.   

그가 취임식에서 “제주테크노파크를 실행력이 강한 조직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힌 지 6개월이 됐다. <제주의소리>가 그를 만났다. 전체 3년의 임기 중 1/6가 지난 지금, 그는 내부혁신에 한창이었다. 허 원장은 ‘사람, 일, 조직의 제자리 찾기’가 그 동안의 역점 과제였다는 말로 인터뷰의 물꼬를 텄다. 

민간기업에서 소위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을 모두 겪은 그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제주도가 출연한 이 공적 기관이 직면한 숱한 벽들 앞에 고민이 많았다. 특히 제주테크노파크가 2010년 통합 출범한 이후 양적 성장에서는 나름의 성과를 거뒀지만 내부에선 질적 성장을 향한 성장통을 겪으면서 여러 현실적 어려움과 직면하고 있었다.

지역혁신 거점기관으로서 한 해 약 830억원(2016년 기준)을 다루는 이 기관이 제대로 서는 것은 곧 제주지역 산업계 전반의 성장을 담보하는 일이다.

그는 ‘지속가능한 모델’로서 제주테크노파크의 체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한 데 ‘묶어주고 연결해주는 역할’을 통해 제주 산업계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제주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서 그 앞과 뒤를 든든하게 받쳐줘야 한다는 방향성도 밝혔다.

특히 청정제주라는 특유의 브랜드와 관련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넘어 ‘제한된 소중한 자원’을 값지게 쓰는 일이야말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지키면서 미래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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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사진 왼쪽)이 취임 6개월을 맞아 김봉현 편집부국장(오른쪽)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제주의소리

“지금은 성장통 겪는 시기...민간기업과는 경영체계 많이 달라 ”

- 어느덧 취임 6개월이다. 40여년 만에 귀향해서 제주테크노파크 원장을 맡았다. 오랜만의 고향에 돌아오신 소감은 어떤가?

봉사라고 표현을 하는 게 건방지고 외람될지 모르겠지만, 40년 가까이 크고 작은 조직에서 활동을 해왔는데 그 동안의 겪었던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남김없이 쏟아 붓고 싶은 마음을 봉사라고 봐주시면 고맙겠다. 고향을 떠나 생활하면서 늘 고향 제주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 부임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민간기업과 공기관의 경영체계가 비교 가능할 것 같다. 민간기업 경영체계와 비교할 때 같거나 다른 점, 아니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어떤 건가?

한 마디로 격세지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제가 어떨 때는 문득 화성에서 온 사람같이 느껴진다. 좀 지나친 표현이지만 그 정도로 민간과 공기관의 경영체계 차이가 상당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효율성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일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시작은 했는데 끝이 없는 일이 많더라. 기업에서 보면 일이 하나 시작해서 마무리가 되고, 또 새로 운 일을 시작하고, 이런 것들이 반복돼서 경쟁력이 생기고 지속가능한 일이 생기는데 여기서는 좀 다르다.

그래서 단절 없이,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예산이 뒷받침 될 때는 일이 이어지다가, 예산이 끊기면 바로 단절돼버리는 안타까운 순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과정으로는 사업이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또한 규정과 절차가 있으니 당연한 점이긴 하지만, 민간기업과 달리 공기관 특성상 순발력 있는 인재 채용도 어려움이 많다. 경영자 입장에서 실기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발굴하고 배치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밖에도, 기업의 ERP(enterprise resources planning, 기업 내 통합정보시스템)와 같은 IT시스템, 정보관리시스템이 제주테크노파크는 상당히 뒤쳐져있다. 기업과 비교하면 20년 이상 차이가 날 정도다. 와서 보니 이에 대한 투자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 제주테크노파크의 역할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제주테크노파크는 기술지원, 인력양성, 사업화, 창업, 마케팅 등 다양한 사업 지원을 통해 지역산업을 견인하는데 앞장서왔다. 연중 83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집행하는 것으로 안다. 현재 기업지원 상황과 그 방향성에 대해 말해달라.

제주테크노파크는 가장 중요한 업무가 기업지원이다. 전체 예산 중 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비중이 약 37%(300억원) 정도고, 그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300억원, 인프라 구축 뒤 장비 운영, 건물 유지보수 등 경상비로 110억원 정도가 투입된다. 

실질적으로 제주테크노파크를 운영하기 위한 인건비, 복리후생비는 10% 정도다. 실제 기업 지원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되는 예산이 90% 정도다. 작은 규모가 아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제주테크노파크의 탄생과 흐름을 얘기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

- 어떤 것인가?

지금 전국 각 광역지자체에 설립된 테크노파크가 현재 18개, 세종특별시에 추가로 설립되면 19개가 되는데, 세종시가 제일 막내가 되고 그 전까지는 제주가 막내다. 제주테크노파크가 생긴 게 2010년인데, 다른 지역은 약 10년 앞선 2000년대 초에 대부분 설립됐다. 제주테크노파크가 전국 TP에 비해 후발 기관인만큼 그동안은 양적 성장 위주로 갔던 것 같다. 한 해 예산이 830억원 규모까지 성장한 것은 비약적이다. 전임 원장들과 임직원들이 이룬 큰 성과 중 하나다. 그런데 이렇다보니 여러 가지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제주테크노파크가 다른 지역 테크노파크보다 취약한 게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지역의 테크노파크는 전체 업무 비중 중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업무가 95%다. 그런데 우리는 산업통상자원부 업무가 60% 이하에 그치고, 미래창조과학부가 17%, 환경부가 7.5%, 해양수산부도 3.7%가 있다. 때때로 제주시청, 서귀포시청과도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곳은 산업통산자원부에 집중해 효율적인데 우리는 이곳 저곳 눈치봐야 할 소위 ‘시어머니’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일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고 자연히 일의 전문성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냉정히 바라보면 문어발식 사업이라는 비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정책 제안은 '언감생심'인 경우가 생긴다.

-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이 많겠지만, 민간기업에서의 혁신을 공기관에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실현해야 할 것 아닌가? 

제주테크노파크가 외적으로 급격히 성장했음에도 직원 TO가 5~6년 전에 정해진 수준 그대로다. 사업규모는 크게 성장하고 자연히 일은 많아졌는데 인원은 제한돼 있다. 그러나 TO 늘리는 게 쉽지 않더라. 결국은 계약직을 양산하는 이런 구조로 가다보니, 인력구조 자체가 취약할 수 밖에 업다. 

또한 업무 자체가 단순 반복적인 일이 많더라. 지원사업이 크건 작건 절차는 비슷비슷하니. 업무가 반복되다 보니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은 떨어진다. 우리는 종종 ‘육체는 있는데 영혼은 없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창의성 없이 반복적 업무에만 너무 익숙해진 구조다. 사업이 늘어나는데 TO는 한정돼 있으니, 상대적으로 업무가 급하지 않은 부서인력을 빼서 급한 부서로 충당해왔다. 마치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격이다. 

대외적으로 제주테크노파크의 역할과 성과를 도민사회에 제대로 알리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보다 정책제안들도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이런 중요한 기본 역할들이 도외시되어온 것 같다. 대표적인 게 대외협력과 홍보 기능이다. 제주테크노파크가 하는 일을 알리고 전략과 정책도 개발하고 창구 역할도 필요한데, 이런 기능들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한동안 사장됐던 대외협력실도 부활시켰다. 

그리고 그동안 급속 성장을 해오다 보니 일처리 과정이 사실은 굉장히 개인 의존형이다. 조직이라는 게 구성원들이 횡적으로 네트워킹 하고, 종적으로 통합하고, 그 속에서 조직의 힘이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성장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부서가 바뀌어 사람이 이동해도, 일이 사람 따라 가버리는 폐단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 일, 조직 제자리 찾아주기’에 취임후 6개월을 집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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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이 취임 6개월을 맞아 앞으로의 구상을 밝혔다. ⓒ제주의소리

“제주 사람을 키우려는 욕심 있어야...교육 뒷전 밀려선 안돼”

- 주제를 바꿔서 화장품산업에 대한 질문을 해보겠다. 제주화장품산업에 대한 지원이 시작된 지 벌써 약 10년이다. 그동안 제주화장품산업에 대한 지속적 지원이 이루어졌는데 현 주소는 어떤가? 향후 화장품산업 지원의 주안점은 어디에 있나?

다행히 화장품 관련 사업은 제주도에서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가고, 제주테크노파크도 심혈을 기울여서 육성에 큰 일을 해왔다고 보이는데, 어쩌면 지금이 시작인 것 같다. 제주테크노파크가 지원하는 기업이 정확하게 247개인데 10인 이하의 영세규모 기업이 90%다. 50인 이상 기업은 몇 개 안된다. 기업 수, 저변은 확대 돼 있다. 이제 투자에 따른 결실을 맺어나가는 게 필요하다. 

제주화장품인증제도가 상당히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인증기업 수가 23개, 품목으로 보면 113개다. 그 중에는 도외에서 온 기업도 있고, 도내 기업도 꽤 있다. 기반이 어느 정도 확보돼 있어서 앞으로 잘 키워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지금은 완제품 위주의 화장품 개발에 치중해왔는데, 앞으로는 원천 소재에 대한 개발과 중간재에 대한 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 대기업 CEO 재임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경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제주의 미래산업군 중 경쟁력을 갖춘 분야 내지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분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왕 얘기 나온 김에 IT 분야 전반에 대해 말씀 드려보자. 제주 어디를 가도 ‘제주의 IT 환경이 취약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진짜 그럴까’하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러나 저는 취약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제주가 IT 관련해서는 다른 지역 못지않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제주의 IT 종사자들의 마인드를 ‘선순환’, ‘긍정의 사이클’로 전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주로 전문인력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육지에서 제주로 유능한 인력을 데려오려고 하니, 안 온다는 거다. 그런데 저는 기업을 여태껏 경영해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 키워진 인력을 데려온다는 생각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진짜 어려운 일이다.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전문인력을 기업에서 키워서 쓸 생각해야지, 키워진 사람을 데려다 쓴다는 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CEO가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도내 대학생을 3~4학년 때부터 가까이서 격려하고 장학금도 주고 키워나가야 한다. IT를 잘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은 대학 뿐 아니라 고등학교에도 있다. IT 특성이다. 전문 인력을 키우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다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지 않겠나.

또, 제주의 IT기업은 ‘IT를 위한 IT 사업’을 한 부분이 많이 있어서, 이걸 어떻게 집중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제주테크노파크 내부에 있는 조직도 여태까지 바이오 따로 디지털 따로 용암해수 따로, 연구소 따로 분산돼 있었다. 그 동안 이걸 모으려 했다. 이 중심에 소프트웨어가 있다. 디지털로 백업되지 않으면 앞으로 안된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은 바로 소프트웨어에 있다.

바이오도 소프트웨어도 엮어줘야 한다. ‘디지털(부서) 하고 얘기해봐라 이번엔’, ‘이걸 할 수 있는 기업을 소개 받아라’는 식으로 자꾸 엮어줘야 한다. ‘우리 연구소가 DB화 못한다’며 끙끙거린다면 DB화 할 수 있는 도내 기업들을 연결시켜줘야 한다. 자꾸 이렇게 묶어주고 연결하는 일을 통해 단순히 개발을 위한 개발을 지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허영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 제주의소리

 "전기차 처럼 제주찍고 대한민국 찍고 세계로 나갈 아이템 찾자"

- 기업지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나? 떡반 나누듯 기계적인 예산지원은 결국 제주 기업들을 이른바 '좀비 기업'으로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제주기업)가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취약점에 있다는 인식에서는 빠져나가자는 것도 중요하다. 장점을 찾아내야 한다.

요즘 전기차가 핫이슈 아닌가. 제주도의 전기차 보급은 결국 전후방 사업을 탐색하고 개발하고 육성해나가는 게 목표다. 단순히 전기차를 많이 보급하는 건 목표가 아니다. 전후방 사업을 육성해 제주가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많다.

IT도 그렇다. 제주도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역점사업에 연결된 아이템을 발굴해서 전기차 전후방 사업이 순풍을 달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집중하자는 거다. 정말 주력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얘기다. 제주에서 잘할 수 있고, 제주 찍고 대한민국 찍고 해외로 갈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지고 해야 한다.

지금 제대로 해놓아야 할 게 전기차 충전기에 대한 사용자 앱 개발이다. 전기차 보급 대수가 많아지고 충전기도 설치되고 있는데 사용자들의 클레임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충전기 표시도 제대로 안 돼 있고, 충전기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불만들이 많다.

핵심은 충전기가 살아있도록 하는 거다. ‘살아있다’는 의미는 어떤 곳에 설치된 충전기가 ‘나 지금 비어있어’라고 안내하고, ‘난 어디가 아프기 시작했어’라고 고장예고하고, ‘난 현재 차량 충전이 언제쯤 끝나’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쪽으로 데이터를 쓸 수 있다면 살아있는 관리가 된다. 더 나아가서는 빅데이터 개념을 활용해 충전 필요량을 수시로 알려줄 수 있는, 운전자가 그걸 알고 싶으면 소통할 수 있도록 계속 진화시켜 나갈 수 있다.

전기차 전후방 사업으로 경쟁력을 키운다면 '제주 찍고, 대한민국 찍고, 세계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기차 실증테스트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제주 이상 더 좋은 입지가 없다. 대한민국 어딜 가도 이런 곳은 없다. IT기업으로서는 얼마나 기회인가. 그런 곳에 집중하자는 거다. 주력사업에 집중하자는 거다. 스마트관광이나 마이스도 선택과 집중할 분야다.

- 작년 11월 취임 당시 “수익과 성과 창출이 반드시 동반되도록 기업지원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 또는 “글로벌 마케팅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 두 가지 목표를 향해 현재 어떤 과정이 진행되고 있나?

6개월이 걸려 이제 마케팅 일을 좀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정도다. 앞으로 체계적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출발선상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제주의 기업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마케팅 지원사업이 개별기업한테만 의존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은 서로 모아야 한다. 협업해야 되지 않겠나. 제주 기업이 마케팅 뿐 아니고 생산 개발 판매 할 것 없이 따로 살면 죽는다. 합치면 살고 떨어지면 죽는다. 동일한 유형끼리 협업하고 모을 수 있을 거다. 우리 지원사업도 그런 쪽으로 전환하고 싶다. 개별적으로 하기보다는 뭉쳐야 제대로 기반이 생길 수 있지 않겠나.

마케팅 사업도 마찬가지다. 얼마만큼 서로가 컨센서스(조화)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건 우리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주 기업들이 서로 도와주고 협력해야 한다. 10인 이하의 영세 기업들이 어떻게 개별로 생산하고 판매하고 다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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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 제주의소리

“제주다움은 더이상 촌스럽지 않아...제주를 소비하려면 기다리고 예약하도록 해야 ”

- 부임한 이후로 제주테크노파크가 혁신활동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혁신에 대한 방향성과 인재 육성 방안이 궁금하다.

일반 민간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교육에서 시작해서 교육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제주테크노파크의 교육은 와서보니 거의 전무한 상태다. 급성장을 하다 보니 일에 치여서 이런 중요한 일들이 뒷전으로 밀린 것 같다.

그래서 교육이 제자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일을 통한 교육만큼 조직 내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 없다는 관점에서 일을 통한 교육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지난 5월 시작해 9월까지 진행할 혁신활동이다. 매주 목요일 아침 유능한 강사를 초청해 전 사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을 전문직능교육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 최근 조직개편도 그런 차원인가? 조직을 대폭 축소해 선택과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읽히고, 도민사회에 제주테크노파크의 활동성과를 알릴 대외협력실도 부활시켰다. 조직개편의 핵심 취지는?

'사람, 일, 조직의 제자리 찾기'의 한 부분이다. 결국 ‘조직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사업이 성장하다보니 중요하더라도 덜 급한 조직들은 뒤로 밀리면서 일부 조직은 없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대외협력실도 그런 경우다. 

사업규모도, 일의 양도 많아지면서 점점 도민사회에 제주테크노파크를 알리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그 기능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 원장으로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 조직을 제자리 찾게 하는 과정으로 봐달라.

그래서 이번 조직개편 등의 과정을 거쳐서 제주테크노파크의 핵심부서이자 수레의 두바퀴 같은 정책기획 파트와 기업지원 파트라는 양 축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도록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 취임 전이다. 작년 9월 글로벌 제주상공인 리더십 포럼에서 제주가 최근 겪고 있는 급격한 변화를 ‘성장통’으로 규정하면서 ‘제주다움’의 차별화된 가치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제주다움’이 무엇인지, 또 이걸 실제 성장 동력으로 연결시키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 허 원장님의 철학이 궁금하다.

이제 제주의 청정자원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엔 촌스럽다고 느꼈던 제주의 모든 것들이 이젠 제주만의 경쟁력을 갖춘 상품들이 되고 있다. '제주의 청정자원' 자체가 양적, 혹은 규모의 경제가 아닌 '특별한' 자원으로서 매우 높은 부가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급격한 개발을 지양하고 현재의 청정 제주를 오래도록 후세에 물려줄 필요가 있다. 제주다움은 더이상 촌스럽지 않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제주를 느끼고 소비하려면 '줄을 서야 하고, 기다려야 하며, 예약해야 하는', 그리고 '제주 브랜드' 상품은 대량 생산판매나 가격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품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10년, 20년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전략 하에서 제주다움을 실현해나가야 한다.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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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 제주의소리

- 끝으로 제주테크노파크의 역할과 설립취지에 비춰 가장 바람직한 JTP의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또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재임기간 동안 어떤 것에 가장 역점을 두고 싶은 지 들려달라. 

조직에 몸담고 있는 개인은 상당한 성장욕구가 있다. 조직 내에는 두 축이 있다. 개인은 성장하고 조직은 성과를 내야한다. 개인의 경쟁력, 개인의 핵심역량, 개인의 경쟁력이 조직의 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교육으로 개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이것이 기업 성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선순환구조로 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활동들이 진행이 돼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과 조직이 서로 윈-윈하는 거다. 우리가 윈-윈하면 대기업하고 중소기업만 생각하는데, 구성원과 조직 사이에서도 윈-윈관계가 성립돼야 한다.

제가 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구성원과 조직이 서로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이것을 체계화하려 한다. 훗날 원장이 바뀌어도 제주테크노파크의 핵심가치가 흔들림 없도록 조직 구성원들이 제주테크노파크 만의 DNA를 가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이런 속담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결국 내게 주어진 임기 3년 동안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끝내려면 얼마든지 혼자 갈 수 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머물고 싶지 않다. 다 함께 가고 싶다. 제주테크노파크가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는 탄탄한 조직기반을 갖추게 된다면 고향에서 일하게 된 저는 정말 행운아일 테다. 

최근 직원들이 'JTP혁신'을 다짐하며 직원공모로 만들어낸 슬로건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JTP혁신, 악착같이, 될때까지, 끝까지"다. 저는 여기서 희망을 보고 있다. 직원들의 의지를 믿는다. 사람과 일, 조직이 반드시 제자리를 찾고, 영혼이 깃든 육체와 같은 그런 조직을 만들 것이다. / 대담=김봉현 편집부국장, 정리=문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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