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제주평화공동체와 제주시민사회의 역할’에 관한 소회

지난주 3일에 걸쳐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 열렸다. 세계 지도자들과 각계 전문가, 제주도민 등 전 세계 81개국 55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아시아의 미래 비전 공유’를 주제로 진행됐다. 한 언론사의 기사에 따르면, 이번 12번째 제주포럼은 ‘글로벌 이슈를 보는 깊은 통찰과 다양한 협력모델을 제시해 새로운 아시아의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공존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글은 75개 세션 가운데 제주국제협의회(회장 강태선)가 주관해 작지만 의미있는 성찰의 시간으로 마련한 ‘제주평화공동체와 제주시민사회의 역할’ 세션에 관한 소회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과 평화의 섬 제주의 미래에 대한 논의 가운데, 주된 내용을 요약하면서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동아시아담론’의 저자인 윤여일 박사에 따르면 ‘탈냉전의 산물’로서 1990년대 한국학계에서 전성기를 보였던 동아시아 담론은 중국과 일본의 소극성으로 인해 “한국은 자신이 말하는 동아시아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하토야마 정부 때 반짝 일본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론이 제기된 바 있었지만 곧 사그라져 버렸고, 중국도 동아시아 공동체보다는 중화주의를 중시 여김에 따라 한중일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해서는 남한만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탈냉전과 냉전이 착종’된 지난 30여년의 시간 동안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일본의 안보대국화, 중국의 급부상, 북핵문제, 양안문제, 도서영유권 분쟁 등이 어지럽게 뒤섞이며 불안정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하여 역내의 안보문제가 불거지면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그것이 지역안보를 긴장 국면으로 이끌어 다시 국가안보를 해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윤여일 박사는 ‘갈등과 긴장이 존속하는 동아시아 상황에서 공동체 조성이 가능할 것인가’라며 회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10년간 동아시아를 천착해 온 학자로서의 책무를 의식해서인지 윤 박사는 전문가 그룹부터 ‘지적 나태’에서 벗어나 평화체제를 구성해 나가기 위한 ‘복잡한 성찰’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임을 제언하면서, 나아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에서부터 현장에서의 시민사회의 역할과 참여를 주문하고 있다. 제주도민의 어깨에 짐 하나 더 늘었다. 

윤여일 박사가 지적한 바 동아시아 전문가들의 소망적 사고와 그에 따른 상투적 결론화 추세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이번 동아시아 공동체 세션이 마련된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세션을 기획한 필자로서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즉, 향후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과 관련하여서는 남한이 북한을 배제하는 ‘(남)한·중·일 동아시아’가 아니라 북한과 함께 하는 ‘한(반도)·중·일 동아시아’ 내지는 ‘남·북·중·일 동아시아’를 겨냥한다면 영토와 인구 또는 경제력 등에서 중국과 일본에 대비한 남한의 비대칭성을 넘어 역동적이고 주도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한국발 동아시아론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결정적 이유가 한반도의 다른 한쪽인 북한을 멀리하고 적대시한 데에 있다고 한다면, 2010년대 후반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동아시아 공동체론의 의의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어떻게 복원하고 증진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볼 것이다. 

두 번째 발표를 한 정영신 제주대 SSK 연구원은 제주에서 5년간 평화의 섬과 동아시아 속의 제주 등을 연구하면서 가졌던 세 개의 의문을 제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첫째는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때 강정해군기지가 추진되면서부터 제기된 쟁점으로,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답이 제대로 제시되지 못한 채 현실에서는 ‘평화의 섬 제주에 잘 오셨습니다’라는 제주공항의 간판과 강정해군기지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노무현정부의 계승이자 수정보완으로 나아가야 할 문재인정부에서는 평화의 섬 정책에서 평화와 안보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려고 할지 궁금하다. 

이와 관련 필자가 보기에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현실정부 정책으로서의 ‘세계평화의 섬 제주’는 비무장-비군사적 평화지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진보주의적 또는 근본주의적 평화의 섬 구상과는 거리가 있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군사화는 안보상 필요로 하는 적정안보 수준의 경무장은 용인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강정해군기지에 들어서는 이지스함 수준의 해군기지는 과잉의 중무장화라는 점에서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강정해군기지의 이지스함이 무언지는 인터넷만 치면 곧바로 나오는데, ‘적이 쏜 미사일을 중간에 요격해 방어하는 시스템’을 갖춘 함정이기 때문이다.  

정영신 박사는 두 번째 질문으로 “왜 평화의 섬 규정이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수용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데서 시작해 평화의 섬 제주의 미래를 천착해 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 필자 역시도 지난 30년간 제주 지방정부와 도민들 모두 전형적인 개발주의 노선에 맞춰 취약한 제주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의 정부의 지원을 어떻게든 받아낼 공산으로 평화의 섬 정책에 순응해 나간 측면이 크다고 본다.

이렇게 평화의 섬이 그 시작에서부터 국제자유도시의 브랜드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 데에는 저간의 물신주의와 결합한 우리 모두의 신자유주의 노선이 크게 작용했다. 이 점은 앞으로 평화의 섬을 논의할 때 깊이 반성하고 점검해야 할 사항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신자유주의의 퇴조와 그에 따른 국제자유도시 정책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지난 3년간 제주 부동산 광풍을 거치면서 제주의 미래에 대한 재점검이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강정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싹트기 시작하여 발전해 나간 것으로서의 ‘생명평화’가 인권을 강조하는 반군사화의 평화의 섬 수정본으로 널리 공유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중국 자본과 유커들의 과다한 제주 진출의 폐해를 피부로 절감하면서 관광객과 외자유치가 다다익선인 것은 아님을 재인식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해서는 자연보전과 청정환경 조성의 중요성이 널리 부상하게 됐다.

원희룡 도정이 청정과 공존을 제주의 미래비전 키워드로 설정하게 된 건 이런 제주도민 다수의 의식변화와 미래 드렌드를 반영한 필연이다. 문제는 그것의 정책화와 일상화인데, 아직도 개발주의의 관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갈팡질팡의 모양을 연출하고 있는 게 2017년 제주의 현주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정영신 박사의 세 번째 질문은, “왜 평화의 섬 규정이 4·3특별법에 포함되지 않았는가”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 첫 번째 이유는 평화의 섬 논의가 1991년 고르바초프의 제주 방문을 거치면서 국제정치적 공학에 의해 주도됐기 때문이며, 그래서 명칭도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됐다. 또한 정 박사의 주장처럼, 또 하나의 이유는 ‘4·3사건’을 둘러싼 ‘폭동론의 영향 속에서 항쟁론과 양민희생론의 타협’으로 화해와 상생의 담론을 전면화 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든 이와 관련한 필자의 생각은, ‘4·3사건’과 관련해서는 보수진영의 폭동론과 진보진영의 항쟁론 간의 논쟁은 잠시 미뤄놓고 그 누구도 반박하기가 어려운 양민희생론으로 정부의 지원과 사과 등을 받아낼 수 있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4·3 영령들에 대해서는 명예회복해 주고 그 유가족들에게는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을 최대한 해 주면 좋겠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본다.
 
2018년은 4·3 70주년이 되는 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바대로 4·3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공란으로 남겨뒀던 4·3과 인권, 특히 국가폭력에 대한 비판이자 부정으로서의 평화를 4·3과 연관시켜 재정립해 주길 기대해 본다. 평화의 섬이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양민학살-양민희생이라는 4·3의 비극과 직·간접으로 연관하여 재정립될 때, 세계평화의 섬은 생명평화의 섬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무리 겸 제언 하나. 제주미래의 담보인 청정환경과 연관해 생태평화의 섬 제주로 정명될 때, 비로소 평화의 섬 제주가 제자리를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물론 2017년 6월의 현 시점에서 풀뿌리 제주도민들이 생태적-환경적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생태주의적 세계관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회의적일 수가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년간 공식담론이었던 국제자유도시에 대한 큰 수정보완이 공식-비공식으로 널리 요청되고 있다는 건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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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2010년대 제주에서 생태평화로의 전환을 위해서 제주도민에게 주어진 남다른 자각과 노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싶다. 즉, ‘환경이익이나 부담의 문제, 환경적 위험의 제거, 쾌적한 환경의 유지와 향유 등 인간의 관점을 넘어서 미래 세대와 현 세대의 관계, 나아가 자연과 사회의 정의로운 관계를 적극적으로 제기’해 나가는 의식 전환과 역량 강화가 그것이다.

이렇게 향후 제주도민이 가꾸어 나가야 할 평화의 섬은 ‘종언을 고한’ 게 아니라 제1기 세계평화의 섬에서 제2기 생태평화의 섬 또는 생명평화의 섬으로 새출발하는 시작점에 서 있다. /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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