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할망신간-허남춘.jpg
▲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가<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라는 신간을 펴냈다. 도서출판 민속원, 값 3만5000원. ⓒ제주의소리

‘신화’ 속에는 인간과 자연과 우주가 공존하는 길이 녹아 있다. 단군신화가 그렇고 그리스 로마신화가 그렇다. 다만 우리에겐 민족의 기원신화에서 건국신화가 대부분인 줄만 알았겠지만 사실은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와 같은 창세(創世)신화가 온전히 남아 있다. 

창세신화가 그리스나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집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창세에서 인간생명 탄생, 그리고 죽음까지의 신화가 ‘설문대할망 신화’를 비롯한 ‘제주신화’에 풍성히 남아있다. 중앙에선 사라졌지만 지역엔 오롯이 살아있던 것이다. 

상아탑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 중인 허남춘 교수(제주대 국어국문학과)가 제주 창세의 여신 ‘설문대할망’을 중심으로 한라산과 360여개의 오름 형성 배경을 말해주는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라는 신간을 펴냈다. 도서출판 민속원, 값 3만5000원. 

신화는 산문이고 기록된 것이다. 허나 제주신화는 노래로 전승돼온 운문이고, 신의 내력을 풀어낸다고 하여 ‘본풀이’라고 부른다. 무당이 부르는, 서사적 이야기가 담긴 노래여서 ‘서사무가 본풀이’라고도 한다. 

저자인 허 교수는 제주가 절해고도의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정치적 입김이 비교적 덜 미침으로서, 다른 한반도 지역과 달리 무속이 풍부히 남을 수 있어 본풀이와 같은 신화가 풍성할 수 있었다고 풀이했다. 

고대에서 중세로의 시대전환 속에서, 정치적 중심부와 정치적 입김이 직접 미치는 중앙은 불교나 유교와 같은 중세 보편주의 문화의 직접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반해 부족공동체의 고유성을 강하게 지켜온 제주는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중세사회로의 전환 속에서도 고대의 전통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해석한 것. 

허 교수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제주의 한라산과 오름이 형성된 배경을 말해 주는 설화로, 제주 전도에 걸쳐 전승되고 있다”며 “다양한 이야기 구성을 지니고 있고, 여러 가지 증거물이 남아 있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특히 “천지창조 뒤에 나타나는 지형형성의 신화로 볼 수 있으며, 남성신화가 나타나기 전의 여성신화”라면서 “대단한 생산력을 지닌 여성신으로서의 설문대할망은 제주의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따듯한 인간애를 드러내는 신화이면서 제주인의 소망을 담은 미래지향적 이야기라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숱한 억압과 멸시 속에서 꿋꿋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제주 무속도 이젠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다. 심방(무당)의 숫자도 줄고, 단골(신앙민)도 60~70대 이상의 고령화가 두드러진다.

또한 신당도 폐당이 되어 간다. 무속 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았던 학교 교육 탓에 대부분의 제주사람들은 전통문화의 가치를 돌아보지 않고 있다. 근대가 파탄 지경인데 아직도 근대정신을 추종하면서 그 앞 시대(고대와 중세)를 전근대라고 몰아세우면서 척결을 주장하는 현실을 저자는 꼬집고 있다. 

근대가 아름다운 점이 있는 만큼 고대와 중세에도 아름다운 점이 있다. 그 전근대적이라 하는 무속 속에 민족의 전통문화가 고갱이처럼 앉아 있다. 근대를 극복하고 탈근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하려면 전근대와 근대의 가치를 모두 합하여 긍정적 요소들을 새롭게 추출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변이다. 

저자 허남춘 교수는?

허남춘 교수.jpg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장과 제주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황조가에서 청산별곡 너머』(2010), 『제주도 본풀이와 주변신화』(2011), 『이용옥심방 본풀이』『양창보심방 본풀이』『고순안심방 본풀이』『서순실심방 본풀이』(공저, 2009~2015), 『할망 하르방이 들여주는 제주음식 이야기』(공저, 2015) 등이 있다. Daum 블로그 ‘허남춘의 슬로시티’도 운영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