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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아카데미 시네마 건물을 인수해 2014년부터 어린이 전용 실내 놀이공간을 운영하는 이재성 (주)재밋섬파크 대표이사. 영화관은 독립, 단편영화도 수시로 상영한다. ⓒ제주의소리
[인터뷰] 이재성 (주)재밋섬파크 대표이사 "원도심으로 오세요" 

제주시 삼도2동 주민센터 일대, 흔히 성내(城內)로 불려지는 원도심 중심 공간이다. 원도심이 슬럼화되면서 인적이 드물었던 이곳에 언제부턴가 하나둘 새로운 것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주택가 골목길 사이로 소극장, 공방들이 하나 둘 생겼고 예쁜 카페들도 문을 열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특히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던 옛 제주대학교 병원 건물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 전시장, 연습실이 갖춰진 ‘예술공간 이아’로 탈바꿈했다. 물론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나, 정주인구가 줄고 낙후돼가는 원도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화예술 정책의 대표적 결과물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에 순수 민간 차원에서 문화전도사 역할을 하는 청년사업가의 노력도 한몫한다. 원도심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각별하고 특별하다. 제주가 좋아 제주에 이주한, 그리고 원도심의 문화 전령사가 된 (주)재밋섬파크의 이재성(44) 대표이사다.  

재밋섬파크는 옛 아카데미극장이 운영되던 이 일대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다. 재밋섬파크의 '조용한 변신'은 꾸준히 사람들을 원도심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영화관(메가박스 제주)은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건물 일부를 리모델링해 어린이를 위한 놀이공간도 열었다. 

메가박스 제주 영화관은 종전 제주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독립·단편영화들을 수시로 편성·상영한다. 올해 4월부터 제주영상위원회가 운영하는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도 6~7관을 빌려 자리잡았다. 독립·단편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작품을 상영하는 제주독립영화정기상영회도 1관에서 열린다. 최근에는 제주 IT기업이 1층 한편에 어린이 전용 소극장 '두근두근 시어터'를 차렸다. 건물 앞 공터는 소규모 공연이 열리는 <거리예술제> 행사 무대로 내줬다. 크게 눈에 띄진 않아도,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두가 찾는 문화 거점으로 변화 중이다. 

사업가라면서 소위 '돈 안되는' 것들을 찾아내서 일을 벌이는 그를 두고 이상하게 여길 법도 하다. 그러나 그의 소신과 철학에는 돈 되는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이 훨씬 앞줄에 자리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네마', '씨너스 나인'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극장으로 사용돼 온 이곳은, 이재성 (주)재밋섬파크 대표가 2014년 건물을 인수하면서 현재 모습이 됐다. 지난 21일 재밋섬파크 1층에 있는 마싯섬(Masissum)에서 만난 이 대표는 “다음 주 28일부터 우광훈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작품 <직지코드>를 메가박스 제주에서 상영한다. 우 감독은 제주 출신인데, 지역에 워낙 많은 분들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 작품 좀 상영해달라’고 부탁해 상영 일정을 잡았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제주에는 독립·단편영화만을 상영하는 전용 공간이 없다. 일명 ‘시네마테크’라고도 부르는데,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단편·비상업영화를 보여주고 상영회·교육 같은 행사도 여는 문화 공간이다. 제주에서는 메가박스 제주가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일부분 맡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고희영 감독의 해녀 다큐 영화 <물숨>,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다큐 영화 <무현...두 도시 이야기>를 정기 상영했다. 김희철 감독의 다큐 영화 <이중섭의 눈>, 오충공 감독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영화 <감춰진 손톱자국> 등, 양정환 감독의 4.3 영화 <오사카에서 온 편지>, 이해심 감독의 해녀 영화 <해녀콩> 등 숱한 독립·단편영화 상영회도 이곳에서 열렸다. 도내 다른 영화관들도 영화제 장소로 협조하는 등 나름 노력하지만, 메가박스 제주가 지역의 영상 문화에 차지하는 무게는 분명 특별하다.

이 대표는 “각 지역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걸 때는 본사에서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참고한다. 가이드라인은 어떤 영화가 많이 보는지 ‘흥행’을 기준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극장주 자체 판단으로 어느 정도는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주 정서랑 맞지 않으면 영화를 올리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도 가능하다”며 “본사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제주도 극장들이 아무도 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을 그냥 내버려 둬도 될까? 다양성 있는 영화는 존중해야 한다”고 나름의 소신을 밝혔다.

수익이 늘어나길 원한다면 소위, 히트작 중심으로 스크린을 채우면 된다. 한 작품이 상영관 상당수를 차지하는 멀티플렉스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대중적인 작품을 내걸면서 동시에 ‘다양성’까지 신경 쓰는 메가박스 제주의 경우, 불가피하게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돈' 보다 '가치'를 우선한다는 그의 철학은 장애인들을 위한 그의 조용한 선행에서도 엿볼수 있다. 이 대표는 재밋섬파크가 여느 상업 시설로 머무르지 않고, 지역 사회와 보다 친밀한 공간이 되고자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부터 시작한 장애인의 날 영화관 초청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제주시 화북동에 위치한 장애인 복지·재활시설인 일배움터 식구들을 모두 초청해, 하루 동안 원하는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상영관 하나를 제공했다. 일배움터 식구들은 영화에 준비한 음식까지 맛보며 만족스러운 장애인의 날을 보냈다.

이 대표는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이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정작 기념행사에서는 들러리 취급 받는다는 소식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하루 만이라도 편안하게 영화를 보고싶다는 말에 기꺼이 동참하게 됐다”며 “영화관에 온 장애인분들은 기념행사처럼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만족감이 높았다. 저 역시 지역사회 일원으로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고 밝혔다.

이 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읍면지역 찾아가는 재밋섬 등의 행사도 꾸준히 열고 있다.

재밋섬파크는 특히 제주에서 ‘실내 놀이공원’이라는 개념을 선도적으로 도입한 기업이다. 3305㎡(약 1000평) 규모의 3층 공간에 10가지 놀이시설이 구비돼 있다. 시간제가 아닌 한 번 구입 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어, 많은 부모와 어린이집, 유치원들이 재밋섬파크를 찾는다. 놀이시설에 그치지 않고 인형극, 애니메이션, 입체놀이 같은 콘텐츠까지 제공한다. 나아가 VR(Virtual Reality·가상 현실), AR(Augmented Reality·증강 현실)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 개발에도 투자하고 있다. 덕분에 사실상 영화관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놀이시설이 채워주는 모양새다. 영화관, 놀이시설, 음식점을 운영하는 재밋섬파크는 현재 70명을 고용하고 있다. 처음 50명에서 시작해 4년 동안 20명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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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밋섬파크 놀이시설 모습. ⓒ제주의소리

현재 삼도2동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 대표는 원래 부산 출신이다. 서울에서 금융전문가로 일을 하다가 재밋섬 사업을 위해 2014년 제주에 내려왔다. 그런 이 대표에게서 ‘원도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듣는 건 참으로 오묘한(?) 경험이었다.

그는 “원도심은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드는 곳이었다. 줄어드는데는 이유가 있고, 다시 사람들이 찾도록 하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재밋섬파크는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놀이시설, 성인들을 위한 영화관에 다양한 작품도 상영하고, 식당까지 마련해 차별적인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며 다양한 노력을 소개했다. 

이어 그는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이익도 중요하지만, 재밋섬이 제주시 원도심이라는 지역 안에 속해있다는 점에서 보면 공공을 위해 참여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제가 좀 손해를 보거나 이익을 덜 보더라도 재밋섬파크가 원도심 문화 융성과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다. 이런 진심을 인근 주민들과 도민들 중 일부라도 알아준다면 저로선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이 대표는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재밋섬파크의 또다른 변신을 구상하고 있다. 영화, 연극, 음악, 놀이 등을 아우르는 공공의 복합 어뮤즈먼트(amusement)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 혹시라도 이같은 구상이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것으로 비춰질까 하는 우려로 더이상의 말은 아꼈다.  

다만 그는 “제 이익을 취하려만 했다면 이미 재밋섬파크는 다른 사업자 손에 들어갔다. 실제 매각 제안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사기업에 팔지 않았던 것은 원도심에서 이 공간이 갖는 지리적 중요성과 앞으로의 가능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가 지난 2014년 매물로 나온 이 건물을 인수할때까지만 해도 '원도심'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몰랐고, 인수 후 원도심 문화공간으로서 공공의 활용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면서 '이익'과 '가치' 사이에서 고민이 깊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제주에서 열리는 각종 영화제나 영화 관련 행사들은 메가박스 제주를 비롯한 극장 공간을 빌려 개최한다. 이 대표는 "새롭게 문을 연 예술공간 이아와 재밋섬파크를 연계한다면 원도심을 살리는 획기적인 시너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설명을 들으니 복합 어뮤즈먼트 공간에 대한 구상과 윤곽이 보이는 듯 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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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밋섬파크 건물 현황. ⓒ제주의소리
올해 4월 제밋섬파크는 제주도와 특허청이 주최하고 제주상공회의소 지식재산센터가 주관하는 2017년 ‘글로벌IP스타기업’에도 선정됐다. 여기에는 제주 유망기업 12곳이 속해 있다. 더불어 자신들이 개발한 VR콘텐츠 체험기기인 ‘매직아일랜드VR’을 인도네시아에 수출했다. 어린이 놀이시설 기업으로 시작해 점차 콘텐츠 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제주에서 시작한 ‘재밋섬’을 한국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로 성장시키는 게 목표다. 제주에 들어올 때 20년간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왔다. 앞으로 16년이 남았는데, ‘주변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제주도민과 부대끼며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 이 대표는 한 가지를 꼭 당부했다. 

다양한 독립·단편영화를 주기적으로 상영하는 단체 ‘제주독립영화정기상영회( http://cafe.naver.com/jjiff )’가 지난 5월부터 메가박스 제주점에서 상영관을 빌려 운영 중인데 더 많은 도민들이 참여해달라는 부탁이다. 그는 “정말 좋은 영화들을 준비하는데 그만큼 좌석은 차지 않아 안타깝다. 회원도 모집하고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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