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170625_150052423.jpg
▲ 제주학회는 2017년 제45차 전국학술대회 <제주 이주의 역사와 문화>를 23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사)제주학회, 학술대회 ‘제주 이주의 역사와 문화’ 개최..."환경 보존 위해 함께 노력해야"

13세기 몽골인부터 고려·조선시대 유배인,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산업화 시기 이주민을 거쳐 최근 문화 예술인까지...제주 이주의 역사를 정리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현재 제주는 급증하는 인구로 인해 각종 환경·사회문제가 커지고 있다면서, 제주다움을 지키기 위해 원주민과 이주민이 하나로 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학회는 2017년 제45차 전국학술대회 <제주 이주의 역사와 문화>를 23일 오후 1시 제주대 인문대 2호관 진앙현석관에서 열었다. 이번 행사는 고려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주민들이 제주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토착 선주민과 정착 이주민 사이에 이해를 넓히고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사)제주학회, 오영훈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사)제주학회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제주학연구센터가 후원했다. 

순서는 황경수 제주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오영주 제주한라대 교수(원대명초 몽골족 제주이주 연구) ▲홍기표 전 성균관대 교수(여말선초 제주 입도초 연구) ▲김아람 연세대 국학연구원(한국전쟁기 제주 피난과 이주, 그리고 정착) ▲염미경 제주대 교수(산업화 시기의 제주이주민: 지역정착과 사회연결망) ▲김동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2000년대 이후 문화이주 연구를 위한 새로운 관점) ▲황석규 제주다문화복지교육연구소(외국 이주민의 정착과 전망) ▲정은희 작가(제주 이주민의 역사와 현재적 시점)의 발표가 진행됐다.

이후 김일우 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 유철인 제주대 교수, 이영권 제주역사교육연구소장, 강성일 제주대 교수가 토론을 이어갔다.

# 몽골제국부터 한국전쟁까지

오영주 교수는 몽골 원나라 때 대규모 제주 이주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원 세조 말기인 1274년부터 20년 동안 제주에는 군사, 죄수, 목호, 행정관리직 등 1500여명에 달하는 몽골인들이 제주로 들어왔다. 특이한 점은 모두 남성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몽골 남성과 제주 여성이 가정을 이뤘다. 제주도 최초의 '다문화가정'인 셈이다. 명나라 집권 시기인 14세기에는 몽골족 황족이 제주로 향했다. 명나라는 원나라 양왕 ‘바자르와르미’의 자손인 ‘아얀테무르’를 1392년 제주로 보냈다. 

홍기표 전 교수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시기에 제주로 들어오는 인물은 대략 16명이라고 파악했다. 광산김씨 김윤조, 풍기진씨 진계백, 제주좌씨 좌형소, 김해김씨 김만희, 청주한씨 한천, 양천허씨 허손, 경주이씨 이미, 신천강씨 강영, 순흥안씨 안득경, 남양홍씨 홍윤강, 경주김씨 김검룡, 나주김씨 김인충, 원주변씨 변세청, 진주강씨 강윤희, 연안김씨 김안보, 연주현씨 현사경이다.

그러면서 이들에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고려 공민왕, 조선건국 전후, 조선 태종대에 집중적으로 입도 ▲제주 북부지역에 거주 ▲입도 이유는 유배인, 정치적 망명, 운둔 처사, 공무수행 후 정착 등이다.

김아람 연구원은 한국전쟁 시기, 정부는 영남과 제주를 최후의 피난지구로 정하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10만명이 넘는 피난민이 제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사회부(옛 정부 부처), UNCACK(유엔민간원조사령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1951년 2월 6일부터 20일까지 ‘14일 동안’ 제주에는 무려 피난민 10만6353명이 들어왔다. 다음해 1월 16일부터 31일까지는 5만4873명, 3월 15일에는 2만5360명, 6월 30일에는 2만1525명이다.

김 연구원은 “1960년대까지 전후 복구사업의 핵심이었던 난민정착사업이 제주에서도 계획돼 170개 이상의 사업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피난민 출신 기독교 장로의 시온교회를 중심으로 한 법호촌은 필요한 식량이나 자재가 유입되지 않으며 사업이 추진되지 않았다”며 “4.3사건과 전쟁 후 마을이 복구되는 데 난민정착사업은 어떠한 영향이 있었는지,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정부가 실시한 대규모 개발계획 이전에 지역이 자체적으로 피해를 극복하고자 하고, 지역민이 노력해왔던 역사가 복원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KakaoTalk_20170625_150053106.jpg
▲ 참가자로 가득찬 학술대회장. ⓒ제주의소리

# 산업화 시기부터 문화예술인 정착까지...오늘날의 과제는?

염미경 교수는 산업화시기인 1960년대 이후부터 1900년대까지 제주 이주민의 특징을 발표했다.

1960년부터 1995년까지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태어난 도민의 출생지는, 광주·전남지역이 60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1위를 차지한다. 특히 70~80년에는 42%를 상회할 정도다. 염 교수는 이에 대해 "제주지역 개발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주나 전남에서 충원한 결과"라고 밝혔다.

유입 인구는 초창기에는 광주·전남이 가장 많았고 그 이후에는 서울과 부산·경남지역 비중이 커졌다. 광주·전남은 1965~70년에 36.8%, 1970~75년에 38.1%를 기록하며 큰 비중을 차지했다가 서서히 줄었다. 서울은 30.6%를 차지한 1980~85년 이후 28~29%를 유지했고, 부산·경남은 1980년부터 20% 초반을 이어갔다. 

염 교수는 산업화 시기 이주민들이 어떻게 지역에 들어왔고 활동했는지 호남인을 대표 사례로 조사했다. 조사 방법은 1960년대 전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제주에 온 17명을 심층 면접했고, 향우회 관계자 20명도 함께 면접했다.

염 교수는 “제주가 국제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해 노력하면서 막노동 등 날품일터가 생겨나고 감귤산업이 성장하면서 서귀포 감귤의 육지 운송을 위한 관문인 제주항 부근에 밀집해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호남인 집중거주지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염 교수는 “부모와 함께 제주에 온 1.5세대나 2세대는 지역토박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도 거의 없고, 세대교체나 선거개입 같은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향우회의 지역활동에서도 변화가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동현 연구원은 2000년대 이후 나타나는 제주 이주 현상의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적지 않은 수가 문화예술인이며, 이주민들이 지닌 삶의 방식이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제주 이주가 도시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라이프리셋(Life Reset)을 추구하려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화이주, 문화이주자들의 삶의 태도는 제주 내부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양식”이라며 “제주 이주 현상에 담겨 있는 대안적 삶의 가치를 제주 사회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통해 제주공동체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새로운 시각을 제안했다.

황석규 소장은 “도내 국제결혼 가정 자녀가 2008년 734명에서 2015년 3051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제주인들이 일본에서 재일제주인으로 살아온 역사를 역지사지로 삼아, 편협하고 차별적인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을 바꿀 교육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이주민의 역사》의 저자인 정은희 작가는 최근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물 부족 ▲생활쓰레기 증가와 수질오염 ▲교통난 ▲생태계와 경관 파괴 ▲제주문화의 원형 파괴 같은 많은 문제가 제주에 일어난다고 꼽았다.

정 작가는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주다움으로 섬을 지키고자 한다면, 처음처럼의 마음과 의욕을 가지고 제주에 온다면 제주 ‘이주 열풍’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며 “제주에 사는 모든 사람이 지속적으로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함께 해야 한다. 이주민, 원주민이 서로 융합할 수 있다면 제주는 이주자의 섬에서 ‘공존의 섬’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