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60) 승현준 『커넥톰, 뇌의 지도』 /김준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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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현준 <커넥톰, 뇌의 지도>, 신상규 옮김, 2014, 김영사.
알파고는 커제를 이긴 후 은퇴했다. 이로서 이세돌은 현생 인류 가운데 알파고를 한 번이라도 이겨본 유일한 인간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의 승리도 단 한 번의 예외였을 뿐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으니, 이제 인간은 바둑 게임에서 컴퓨터를 이길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에게서 바둑이 차지하는 위상이 변화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인간은 인간대로 자신들이 가진 뇌의 용량을 사용해서 인간들끼리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구글의 자회사 딥 마인드가 만들어 낸 알파고는 이 시대 지적 충격의 최전선에서 맹활약했다. 이제는 알파고라는 바둑 은퇴자가 남긴 파장에 주목할 시점이다. 그것은 인간 뇌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탐구함으로써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를 헤아려보는 일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를 따라 배우는 매우 단순한 논리를 가진 기계장치다. 따라서 인공지능에 관한 이해의 핵심은 인간의 뇌에 관한 이해와 맞닿아있다. 뇌라는 물질은 컴퓨터 기반의 인공지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는 에너지 덩어리다. 미국의 뇌과학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계 뇌과학자 승현준 교수(MIT)는 『커넥톰, 뇌의 지도』에서 뇌라는 놀라운 물질에 대한 이해에 접근해보려는 인류사적 사건을 소개한다. 그가 펼쳐 보이는 커넥톰(Conectome)이라는 이름의 빅 프로젝트는 뇌에 관한 미시적이면서도 거대한 구상으로서,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이어 또 다른 관점으로 자연과학적 인간이해에 다가서는 일이다.

커넥톰을 연구하는 학문을 연결체학(Connectomics)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신경세계에서 벌어지는 뉴런과 시냅스 사이의 미시적인 상호작용을 다루며,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거시적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연구한다. 커넥톰이라는 용어는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인 게놈(genome)과 연관이 있다. 게놈은 염색체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유전자들인데,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 게놈의 전체 염기 서열을 읽어냈다. 게놈과 마찬가지로 커넥톰이라는 개념도 인간의 뇌가 보유하고 있는 신경세포들의 연결망을 구조적으로 재현해보는 일이다. 커넥톰은 커넥트(Connect)와 크로모솜(염색체, chromosome)을 합성한 조어다. 그것은 인간의 뇌라는 복잡한 물질의 작동 메커니즘을 지도그리기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개념으로서 뉴런과 시냅스의 관계, 즉 신경세포들과 이들의 연결망의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정보전달이라는 특수한 임무를 가진 신경세포에 관한 연구, 즉 신경과학은 19세기 이래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날 과학의 최전선에서 서있다. 최초의 신경세포 연구는 현미경에서 출발했다. 1873년에 카밀로 골지(Camillo Golgi, 1843-1926)는 황산은으로 세포를 염색하는 방법으로 뉴런을 관찰했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Santiago Ramon y Cajal, 1852-1934)은 현미경으로 뉴런 구조를 관찰해 <정신의 정글>이라는 제목의 대뇌피질 뉴런 그림을 그려냈다. 이들은 1906년에 노벨 의학 및 생리학상을 공동수상했지만 둘의 의견은 달랐다. 골지는 세포끼리 돌기에 의해 서로 연결돼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망상설을 펼쳤고, 카할은 각각의 신경세포는 독립체이며 직접 이어져있지 않다는 뉴런설을 펼쳤다. 1932년 발명된 전자현미경에 의해 뉴런설이 정설로 입증됐다. 그리스어로 밧줄이나 힘줄을 어원으로 하는 뉴런이라는 용어는 이제 동시대 지구인들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뇌에는 수천억개의 뉴런들이 있다. 이 세포들은 뼈세포나 근육세포, 간세포 등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들과 달리 ‘자극의 전달’이라고 하는 매우 특수한 기능을 수행한다. 뉴런에는 축색과 수상돌기가 있어 다른 뉴런과 정보를 주고받는다. 각각의 뉴런들은 시냅스(Synapse)라는 연결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각각의 뉴런과 뉴런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지도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압축적으로 말하자면 커넥톰은 신경세포들의 연결망 지도, 즉 뉴런의 회로도다. 신경세포들의 연결망이 강한지 아니면 약한지에 따라서 기억의 강약이 결정된다. 이렇듯 한 인간의 신경세포 연결망의 차이들은 의식의 굴곡을 만들어낸다. 인간 개별의 차이도 바로 이 뉴런 커넥션에 의해 나타난다. 이런 맥락에서 커텍톰은 인간의 정신에 관한 이해의 근본을 뒤흔듦으로써 인간 존재에 관한 전혀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밝힌 게놈이 인간의 몸의 지도라면, 뉴런의 연결망을 탐구하는 커넥톰은 인간 정신의 지도다. 게놈이 선천적인 유전자형질의 배열순서를 밝힌 것이라면, 커넥톰은 후천적으로 생성하여 변화하고 있는 신경계의 연결망 지도다. 모든 인간이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듯이 모든 인간의 뇌 또한 각각 다른 신경세포 연결망을 가지고 있다. 이 연결망은 인간이 사는 동안 계속 변화한다. 기억과 감정, 느낌, 생각 등의 변화가 이뤄지는 것도 결국은 신경세포 회로도의 변화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근육세포들이 활동량에 따라 발달하거나 퇴화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자주 경험하는 일은 배선망이 굵어지고 경험한 지 오래된 일은 점점 배선망이 얇아져 결국 연결이 끊어진다. 

게놈과 커넥톰은 인간 존재론에 대한 수천 년의 철학적 탐색을 일거에 뒤바꿀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게놈과 커넥톰에 의해 존재한다. 게놈은 변화하지 않지만, 커넥톰은 계속 변화한다. 뇌 속에서는 ‘신경세포들 간 연결의 세기를 강화 혹은 약화시키고(재조정·Reweight), 새 연결을 하거나 헌 연결을 끊고(재연결·Reconnect), 신경가지가 자라거나 줄어들고(재배선·Rewire), 오래된 신경은 죽고 새 신경이 생기는(재생·Regeneration) 4R이 반복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뇌 속의 지도는 계속 바뀐다. 게놈이 선천적인 운명을 밝히는 일이라면, 커넥톰은 후천적인 자유의지의 경로를 탐색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라는 존재자는 운명론과 자유의지론 양자에 걸쳐있다.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는 뉴런들은 1천억 개에 달한다. 시냅스라고 부르는 접합부에 의해 연결돼 있는 이 뉴런들은 늘 유동적인 연결망을 형성한다. 인접한 뉴런에서 전해오는 전기나 화학 신호체계를 갖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접합의 순간이 많아질수록 그 에너지가 함유한 기억정보의 자극이 커지고 빈도수도 높아진다. 따라서 커넥톰은 자극을 전달하는 뉴런과 뉴런의 연결망을 그리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항공노선도와 같다. 현재 진행 중인 '휴먼커넥톰프로젝트’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인간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도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 인간의 뇌라는 놀라운 물질에 관한 미시서사와 거대서사를 연결하는 장구한 탐색이다. 생각의 경로를 좇아 인간의 기억을 탐문해 보는 일. 광활한 우주를 탐색하는 일 만큼이나 지난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김준기 관장

▷ 김준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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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관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 예술학과 학부 및 석사 졸업 및 같은 학교 미술학과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 <2016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과학연구소 대표 역임.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2014-2016), ‘프로젝트대전’ 총괄(2012,2014), ‘해인아트프로젝트 커미셔너’(2013) 등을 역임했다. 예술사회학적 관점으로 공공미술과 사회예술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지향하는 과학예술과 우주예술을 연구 및 기획하고 있고, 올해 처음 열리는 ‘제주비엔날레’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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