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I. 닮은 듯 다른 대만과 한국  

대만을 떠올릴 때마다 변방의 아픔과 슬픔이 동변상련으로 찐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독립된 실체의 나라임에도 언제부터인가 국제적으로 나라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대표적 나라가 대만이기 때문이다. 약 2350만의 국민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기에 부족하지 않은 나라인데도, 강대국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오늘날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내부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음에 안타까운 심정의 나라이다. 중국이 하나이면 어떻고, 여러 개이면 왜 안 되는지의 정치적 논쟁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허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단일의 국민주권 국가에 매진한 것도 19세기나 20세기에 국한된 하나의 시대적 흐름일 뿐이다. 그것은 방어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맞선 강한 국가의 필요성 때문에 그리고 보다 공세적으로 아제국주의(subimperialism)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방편일 뿐이지 않은가. 

세상이 변했다. 탈제국과 탈중앙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일방과 자의성을 용인하지 않는다. 각 지역마다의 그리고 각 개인의 고유성을 다져나가기 위한 분권화된 다양성 추구가 대세이다. 줄기세포로 생명공학이 신세계를 열어 나가고 있는가 하면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널리 활용되고 만물인터넷이 조만간 집 안으로 들어오는 21세기 시대에는 지난 19~20세기와는 다른 방식의 삶이 요청된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국가관과 안보관으로의 변화가 긴급 과제인데도, 여전히 우리는 철 지난 힘의 논리에서 맴돌고 있다.  

이 점에서 대만은 발빠르다. 생존과 번영을 위한 대중전략이 한국보다 더 절실해서 인지, 2008년에 이미 중국-대만 직항노선이 개설되기도 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활용함으로써 이득을 챙기는 건 대만이겠지만, 대만의 자본은 중국에게도 기회 요인이 되고 있다. 10년이 지나는 오늘날에도 이른바 양안관계로 지칭되는 중국-대만 관계가 정치-군사적으로는 그다지 순탄하게 전개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의 경제적 이해를 주고 받는 데는 남다른 지혜를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건 한국이다. 1990년을 전후하여 한중수교와 한소수교의 성과를 이룬 데 머물고 있을 뿐, 그 이후 북한과의 관계회복에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아 문재인 정부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를 거는 하나의 영역이 바로 남북한 교류협력의 꾸준한 확장과 심화일 것이다. 전향적인 북방정책을 통해 한민족 간에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상호성을 찾아나서야 함에도, 지난 대선에서까지도 종북 논쟁이 나름 위력을 발휘함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컸던 건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안보가 경제일 수 있다는 최근의 주창은, 곧 북한과의 교류협력 증진을 통해 안보비용을 줄여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안보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서의 창의적인 대북교류협력을 찾아 나서자는 데서 나온 새로운 인식 전환이기도 하다. 

일찍이 외교-인권-평화-경제-문화 등에서 대외적 교류협력의 영역을 넓혀 나가자면서 정부 차원에서까지 수용해 나간 세계평화의 섬 제주도, 아직은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지난 10년간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안보 차원에서 그렇게 필요하다고 주창했던 해군기지가 건설된 만큼, 이제는 그러한 수고와 긴급성 만큼으로의 평화 사업이 절대 요청된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이름으로 해군기지 추진에 버금하는 행-재정적 지원과 열정으로 제주발 남북교류협력 추진에 전력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      

비교론적으로 보면, 대만의 내적 동력은, 남한이나 싱가폴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국-싱가폴-홍콩과 더불어 한 때 동아시아 4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대만인 경우도 국민들의 위기의식을 적절히 활용해 나간 장개석 등 국민당 정부의 정치적 능력이 한 몫 했다. 1960-70년대 박정희 치하의 남한이나 리콴유 치하의 싱가폴 그리고 장개석 치하의 국민당 정부 모두 산업화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정치적 위기의식에서는 서로 유사한 동아시아 나라였다. 그러나 중국과 맞대어 지내야 하는 대만은 남한보다 더 치열하고 더 열심히 내부 역량을 닦아내야 할 항상적인 위기 속에서 지난 70년을 지냈으리라. 그래서일까, 적어도 우리 남한 국민들만이라도 대만 국민들의 수고와 성공에 축하와 함께 경이로운 마음으로 대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 같고. 다음은 그 배움의 한 생각이다.  

II. 가오슝의 무가선 트램과 제주

지난 주 1주일간 타이뻬이와 가오슝에 체류하면서 한국과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여건과 배경에서 산업화-민주화-정보화를 이룬 대만에 대해 비교론적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다른 대만 여행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편리하고 쾌적한 지하철을 놓칠 수가 없다. 국제관광지인 제주인 경우는 제주를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편하게 제주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대중교통 수단 제공이야말로 가장 일차적인 관광 인프라일 것이기에, 더 눈여겨 대만의 지하철을 그리고 더욱 집중적으로는 가오슝의 트램을 바라보았다. 

대만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은, 지하철이 금방 금방 온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돈이다. 짧은 시간 체류하는 관광객만이 아니라 대만 국민들에게도 시간은 돈일 것이다. 그래서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중교통 가운데 지하철을 선호하는 이유는, 정확한 시간에 그리고 짧은 시간에 목표지를 오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누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건 천문학적 액수일 것이다.

전동차 차량을 타고 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는 동선이 짧고 편리하도록 되어 있는 지하철. 차량 내부는 물론이고 역 안의 광활한 터를 아낌 없이 제공해 줌으로써 공기 순환과 내부 환경이 쾌적한 지하철. 그리고 전동차 이용비가 저렴하면서도 차량이 금방 금방 오도록 하여 기다림에 지치지 않도록 하는 그러한 교통수단으로 지하철을 만나고 싶다면, 대만에서 지하철 타보면 된다. 요즘처럼 제주의 교통이 단순 적체를 넘어 교통지옥처럼 되어가는 현실에서 제주의 교통 문제의 미래를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를, 대만 체류 내내 생각해 보면서 지냈지만, 생각보다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버스, 지하철, 트램 등과 같은 대중교통은 다리, 항만, 공항, 폐기물처리장 등과 같이 수익성만을 고려해서는 안 될 공공서비스 차원의 인프라이다. 이 가운데 제주의 경우는 철로가 부재하고 지하철이 없어 버스에만 의존하는 대중교통에 무언가 큰 변화가 요청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난 우근민 도정 때 트램 설치로 용역까지 하면서 제주의 대중교통에서 획기적인 대책을 강구하는가 싶었는데,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당시 언론에 나온 최종 불가 사유는 채산성이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트램 설치와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과 트램 설치를 하지 않고 버스에만 매달리는 교통체계 내에서 도민들이 겪는 불필요한 정서적 짜증과 시간 소요 그리고 환경적 비용을 돈으로 환산하여 비교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트램이 무산된 데 대한 아쉬움이 컸다.  

마침 대만 가오슝이 최첨단 트램을 시범 운행한다고 하기에, 아직은 무료로 운행되는 가오슝 트램을 타 보았다. 신형 트램 전동차가 제공하는 쾌적함도 좋았지만, 지하철과는 달리 트램은 노면전차이기에 버스처럼 차창가로 가오슝 시내를 볼 수 있기에 나와 같은 관광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더욱이 무가선(無架線) 트램으로 지칭되는 가오슝 트램은 정거장 지붕에 유도전력선을 설치해서 정거장에 정차할 때 충전한 전기로 다음 역까지 무선으로 갈 수 있는 최첨단 시스템이다. 그래서 공사비와 전력비 등이 30%나 절약된다고 한다. 한국도 대만 못지않게 이러한 무가선 트램 기술을 개발해 있는데도 왜 상용화가 안 되는지의 의아심은 가오슝에 가서 트램을 직접 타보니 이해가 되었다.   

제주에서도 이런 무가선 트램이 있었으면 하는 애초의 순진한 바람은 무엇보다도 제주의 도로 사정이 허락치 않을 것으로 보여, 그저 가오슝 트램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만 보았다. 폐선된 옛 항구 철도를 선로로 재활용하는 가오슝의 미래 전략에도 박수를 쳐야 하겠지만, 제주에는 그런 폐선이 없으니 어떡하랴. 뉴스를 보니, 올 해 대전과 대구가 가오슝 트램을 시찰하였다고 하는데, 가오슝의 트램보다 한 단계 더 나은 트램이 한국에 더 선보이게 되길 기대해 본다,   

가오슝 트램을 타 보니 트램 운행에 따른 선로를 제외하고도 6차선 버스 노선이 운행될 수 있을 만큼 큰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제주의 도심에는 그런 큰 도로가 없지 않는데, 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딱히 해법이 나오지는 않았다. 트램 한다면서 버스를 2차선이나 4차선으로 줄이는 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도로를 만들 때 널찍하게 도로망을 넓혀 놓은 가오슝 도시개발자들의 선견지명에 경이를 표할 뿐이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도시계획은 천년대계여야 할 듯싶다.  

191931_220695_2402.jpg
▲ 양길현 교수.
올 8월 제주도정은 혁신적 대중교통 대책을 발표한다. 버스 노선의 대대적 혁신과 더 많은 버스 투여일 공산이 크다. 일단 제주의 교통에 숨통을 터 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그러나 한정된 도로에 중앙버스 노선 도입과 더 많은 버스 투입만으로 늘어나는 교통이동 수요를 얼마나 편하게 그리고 쾌적하게 해결해 줄지는 의구심이 많다. 결국 해법은 비용이 들더라도 부대효과를 감안하고 또 인구 100만을 겨냥하는 장기적 측면에서 제주도민의 삶의 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하철과 트램 중 하나로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말 많은 제2공항 대신 그에 투입될 돈으로 우선 대중교통 문제를 해결하고 그 이후 하늘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떤지? /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