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예술공간 이아 대담 ‘일상의 폭력, 영혼을 지키는 방법’서 나온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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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예술공간 이아에서 ‘일상의 폭력, 영혼을 지키는 방법’을 주제로 열린 대담에 패널로 참석한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 ⓒ 제주의소리

15일 오후 3시 제주시 삼도2동 예술공간 이아에서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과 여성학자 오한숙희가 ‘일상의 폭력, 영혼을 지키는 방법’을 주제로 대담에 나섰다. 지난 1일부터 이아에서 진행중인 정영창 작가 기획 초대전 ‘한 사람’의 일환이다.

정 작가는 1983년 한국을 떠난 뒤 지금껏 독일에서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다. 현대사회의 모순을 끊임없이 다뤄온 정 작가와 폭력이라는 테마는 밀접하다.  

제주 현대사의 가장 끔찍한 폭력인 4.3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허 소장은 “폭력에 대한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더 짙어진다”며 “4.3을 겪은 이들은 여든이 돼고 아흔이 돼도 후유장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4.3을 직접 겪은 이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말하면 안된다’는 것이 고착화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허 소장은 4.3 희생자 유족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말을 꺼낸다’는 행위가 가진 힘을 느꼈다고 했다.

허 소장은 “유족들은 얘기를 하고난 뒤 ‘응어리져 갇혀 있었는데 정말 고맙다’, ‘자식에게도 얘기를 다 못했는데 오늘 얘기를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며 “심지어 보고서 작성을 위해 사무적인 태도로 찾아온 공무원들에게조차 속을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이어 “말을 하고, 그걸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다”며 “말을 꺼내야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대한 역사적 폭력 뿐 아니라 일상 속 만연한 폭력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고 말하며 드러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소장은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려면 ‘말문을 막히게’ 하면 절대 안된다”며 “어린 시절부터 어떤 말이든 꺼낼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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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예술공간 이아에서 ‘일상의 폭력, 영혼을 지키는 방법’을 주제로 대담이 진행됐다.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성학자 오한숙희.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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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예술공간 이아에서 ‘일상의 폭력, 영혼을 지키는 방법’을 주제로 대담이 진행됐다. 이번 대담의 계기가 된 기획전 '한 사람'의 정영창 작가도 함께 했다. ⓒ 제주의소리

여성학자 오한숙희 씨는 “일상의 폭력으로부터 내 영혼을 지키는 일은 발설하고, 말로 꺼내놓는데서 시작된다”며 “제주말로 ‘속솜하라’는 터널 안에 있으라는 얘긴데 터널 밖으로 나오려면 소리를 내야한다. ‘속숨’이 아니라 ‘바깥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겪은 부당함과 폭력을 꺼내놓고 말할 때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며 “이걸 꺼내놓는 일에 입 다물라는 사람들을 이겨내면서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듭 “내가 겪은 걸 얘기하는 게 폭력으로부터 영혼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허 소장은 말로 꺼내놓을 때의 부끄러움에서 해방될 것을, 오한숙희 씨는 치유와 위로의 기법이 된 ‘수다’의 힘을 거듭 강조했다.

참가자들 한 명 한 명에게도 마이크가 돌아갔다. 외모 지상주의, 젠더 감수성, 피해자들에게 요구되는 일정한 태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시선 등 일상 속 폭력과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이 터져나왔다.

정영창 작가는 “폭력은 한 사람 한 사람, 본인의 문제”라며 “본인 스스로 폭력을 이겨내고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변하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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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예술공간 이아에서 ‘일상의 폭력, 영혼을 지키는 방법’을 주제로 대담이 진행됐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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