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1) 일본 사토야마 미래박람회에서 만난 사람들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최근 화두인 새로운 지역 활성화 방식은 하드웨어 중심 개발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고 각종 시설을 짓는 것만으로는 어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행정당국도 깨닫게 된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수많은 지역들이 위기에 몰리면서 이런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제주의소리>가 최근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제주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 주는 시사점이 분명했다. 장기 연속기획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성패 사례들을 현장 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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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일 히로시마 시내 도요타 자동차 판매장에서 열린 '2017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에서 발표에 나선 토쿄카 마키 씨. 그녀는 자신이 직접 재배한 목화를 들고 나왔다. ⓒ 제주의소리

제주는 연간 1500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아오는 글로벌 도시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여느 도시가 그렇듯 도시의 수직성장과 평면적 팽창이 가속화되면서 제주 원도심 역시, 정주인구가 줄고 도시 전반의 활력이 급속히 둔화되거나 쇠퇴하고 있다. 제주에서 도시 관리 또는 원도심 활성화 논의가 시작된 배경이다. 

오늘 날 도시 관리의 패러다임은 과거 ‘개발’과 ‘재개발’이라는 논의 구조에서 벗어나 ‘재생(regeneration)’으로 전환되고 있다. 제주 또한 이러한 도시 관리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의 도시여건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도시재생의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제주도가 역점 추진하고 있는 ‘2030 카본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 프로젝트 및 기존 도시정책과의 연결성을 확보하면서 시민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제주형 도시재생’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당면 과제도 안고 있다. 

제주형 도시재생의 방향은 도시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활력 회복을 위해 공공의 역할과 자원을 강화함으로써 도시의 자생적 성장기반을 확충하자는 논의에서 비롯된다. 궁극적으로는 도시의 경쟁력과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등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특히 제주의 원도심은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인구 감소, 상권 변화,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원도심의 지역적 역량이 쇠퇴하고 있다. 제주형 도시재생은 이같은 도시의 지역적 역량 강화를 위해 지역이 갖고 있는 자원 활용을 극대화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경제·사회·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도시재생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그러려면 도시 안의 오래되고 변화하지 않은 것들을 폄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갖는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주민들 역시 도시의 가장 중요한 인적자원으로서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주의소리>가 이같은 ‘제주형 도시재생사업’이 ‘옛것을 살려 미래를 일굴 수 있도록’, 그리고 역사경관, 문화예술, 주민친화, 사회경제 재생이라는 핵심 목표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장기 연속기획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성패 사례들을 현장 취재했다. 

첫 목적지는 일본.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일본 전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특히 대도시가 아닌 지방, 주변부가 된 원도심 상황은 더 심각하다. 히로시마, 이에시마, 오사카, 고베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선택한 방식들을 살펴봤다.

그녀가 고향 돌아와 목화 농사 짓는 이유는?

도쿄에 살던 가정주부 토쿄카 마키(43)씨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킨 동일본 대지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장 아이들 걱정이 앞섰다. 원전과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었다. 주저할 새 없이 마키씨는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고향인 히로시마 현 미요시라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요새 집중하는 일은 ‘목화 재배’와 옷 만들기. 목화를 재배하고, 옷감을 만들 뿐 아니라 직접 옷을 제작한다. 토쿄가씨는 대학 시절 방글라데시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때 어린 아이들이 턱 없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옷을 제작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의류산업이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고 많이 놀랐어요.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대량생산 방식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자 독립의 시도에요. 제가 만드는 옷에 화학원료는 전혀 들어가지 않아요.”

목화를 재배하고 옷감을 만들고 옷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은 마을 어린아이와 지역주민들부터 대도시 거주민까지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직접 옷을 만들면서 옷을 단순히 소비재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전 지구적 삶과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입는다’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된다.

토쿄카 씨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마을 커뮤니티 활성화로 주민들 삶의 질이 높아지고, 비즈니스 모델로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연스레 궁금증이 든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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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카 마키 씨의 고향인 히로시마 미요시의 풍경. 조용하고 한적한 일본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 2017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변화

토쿄카 씨를 만난 건 7월의 토요일 오후, 히로시마 시내 도요타 자동차 전시관이었다. 이날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 2017’을 위해 자동차들은 전시장 밖으로 이동했고, 지역주민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사토야마(里山)는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숲, 일본의 중산간 지역을 가리킨다. 이 날은 중산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박람회 구상은 물론 추진 중인 모든 프로젝트의 중심은 마을 주민 당사자다. 일본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커뮤니티 디자이너 야마자키 료 교수의 Studio-L은 퍼실러테이터(촉진자) 역할만 맡는다. 주민들의 제안을 공공사업과 연결시킨다.

▲ 7월 1일 히로시마 시내 도요타 자동차 판매장에서 열린 '2017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 히로시마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한 데 모여 지역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현실화 방안을 모색했다. ⓒ 제주의소리

작년 8월 시작해 지난 2월까지가 계획 단계였다. 시민강좌와 개별상담회, 마을 단체 간 교류회가 열렸고 이후 본격적인 실행에 들어갔다. 

아이디어는 가지각색이었다. 버려지는 나무를 활용해 마을을 상징하는 수레 매대를 제작했고 이를 축제나 이벤트 때 활용하자는 사람, 마을의 일상을 책으로 담자는 사람도 있었다. ‘칡 아트 프로젝트’, ‘휴경 논 진흙 벨리 대회’, ‘반딧불 이벤트’, ‘문화재 DIY 복구’, ‘납량 불꽃 축제’ 등 마을 고유의 자원을 가지고 다양한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100여개 단체에서 200여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총 참여인원은 5000명에 달한다. 수익모델 마련에 조급해하는 대신 주민들의 공동체 활성화, 더 행복한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궁극적으로 이 같은 방식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Studio-L의 칸바 신지씨는 “자주 만나서 교류하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마련하면서, 서로를 연결시켜주면서 서로 힘든 점과 개선방법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며 “일종의 교류회로 이 자리에서 정보공유, 사례발표, 의견교환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 7월 1일 히로시마 시내 도요타 자동차 판매장에서 열린 '2017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 히로시마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한 데 모여 지역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현실화 방안을 모색했다. ⓒ 제주의소리

그는 “마을 자체 운영이 힘들 정도로 인구가 줄어들고 활력이 떨어진 곳을 재생시키려는 노력”이라며 “사실 이 마을들은 자연환경부터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갖고 있는 자원은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민참여’, ‘주민주도형’ 마을만들기 사업은 이미 일본 지방 곳곳에서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Studio-L이라는 곳은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방식을 통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력자 역할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소위 말하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입해 거대 시설물을 설치하고, 이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개발’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날 만난 Studio-L의 야마자키 료 대표는 “우리는 ‘이런 사업을 하세요’가 아니라 가서 ‘무엇이 문제세요’라고 묻는다. 주민들이 해결을 위해 선택을 하게 한다”며 “일방적으로 높은 사람들이 모여 결정해버리고 마을 주민 대부분이 ‘의견 없음’이 돼버리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지역이 피폐해진다”고 말했다

▲ 히로시마 현에 위치한 조용한 중산간 마을 미하라. 이 마을에서는 100년이 지난 고주택 안에서 3D 프린터, 로봇 컨트롤 등 시골의 분위기와 IT 첨단 기술을 접목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 역시 주민들이 직접 찾아내고 연결해 기획해낸 프로젝트다. ⓒ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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