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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sns 홍성은
지난해 8월 세상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과 함께 1만보 걷기 봉사하는 날이 있었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둘레 길을 두 손을 꼭 잡고 걸은 적이 있다. 77세 할머니다. 겉으론 멀쩡하고 건강하시다. 자기 눈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40대에 눈이 아파서 자기발로 병원에 갔는데 그 후엔 세상이 온통 깜깜하더란다. 얼마나 삶이 갑갑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증오했을까? 3차례나 자살을 시도 했는데 실패하고 지금까지 살아간다고 한다. 

오직 귀로만 듣고 소리로만 세상을 버티어 살아가는 것이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 하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반찬을 만들 때 간이 안 맞아서 짜거나 싱거워서 만들었던 음식을 버리곤 했다고 한다. 자주 하다 보니 그 후론 간장이 떨어지는 소리로 간을 맞추었다고 설명해준다. 궁하면 통하는 것일까? 참으로 다행이다. 아니 안타까운 일이다.

2시간쯤 걸었을까 좁은 길은 손잡고 걸으니 나의 어깨는 옆에 나뭇가지에 걸려서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듣고 자기 때문에 봉사자가 걷기 불편하다는 걸 소리로서 감을 잡는다. 할머니 때문에 봉사자인 내가 나뭇가지에 걸린다는 알아차린 것이다.

점심시간이 돼 준비된 식당엘 갔는데 국수가 먹고 싶단다. 젓가락을 드렸는데 국수가 젓가락에 잡힐 리가 없다. 하는 수 없이 포크를 드렸더니 국수를 포크에 감아 그때서야 겨우 잡수신다. 요건 김치 요건 장아찌 요건 깍두기라며 숟가락에 얹혀 주었더니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눈이 안 보여도 현실을 인정하고 모든 걸 받아 드리며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할머니에 비하면 우린 모두가 멀쩡해도 불만투성인 자신이 얼마나 할머니한테 미안한지 모른다.

이런 일이 인연이 돼 시각 장애인들에게 책녹음 봉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거나 꼬여서 다시 수정하고 그 단락을 지워서 처음부터 녹음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장애인들 자신이 점자로 된 책을 손으로 감지해서 읽었는데 봉사자들의 목소리로 책을 녹음해서 목소리로 장애인들에게 읽어 주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녹음해서 완성이 되면 전국 시각장애우 회관에 보급이 된다고 하니 이 얼마나 보람된 일이 아닐까 한다.

봉사자 각자가 약속된 요일과 시간에 맞춰서 선정된 도서를 자기 녹음실 부스에서 책을 읽어가는 정성이 참으로 숭고한 생각까지 든다. 봉사자가 이 세상을 떠나도 녹음된 책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목소리로 남아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 따뜻한 일이 아닌가.

제주시 sns 홍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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