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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비례대표 축소’ 제주특별법 개정 재고돼야 / 좌용철 편집부국장

제주사회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이번에는 정치지도자들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내년 지방선거에 적용할 도의원 선거구 획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년 6월 제주도의원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기존 29개 선거구를 31개로 늘려야 한다. 제6선거구인 삼도1·2·오라동과 제9선거구인 삼양·봉개·아라동이 헌법재판소의 인구기준을 초과, 분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법으로 제시된 게 △도의원 정수 증원 △비례대표 축소 △교육의원 폐지 등 3가지였다.

# 권한 밖 ‘도의원 정수 증원’ 권고한 이유…“정치력 발휘하라”는 주문

현재 41명 도의원 수를 늘어난 인구만큼 늘리자니 국회·정부 설득이 어려워 보이고, 비례대표를 줄이자니 추세에 어긋나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는 실시하지 않는 교육의원 제도를 폐지하자니 교육의원의 특수성이 어그러질 듯하고 지역구 전체를 새로 조정하자니 혼란이 커질 일이다. 어느 선택을 하더라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연히 어떤 게 최적일까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도의원 정수를 기존 41명에서 43명으로 2명 늘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안은 시민단체(2명)와 법조계(2명), 언론계(2명), 학계(2명), 선관위, 전직 도의원과 공무원 등 11명으로 구성된 제주도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결정됐다. 선거구획정위는 지난해 12월 출범한 이후 4차례의 전체회의와 공청회, 여론조사를 실시해 권고안을 마련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선거구획정위는 여론조사에 얽매이지 않고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먼저 41명 정수를 유지할 경우 헌법재판소 기준을 맞추기 위해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 동을 억지로 다른 동과 합병해야 하고, 또 동 지역 의원수를 늘리기 위해 인구가 적은 읍·면이 강제 통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

또 교육의원 폐지는 일반행정자치가 교육자치를 지배하는 결과를 심화시킬 수 있고, 비례대표 축소는 여성·장애인 등 소수계층의 정치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6·9선거구 분구에 필요한 도의원 2명을 증원하자는 것이었다. 선거구획정위의 권한을 벗어난 일인 줄 알면서도 제주도지사에게 ‘권고’했다.

# 법정기구 ‘권고안’ 무력화시킨 7월12일 3자 회동은 “정치적 폭거”

그러나 권고안은 지난 7월12일 원희룡 제주도지사, 신관홍 제주도의회 의장, 강창일·오영훈 국회의원 3자 회동에서 국회의원들이 입법발의에 앞서 도민의 정확한 여론수렴을 위한 도민 여론조사를 제안하면서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난 20일 나왔다. 궁극적으로 지역구 도의원 2명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도민들이 선택한 건 비례대표의원(7명→5명) 축소였다. 2개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비례대표 축소는 각각 49.1%, 44.2%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를 토대로 제주도는 제주특별법을 개정해 비례대표 비율을 ‘의원정수(교육의원 제외)의 100분의 20 이상’에서 ‘100분의 10 이상’으로 조정키로 했다. 특별법 개정안은 오영훈 국회의원이 7월 중에 발의하고, 11월까지 입법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그런데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비례대표 축소로 잃는 게 적지 않아서다. 사회적 약자의 의회 진출 기회 축소, 승자독식 구도 강화, 특별자치 취지 약화, 선거제도 개혁 역행, 선거구획정위원회 무력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시민사회와 진보정당 등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선거제도 개혁에 역행하는 정치적 폭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자, 이제 지역 국회의원들은 솔직해져야 한다

공청회와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정치적 판단’이 가미된 권고안을 무력화시킨 이유가 도민여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언제부터 정책결정을 하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그토록 신봉했던가.

운동권 출신으로 개혁성향인 ‘86세대’ 의원들이 여의도 입성 1년 만에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건가. 두 초선의원은 개헌과 맞물린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 개혁의 큰 물줄기를 못보고 그저 ‘지역구 2석을 어떻게 늘리지’라는 좁은 시야에 갇혔던 것은 아닌가.

4선 정치인이나 돼 세종특별시의회 의원정수를 늘리는 법안 발의에 서명한 이유는 또 뭔가. 이로 인해 도민들이 느낄 허탈함은 생각해보지 않았던가. 그도 아니면 아예 생각이 없는 건가.

# 여론조사는 참고용일뿐, 철학과 비전이 뭔지 보여주라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하게 된 원죄로만 치면 원희룡 지사의 죄질이 더 나쁘다.

원 지사는 법정기구인 선거구획정위를 무용지물로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자신이 위촉한 위원들이 3개월 넘게 고심해서 내놓은 권고안을 넉 달 가까이 방치했다.

‘왜 그랬느냐’는 지적에 “대통령 탄핵과 이어진 대선정국 때문에 (입법 주체인) 국회의원들과 논의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해명은 구차스러울 뿐이다.

원 지사는 7월12일 3자 회동에서 권고안을 관철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권고안을 만든 선거구획정위에 이해조차 구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위원회가 도정을 믿고 일하려고 할지 두고 볼 일이다.

도지사는 도정 최고책임자다. ‘나 홀로’ 고민하고 판단하기 어려워 참모들을 두고,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자문을 구한다. 법과 원칙만 따지다보면 행정은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정치인 출신 원 지사에게 ‘더 큰 제주’를 만들어보라고 행정을 맡긴 것이 아닌가.

철학과 비전의 빈곤을 들켜버린 건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 결국은 용기가 없는 것, ‘비겁한 정치’ 하지 말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2006년 7월 구성된 제8대 제주도의회는 지역구 29명, 비례대표 7명, 교육의원 5명 등 41명으로 구성됐다. 이후 2번의 선거를 더 치렀지만 의원정수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의원정수 41명은 과연 적정한 수준인가. 10년 전 과거로 시계바늘을 잠시 되돌려보자. 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에는 제주도의회 19명을 비롯해 △제주시의회 16명 △서귀포시의회 8명 △북제주군의회 7명 △남제주군의회 7명 등 지방의원이 57명이나 됐다.

여기에 현재의 교육의원 역할을 했던 교육위원이 7명이었던 점까지 감안하면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지방의원 수(교육위원 7명 포함)는 64명에서 41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2번의 선거를 더 치르는 동안 제주의 인구는 10만명이 늘었다. 왜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의원정수를 늘리려는 경기도, 세종특별시가 제주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변명하면 도민들이 “아, 그러세요.”라며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가.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지레 겁부터 먹은 건 아닌가. 이 대목에서 “정부, 국회를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던 게지”. 도내 정치권 소식에 밝은 모 인사의 지적이 뇌리를 맴돈다.

# 정치인이 살고, 제주도가 사는 길…, “초심으로 돌라가라”

시민사회단체들이 당장 특별법 개정안 발의를 맡기로 한 오영훈 의원을 항의 방문하겠다고 한다. 도민여론조사 결과를 ‘도민 여론’으로 포장해 강행할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는 정책판단의 참고자료일 뿐이다. 정치 지도자는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특별자치를 하겠다면서 주어진 ‘특례’조차 반납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준 떡도 걷어차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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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용철 편집부국장. ⓒ제주의소리
4선 강창일 의원이 중심을 잡아 개혁적인 두 초선의원이 힘을 합쳐 여당을 맡고, 원희룡 지사는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을 설득하면 될 일이다. 1% 한계 극복을 위해 ‘명예도민’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한 말도 떠오른다.

특별자치도 완성을 위해 ‘자기결정권’ 특례를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반대하지는 않을게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하려는 게 문제다. 지금부터라도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보라. 그래야 본인도 살고, 제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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