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갑·을 아닌 을·을 갈등까지...사회 속 무수한 장벽에 필요한 건 성찰과 토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넘지 못할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장벽이 자기 자신에게 해당되고 피해를 실감해야 가능한 일이다. 평소에는 남의 일로 간주하기 십상인 이유다. 장벽은 인간의 이기심과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켜 높이가 커지고 견고해진다. 장벽의 결과인 차별과 갈등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확산되면 남의 일이 아닌 나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 사회 어디에나 장벽은 존재하며 장벽으로부터 초연할 수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고 정체성이 형성되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작은 집단으로 분화하면서 다양한 장벽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장벽을 싫어하지만 스스로 장벽이 되거나 만드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장벽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 생성되고 변화하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 사이의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장벽을 세우는 일은 쉽지만 허물기는 어렵다. 

장벽은 편을 갈라 상대편을 차별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극단적 혐오로 발전하기도 한다. 장벽이 고정되면 사다리 걷어차기, 인종·여성·장애인·난민 차별이 일상화 될 수 있다. 장벽은 정치 경제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켜 경제 성장에 해악을 끼친다. 끼리끼리만 뭉쳐 눈에 띄지 않는 문화 장벽을 만들어 사회 발전에 암적 존재가 되기도 한다. 

장벽의 양태는 다양하다.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주거 단지, 놀이터, 쇼핑몰, 음식점, 레저 시설 같은 물리적 공간에는 사회 문화적 관습과 경제적 능력에 따른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계층 장벽, 개인의 미래가 결정되는 입시경쟁과 학력 장벽, 직장과 가정에서 남녀 간의 성적 장벽, 나이에 따른 세대 장벽이 대표 사례다. 

장벽은 거시장벽과 미시장벽으로 나눌 수 있다. 권력의 독점과 관련이 있는 거시장벽은 정부, 관료, 재벌, 금융, 사법, 검찰, 교육, 언론, 종교 분야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독점계층은 기득권 집단을 형성하여 개혁에 저항하는 힘이 강하다. 사회 질서의 유지와 법치주의라는 명분으로 장벽을 높이 쌓고 있다. 독점 세력은 위기에 직면할 때 장벽 허물기에 나서지만 시늉만 내는 경우가 많다.

미시장벽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추진과정에 나타난 ‘갑’과 ‘을’ 사이가 아닌 ‘을’과 ‘을’ 사이에 존재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 정규직은 학력이나 스펙 등 자격요건은 물론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서 자리를 차지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에 버금가는 위상으로 전환시킬 경우 정규직의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보장 정책은 ‘갑’은 보이지 않고 모두 ‘을’인 영세 상공인과 알바 노동자들 사이에 장벽을 만들었다. 

▲ 최저임금 1만원을 둘러싼 갈등은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 간의 장벽을 만들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갑과 을, 을과 을 사이까지 장벽이 들어서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탈핵정책은 정부, 정당, 전문가, 시민사회가 논쟁을 이끌고 있으나, 원전 지역 주민 간에 경제적 이익과 미래의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찬반 대립이 고조되는 형국이다. 부동산 안정화 정책은 수혜 집단이 토건·투기세력이 구축한 강고한 장벽과 맞닥뜨릴 공산이 크다. 미시장벽의 특징은 수직적 일방적으로 파급되는 거시장벽과 달리 수평적으로 대등하게 길항한다는 데 있다. 

장벽을 만든 진영은 이를 고착시키기 위해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메시지를 확산하고 이미지를 구축하는 등 문화 전쟁을 기꺼이 벌인다. 기득권 고수를 위해 프레임과 낙인 찍기, 여론 선전으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내부 결속력을 강화한다. 장벽 안에서 타인을 배척하고 그들만의 일체화된 문화를 만든다. 

거시장벽을 구축한 기득권층은 독점할 수 있는 정보나 문화 자산을 이용하여 소수의 사람만이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세운다. 좋은 학벌이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연대를 공고히 하면서 장벽의 존재를 교묘하게 은폐한다. 장벽 밖에 있는 대중이 장벽을 내면화해서 심리적으로 굴종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미시장벽을 친 ‘을’과 ‘을’은 정부와 기업,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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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문가, 시민 사회단체, 언론 등 ‘갑’의 엄호를 받으면서 공론장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굳어진 장벽을 철폐하는 일은 혁명처럼 어렵다. 구조화된 장벽의 형성과정,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시장·자본주의·민주주의의 재구조화와 각 분야별 개혁이 실질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균등성·정의·공정성을 확보한다면 장벽 허물기가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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