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16) 열대야 / 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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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밤, 체육관에서 운동에 나선 사람들. ⓒ 김연미

어느 적도 우림의 야자수 이름 같다
따 내리면 주르륵 코코넛의 단내처럼
이 뜨건 불면이 밤을 향기롭게 보듬을

사자의 목덜미를 낚아채듯 올라타고
사바나의 밀림을 지나 포효하며 내달리다
생시의 꿈같은 밤을 휘영청 넘고 싶다

한 점 고요만이 평정하는 깊은 시간
자객의 칼날처럼 섬뜩한 초승 뒤로
어느새 푸른 초원이 창문 틈을 엿본다

                           -이서원 [열대야 전문]-

덥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덥다. 몇 해 전만 해도 30도가 최고점이었던 제주도 날씨가 어느 해부터 야금야금 오르막을 오르더니 38도 고지를 찍고야 말았다. 얼마 전 일이다. 체온보다 높은 온도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체온도 그 정도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수준이 아니던가. 지구가 아파도 단단히 아픈 모양. 해열제가 필요하다.

밤이라고 아량은 없다. 25도를 웃도는 밤이 7월 내내 이어지더니 8월의 문턱을 가볍게 뛰어 넘었다. 비가 오지 않는 장마는 이름 속에 담긴 뜻을 무색하게 하고, 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풴 현상은 여름마다 실 체험을 하게 한다. 한라산을 넘지 못하는 비구름이 산북지역을 가마솥처럼 달궈놓는 것이다.

한주먹씩 장난처럼 뿌려대는 폭우에 한쪽에선 물난리고 다른 쪽에선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진다. 기후 변화에 대비하지 못하면 인류의 생존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에 의하면 아뭇 소리 말고 다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불면의 밤을 건너는 것은 힘든 일이다. 향기롭고 단내 가득한 야자수의 이름을 상상하는 것으로 불면의 밤을 건너기에는 이 밤의 길이가 너무 길다. 그러나 어쩌랴. 가능한 것들을 전부 동원해서 이 뜨거움을 견디는 수 밖에.

스스로 뜨거워지는 것도 방편이 될 것이다. 덥다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걸 두려워하기보다 온 몸 움직여 물에 빠진 생쥐처럼 땀 쫙 빼보자. 30도 기온쯤 시원하다 느껴질 것이니까. 그러다보면 ‘어느 새 푸른 초원이 창문 틈을 엿보는’ 시간이 도래해 있지 않을까.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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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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