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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삶 찾아 온 대평리도 도시처럼 변해간다면...”

김태연 기자 imty@jejusori.net 2017년 08월 14일 월요일 08:30   0면
[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6) 대평리사람들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탐라순담[耽羅巡談]의 여섯 번째 순서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를 찾았다. 

지난 12일 오후 5시 레드브라운에서 열린 탐라순담 여섯 번째 자리에는 ‘대평리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약 8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이주한 지 3년 된 주민부터 대평에서 나고 자라 살아온 토박이 주민까지 9명의 주민들이 둘러앉았다.

대평리는 안덕면 소재 12개 마을 가운데 가장 작은 마을이다. 제주 이주 붐이 막 불기 시작한 2012년까지만 해도 약 200가구였으나 최근엔 320가구로 늘었다. 지역주민이 60%이었으나 이젠 정착주민이 60%에 이른다. 

이곳에 터를 잡은 정착주민들은 수려한 풍경과 고즈넉한 분위기에 매료됐다고 입을 모았다. 갈등은커녕 도시에서 느낄 수 없던 지역주민들의 정덕분에 마을 생활에 적응하기 쉬웠다. 지역주민과 정착주민이 어우러진 공동체 활동도 활발하다. 2009년 구성된 대평리 마을밴드는 구성원 10명 중 정착주민이 8명이다. 

최근 제주에 들이닥친 변화의 격랑은 대평리도 피해갈 수 없었다. 마을에 살러 온 정착주민이 늘어나는 건 환영할 일이었지만, 곳곳이 개발되고 농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변해버린 마을의 경관은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안겼다. 

단층 주택이 대부분이고 밤이면 가로등 몇 개만 켜져 있던 마을에는 제법 규모가 큰 숙박시설이 들어서면서 밤에도 훤한 도시의 풍경을 갖게 됐다. 느린 삶을 꿈꾸며 진작 마을에 둥지를 틀었던 정착주민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대평리의 풍경에 고민이 깊어간다. 약 8년 전부터 자리를 잡았던 레드브라운도 곧 옮겨야 할 처지에 놓였다. 

도보여행자들이 즐겨 찾던 작은 마을이 매체에 알려지고 소비 위주의 관광 패턴 변화로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도 마을 그 자체의 매력에 주목하기보다는 SNS에 잘 알려진 식당이나 커피숍에 잠깐 들렀다 갈 뿐이다. 마을주민들 나름대로의 방안을 줄곧 고민해 오고 있다. 동네 경관심의위원회를 꾸린다거나, 대평리에 온 관광객들은 차를 두고 걸어서 마을을 다닐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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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순담 여섯 번째 순서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를 찾아 '대평리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제주의소리

김준기 관장 (사회)
: 대평리는 제주도에서도 이국적인 곳이다. 최근에 대평리에 들렀다가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대평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주제로 추억과 걱정, 희망 등 대평리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 

지현호
: 저는 대평리에 온 지 6년차다. 제2의 고향 삼아 살고 있다.  대평리 마을의 도움으로 청소년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응용
: 입도 3년차이다. 대평리에 온 건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제넘지만 대평리 개발위원까지 되고, 밴드 멤버도 돼서 마을에 어느 정도 흡수가 된 거 같다. 

임형선
: 대평리에 태어나고 자랐다. 최근에 마을 발전이 급속하게 이뤄지다 보니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장훈정 
: 대평리의 토종(?)으로 42년째 살고 있다. 한 3년 전에 청년회장을 했다. 

강웅선
: 이장을 3년 했다. 밖에 살다가 들어왔는데, 대평리가 빠르게 변화되는 시기였다. 삶의 불편함은 없지만 변화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평리다운 변화를 바라고 있다. 

유기종
: 저는 제주도에 온지 5년, 대평리에 온 지는 3년째이다. 제주시내에 살다가 대평리에는 관광을 왔는데, 마을까지 내려오는 길이 너무 수려하고 아름다워서 머물 곳이 없나 찾아봤더니 한 자리가 있었다. 나더러 외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서 마을에서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다. 

오창민
: 마을회에 감사로 있다. 대평리에서 50년을 살았다.

고진영
: 새마을지도자를 맡고 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 좋은 이야기 나눠보겠다.

김준기 관장
: 대평리에 와서 놀랐던 게 동네 밴드 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을 단위의 공동체 활동 활성화의 정도는 생산 활동을 하는 것도 있지만, 문화 활동을 함께하는지도 중요한 척도가 된다. 좋은 마을일수록 같이 잘 논다. 대평리의 마을 밴드를 소개 해달라.

오창민 
: 밴드는 2009년부터 시작했다. 원래는 마을의 해녀 공연을 위한 것이었다. 해녀 공연 프로그램이 민요나 오돌또기같은 단순한 공연이라서 마을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 당시에 우리 마을이 250가구, 450명 정도 살고 있었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분들은 아무래도 음악 문화가 친숙하지 않다 보니 다행하게도 외지에서 온, 예술을 하다 온 분들이 많이 계시니 그런 분들을 수소문 끝에 찾아뵙고 구성을 하게 됐따. 구성원들은 10명 정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명이 지역의 주민이고, 나머지는 정착주민들이다. 밴드를 구성하려고 이주민들도 많이 만나다 보니 가장 많이 친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면면을 알아야 하고 어떤 악기를 다뤄야 하는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준기
: 제주도는 작은 공동체가 잘 살아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인사말만 들어봐도 여기서 살아온 세월이나 대평리에 관한 생각들이 깊이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곳에 자리 잡고 살면서 느낀 공동체의 특성,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운을 떼어주면 좋겠다.

유기종
: 이곳이 고향인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서 얘기를 꺼내기가 썩 쉽지는 않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쉬울 것 같으니 먼저 이야기하겠다. 저의 경우에는 건강이 아주 안 좋아서 모든 걸 정리하고 싶어서 제주도를 왔다. 제주시내에 살면서 머물 곳을 찾다가 대평리에 오게 됐다. 땅을 사고나서 생계는 유지해야 하니까 숙박업을 해보자고 해서 펜션을 시작했다. 마을 밴드를 하면서 2년 동안 여름마다 보컬을 했다. 그게 마을주민들과 친숙해진 계기가 됐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니까 주민들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도 하고 아는 척도 했다. 그게 제게는 정말 좋았다. 
여기서 지내면서 육지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많이 느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문 앞에 뭉텅이가 있다. 가지가 있을 때도 있고 마늘 수확철에는 마늘도 있다. 알고 보니 동네 할머니가 먹으라고 놔두고 갔던 거였다. 도시에서 살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강웅선
: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이장을 했다. 처음엔 180가구 450명 인구였다. 이주민 몇 정도 펜션이나 커피숍을 운영하다가, 2012년부터 급격하게 많이 들어왔다. 당시엔 대평리가 월정리보다 더 관심받던 지역이었다. 도지사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한편으로는 대평리에선 요즘 같은 여름에는 문을 잠근 채로 자본 적이 없다. 방충망만 닫고 잤는데 그러기에는 조금 불안해진 마을이 되었다. 이웃을 믿고 살던 동네에서 모른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어오면서 닫혀있는 마을로 변화해가고 있다. 

임형선
: 예전엔 가로등도 3~4개밖에 없었다. 마을 위에서 내려다 보면 해안가의 배 불빛뿐이었다. 이젠 펜션에서 나온 불빛이 대도시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이것도 하나의 단점이다. 

김준기
: 지금은 몇 가구에 몇 명정도 거주하고 있나?

고진영
: 지금은 327가구에 520여 명 정도다. 예전엔 지역주민이 60%였다면 지금은 반대로 40%이다. 이주민이 더 늘었다. 

오창민
: 전국에 어딜 돌아다녀도, 여기만큼 좋은 곳을 찾질 못했다. 마을 내려오는 길을 아리랑 고개라고 하는데, 여기를 지나고 있으면 너무 아름다워서 어릴 때부터도 돈이 많으면 땅을 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바닷가에서 보는 저녁노을은 우리나라 어디서도 볼 수 없다. 벌이 꿀을 찾아 모이듯이 외지인들도 그걸 찾아서 오는 것이다. 단순하게 이걸 막을 수는 없다. 때로는 말썽의 소지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결속력 약화되는 부분이다. 마을에서 체육대회를 한다고 하면 주민들이 새벽 5시에 일어나 모여서 축구 하나에 울고 웃었는데 지금은 현지인이 40%이다 보니 그런 쪽에는 관심이 덜하다. 반면 이주민들 중에도 마을 발전을 위해 많이 생각하기도 한다. 

고진영
: 이런 붐이 일기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 땅이 매매되고 개발에 대한 허가가 거의 무제한으로 주어지면서 대평리에도 우후죽순으로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김응용이나 유기종처럼 들어와서 살고 있는 이주민이 있는가하면 투기목적으로 지어놓고 팔고 나가버리는 업자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동네가 사라지지 않을까, 후손들은 고향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미인박명이라고 예쁜 곳은 오래가지 못한다. 제주도에서 한라산이 유일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애월읍의 고내리가 오히려 잘 보존될 것 같다.그 동네 이장들은 이젠 그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라산이 우릴 아껴서 남겨놓았네’라고 한다. 
예전에는 전쟁을 치러서 땅을 뺏었는데 퇴임한 우근민 전 지사를 보면 제주도 땅을 팔 수 있게끔 조례를 개정해버렸다. 중산간까지 내어주고 이젠 사드 보복으로 진전이 없다. 일당도 못 주고 자재비도 못주는 상황이 벌어졌다. 개발만 좋다고 할 게 아니라 이 경관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얼마 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수련원을 짓는 문제로 대평리에 방문한 적이 있다. 담당자가 하는 말이, 경관심의위원회를 마을에서 구성해서 동네에 들어오는 건축 허가는 이 심의위원회를 거치게 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했다고 한다. 여건 상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조례로 만들 필요도 있고, 향후 국회를 거쳐서 법률로 제정해서 공포할 필요도 있다. 
금수강산을 우리 때까지는 누렸는데, 후손에게는 물려줄 수 없게 됐다. 이건 대평리의 문제이자, 제주도의 문제이자, 한반도의 문제이다. 무분별한 건축허가를 내주고 난개발이 벌어진 것에 대해 꼬집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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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순담 여섯 번째 순서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를 찾아 '대평리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제주의소리

강웅선
: 대평리는 거의 농지였다. 그런데 최근엔 농지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지난 2000년에 내가 청년회장 할 때, 당시 남제주군청에 가서 무문별한 난개발은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대평리를 제2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계획적으로 대평리에 알맞게 미리 개발 설계를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여러 차례 요청을 했는데 관할이 제주도가 아니라 국가다 보니 지정을 하지 못했다. 그때 막지 못했던 게 대평리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김준기 관장 
: 지금의 법 제도가 아쉽다거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게 있다면? 

강웅선
: 예전에는 마을에 건물이 들어오려고 하면 이장에게 알리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입주하게 되어도 입주 신고를 했다. 그 후에 한동안 개인정보보호라고 해서 어떤 건축물이 들어오는지 누가 전입하고 전출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시청에 사후에라도 알 수 있게 공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제는 시청에서 제도화해서 문서로 보내준다. 그런데 아쉬운 건 마을에 맞지 않은, 안 좋은 건물이 들어와도 막을 수 있는 제도는 없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동네 심의위원회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한다. 

고진영
: 우리동네의 심각한 문제는 오수다. 마을에서 나온 분뇨를 다 처리하지 못한 채 배출되고 있다. 올해는 가뭄 때문에라도 더 그렇지만, 향후 가뭄이 들지 않아도 상수도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쓰레기도 문제다.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인구는 유입되고, 관광객은 늘어나고 있다. 상수도와 오폐수의 문제는 지역주민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규제하는 정책들을 도에서 펼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난리가 났다. 관광객들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면세점만 돈 벌고, 살고 있는 주민들은 물가가 올라서 못 살겠다고 한다. 제주도민 또한 향후 몇 년 안에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강웅선
: 아이가 크면 나이에 맞게 옷을 갈아입혀줘야 하는데, 대평리는 커가고 있는데 아직도 어릴 적 옷을 입고 있다. 고등학생이 됐는데도 초등학생 때 입던 옷을 입고 있다. 당연히 찢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가 옷을 사주듯이, 이렇게 마을에서 포화된 것들은 당국이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허가만 내주지 말고, 주차 시설이나 도로, 오폐수 처리 문제, 상수도 등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장훈정
: 군산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단층집에 아담한 분위기였는데, 이젠 마을자체가 울퉁불퉁해 보인다. 이런 게 좀 아쉽다. 개발이 천천히 되어야 하는데 갑자기 되다 보니까.

임형선
: 개발되면서 농지가 없어지고 있다. 농민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농지가 줄어들었다. 임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김준기 관장
: 이런 게 관광지화의 효과인 거 같다. 부동산 올라가고 삶의 조건이 바뀌니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고. 도시에선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관광지화 투어리스피케이션이라고 한다.

장훈정
: 5년 전만 하더라도 대평리의 땅값은 보통 평당 50만원이었다. 지금은 300만원도 넘는다. 

김준기 관장
: 이런 현상이 오래 살아온 분들에겐 어떤 영향을 주었나?

강웅선  
: 아버지가 농사짓다가 연로하시니 물려받아서 농사를 짓고 있다. 6000평을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1년에 6000평씩, 3년 지나니 18000평의 농지가 마을에서 없어졌다. 그렇잖아도 대평리는 안덕면에서 농지 면적이 가장 적은 곳이다. 있는 것도 없어지니 나중엔 농지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

임형선 
: 땅값이 급격히 오르니 지역주민들이 팔고 마을을 떠나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게 안 좋은 것이다.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나가버리니 원래 지역주민들은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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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순담 여섯 번째 순서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를 찾아 '대평리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제주의소리

김준기
: 레드브라운도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떠나는지, 어디로 가는지. 레드브라운 이야기를 좀 들려달라.

김종대
: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 대평리는 평온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여기에서 살아야겠다고, 카페를 열었다. 이 마을이 가진 분위기처럼 조용하고 평온하게 가게를 오래하고 싶었는데, 제주 전체가 그렇듯이 대평리도 많이 알려지다 보니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인구도 늘어나고 유명한 장소가 되면서 땅값이 많이 올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8년째인데,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김준기
: 돈을 벌어서 땅을 샀더라면?

김종대
: 커피를 팔아서 장사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제주에 온 큰 이유는 서울에서 일하며 살다 보니 몸도 상하고 너무나 힘들었다. 제주에서 제2의 사람다운 삶, 여유잇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었던 거다. 가게도 그런 식으로 운영했다. 하루 벌어서 먹고 살 정도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을에 너무 많이 생기다 보니 서울에서의 경쟁 구도와 똑같아 지는 것이다.

지현호
: 내가 대평리에 와서 사는 이유는 환경적인 게 가장 컸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제주에선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이 마을에 온 지 6년차다. 예전엔 올레꾼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느리게 걷는 여행자들이 많이 왔었다. 최근엔 그렇지 않다. 차를 타고 온다. 거의 렌터카다. 예전 그 느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여행 패턴의 변화도 대평리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레드브라운뿐만 아니라 5~6년 전에 대평리에 들어왔던 이주민들이 마음의 동요를 갖고 있다. 천천히 느리게 살고 싶었는데, 이 마을에서도 경쟁이 되다 보니 표현은 하지 않아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생각들도 하고 있다. 

김종대
: 손님들의 반응이 가장 극명하다. 우리 가게는 1년 만에 오기도 하고, 3~4년 만에 오는 손님도 있다. 올 때마다 깜짝 놀라 한다. ‘그땐 너무 좋았는데’, ‘잊지 못해 다시 왔는데 옛날 대평리가 아니네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강웅선
: 보통 귀농귀촌을 하게 되면, 은퇴하고 나서 조용한 곳에 시골에서 집짓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평리는 젊은 층들이 많이 이주했다. 30~40대가 80%였다. 아름답고 예쁜 마을에 먹을 정도만 벌면서 생활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던 거다. 아직 대평리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와 있던 주민들이 떠나는 이유가 장사가 안 되어서가 아니라 마을의 변화라면 안타깝다.

임형선 
: 오는 사람을 막지는 못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마을 회의도 해봤다. 로컬푸드매장을 만들거나 농산물을 팔아보자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은 시작이 되지 않는다. 
서울의 북촌마을도 최근까지 관광객과 원주민들의 갈등이 해결이 안 된 걸로 알고 있다. 상생할 수 있는 제도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 어떻게 하면 융화되고 난개발도 막을 수 있는 대평리의 주민들만으로는 안 나온다. 용역을 줄 만한 여력도 없다. 이런 걸 마을자치회에서 하기는 쉽지가 않다. 시청에서 누군가를 연결시켜주거나 그래야한다. 마을에서 건의하고 있지만 시행을 해주지 않으니 그게 많이 아쉽다.

강웅선
: 요즘 여행 패턴이 SNS에서 유명해진 곳, 딱 거기만 왔다가 간다. 사실 내가 이장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 대평리에 오면 차를 전부 입구에 세우게 하고 마을을 걸어서 다니게 하는 걸 하고 싶었다. 마을이 작다 보니, 슬슬 걷게 되면 30분이면 다 돌 수 있다. 걷다 보면 못 보던 것도 보게 되고, 사게 된다. 그런데 공영주차장 땅을 살려고 하니 감정가와 토지 실거래가와 차이가 많이 나서 매매를 할 수 없었다. 

김준기 관장
: 그러려면 공유지가 확보되어야 하고, 그 이윤을 다시 투자할 수 있어야하는데. 이런 과정이 개별화되어 있으니 어렵겠다.

지현호
: 제가 청소년수련원에서 아이들과 같이 프로그램을 하는 것 중에 자연과 관련된 여러 프로그램이 있다. 거창한 게 아니라 동네를 한 바퀴만 돌고 와도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한다. 대평리는 제주도의, 한국의 힐링마을이 충분히 될 수 있는 곳이다. 

유기종
: 인구 유입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소득이 자꾸 높아지다 보니 좋은 곳을 찾고 싶어진다. 나 같은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게 아닌가.

김종대
: 나는 비교적 초기에 온 이주민이다. 10년은 이곳에서 채우고 싶었다. 못 채우고 옮겨야 하는 게 아쉬움이 많다. 어느 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발전이 되어야 하는 것도 맞고, 지켜야할 것은 지켜야 하는데 이걸 조화시키는 지혜가 숙제다. 같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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