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8) 자발성 끌어낼 중간지원조직 역할 중요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최근 화두인 새로운 지역 활성화 방식은 하드웨어 중심 개발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고 각종 시설을 짓는 것만으로는 어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행정당국도 깨닫게 된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수많은 지역들이 위기에 몰리면서 이런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제주의소리>가 최근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제주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 주는 시사점이 분명했다. 장기 연속기획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도시재생 성패 사례들을 현장 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

▲ 제주시 원도심 지역인 삼도2동 일대. 최근 제주지역에서는 문화를 통한 원도심 재생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가 지난달 현지 취재를 통해 총 7차례에 걸쳐 살펴본 일본의 도시재생 사례들은 주민들이 겪는 문제와 욕구가 무엇인지 찾는 과정에서 시작해 주민이 중심에 설 수 있는 판을 마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제주가 놓인 현실은 다르다. 십 수 년 내로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이 붕괴할 것이라는 ‘지방소멸론’이 전면에 등장하고, 전체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일본은 지역 활성화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제주는 일본은 물론이고 국내 다른 지자체와도 상황이 다르다.

타 지역 사례 관찰 혹은 벤치마킹의 핵심은 어떤 성공사례의 결과물에 주목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그 배경과 맥락, 효과를 거둔 방법론 등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여건에 어떤 식으로 녹여낼 것인가’하는 고민을 시작하는 데 있다.

제주만의 방법론을 만들어가는 데 유효한 실마리나 힌트를 찾아보자는 쪽에 가깝다. 그들의 고민과 교집합을 찾아가며 우리 사회의 틀과 제도적 여건에 맞춰 어떤 돌파구가 가능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표본이라는 얘기다.

일본 사례를 제주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무리지만 우리는 오사카 코코룸에서 산지천 인근의 노숙인들을 떠올릴 수 있고, 이에시마 섬 주민들이 자신들의 섬을 지켜가는 태도를 보며 ‘제주다움’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 할 수 있다.

특히 ‘Studio-L’의 활동을 통해 더 이상 관 주도의 일방적인 도시재생 사업은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고, 꼭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하드웨어를 확충하지 않아도 기존 자원들을 연결하고 사람들 간 관계에 주목하면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읽어낼 수 있다.

기본 전제는 ‘주민 참여’

핵심은 참여 동력이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도시재생의 전반적인 방향성에 대해 “사람-자본-공간이라는 3요소가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며 “주민들이 주체가 되고, 주민들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으로, 주민들의 생활공간에서 진행된다면 (도시재생 프로젝트가)잘 굴러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가의 자본이 과도하게 들어가기보다는 강약을 조절해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주형 도시재생’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며 “사람-자본-공간이라는 자원을 ‘연계’하고, ‘활용’하고, ‘공유’하는 방법론이 필요한 이유”라고 조언했다.

지금 상황에서 당장 주민들이 직접 나서기에는 녹록치 않다. 일본에서 도시재생과 지역활성화가 자리 잡은 곳들은 Studio-L과 같은 촉진자(퍼실러테이터), 연결자 등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주민들의 탐색과 논의 과정에 도움을 줬다.

마을만들기 영역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라해문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재생사업팀장은 “주민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함께하는 과정이 첫 번째”라며 “다만 우리에게는 그 안에 소통자, 진행자, 촉진자, 연계자 역할을 담당할 이들이 부재하다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라 팀장은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나 장이 없다”며 궁극적으로는 참여의 문제를 ‘주민자치의 관점’에서 풀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라 팀장은 “이장, 통장, 동장을 주민들이 뽑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직접 주민자치위원을 뽑아 가장 기본적인 대표성을 갖게끔 하는데서 문제 해결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와 커뮤니티 활성화를 얘기하기 전 다른 기본 조건들이 충족돼야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문상빈 제주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제주시 원도심의 경우 교육·주거·복지 등 삶과 직결된 문제들이 많다. 삶의 기본적인 조건에 안정감을 주는 게 필요하다”며 “이 부분들이 채워지지 않은 채 문화와 커뮤니티를 얘기한다면 주민들은 도시재생이 허공에 뜬 것처럼 느껴지고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제주시 원도심 지역인 삼도2동 일대. 최근 제주지역에서는 문화를 통한 원도심 재생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 제주의소리

행정-주민 연결할 키는 중간지원조직

제주에서는 당국이 ‘도시재생’, ‘원도심 활성화’ 등을 내걸고 추진해온 기존 사업들에 대한 주민들의 실망감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김태일 교수는 올해 초 주민 반발로 무산된 ‘관덕정 차 없는 거리 사업’을 두고 “당국이 말하는 사람은 지역주민과 동떨어진 ‘행정 중심의 사람’이었고, 결론적으로 지역주민들은 ‘우리들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얘기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삶의 질 보장’을 도시재생의 전제로 둔 문상빈 대표는 586억원이 투입됐으나 주민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토목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탐라문화광장과 관련해 “이 재원이었으면 원도심에 수영장, 도서관, 운동시설이 있는 쾌적한 경로당, 청장년을 위한 저렴한 임대주택을 조성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 중 하나로 50조를 투입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발표하자 제주도는 LH, JDC, 제주도개발공사 등 기관 중심으로 TF팀을 구성했는데, 여기에서도 벌써부터 ‘주민은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주민들의 자발성을 끌어낼 촉진자 역할을 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일 교수는 “자원의 공유, 사람-자본-공간의 연계, 민과 관의 연결을 위해서는 제주도도시재생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관이 빠지고 도시재생센터가 나서야 할 당위성이 있다”고 말했다.

라해문 팀장은 “제주도도시재생센터가 제 역할을 하려면 스스로 자발성을 가지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행정이 계속 쪼아대면 연계자, 소통자 역할을 할 수 없다”며 “사회적경제, 문화 등 다른 중간지원조직과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도 과제”라고 말했다.

제주도 도시지원재생센터는 주민 중심의 상향식 도시재생을 위해 작년 9월 개소한 중간지원기구다. 주민과 전문가, 행정 간 소통의 가교 역할이 목표다.

이승택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도시재생은 하드웨어를 조금 바꾼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사회·경제·문화 등 도시 내 모든 분야에 대해 지속가능한 방향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우리 도시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찾고 실행하는 노력이 같이 이뤄지도록 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지역적이고 가장 창조적”이라며 “도시재생지원센터는 각각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분야별로 생태계를 만들고 이것이 지속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향식’, ‘주민주도’라는 말이 선언적 의미에만 머물지 말고 이를 현실화 할 구체적인 방법론들이 등장해야 될 시점이다. 특히 도시재생을 물리적 재생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관계, 협력, 공유가 핵심인 커뮤니티 디자인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것이 ‘제주형 도시재생’의 성패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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