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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제주국제관악제가 16일 콩쿠르 입상자 연주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모습. ⓒ제주의소리
[종합]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하기 위한 조직 내부 고민 필요해...도민 관심 역시 늘어나야

지난 8일 개막한 제22회 제주국제관악제(이하 관악제), 제12회 제주국제관악콩쿠르(이하 콩쿠르)가 16일 콩쿠르 입상자 연주회로 성대한 막을 내렸다. 17일 서울에서 만나는 제주국제관악제 행사가 열리지만 실질적인 행사는 모두 끝난 셈이다.

관악제는 비·바람 날씨로 인해 일부 공연이 취소, 장소 변경됐지만 전반적으로 별 탈 없이 진행됐다. 기자를 포함해 공연을 지켜본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실내외 가릴 것 없이 공연장은 준수한 관객 수를 보였다. 제주아트센터, 제주해변공연장, 서귀포관광극장 뿐만 아니라 작은 곳에서 열었던 ‘밖거리 음악회’까지, 매번 사람들로 꽉 들어차진 않았어도 아예 텅텅 비었던 적은 드물었다는 것이다. 이는 관악제가 도민 사회에 서서히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무대에 서지 않은 연주자들도 관객으로 제법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교류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올해 관악제의 몇 가지 특징을 꼽아보자면 도서관·미술관 등을 복합문화공간을 찾아가는 '프린지(Fringe)' 개념의 작은 공연, 밖거리 음악제를 처음 도입했고,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발맞춰 고산리, 대평리 해녀와 협연을 시도했다. 사드 여파로 인해 중국팀이 전무하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400여명을 훌쩍 넘는 3539명이 제주를 찾았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강원명진학교 관악단, 하음 앙상블, 프리즘 앙상블의 참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뮤지션으로서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 세계적인 마림바 장인 케이코 아베와 카자흐스탄 국립목관5중주, 스페니쉬 브라스 러 메탈 같은 수준 높은 전문 연주자들도 참여해 전체 행사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다만, 성격이 유사한 밖거리 음악회와 우리동네 관악제는 차후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해녀 협연처럼 제주 전통문화와의 공동 작업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일깨웠다. (물론 흥겨운 분위기 자체로 인상적이다.) 초청 전문 연주자들 역시 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섭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매해 관악제 주요 공연 사회를 맡고 있는 김준곤 음악평론가는 “올해도 훌륭한 전문 연주자들이 제주를 찾았지만 그 숫자가 더 많아야 축제로서 위상과 명성이 올라갈 것이다. 연주자 구성도 보다 다양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음악 강국인 러시아나 동유럽 지역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콩쿠르의 경우, 한국 연주자 2명(트럼펫 김현호, 테너 트롬본 주인혜)이 1위에 오르면서 국내 음악계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이다. 입상자들은 다른 문화권 연주자들과 실력을 겨루는 제주국제관악제의 수준을 높이 평가했다. 1위 수상자를 여럿 결정하지 못한 지난 사례에서 벗어나, 호른을 제외하고 모두 1위가 나왔다. 심사위원, 예술감독은 한 목소리로 입상자 수준이 매우 높다고 호평했다. 처음 시도한 콩쿠르 페이스북 중계는 다양한 참가자 국적만큼 여러 나라에서 큰 관심을 보이며 기대 이상의 호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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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제 안내 책자를 유심히 살펴보는 시민들. ⓒ제주의소리

그러나 콩쿠르 해외 참가자 구성이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 비중이 높아 완벽한 ‘국제’ 관악제로서 다소 아쉬운 점은 있다. 1위 수상자 결정 과정에서, 심사위원들 간에 의견이 갈려도 후보자가 1위가 될 만한 실력이 되냐 안되느냐 여부를 따져서 결정하는 과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테너 트롬본 심사위원을 맡은 김운성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는 “현재 심사위원은 6~7명 정도인데 숫자를 더 늘려야 콩쿠르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올라갈 것이다. 입상자에 대한 혜택은 상금, 관악제 마지막 연주회 정도인데, 몇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연주 기회를 보장하거나, 예를 들어 1차 결선 통과자들에게 교통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시도한다면 더 많은 국가에서 우수한 연주자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주자, 통역 인력, 심사위원, 수상자 혜택 등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살림살이가 더욱 넉넉해져야 한다. 

# 제주국제관악제 조직, 시스템 정착 가능할까?

이번 제주국제관악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아도 여러모로 많은 변화 속에서 치러졌다. 

예산에 있어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모 사업에 참여하는 범위를 넓혀 ▲지역대표 공연예술제 지원 ▲공연예술전문인력 지원 ▲문화예술기관연수단원 지원까지 세 가지 지원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공연예술전문인력과 문화예술기관연수단원은 한시적이지만 인력 운영비를 확보한 것이어서, 상근 인력 비용을 지원할 수 없는 보조금 예산의 구멍을 메울 수 있게 됐다. 지역대표 공연예술제 지원금 2억 8000만원으로 그동안 부족했던 홍보 등의 분야를 보완할 수 있었다는 것이 관악제 측의 설명이다.

관악제 조직위원회는 올해 행사를 준비하면서 제주도로부터 예산을 민간 위탁금이 아닌 보조금으로 받았다. 민간 위탁금의 경우, 예산을 상근 인건비로 사용할 수 있는데 반해, 보조금은 행사 기간에만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불리한 면이 명백함에도 조직위는 보조금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는 온전히 제주도 지원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방향에서 가용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모 사업은 행사 예산이 보조금이어야 신청할 수 있었다. 100% 확정이 아닌 공모임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도전해서 역대 최고 예산을 얻어낸 셈이다. 행정만 바라보지 않고 조직 스스로 살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제주의 다른 문화·예술 행사보다 한 층 더 발전된 모습이다. 관악제 측은 앞으로 국비 공모뿐만 아니라 기업 후원까지 넓혀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인력, 조직 역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2012년부터 고군분투하며 행사를 이끌어온 김왕승 조직위원장에서, 초창기 관악제에 행정적으로 기여한 현을생 전 서귀포시장이 올해부터 직을 이어받았다. 예산을 포함한 관악제 운영 방향이 상당부분 바뀜에 따라, 앞으로 현 위원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사를 준비·진행하면서도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게 깐깐함을 뽐내며 조직위원들이 적지 않게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조직의 발전 차원에서 볼 때 현 위원장의 열정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금껏 집행위원회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상철 위원장 ‘원톱’ 체제였다. 이 위원장을 비롯해 임대흥·임현수·김현종·김창범 집행위원, 양승보·김상우·김행중 조직위원 등 관악제 출발부터 함께해온 인원들의 노력은 분명 높이 평가해야 한다. 다만, 이제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틀을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 앞서 언급한 집행·조직위원들은 자신의 청춘·열정을 관악제에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노력이 퇴색되지 않으려면 어떤 사람이 오든 조직과 행사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관악제를 아는 모든 이들의 일치된 생각이다. 지난해 채용된 김경주 운영총괄팀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허리’ 역할을 맡았다. 밖거리 음악회는 김 팀장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앞으로 이 위원장과 호흡을 맞추며 관악제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

베테랑 집행위원장, 젊은 운영총괄팀장, 열정적인 조직위원장까지 중심 축이 잡힌 만큼, 시스템 정착과 함께 관악제의 중장기적인 발전 방안까지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미 내부적으로 이런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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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리 공연에서 젊은 어머니와 자녀가 관악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상철 집행위원장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과연 얼마나 갈지 노심초사 했지만, 이제는 관악제와 콩쿠르를 함께 여는 방식이 제주국제관악제만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고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가져본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발굴하면서 지금까지 잘 된 것은 계속 키우고, 개선해야 할 부분은 고쳐야 한다. 예를 들면 몇몇 직원에게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남아있는 과제”라고 밝혔다.

김경주 총괄운영팀장 역시 “지난해 관악제 때 하루에 전화만 360통을 받으면서, 관악제 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분업되지 않았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올해는 적용하지 못했지만 관악제 참가자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을 거의 완성했다. 지난해 도입한 콩쿠르 접수시스템까지 포함하면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 운영의 질은 나아질 것”이라며 “종합적으로 볼 때 올해는 과도기의 시작이라고 본다. 공연 운영, 홍보, 국제 업무를 수행할  팀장급 인력도 각각 필요하고, 예산도 더 필요하지만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반은 만들었다”고 여지를 남겼다.

예술, 사회, 정치 등 분야 불문하고 제주에서 20년 넘게 국제 행사를 큰 탈 없이 이어오는 건 제주국제관악제가 유일무이하다. 제주 안에서 관악제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행이 제주도는 근래 관악제 예산을 높이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저평가 우량주' 제주국제관악제의 가치를 더 많은 도민들이 알아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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