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31) 누워 침 뱉을 줄은 알고, 그게 자기 위로 떨어질 줄은 모른다

* 누엉 - ‘누워(서)’의 제주방언
* 춤 - ‘침’의 제주방언. 한자어로 타액(唾液)
* 바끌 - ‘뱉을’의 제주방언. 바끄다, 바트다→ 뱉다
* 중 - ‘줄’의 제주방언. 의존명사 (아무것도 헐 중 몰른다 ;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 알곡 - ‘알고’의 제주방언
* 지 - ‘저, 자기, 자신’의 제주방언
* 우트레 - ‘위로’의 제주방언. ‘~로’는 어느 쪽으로 나아감을 나타냄. 향진격(向進格)조사
* 몰른다 - ‘모른다’의 제주방언

당연하다. 누워 침을 뱉었으니 자신에게로 떨어지게 마련. 

자신이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를 자기 자신이 받게 됨을 빗댐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것. 과거 만든 선악의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의 되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에도 같은 뜻이 스며있다.

자기가 꼰 새끼줄로 자기를 옭아 묶어 자신의 꾐에 빠진다 해서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고도 한다. 다들 비슷하게 쓰는 유사한 말들이다.

바둑에서 자충(自充)이 되는 수 곧 자충수와 같은 뜻이기도 하다. 자기가 돌을 놓아 자기의 수를 줄이는 것.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유리한 수를 뜻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스스로 한 행동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이녁대로 허연 기영 되어분 거주.”
(자기대로 해서 그리 되어 버린 것이지.)

딱한 노릇이다. 수원수구(誰怨誰咎)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어찌하겠는가. 제 가 파 놓은 함정에 제가 빠진 것인데. 일의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누엉 침 바끌 줄은 알곡~”은 자업자득처럼 언어현실에서 부정적으로 쓰인다. 이를테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거나 성과를 많이 거뒀을 경우에는 자업자득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반대로 놀고먹은 후 실패하면 “자업자득이지. 누구를 원망하겠어.”라 말한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나 전쟁에 참패했다면,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다. 모든 것이 곧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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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자 신분 소환되는 박찬주 대장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을 받고 있는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대장)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제공=오마이뉴스.

얘기 하나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어시장에서 장수가 자기 생선이 썩어 문드러져 냄새가 난다고 소리치면 장사가 될까? 누군가 자기 가족을 대놓고 욕한다면 누워서 침 뱉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한국에 살면서 만날 한국을 욕하고 손가락질하며 사람 살 곳 못 된다는 말을 하면서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역만리 타국으로 이민 갈 것도 아니면서 입만 벙긋하면 ‘못 살 나라’, ‘헬조선’. 그런 자가 있다면 개념 없는 작자란 말을 들어 싸다.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조금만 깊이 음미하면, 무슨 일이든 결국엔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사필귀정’. ‘누워서 침 뱉기’, ‘제 발등에 오줌 누기’. ‘하늘에 돌 던지기’ 등이 모두 한 꿰미에 꿸 것들이다.

제2작전 사령관이었던 박찬주 육군대장이 형사입건 됐다. ‘공관병 갑질’ 논란에 휩싸인 나머지 결국 자신의 얼굴에 x칠을 한 것이다. 자기 부인을 ‘여단장급’이라고 부르며 예의를 갖추라고 호통 쳤다니 도대체 될 말인가. 언어도단이요 어불성설이다. 그야말로 자승자박의 극치이고 자업자득의 끝판 왕이다. 
  
계급장 떼고 양복차림으로 포토라인에 선 그를 바라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대장, 어떤 계급인가. 최고의 장성, 별이 하나도 아니고 넷 아닌가. 그런 자가 남의 귀한 아들들을 노예처럼 혹사하고 인격을 짓밟다니. 그렇게도 철학이 없는가. 잔뜩 구름 덮인 하늘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는다. 
  
 누구는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여단장 급 부인도 입건해야 맞는 꼴이고, 박 대장은 이등병으로 강등시키고 영창으로 보내라. 중국 같았으면 사형감이다.”
  
그러고 나니, 자업자득이란 말이 갑자기 무섭게 다가온다. 실패하고, 추락하고, 낙방하고, 낙마하고, 참혹하게 죽고, 패가망신하고….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게 자신이니 한탄한들 소용없는 일이고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전후좌우를 재고 살피면서 일의 성취를 위해 시종여일 정성을 기울이고 진력해야 한다. 성공의 비결이 따로 있지 않다.

“차마가라 경 되카부덴 해시냐게. 일이 경 되어부난 이젠 어떵 허는 수가 엇지 않으냐. 참말로 가슴 아픈 일이여 이?”
(차마 그렇게 될까 했냐만 일이 그렇게 돼 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하는 수거 없지 않으냐. 참말로 가슴 아픈 일이구나. 이?)

일을 저지른 뒤 뉘우치며 하는 말이다. 

“누엉 춤 바끌 줄은 알곡~” 수사(修辭)를 넘어 기가 막힌 비유다.

크든 작든 후회는 막급(莫及)한 것. 그릇되기 전에 성공을 위해 공을 들일 일이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 했거늘.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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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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