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랩x제주, 새로운 미래] (1) 붕 뜬 R&D, 사용자 참여로 답 찾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으나 마주한 장벽은 만만찮다. 국가 차원에서 어떤 연구나 정책 개발을 위해 아무리 예산을 투입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들이 터져나왔다. 2017년, '리빙랩'이 사회혁신의 유용한 도구로 주목받는 이유다. 18일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리빙랩 세미나에서 나온 유의미한 목소리들을 두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편집자 주]

hand-281926_960_720.jpg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당뇨는 한국사회의 의료격차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당뇨환자 중 저소득층 매율이 매우 높았고, 정부는 나름대로 지원책을 이어오고 있지만 의료격차는 쉽게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2015년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연세대, 의료기업 주빅,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뭉쳤다. 이들은 먼저 저소득층 당뇨병 환자들에게 절실한 게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했다. 의료 전문가, 당뇨환자,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활동가들이 만났다.

핵심은 주사기 통증이었다. 가격이 낮은 보급형 인슐린 주사기는 바늘의 직경이 커 심한 통증을 유발했고, 부작용도 있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저통증 인슐린 주사기 이미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지만 가격은 3배 이상 비쌌다. 이들은 미래부의 정부출연금을 재원으로 해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연세대 연구진은 저통증 인슐린 주사침 기술을 개발했고, 주빅은 이 주사침을 대량생산했다. 민들레의료협동조합은 환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제 과거에 비해 덜 고통스럽게, 더 고급의 주사침을, 저소득층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기술개발이 실제 의료격차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이 프로젝트는 저소득층 당뇨환자의 일상 속 변화까지 이끌었다. 주사침이 얇아져 통증이 줄어든 것을 시작으로 더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체감했고, 환자 스스로 적절한 치료법이나 생활방법들을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가 형성됐다.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 투입 대비 만족도가 높아 좋은 일이었고, 대학 연구진, 기업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피부에 와닿는 변화’가 가능해졌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예산을 쏟아붓지만 정작 그 문제를 겪는 당사자들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자문을 해준 전문가대로, 주민은 주민대로 답답하다. 결국 한국사회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요구하게 됐다. ‘리빙랩(Living Lab)’이라는 방법론이 주목받게 된 배경이다.

리빙랩은 일상생활 실험실이라는 의미로 공공·민간·시민의 협력, 과학·사회·현장의 통합을 시도하는 사용자 주도형 혁신플랫폼이다. 사용자들이 연구혁신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사용자 참여형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국내에서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탈핵 풀뿌리운동에서 시작해 마을 활성화에 성공한 에너지전환마을인 서울시 동작구 성대골이 대표적이다.

IMG_3270.JPG
▲ 19일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리빙랩 세미나. ⓒ 제주의소리

18일 오후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리빙랩을 통한 사회혁신 세미나’는 리빙랩을 제주와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리빙랩을 현실화 한 마을주민, 관련 연구기관들이 모였다.

김소영 성대골에너지전환 마을 대표는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마을연구원들의 상상을 일상으로 이끄는데 리빙랩은 연장이자 도구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성대골 에너지전환마을의 사례를 들며 리빙랩을 ‘실생활 기반의 사용자 주도의 연구’로 정의하고 있다.

과거 사용자 또는 국민, 지역주민들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연구개발은 하향식으로 추진되면서 정작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기술 개발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시키려는 시도들이 나타나 있고, 그 한 가지 유력한 방안으로 리빙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사용자의 욕구와 절실함을 바탕으로 하며,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의 변화와 조정이 필요하다. 

이날 세미나에서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과학기술이 붕 떠 있다. 수억을 부어서 R/D를 하려고 해도 첨단이나 최신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나 기관에서 예산을 대거 투입해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정작 국민들의 삶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제주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당국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고, 충분히 검토했다’고 하지만 도민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허투루 썼다’며 마찰하는 경우가 많다.

IMG_3266.JPG
▲ 19일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리빙랩 세미나.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주제발표에 나섰다. ⓒ 제주의소리

어떤 국가 차원의 정책·사업에 리빙랩이 호출되는 이유다. 

성 연구위원은 “단순히 기술 고도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상자의 구체적 니즈(욕구) 파악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리빙랩은 기업 입장에서는 ‘실제 사용자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며 “전문가들이 현장에 갈 수 있는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리빙랩을 통해서 상당히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리빙랩의 가능성을 파악한 서울시는 작년 ‘사회혁신x리빙랩 프로젝트’를 진행해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회 문제 해법을 찾는 6개 프로젝트에 2억5000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정미나 서울혁신센터 리빙랩 디렉터는 “시민의 난제를 리빙랩을 통해 풀고 이를 서울시의 사회혁신 정책에 실제로 반영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사회혁신을 이루는 방식 중 하나인 리빙랩은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지만 작동 가능해야 하며, 명확한 문제 설정과 구체적 방법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