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66)  스티븐 다얀 『우리는 꼬리치기 위해 탄생했다』 /노대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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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다얀, 서영조 역, 『우리는 꼬리치기 위해 탄생했다』, 위즈덤하우스, 2014.

고백하자면, 이 책은 서점에서 충동적으로 구입했다. 나는 보통 관심사를 정해두고 지속적으로 책 정보를 수집해서 목록을 만들고 중요 순위에 따라 책을 구입하거나 대출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책들과 조금은 다른 셈이다. 물론 전혀 관심사에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즘 관심이 부쩍 많아진 심리학 책들을 둘러보기 위해 심리학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으니.

제목만 봐서는 유혹과 짝짓기(mating)의 심리학을 다룬 책으로 보였다. 그 분야의 책들이 워낙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주제인 만큼 다양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고 알고 있기에 특별한 책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게다가 진화심리학이라면, 데이비드 버스와 같은 학자가 유명하다고 알고 있기에 이 책은 권위와 명성의 우선 순위에서도 밀린다.

하지만 몇몇 장들을 무작위로 발췌해서 읽어보니 아주 재미있었다. 그저 가볍고 즐거운 독서로 적당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런 추측은 고맙게도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사실이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여름밤의 더위가 조금 더 견딜 만 했다.) 어쨌건, 책읽기의 제1원칙은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우연한 만남도 책 고르기, 책읽기의 큰 즐거움이다. 언뜻 훑어봐도 이 책은 유혹과 짝짓기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외모에 관한 심리학에 가까웠다. 그 가운데 이성의 외모에 관한 대목이 상당히 중요하게 기술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역판 제목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인가? 스티븐 다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면 성형외과 의사라고 한다. 성형외과 의사가 쓴 외모에 관한 책이라니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다행히도 저자는 의사로서 연구자로서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이 책을 썼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오히려 성형외과 의사라는 정체성에 독자로서 너무 선입견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저자가 건강한 철학을 갖고 외모에 대해 사유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

스티븐 다얀은 이 책을 쓸 때까지 12년 넘게 4만 명이 넘는 환자들을 만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로서 풍부한 임상 경험만 있다고 해서 이 책의 주제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록 성형외과 의사지만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반성했다. 그리하여 그는 꾸준히 진화생물학, 신경정신의학, 미용의학에 바탕을 두고 연구해왔다. 이 책은 임상과 연구와 대학 강의의 결과물이다.

스티븐 다얀은 성형외과의로서 쌓아올린 임상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상당히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연구를 비롯해서 다양한 연구 결과 역시 아주 폭넓게 인용하면서 외모와 매력의 과학에 관한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만족시켜준다. 키가 큰 남자의 수입이 더 많다는 잘 알려진 통계나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이 사회생활에서 여러모로 유리할 것이라는 통념에서부터 남자가 자몽향을 맡으면 여자의 외모를 더 어리게 본다는 이색적인 연구 결과에 이르기까지 인용된 연구 결과들이 흥미진진하다.

세계 어디를 가나 밝은 피부의 여성을 선호했다는 연구 결과처럼 전인류에 통용되는 몇몇 결과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서구의 통계나 연구 사례를 인용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스티븐 다얀이 매번 서구의 연구 결과만을 갖고 성급하게 인류 일반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그런 제한적인 연구들만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다양한 인종과 사회를 대상으로 한 연구와 특정 사회의 연구를 분명하게 구별한다.  

그러면 사소한 연구 결과들을 묶어줄 수 있는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은 두 개인 간에 일어나는 잠재의식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아름다움은 신체가 이런 말을 하는 방식이다. “나는 건강하고, 몸이 좋고, 2세를 생산할 능력이 있어요.” 자연이 볼 때 아름다움은 우리의 유전자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다. (40쪽)  
스티븐 다얀은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아름다움을 과학적으로 살펴본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아름다움과 매력은 유전자의 확산을 위한 무의식적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이성의 건강함과 생식 능력을 잠재의식적으로 순식간에 파악한다. (원제인 ‘잠재의식적으로 드러난’(Subliminally Exposed)는 이 핵심 주장을 잘 드러낸다.)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고 리더가 되기 쉬운 잘 생긴 남자(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들)는 강한 턱과 큰 키, 좋은 체격과 같은 남성적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우성 남자의 특징은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 역시 상반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을 추종하는 저자의 생각으로 쉽게 예상되는 결과지만, 실제로 이렇게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이라는 단순한 기준만으로 외모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설명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있다. 

어떤 남자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가 건강하며 자원을 제공할 능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받은 셈이다. 따라서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남자는 좋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원을 제공하는 능력이라는 특성은 문화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96~97쪽) 
육체적으로 남자다운 특성을 지닌 남성들이 성적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서 남자다운 특성이란 무엇인가? 원시시대에 자원을 제공할 능력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에는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나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란 말이 생겨난 이유도 설명이 된다. 현대인들이 들판에서 사냥감을 때려잡을 일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오늘날에는 지적이며 가정적인 남자야말로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여 유전자를 전달할 능력이 있는 남자로 인식될 것이다. 최근에 ‘꽃미남’이나 ‘연하남’이 뜨는 이유도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아진 것과 연관 있다.  “쿠거 신드롬이란 재정적으로 안정된 중년 여성이 외모가 무척 매력적인 젊은 남자를 원하는 현상을 가리킨다.”(157쪽)

생물학적 진화의 시계는 문화의 시계보다 느리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남자다운 신체적 특징을 가진 남자를 미남으로 여길 것이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진화가 덜 된 사람들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들이, 그리고 우리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들이 후손들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프로그램도 그렇게 작동한다. (그럼에도 이 같은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 읽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화장이나 성형만이 우리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데 유일한 길인가? 물론 화장이나 성형은 그 자체로 자신감을 북돋워준다. 사회적 관계와 일에서 성공 확률도 높여줄 것이다. 고대의 성형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박탈당한 자들을 위해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시행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저자는 전문가로서 이상적인 외모를 추종하여 자연스러움을 넘어선 성형을 하기보다 오히려 아주 미묘한 시술만으로도 자신감을 높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과도한 화장이나 성형에 거부감을 갖는다. 과한 미용과 성형을 유전적 결함을 숨기려는 태도로 보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원시적 인지 체계는 아주 미묘한 잠재의식 수준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성형보다도 더 좋은 방법을 권한다. 바로 충분한 잠과 운동과 영양이다. 우리는 아주 미묘한 얼굴 변화와 인상만으로도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아주 능숙하게 포착한다. 이를테면 잠을 못자 피곤한 얼굴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이 덜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잠과 관련한 얼굴의 신호에 민감해서 수면 부족 상태를 금방 알아차린다. ‘미녀는 잠꾸러기’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잘 자고 잘 먹고, 꾸준한 운동과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외모와 매력을 높여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스티븐 다얀이 저명한 성형외과의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자존감의 중요성이다. 자신감은 긍정적인 첫인상의 열쇠라고 말한다. 또한 외모와 매력은 일치하지 않는다. 연구 결과로도, 자존감이 높고 타인에게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 우리는 매력을 느낀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예로 든다. 그의 아버지는 잘 생긴 외모는 아니었다. 작은 키에 알이 큰 안경을 쓰고 머리는 벗겨져 흰머리 몇 가닥을 빗어 넘겼으며, 콧수염을 기르고 깊은 주름이 패인데다 외국인 억양이 강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두려움 없이 미녀에게든 험악한 인상의 남자에게든 말을 거는 데 거리낌이 없고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한다.

결국 저자는 사람들의 외모를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분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을 한다고 고백한다. 비록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지만 글에서는 심리학과 경청의 기술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보톡스와 성형 수술보다는 가끔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면, 특히 마음이 섹시하려면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최종적인 메시지다. 

뛰어난 아름다움은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중요한 요소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단지 외모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304쪽)

늦은 새벽까지 삐딱한 자세로 앉아 글을 쓰고 있으면 외모도, 마음도 못생겨질지 모른다. 그만 자야겠다. 

▷ 노대원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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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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