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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문화예술재단 박경훈 이사장이 취임 1년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제주의소리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취임 1주년 간담회, “밖에서 볼 때와 달라...내부 개선 중”

제주문화예술재단 박경훈 이사장이 부임 후 지난 1년 간의 활동에 대해 “밖에서 지켜만 보던 것과 달리 생경한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22일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이 같은 소회와 함께, "2001년 처음 출범할 당시와 비교할 때 재단 예산은 23배 증가했지만 일하는 사람은 4명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예산, 인력, 역할을 포함해 재단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시선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 문화재단과 비교하면 제주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조직 제·규정, 경영진단, 자체 보수체계, 부서평가 지표 같은 내부 개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예술공간 이아에 대해서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인 만큼, 긴 호흡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신중론을 폈다.

남은 임기 동안 제주문화예술재단을 ‘창의적으로 일하는 기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박경훈 이사장의 포부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 지난 1년간 어땠는지?

: 지난해 8월 5일 재단에 왔다. 제가 오면서 일각에서는 여러 의구심들이 제기됐었다. 예를 들어 현장 출신 이사장이 오랜만에 오니 의욕만 앞선다, 인물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갈려 우려가 된다는 식의 의견이다. 그런 와중에 일 년을 지내보니, 겪어보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테면 제주도의회에서 예산을 만드는 과정, 무엇 하나 움직이려면 법, 시행령, 조례를 검토하고 나아가 제주도의 정책방향까지 고려하면서 일하는 건 밖에 있을 때 느끼지 못한 생경한 경험이다. 1년 지났어도 여전히 의욕만 앞서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서 남은 시간을 더 헤아리고 운동화 끈을 더욱 단단히 매겠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단 8월 16일자로 사무처 직제를 폐지했다. ‘1사무처 3본부 9팀’ 구조에서 ‘3본부 7팀 1TF단’으로 조직을 개편했는데 재단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업무생산성 제고를 위한 실무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기계약직 제도를 폐지했고, 사업은 3개 영역(예술지원·생활예술·예술교육사업)에서 6개(문화재생·문화유산·문화공간 추가)로 늘렸다.

제·규정을 전면 개정하고 지속가능한 조직경영을 위해 경영진단을 진행하고 있다. 공무원호봉제에서 기본연봉제로 자체 보수체계를 수립하고, 부서평가 지표를 새로 개발했다. 직원 직무역량과 조직 결집역량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국가 공모사업에 참여하면서 신규 사업을 확대했고, 사업적으로는 청년예술가 지원에 공을 기울였다. 예술공간 이아, 재단 건물 2층에 차린 청년예술창작 공간 이층(利増)을 시작으로 산지천 갤러리, 옛 산양초등학교에 문화공간을 조성해 나간다.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역문화·자원 연계 ▲전문가 양성으로 다양화했다.

대외협력에도 신경을 썼다. 제주도청 주무부서와 정기적으로 문화예술정책협의회를 가동했으며, 제주도의회 상임위원회인 문화관광스포츠위원회과 공동으로 문화정책포럼을 추진했다. 

(사)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제주도립미술관, 성북문화재단,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제주메세나협회, 세계유산본부, JDC, 한국공항공사 제주본부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예술인과의 소통채널도 지속적으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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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훈 이사장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역할이 아직 부족하다고 강조햇다. ⓒ제주의소리
- 새 이사장이 오고 나서 재단 지원금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의견이 있는데?

: 재단의 모든 사업은 전국에서 심사위원을 모집해 심사한다. 예전 제주도 안에서 심사위원을 찾을 때는 나눠먹기식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우리 동네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심사하느냐’는 식의 기본적인 불신도 있겠지만 외부 심사위원을 강화하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침이기도 하다. 물론 공급도 여전히 부족하다. 이런 와중에 예술인들에게 좀 더 소상하게 설명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재단 이사장으로 와서 놀란 것 중에 하나를 말하자면, 재단에서 사업 심사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3월부터 8층 직원들은 사무실로 밀려오는 전화 등쌀에 퇴근도 제대로 못한다. 모두가 자기 작품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고, 탈락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각 타당하겠지만, 심사가 불만이라는 전화가 대부분이다. 예술인들을 이해시키는데 부족했다면 보강하겠다. 다만, 경쟁은 경쟁대로 가야하는 점도 알아달라. 문재인 정부가 생활문화를 강조하는데, 생활문화 부분에서 예산 문제를 다소 해결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 인력, 예산, 역할 등에 걸쳐 재단이 커지고 있다. 이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 아쉽게도 그런 지적은 동의하기 어렵다. 재단을 키우지 않으려면 뭣 하러 만들었나. 제가 온 뒤에 3개 사업 영역을 추가했는데, 다른 지역 재단은 제주보다 훨씬 많은 사업을 관할한다. 행정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때 대규모 예산을 민간 단체에 주기가 불안하니, 가운데서 공공재단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만든 조직이 커지는 게 우려된다면, 저희 입장에서는 왜 만들었느냐고 물어볼 수 밖에 없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까지 제주 안에서 재단의 역할을 단순히 돈 나눠주는 것으로만 인지했다. 그래서 재단이 크지 못했다. 17년 간 예산은 6억원에서 140억원으로 늘어났는데 직원 정원은 4명 밖에 증원되지 못했다. 발육이 억제돼 있던 것이지 새로운 이사장이 와서 과도하게 대나무처럼 커지는 건 아니다. 정상적이라면 어차피 올라왔어야 했다. 제가 와서 조금 한 것 뿐이다. 

앞으로 제주문화예술재단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신생 재단을 제외한 다른 지역 재단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면 제주보다 일, 예산, 인력이 많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양질의 정규직을 확보하려 한다. 정규직은 조직 역량과 직결돼 있다. 계약직은 투자한 전문성이 그대로 나가버리는 셈이다. 이건 재단이 무능력해지는 요인이기도 하다. 재단 역량이 강화되면 지역 예술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 입김도 있고 무게감 있는 인물이 이사장으로 와서 주도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인물에 관계없이 조직 안에서 시스템화 시키는 것 중요할 텐데?

: 의욕 많은 이사장이 와서 잠시 반짝하고 나가는 것은 저도 원하지 않고, 재단 구성원과 지역사회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 시스템만 제대로 만들면 재단은 스스로 굴러갈 수 있다. 본부장급 직원이 제대로 자리 잡으면 이사장으로 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퇴행이 얼마나 빨리 이뤄지는지 지난 정권에서 확인했지만, 재단이 그렇게 정치적인 조직도 아니지 않나. 안정적 조직 위에서 재미있게 굴러갈 수 있게 일 잘하는 중간간부,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력을 지닌 젊은 친구들이 갖춰지면 외풍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생산적인 조직이 된다. 예산 확대, 인원 확충, 조직 정비 모두 이런 목표와 연결돼 있다.

- 예술공간 이아는 현재 어떤 상태로 보나?

: 이아를 생각하면 애간장이 탄다. 조직개편으로 이아를 담당하는 별도의 TF단을 분리시켰다. 재단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김석범 전 문화예술진흥본부장과 행정업무 전담 직원도 투입시켰다. 나부터 책임감을 가지자는 조치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예술공간 이아 건물은 소유관계가 복잡하다. 재산권은 교육부, 관리는 제주대, 우리는 임차인에 불과하다. 그래서 카페 하나를 운영할 수 있게 재위탁을 주고 싶어도 그게 안된다. 관리할 사람을 채용하려면 예산이 있어야 한다. 어쨌거나 넉넉히 마음을 잡으려 한다. 이아는 올해 말까지 파일럿(시범) 운영기간으로 둘 예정이다. 더디게 가더라도 착실히 준비하겠다.

이런 공간은 처음이다 보니 실제로 이관 받아 운영하면서 예상과 달리 많은 인원과 예산이 소요되더라. 늦은 오후까지 시민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하려면 인력이 2배로 필요하다. 직원 증원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차차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이아가 제대로 연착륙해야 산지천 갤러리나 다른 공간도 잘 될 것이다. 

- 남은 임기 동안 포부를 들려달라.

: 저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창의적으로 일하는 엔진 같은 기관이 되면 좋겠다. 재단에 몸담지 않을 때, 밤에 재단 사무실 불이 켜있으면 ‘저것들 하는 일 없이...’라고 생각했다. 안에서 나오는 볼멘소리라고 볼 수 있지만, 이사장으로 와서 처음에는 직원들에게 일찍 퇴근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내보니 현실은 녹록치 않더라. 

그리고 제도적으로 고쳐야 할 점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연극은 보조금을 받으면 티켓을 판매해서는 안된다. 보조금 법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니 누가 티켓을 판매하고 홍보에 힘쓰겠나.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1년이 무척 짧게 느껴졌다. 현장 출신이 놀러오지 않았구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욕심내서 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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