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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사막의 밤, 별빛에 숨이 막히다

문무병 mmb5056@gmail.com 2017년 09월 01일 금요일 09:04   0면

제주신화연구소는 지난 7월말 6박 7일 일정으로 몽골 북부 홉스굴 호로 향했다. 너비 36.5km, 길이 136km, 면적 2,760km²에 이르는 이 거대한 호수는 몽골에서는 샤먼의 성지로 불린다. 주민들은 이 호수를 어머니의 바다로 섬기며 살아간다. 이 곳에 얽힌 신화들은 몽골인들의 정체성과도 밀접하다.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의 생생한 홉스굴 호 방문기를 세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문무병의 몽골신화기행] (3) 몽골의 옛수도 하르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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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옛 수도 하르호링.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몽골의 옛 수도 하르호링(하르허린)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칭기스칸의 몽골제국, ‘몽골 울르스’의 수도다. 옛날은 검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카라코름(검은 담)’이라 부르던, 지금은 하르호링(Harhorin) 오르혼 강의 상류에 자리잡은 하르호링은 초원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다.

13세기 중반 카라코름은 활기찬 몽골의 수도였다. 칭키스칸은 이곳에 보급기지를 세웠고 그의 아들 오고타이는 제대로 된 수도 카라코름의 건설을 명했다. 이 법령은 아시아 전역과 유럽의
상인들, 고위 관리들, 기술 노동자들 까지 끌어들였다. 좋은 시절은 쿠빌라이(Kublai)가 수도를 항발릭(Khanbalik 베이징)으로 옮길 때까지 약 40년 동안 지속됐다.
 
이러한 쿠빌라이의 결정에 대해 지금도 몇몇 몽골인은 불안을 표출하고 있다. 수도가 베이징으로 옮겨지고 뒤이어 몽골 제국이 무너지면서 카라코름은 버려졌고, 1388년 복수심에 불타는 만주 군인들에 의해 파괴됐다. 이후 카라코름의 잔해는 16세기 거대한 에르데네 조 사원을 지을 때 이용됐고, 이 사원도 스탈린의 세력에 의해 심하게 훼손됐다.

그리고 소련 시대에 세워진 별 특징 없는 하르호링 시는 에르테네 조 사원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지어졌으나 이곳 자체에는 흥미로울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하르호링은 볼만한 가치가 있는 많은 명소들까지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이망 호, 오르홍 후르흐레 폭포, 한적한 산 위의 틉흥 사원, 몽골 엘스로 알려진 모래 언덕, 엘센-타사르하이. 웅장하고 황량한 바위 자연보호구역인 흑느 항 산까지,  이 아름다운 명소들 때문에 하르호링은 으브르항가이 아이막 여행의 베이스 캠프로 최적인 장소라 할만하다.

몽골의 옛 수도는 사라졌을지 모르나 카라코름은 분명 잊혀지지 않았다.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남긴 기록들을 보면, 제국의 수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카라코름은 선교사인 루브루크의 윌리엄(William of Rubruck)은 파리의 교외 생드니(Saint Denis) 지역 만큼도 크지 않다며 무시했고, 1245년 몽골을 방문한 교황 인노첸시오 4세(Pope Innocent Ⅳ)의 사절인 조반니 데 피아노 카르피네(Giovanni de Piano Carpine)는 로마에서 ‘걸어서 1년쯤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고 모호하게 묘사했다.

카라코름은 확장할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쿠빌라이가 수도를 항발릭으로 옮기기 전까지 겨우 40년 동안만 활기가 있었다. 재미있게도 몽골인들은 카리코름에 거의 살지 않았으며,
대부분은 몇 킬로미터 떨어진 스텝지대의 게르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때문에 카라코름에는 장인, 학자, 종교 지도자, 몽골이 외국을 습격했을 때, 잡혀온 사람들이 살았다.

카리코름의 주요한 특징은 4개의 성문이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문마다 각각의 시장이 섰는데 동쪽에서는 곡식, 서쪽에서는 염소, 남쪽에서는 황소와 4륜 우마차, 북쪽에서는 말을 팔았다.

몽골의 칸들은 종교적 관용으로 유명했으며 모든 종교에 공평하게 시간을 할애했다. 도시에는 12개의 다른 종교가 공존하고 있었다. 모스크, 불교사원, 네스토리우스 기독교 교회가 몽골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했다. 심지어 오고타이의 아내와 쿠빌라이의 어머니 같은 권력있는 인물들도 네스토리우스 기독교 신자였다.

도시의 중심은 시 남서쪽 모퉁이에 자리한 토멩 암갈랑 세계평화궁전이었다. 1235년 지어진 2500㎡ 넓이의 이 건물은 오고타이칸의 궁전이었다. 2층짜리 궁전에는 대사들을 맞이하기 위한 드넓은 응접실이 있었고, 성당의 기둥처럼 생긴 64개의 기둥이 설치돼 있었다. 벽에 색을 칠했고, 초록색 타일 바닥 밑에는 난방장치가 있었으며, 중국식 지붕은 초록색과 빨간색 타일로 덮혀 있었다.

최근에 독일 고고학자 팀이 돌거북들 중 한 마리 근처에서 궁전의 토대를 발굴했다. 울란바토르의 몽골국립박물관에서 궁전 모형을 볼 수 있고, 하르호링에 있는 새 카리코룸 박물관 안에서는 옛 도시 전체의 모형을 볼 수 있다. 이 도시의 가장 기억할 만한 일면은 분명 프랑스 파리의 보석 상인이자 조각가인 기욤 부시에(Guillaume Bouchier)가 1253년 설계한 분수일 것이다.

그는 헝가리에서 몽골인 들에게 잡혀서 카라코룸을 꾸미기 위해 돌려보내졌다. 분수는 거대한 은빛 나무 형태였으며, 은색 사자들의 머리에서는 말젖이, 뱀 머리처럼 생긴 네 개의 금빛 분출구에서는 와인, 청주, 발(Bal), 벌꿀술, 아이락(airag 마유주)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나무 꼭대기에는 천사가 있었다. 이 장치가 작동할 때 하인이 천사의 입에서 이어져 나온 나팔 같은 파이프를 불어서, 다른 하인들에게 음료를 나무 밖으로 퍼 올리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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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비사막의 남쪽 끝 엘센-타사르하이에서 제주신화연구소의 벗들과 함께.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모래사막의 끝 ‘엘센-타사르하이’에서
신이 내린 휘황찬란한 몽골의 별 하늘을 만났다
 

아, 너무 아름다웠다. 몽골의 별밤은 민족의 별, 북시베리아의 북극성도 띄었고, 몽골 별밭에서 만난 별의 신 칠원성군 북두칠성도 또렷했다. 여기, 고비사막의 남쪽 끝이라 엘센-타사르하이, 고비사막의 절경 ‘홍그린 엘스’를 닮았다는 몽골 엘스(Mongol Els)의 별잔치에 미칠 수밖에 없었던 제주신화연구소의 벗들이여. 즐기세, 축하하세. 몽골에서 본 반구의 별밭, 예로부터 상투를 틀어 북두칠성에 인사하던 조선 민족의 명예를 걸고 몽골 울르스에 온 것을 기뻐하세. 아름다운 몽골의 별밤을 아낌없이 즐기세. 몽골이여, 몽골 울르스여.

하르호링에서 울란바토르를 잇는 도로를 통해 흑느 항 산 자연보호구역으로 가다가 무척이나 지루하게 뻗어있는 길에 활기를 불어 넣는 알타이라 부르는 작은 게르촌이 있었고, 거기엔 엘센-타사르하이(Elsen-Tasarkhai)의 모래언덕이 있었으니 몽골 엘스로 잘 알려진 이 커다란 모래언덕, 약 70km에 걸쳐 뻗어 있는 몽골 엘스, 고비사막의 훨씬 더 장관을 이루는 홍그린 엘스는 너무 멀어 여행지로 택했던 엘센-타사르하이, 작은 사막은 너무나도 큰 놀이터이며 몽골의 별밭이었네. 아름다워라. 아름다운 몽골의 영주십경이여.

거기 모래언덕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낙타치는 몽골의 어린 테우리가 어슬렁어슬렁 인도하는대로 낙타를 타고 1시간을 모래언덕을 누볐지. 몽골의 쌍봉낙타, 몽골의 낙타는 ‘티메’라 했다. 암컷은 ‘잉게’, 수컷은 ‘부르’, 실크로드를 따라 온 대상들이 두고 간 낙타들이 야생으로 번식했다는데, 아라비아의 낙타들은 등의 혹이 하나인 외봉낙타이니 그건 아니라며 고비사막을 누비는 약 10만 마리의 쌍봉낙타 중 한 친구의 등에 타 모래언덕을 누빌 수 있었다는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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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를 탄 필자.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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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센-타사르하이 모래언덕에서 낙타를 타다.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몽골 사람들은 낙타의 눈에서 바다가 보인다고 했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깊은 바다처럼 고요하고 슬픈 친구, 오래 쳐다보면 끈적거리는 침을 뱉을 수 있으니 주의하란다. 낙타의 위액이 섞인 초록색 침은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긴단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처럼 낙타를 오래 타고 싶다면 두툼한 기저귀를 준비하란다. 그리고 사람을 태우는 낙타들은 어려서부터 측대보행, 좌우의 다리가 함께 걷는 보법으로 길들여진단다.

측대보행을 하는 어미 낙타의 새끼는 자동으로 측대보행을 익히게 되며, 낙타는 말에 비해 키가 크기 때문에 타고 내릴 때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낙타를 앉힐 때에는 ‘서억 서억!(앉아라)’이라고 하고, 타기 전에 낙타의 귀에 ‘하이르테(사랑해)’라고 속삭여 주면 좋아한다.

낙타의 부드러운 목털은 모자를 만드는 데 쓰고, 고기를 식용으로 하나 맛은 양이나 염소에 비해 떨어진단다. 낙타의 젖은 모유의 성분이 가장 가까워, 산모들이 젖이 안 나올 때는 낙타 젖을 아기에게 먹인단다. 낙타는 모성애가 강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몽골의 설화에 이런 얘기도 들었다. “낙타는 원래 뿔이 있었다. 그런데 물을 마시러 갔다가 사슴을 만났다. 사슴은 잔치에 간다며 낙타에게 뿔을 빌렸다. 잔치에 가서 멋진 뿔 때문에 칭찬을 들은 사슴은 욕심이 나서 줄행랑을 쳤다. 낙타는 사슴이 뿔을 가지고 오기를 아직도 사막에서 기다리고 있다. 낙타가 물가에서 물을 먹다가 우두커니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은 행여 사슴이 오는지 바라보는 것이라 한다.”

서두름이 없이, 그러나 게으름도 없이 터벅터벅 사막을 걷는 낙타를 보면, 성지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가 연상된다. 잃어버린 뿔을 기다리며, 눈에 바다를 담고 사는 낙타를 보면 비장하다. 해 저무는 사막에서 들려오는 낙타의 울음소리는 몽골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낙타의 새끼는 울면서 어미를 따라다니지만 어미는 젖을 주지 않는다.

그럴 때, 어미 낙타에게 마두금을 연주해 준다. 구슬픈 마두금 소리를 들은 어미 낙타는 눈물을 흘리며 새끼에게 다가와 젖을 물린다. 이것을 후스(Hoos)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는 마두금을 사람이 켜지 않고 어미 낙타의 등에 매달아 지나가는 바람이 켜는 소리를 듣게 하기도 하는 바람이 켜는 마두금 소리. 생각만 해도 눈물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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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유목민의 게르에서 마두금을 들고.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우리는 숙소 근처 유목민의 게르에서 마유주를 마시며 마두금 연주를 들었다. 아이락, 초원의 이슬, 마유주(馬乳酒)라는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몽골의 전통술 가축들 가운데 말의 젖이 유당이 가장 높다는 아이락은 미네랄이 풍부하여 장내의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아이락은 새끼를 잃은 어미 말이 젖몸살로 밤마다 우는 것을 불쌍히 여긴 주인이 말젖을 짜주었다가 그것이 발효된 것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락은 시큼텁텁한 맛이 흡사 막걸리와 비슷하다. 아이락은 유목민에게 음료에 가깝다.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말의 종류보다는 말이 먹는 풀의 종류에 따라 마유주의 질이 결정되는 듯하다.

아이락은 말 젖을 큰 통에 담아 두고, 드나들 때마다 저어준다. 고향을 그리는 몽골의 시에 보면, ‘아이락 젖는 소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네 식으로 하자면,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의 향수가 느껴진다. 유목민들은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락을 입술에 발라주어 초원의 삶을 시작하게 한다. 아이락을 처음 만드는 시기에 말들의 번창을 기원하는 ‘아이락 축제’가 열린다.
 
아이락 축제는 말의 축제이니 제물로는 말고기 대신 양고기를 쓴다. 아이락을 맛보려면 게르 앞에 매어 놓은 말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긴 줄에 매인 어미 말은 서 있고, 망아지는 앉아 있는 게르가 아이락을 담그는 집이다. 새끼를 곁에 둔 어미 말은 젖을 내지만 짧은 줄에 매인 망아지는 빨아 먹을 수가 없다. 주인이 가서 어미 말이 내놓는 젖을 짜오는 것이다.

몽골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반구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하고, 광활한 초원에 점 하나처럼 찍혀 있는 게르 안의 촛불은 아득하고 호젓했다. 빙 둘러 앉으면 그 중심에 술병 하나쯤 놓이게 마련. 밖에서는 모래바람이 울부짖고, 밤이 질흑처럼 깊어갈수록 게르 안은 방주처럼 아늑해 술잔을 나누며 지나온 일들을 되새기노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슴에 차곡차곡 접어두었던 삶의 수첩들을 펼쳐놓게 마련이다.

몽골의 술과 악기 마두금, 마두금은 낙타를 울리는 초원의 악기, 몽골의 대표적인 전통 현악기이다. 아랍의 라바브(Rabab)라는 악기에서 유래되었다는 마두금은 우리의 해금이나 중국의 얼후(二胡)를 닮았다. 마두금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달랑 두 줄로 되어 있는 마두금은 보기와 달리 오묘하며 애절한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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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사막을 달리는 몽골의 ‘멀’.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얼핏 들으면 벌판을 오가는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기도 하고, 격하게 고동을 치게도 한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악기이지만, 마두금을 만드는 과정은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잘 마르고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드는데, 줄은 말총을 쓴다. 마두금의 한 줄은 숫말의 꼬리털 130가닥을 꼬아 만들고, 다른 하나는 암말의 꼬리털 105가닥으로 만든다. 종마의 말총은 쓰지 않는다. 몸체를 말가죽으로 씌우고, 악기의 끝에는 말의 머리가 새겨져 있어 마두금(馬頭琴)이라 부른다. 몽골 말로는 ‘모린 호르(말 악기)’이다. 마두금은 평생을 말과 함께 살아가는 몽골인들에게 말의 화신이나 다름없다.

두 줄을 이리저리 문질러 말이 달리는 소리며, 두 발을 치켜들고 투레질을 하거나, 큰 소리로 우는 소리를 켜낸다. 마두금 연주를 듣자면, 설화 속에 나오는 말의 슬픈 사연이 머리를 스친다. 마두금에는 여러 전설이 있지만, 대체로 죽은 말을 기리기 위해 만든 악기라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낙타를 타고, 아이락을 마시고, 마두금 켜는 소리를 듣는 엘센-타사르하이는 모래(사막)언덕‘이란 뜻, 몽골에 크고 작은 모래사막 33개중 긴 몽골 엘스의 끝 부분. 남고비의 모래 산이 중간에 끊기고 중부지방까지 이어지는데 그 모래 산의 일부분이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는 엘센-타사르하이 모래사막에도 밤이 왔고, 모두들 밤의 별 잔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몽골의 작은 사막, 엘센-타사르하이 몽골 엘스에서 별을 본다니... 별은 얼마나 뜰까. 바이칼 알혼섬의 별과는 어떻게 다를까. 첫째 날 흡스굴 별밭의 샤먼축제는 날씨 때문에 망쳤고. 나는 흡스굴에서 몸이 아파 신에게 다가갈 수 없었는데 별, 제주에서 찾아온 시베리아의 북극성과 몽골의 북두칠성 별, 반구에 펼쳐지는 밤의 보석은 얼마나 클까, 많을까, 별에 관한 몽골의 설화에 이런 것이 있었다.

“하늘에는 엄청나게 넓은 초원이 있다. 그곳에도 양떼가 있고, 그를 지키는 목동이 있다. 밤이 되면 하늘 초원의 목동은 모닥불을 피운다. 그리고 잠을 잘 때 몸에 덮는 가죽 덮개를 펼친다. 오래된 가죽 덮개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는데 그 사이로 모닥불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별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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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밤.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몽골의 하늘은 180도 반구로 펼쳐졌다. 상상해 보라. 동서남북으로 끝없이 펼쳐진 반구의 하늘에 가득 들어찬 별들의 무리를. 발이 닿는 땅 끝부터 반짝이는 별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 막혀왔다. 엘센-타사르하이에서 밤 2시에 만난 별들을 말로 설명할 수 없어 울어버린 몽골의 밤하늘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반구의 하늘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그야말로 검은 공간보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 많았다.

저 하늘 초원의 목동이 덮고 자는 가죽 덮개는 너무 낡고 좀이 슬어서 온통 구멍투성이임이 틀림없었다. 그 많은 별들이 땅과 하늘이 맞닿은 지평의 시점부터 시작해 반구를 채우고 도처에서 별똥별이 폭죽처럼 동시다발로 터지느라 미처 탄성을 내지를 틈조차 얻지 못했는지, 초원의 여름밤은 구름 한 점 없이 공활해, 진주를 빻은 듯한 별들을 검은 벨벳 위에 흩뿌려 놓았고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별들을 보자니, 어느 게 누구 것인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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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듯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쨍그렁 소리를 내며 별에 머리를 부딪칠 것 같았던, 아! 하늘의 반구를 가득채운 몽골의 별밤이여! (끝)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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