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산업에 주민 삶 파괴...시민운동가 출신 시장, 관광정책 대전환 닻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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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제주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에 나선 실바아 플로레스 바로셀로나 시 관광정책과 정책담당. ⓒ 제주의소리

한 해 3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스페인 바로셀로나. 인구 160만의 이 도시가 ‘반관광(反觀光)’ 정서로 가득차게 된 것은 2014년 여름의 일이 결정적이었다.

관광을 온 이탈리아 청년 3명이 밤새 술을 먹고 취한 채 거리를 뛰어다니다 아침에 동네 가게 안까지 들어가는 사건이 발생한 것. 여러 외신들은 사진과 함께 이 소식을 전했고, 주민들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2000년대 중반 주민들이 관광을 위해 집과 마을을 내어주고 쫓겨나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시작됐던 관광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이때부터 바르셀로나 곳곳에서는 안티 투어리즘을 전면에 내세운 시위와 퍼포먼스가 어이졌다.

이 같은 분위기는 2015년 지방선거 결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주거권 운동가 출신인 아다 콜라우(43)는 관광객 급증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주민들의 삶의 질 보장을 위한 공약들을 내걸었고 당선에 성공한다.

바로셀로나의 변화가 본격화된 것은 이 때부터다.

아다 콜라우는 신규 호텔 허가를 중단했고, 유명 관광지의 1일 입장객수를 제한하고 사전예약을 의무화했다. 시민들이 주로 장을 보는 금요일과 토요일 낮 시간대에는 시장 내 관광객 출입이 통제됐고, 일부 지역에만 편중된 관광객을 주변 도시로 분산하기 위한 여행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집값을 올리는 주범으로 꼽힌 불법공유숙박업소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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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 ⓒ Ajuntament de Barcelona

“관광은 쓰레기, 교통, 주거문제와 다 연결돼있는 만큼 단순히 관광부서만의 업무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아젠더로 삼고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고 소통하게 됐습니다. 어떤 정책을 무작정 시작하지 않고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을 먼저 했습니다. 우리 도시가 관광의 목적지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중심에 뒀습니다”

1일 제주생태관광지원센터(센터장 고제량)에서 열린 제주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에 발표자로 나선 실비아 플로레스 바로셀로나 시 관광정책과 정책담당은 2015년을 변화의 기점으로 본다.

지난 20여년 간 시 당국의 관광 정책이 어떻게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을 것인가에만 집중했던 ‘프로모션(promotion)’ 방식을 지향했다면 아다 콜라우의 등장 이후 관광정책의 핵심이 ‘관리(management)’로 전환됐다는 얘기다.

아다 콜라우의 관광 정책이 주목받는 건 ‘협치’를 중심에 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셀로나의 관광정책의 밑그림은 정부 담당자, 학계, 전문가, NGO, 지역주민 대표, 사업자, 여행사 등 60여명으로 구성된 ‘관광위원회’가 그린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의사결정 기구다. 이 위원회의 모든 회의는 생중계돼 누가 언제 무슨 발언을 했는지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도시 전체에서 일어나는 관광의 문제를 민관협력으로, 민주적 토론을 거친다는 게 의미가 있습니다. 이 위원회는 당장 ‘무엇이 가장 문제인지’ 이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투자자의 이익이 아닌 시민 전체의 이익’,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어떤 로비나 특정집단에 의해 흔들릴 수 없는 우선순위’, ‘관광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지역사회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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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셀로나 시가 전개하고 있는 관광 '매니지먼트'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든 포스터. '당신의 휴일은 우리의 매일(일상)입니다'라는 문구가 시 정책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 Ajuntament de Barcelona

이날 세미나에서  임영신 이매진피스 대표는 이제는 관광정책의 방향성을 ‘프로모션(홍보·판촉)’에서 ‘매니지먼트(관리)’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지역이 관광지화 되는 과정을 주민들이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직접 논의하고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을 곳곳이 옛 모습을 잃고 있다’는 한숨이 부쩍 늘어난 요즘 제주의 상황과도 밀접한 조언이다.

“정부는 교육, 주거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공공성을 강조하지만 유독 관광개발 영역으로만 가면 경제적 효과만 얘기하지 ‘주민들이 이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제는 관광분야에서 경제적 이익을 넘어 지속가능한 삶의 권리를 지킬 통합적 관리 정책이 필요합니다. 주민들이 자기가 사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면 온당 않습니다. 충분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바르셀로나 사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문제를 풀어갈 당사자들이 함께 공론의 장을 구성해서, 총체적·거시적 관점으로 장기간의 과정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관광 자체에 반대 아니, 주민 삶 파괴 막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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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제주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 열린 제주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 왼쪽부터 고제량 제주생태관광지원센터장, 임영신 이매진피스 대표, 실비아 플로레스 바르셀로나 관광정책과 정책담당. ⓒ 제주의소리

제주도 주최, 제주생태관광지원센터(센터장 고제량) 주관으로 열린 이번 세미나의 타이틀은 ‘시민의 삶을 지키는 관광’. 부동산, 교통, 삶의 질 등 관광객 급증으로 제주가 당면한 문제들이 정면으로 거론됐다.

강성일 박사는 “관광을 하긴 해야된다. 그렇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러니 부작용이 극대화되서 나타난다”며 “수용력에 기반해서 전략적·장기적·경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고, 김호선 선흘1리 생태관광기획팀장은 주민 자발성과 환경보전을 중심에 둔 생태관광으로 마을이 활력을 되찾은 과정을 공유했다.

거듭 실비아 플로레스에게 관심과 질문이 이어졌다. 바로셀로나가 오늘날 겪는 문제는 제주와도 밀접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Q&A세션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 기자와 인터뷰 과정에서 나눈 대화들.

- 막상 관광객이 줄어들면 그 지역에 경제적 위기가 생기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바로셀로나는 관광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버투어리즘’으로 갔을 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문제를 조정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바르셀로나가 벌이는 관광 진흥 캠페인 중에는 이 곳에서 45분 내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주변 도시를 소개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관광 수입이 많지 않은, 덜 유명한 곳들이다. 이 쪽으로 관광코스를 유도하면 관광객 만족도도 높이고 주민의 삶도 개선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가 관광을 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대체하냐’는 물음도 있다. 생계나 일자리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어느 한 도시가 관광이라는 단일한 산업에 의존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다양한 경제기반이 있어야 하고, 그 균형을 잡아가는 건 도시정부로서 당연한 일이다”

- 지난 2년간 바르셀로나에서는 어떤 극적인 변화가 있었나? 특히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모이는 관광위원회에서 어떤 얘기들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관광위원회에서는 서로 싸우고, 욕하고, 째려보고 난리가 난다.(웃음) 그리고 아다 클라우 시장은 양쪽에서 다 욕을 먹고 있다. ‘시민운동가 출신인데 겨우 이 정도만 개혁하는 거냐’는 쪽과 ‘저 사람이 바르셀로나를 다 말아먹으려고 한다’는 사업가들의 의견이 교차한다. 정치인은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어서 양쪽을 다 수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시민운동 계열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관광위원회라는 구조를 통해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민주적 절차를 거친다는 점이다. 과거 시민사회는 항의를 한다던지 데모를 해야했지만 이제는 공론의 장이 생기면서 토론과 조정, 의사결정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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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제주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 열린 제주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 ⓒ 제주의소리

- ‘저 사람(아다 콜라우 시장)이 관광산업을 말아먹으려고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길래 궁금하다. 정말 지난 2년간 관광객 수가 급감했거나 관광산업 전반에 위기가 왔나?

“그건 아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 해가 바로 작년, 2016년이다”

- 이 관광위원회의 실제 권한은 어느 정도인가?

“법을 제정하거나 조례를 만들 수는 없다. 다만 굉장히 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치인, 주민, 사업자, 전문가, 학자들이 만나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혁신적인 일이다. 소리지르고 싸우는 것까지 생중계가 돼서 시민들이 다 지켜본다. 누가 어떤 입장에서 어떤 발표를 하는 지 알 수 있다. 관광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는 법적인 파워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지향점 자체에는 공감하더라도 여전히 관광업계 종사자들은 불안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프로모션(관광지 홍보) 중이다. 지난 20년 동안 시 당국은 프로모션만 하고 매니지먼트(관리)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프로모션을 멈추고 매니지먼트만 하는 게 아니라 둘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프로모션을 끝낸 적이 없다”

- 마지막으로 제주에 조언을 해줬으면 한다. 제주 지역사회에서는 최근 들어 관광산업의 양적팽창에 의존하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민들과 같이 일하고 목소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까지도 함께 해야 한다. 관광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 주민들, 업계 등 모든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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