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안전자산으로 금, 미국 국채, 스위스 프랑 외에 일본 엔화가 들어간다고들 한다. 안전자산이란 시장이 불안할 때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자산이다. 수요가 몰리다 보니 위기일수록 안전자산의 가격은 거꾸로 오르기도 한다.

실제로 국내외 위기를 맞을 때마다 일본 엔화의 환율은 강해졌던 경험이 있다. 고베 대지진이 났던 1995년 1월 중 엔화 환율은 99엔이었는데 그 해 6월에는 85엔으로 17% 강해졌고 2011년 3월 도호쿠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붕괴되었던 큰 사건 때도 84엔이던 환율이 다음해 1월에는 76엔으로 10% 이상 강세를 보였다. 금년에도 북한 미사일 위기를 맞으면서 연초 대비 약 7% 값이 오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는 설명은 일본이 해외에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이 위기 시에 국내로 송환될 것인데 이 때 외화가 일본 엔화로 환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JP Morgan에서 일본시장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토오루 사사키는 일본이 외환보유고 1조2000억 달러의 거의 대부분인 1조900억 달러를 미국 국채로 보유하고 있고 이보다 더 큰 금액을 민간부문에서 보유하고 있어 이를 합치면 일본의 해외 금융자산은 3조1000억 달러에 달해 세계 제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로 이점, 해외 저축이 많다는 자랑이 일본 정부가 안고 있는 빚더미의 크기를 은폐하고 있다. 미국 CIA의 금년 6월 자료에 의하면 일본 정부의 부채 규모는 미화 환산 11조 달러에 달하며 GDP 대비 비율로는 234%로 2위인 그리스의 181%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영국의 전 금융감독청장 어데어 터너의 최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 '금융정상화는 환상이다'에 따르면 빚더미 현상은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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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해외 금융자산은 세계 최고 수준인 3조1000억 달러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안고 있는 빚더미의 크기는 무시할 수 없다. 사진=픽사베이.

빚더미에 올라앉은 일본 정부

OECD 국가들의 부채는 1950년대에는 GDP 대비 50%에 불과했는데 이것이 2007년에 170%, 금년 3월에는 220%로 계속 늘어났다. 한 나라의 정부와 민간이 지고 있는 빚의 합계액이 그 나라의 국민 총 생산량의 두배가 넘는다는 이야기다.

빚이 늘어난 속도는 유럽과 미국이 조금 다르다. 어차피 기축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으로서는 재정 규율이 유럽보다는 느슨한 데다 저금리 정책과 중앙은행의 채권시장 직접개입도 미국이 유럽보다 빠르게 시행했으므로 공공부문 민간부문 할 것 없이 빚은 미국에서 더 빠르게 늘어났다. 또한 유럽의 경우는 연간 재정적자는 3%, 누적 정부부채는 60%를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안전과 상장 협약'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규제가 없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어데어 터너의 전망을 들어보자. 첫째, 빚더미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소폭의 금리 인상도 경기에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클 것이므로 미국과 유럽의 기준 금리는 2020년이 되어도 각각 2.5% 및 1%를 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중앙은행이 매입해 가지고 있는 일본 국채가 일본 GDP의 75%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이어서 이것을 일본 정부가 상환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한다.

같은 논리를 미국의 경우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미국 연준이 가지고 있는 미 정부채는 2조5000억 달러로서 미국 GDP의 약 14%에 달하는 금액인데 이것을 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연준의 언질이 과연 얼마나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어데어 터너는 과거 여러 채널을 통해 미국 정부의 부채와 중앙은행의 자산을 상계 처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은 벌거벗은 임금님

금리 정상화와 통화회수를 미루면 미룰수록 전세계에 넘치는 화폐는 실물 자산의 가격을 높여왔음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라보듯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입밖에 내어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콩나물가격이 오르는 것은 쉽게 눈에 띈다. 그러나 주식이 오르는 것이나 주택 가격이 오르는 것은 회사의 실적 또는 경기 호조에 따른 현상이라고 좋게 호도 될 수 있기에 자산가격의 상승은 좀처럼 경계 대상으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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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외환시장에서의 엔화 환율의 높고 낮음은 엔화로 발행된 일본국채의 상환능력이 손상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대란, 1930년의 세계 대공황, 그리고 2001년의 닷컴 대란과 2007년의 서브프라임 사태까지 과거의 가장 컸던 금융위기는 모두 자산가격의 거품 때문이었음을 애써 외면하려는 작금의 세계 시장은 분명 커다란 불씨를 안고 있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9월 13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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