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미술평론가 《제주 해양 문화 읽기》 발간...돌·바람·여자에 가뭄·말(馬) 추가

최근 몇 년 사이 제주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서점가에도 관련한 책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과연 제주다움에 깊이 접근한 책이 얼마나 있는지 묻는다면 회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해박한 지식으로 소문난 김유정 미술평론가가 쓴 《제주 해양 문화 읽기》(가람과뫼)는 이런 책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긴다. 높은 곳에 내려다보는 지배적 시각을 탈피해 우리네 민중의 눈으로 바라본 제주 역사, 특히 해양문화를 조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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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제주에 대한 인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三多)의 섬은 가공된 이미지에 불과하며, 삼다의 섬에 가뭄과 말(馬)을 추가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가뭄과 말을 추가하면 삼다의 개념은 비로소 신비주의를 벗고, 역사적 리얼리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척박한 땅인 제주에 목축과 농업의 산업적 시야가 넓어졌다”고 소개했다.

가뭄으로 인해 여성들은 바다로 나가 잠녀가 되고, 해안가 용천수 주변에 마을이 만들어지며, 대표적인 옹기 ‘허벅’이 탄생한다. 작물 또한 가뭄에 강한 조, 콩, 메밀, 밭벼, 고구마가 농업의 주를 이룬다. 목축이 발달하면서 제주는 주요 말 산지가 되고 갓공예, 말 문화가 발달한다. 산업이 잘 될수록 중앙 정부의 요구 조건도 늘어나고 진상을 떠난 포작인 어부들이 부족하자 여자들은 남자 대신 바다로 나가 공물을 충당해야 했다.

‘당오백, 절오백’이라는 말처럼 제주에 무속과 불교가 성행했던 이유는 중앙 정부의 극심한 착취와 무관하지 않다. 광복 후 도민 여론 전체가 자주적 평등 사회를 지향했던 것은 착취의 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어도의 꿈’과 이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제주 해양 문화 읽기》는 제주의 민중 문화를 주목했다. 제주 해양 산업의 핵심 인력이었던 포작인, 해녀가 아닌 잠녀, 귤과 말을 싣던 덕판배를 비롯해 표류의 역사인 쿠로시오 해류,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경계인 왜구 등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시각에서 제주를 접근한다. 나아가 제주의 진짜 역사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살다 간 무수한 무명의 사람들의 역사라고 말한다.

특히 해녀에 대해서는 반드시 '잠녀'로 불러야 한다고 신신당부 했다. 해녀와 잠녀는 아예 다른 직업이면서, 일본의 영향으로 혼동돼 버렸다는 것.

“한 순간에 해녀와 잠녀의 명칭이 서로 바뀌면서 그것에 따르는 직능도 왜곡됐다. 본래 해녀는 한반도 남쪽 해변이나 도서 지역에 살면서 마른 바다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자들이다. 그런 여자들을 잠녀들의 말로는 ‘모른밭(물이 빠진 바다)에 다니는 서툰 잠녀’ 혹은 ‘똥잠수’라고 한다. … 잠녀는 미역 따는(採藿) 잠녀와 전복 따는(採鰒) 잠녀로 세분되는데, 이들의 차이 또한 잠수 능력에 따른 것이었다. 제주의 잠녀는 한반도의 해녀와 시작부터 달랐다.” - 3장 '제주의 어멍(母), 잠녀(潛女)' 중에서

고달팠던 기근으로 생겨난 제주 특유의 조냥(절약) 정신, 오키나와와 중국을 떠돌았던 제주 표류인들, 당시 천주교인들의 수탈과 만행으로 벌어진 1901년 제주 신축 민중 항쟁, 제주에 왔던 필리핀 노예 등 저자는 집요하다시피 거친 땅과 맞닿은 낮은 시각을 고수한다. 그것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 예술가 겸 학자로 활동하면서 ‘제주다움’에 천착해온 그만의 강단에서 비롯한다. 

저자는 “이제 제주를 알려면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잃어버린 민중의 역사를 도외시해서는 진정한 제주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 책을 쓴 이유는, 제주섬에 오늘 날까지 세대를 이어온 생산자 문화의 위대함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스스로 자강하고 자존을 지키려는 이름 모를 제주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역사에서 바로 일으켜 세우자는 뜻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제주 해양 문화 읽기》는 제주 역사, 문화의 속살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훌륭한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책을 ‘올해의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선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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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미술평론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저자는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큐레이터, KBS제주 초빙 큐레이터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제주문화연구소장,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대 강사, 한국민족미학회 회원, 이중섭미술관·김창렬미술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 《아름다운 제주석상 동자석》, 《제주의 무덤》, 《통사로 보는 제주 미술의 역사》,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 《제주 돌담》, 《제주 산담》 등 제주다움에 몰두했다.

가람과뫼, 416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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