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근씨 '제주 건설사' 발간...5.16도로 이전 명칭은 '한라산 횡단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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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횡단도로(5.16도로) 개통 전 모습. <출처=제주 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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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횡단도로(5.16도로) 개통 후 모습. <출처=제주 건설사>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한라산 횡단도로인 5.16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전인 일제강점기 지방도로 완공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181km 제주 일주도로 포장공사의 30%는 제주도민의 노력부담(강제동원?)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김중근 전 제주도 건설교통국장은 15일 '제주건설사(도로.교량.교통)'를 통해 제주의 옛 문헌과 자신이 근무하며 경험한 자료를 공개했다.

제주건설사에 따르면 현재 5.16도로로 불리는 제주시-서귀포시간 횡단도로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1991년 발행한 <남선의 보굴 제주도>에는 '제주성내와 서귀포까지 가는 통로는 한라산 동쪽 7부능선을 넘었다. 겨울철에는 눈이 쌓여 두절되곤 했다. 이 길은 약 44km 쯤 된다'고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전라남도 제주도청에서 발행한 <미개의 보고, 제주>에서 제주지역 도로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제주도의 도로는 암석이 노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돌멩이가 도처에 굴러다니고 있어 인마의 통행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라산 중턱을 횡단해서 서귀포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나와있다.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횡단도로는 1932년 임도 국비공사로 13km를 시공했고, 1935년까지 44km를 완공했다. 이후 1938년 12월1일 전라남도 고시 제216호로 지방도로 지정 고시됐다.

일제의 제주~서귀포 횡단도로는 제주의 임산물 확보와 2차 세계대전 말기 한라산을 중심으로 작전 항거지를 만들기 위해서 구축됐다.

하지만 1945년 해방 이후 4.3으로 한라산 입산 통제가 이뤄지면서 횡단도로는 8년 동안 방치돼 도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

횡단도로는 1957년부터 복구공사가 진행됐고,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 포장공사가 이뤄졌다.

1962년 3월24일 횡단도로 포장공사 기공식을 가졌고, 1966년 횡단도로 43km 포장공사가 완료됐다. 총 공사비는 당시 돈으로 1억2320만3000원이 소요됐다.

횡단도로의 개통으로 일주도로를 통해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90km를 3시간 30분 걸리던 것이 1시간 30분으로 2시간 단축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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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 횡단도로(5.16도로) 견월악 톨게이트. 1972년부터 1982년까지 5.16도로는 유료도로였다. <출처=제주 건설사>
개통까지 도로명은 '한라산 횡단도로'였다. 하지만 5.16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포장공사를 시작한 도로라는 의미에서 5.16도로(五一六道路)로 명명하고, 대통령 휘호를 받아서 2m 제주자연석 위에 '五一六道路'라고 음각해 산천단 도로변에 세웠다.

5.16도로 비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혁명 당시 50년만에 '훼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한라산 횡단도로는 제주에서 유일하게 유료도로 였다. 1972년 4월18일부터 1982년 12월31일까지 10년 동안 유료로 운영됐다.

당시 건설부로부터 유료로 승인을 받아 견월악 앞에 톨게이트를 설치해 대형버스 400원, 중형버스 250원, 소형승용차 250원, 화물차 150원, 소형화물차 100원을 징수했다.

181km 제주 일주도로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있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도로가 개설된 것은 1920년대로 해안 일주도로 개설이 효시라고 할 수 있다. 해안 일주도로는 새 길이라는 뜻에서 '신작로'나 큰 길이라는 뜻에서 '한길'이라고 불렀다.

1928년 11월에는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토시가 사설로 제주도 순환인력궤도차를 계획, 1차로 제주읍을 기점으로 동쪽으로 김녕, 서쪽으로 한림 협재까지 궤도를 설치한 후 1929년 8월26일부터 운행했다. 하지만 순환인력궤도는 2년만인 1931년 폐지됐다.

일주도로는 1938년 12월1일 한라산 횡단도로와 함께 전라남도 고시로 지방도로 인가됐고, 1952년 2급 국도 12호선으로 일주도로 181.09km가 국도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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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도로 공사에 동원된 제주도민들. <출처=제주 건설사>
일주도로 포장공사는 5.16 쿠데타 이후인 1967년부터 시작됐다. 1차로 제주시내권만 13.9km가 포장됐는데 총 공사비가 5363만원 소요됐다.

공사비 중 국고보조는 2000만원, 제주시비 999만원 등 55.6%가 예산으로 투입됐고, 나머지는 재일동포와 운수업자, 기업체, 접객업소, 공무원과 학생이 부담했다. 극장에서 모금도 이뤄졌다.

눈길을 모으는 점은 당시 예산 20%에 가까운 돈은 몽리(蒙利) 주민 노력부담이다. '몽리'란 말은 '이익을 입는다'는 뜻으로 도로가 포장되면 이익을 얻은 주민들이 노력봉사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주도로가 통과되는 마을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돈을 받지 않고 공사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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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문로터리 인근 도로확장 공사 모습. <출처=제주 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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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덕정 앞 도로 확장 공사 모습. <출처=제주 건설사>
181.09km 일주도로 포장은 1970년 11월3일 도로폭 4.0m로 완공됐다. 총 총사비는 9억8875만원이 투입됐다.

국고는 교부금 포함해서 4억1330만원이 투입됐고, 도비는 3억1856만원이 투입됐다. 주민 노력부담은 2억6085만원이다. 연 동원 인원이 52만2600명이었다. 대부분의 도민들이 일주도로 공사에 노력봉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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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로 도로 포장공사 모습. <출처=제주 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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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동문로가 포장되기 이전 모습. <출처=제주 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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