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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은평구청은 18일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김석범 문학상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이호철 문학상 수상 기념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 ‘친일 반공’ 이데올로기 정면 비판

400자 원고지 1만1000장, 총 12권 분량의 제주4.3 대하소설 《화산도》(보고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 시간을 거슬러 통일 한국을 꿈꾼 제주도민들의 염원을 이어받아, 친일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 쌓이고 쌓인 적폐, 적대를 청산하는 ‘일상 속에서의 혁명’이 소설 속에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 은평구청, 출판사 보고사는 18일 오후 2시 은평구 숲속극장에서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 - 역사의 정명(正名)과 평화를 향한 김석범 문학>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93) 선생이 은평구가 제정한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받으면서 마련된 행사다. 앞서 17일 열린 시상식에서 선생은 “4.3은 내외 침공자에 대한 정의의 방어 항쟁”이라고 규정하며 4.3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심포지엄은 김석범 선생의 기조강연 '화산도와 나-보편성으로 이르는 길'부터 주제 발표(고명철 광운대 교수, 김동현 문학평론가, 김계자 고려대 교수), 토론(이한정 상명대 교수, 윤송아 경희대 교수, 하상일 동의대 교수) 순으로 진행됐다.

# “나의 글은 반권력적인 외로운 글”

김석범 선생은 1957년 첫 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4.3을 주제로 한 글을 써왔다. 그는 자신의 문학이 일본어로 썼지만 일본 문학, 남한·북한 문학과는 또 다른 ‘디아스포라(Diaspora)’ 문학이라고 규정했다.  

김석범 선생은 “내 글은 틀에서 벗어난 존재이다. 한마디로 사면초가, 일본 문단에서도 그렇고, 조국의 남과 북과도 대립, 협곡당하는 오랜 세월이 계속됐다”며 “제주도 현지를 방문하지 못하면서 상상력을 주역으로 내세운 나의 언어론은 험하고 외로웠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작가로서의 자유와 정체성을 지키는 무기였으며, 외로움을 보편화하는 길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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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 선생. ⓒ제주의소리

또한 “소설은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며, 소여(所與)의 현실과 대치해 길항(拮抗)해야 한다. 문학은 레지스탕스 문학, 저항 문학으로서 정치적으로 바뀌는 것이 속성이다. 나는 그 길을 걸어 왔다”며 “김석범 문학은 아주 정치적이며 반권력, 반체제적인 문학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석범 선생은 “문학의 예술성이 무엇인가. 문학이 상실·정치적인 작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정치를 녹여서 문학의 자양분으로 섭취, 더욱 문학성이 강한 작품을 산출하는 것이다. 바로 내 작품의 집대성인 《화산도》는 그것의 구현물”이라며 “해방 공간의 역사, 은폐하고 왜곡된 역사, 5년간 신탁 통치를 폐기하고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과정이 올바른 역사였던가를 밝히는 4.3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불가분의 역사적 과업이다. 이 지나간 역사는 지금 산자인 우리들 속에 살아있다”고 강조했다.

# 《화산도》의 제주4.3, 2017년에 한국에 주는 의미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방대한 소설을 역사·사회·문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에 집중했다.

고명철 교수는 《화산도》 주인공 이방근이 자신의 밀항선에서 반혁명분자이자 친일협력자인 유달현을 처단하는 장면에 주목했다. 최근 부각되는 시대적 과제인 ‘적폐 청산’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는 역사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신열을 앓고 있다. 한국 현대사는 해방공간에서 친일협력에 대한 제대로운 역사의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동안 역사의 온갖 퇴행과 오욕 속에서 옳고 그름이 착종된 채 더 나아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기행적 역사의 현실을 감내했다”며 “김석범의 《1945년 여름》과 《화산도》가 지금 이곳에 던지는 주요한 문학적 전언이 있다면, 역사의 진전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미래를 향한 전망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 교수는 “《화산도》에서 탐구한 4.3 안팎을 이루는 혁명이 어느 특정 역사 시기에 국한된 채 역사의 기념물로 화석화 되서는 안된다. 지금, 이곳의 우리들에게 드리워진 온갖 분쟁과 차별, 그리고 분단의 적대 관계를 말끔히 청산함으로써 평화로운 일상을 살기 위한 삶의 혁명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서늘한 깨우침”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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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이 열린 은평구 숲속극장. 무대에 김석범 선생(가운데),주제발표자, 토론자들이 모여있다. ⓒ제주의소리

김동현 문학평론가는 한 발 더 나아가 《화산도》가 친일 반공주의를 내세운 이승만 정권 이후 대한민국 주류 세력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고 해석했다.

김 평론가는 “《화산도》의 서사를 해빙기의 혼란 과정에서 일어난 제주4.3 항쟁을 다룬 지역적이고 박제된 과거의 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라며 “소설에서 보여주는 4.3항쟁과 친일 반공 정권의 폭력적 진압 과정은 인민의 주권, 즉 인민의 선택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국가-주권의 모순을 정면으로 다룬다”고 분석했다.

김 평론가는 “소설의 문제 의식은 촛불혁명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물음과 결을 같이 하고 있다. 4.3항쟁이 70년이 지난 과거의 비극적 사건이 아닌 현재적 사건이 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며 “한국 문학에 뒤늦게 도착한 편지 《화산도》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이승만 정권과 친일 반공주의를 내세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근본에서부터 회의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김계자 교수는 “김석범은 '재일'을 남북을 초월해 확장된 위치에 놓고 있다. 재일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화산도》의 집필도 가능했으며, 또 남북통일의 단초도 마련할 수 있다”며 “남북분단은 식민지배에서 비롯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고착화됐기 때문에 재일이라는 한일 근현대사가 얽힌 삶 자체와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분단을 푸는 문제도 남과 북을 확장된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재일이라는 관점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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