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45) 바롯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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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롯국. ⓒ 김정숙

제주가 태생인 사람들은 대부분 국을 좋아한다. 육해공 고기는 물론 나물이나 해산물을 이용한 제주의 국은 정말 다양하다. 오래 밥을 먹어 온 사람들은 국물 같은 게 없으면 밥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별 찬 없는 보리밥을 내릴 때도, 밥으로는 채우지 못한 배를 채울 때도 국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국이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킨 것도 아니고 맛있었던 것도 아니다.

밥상 앞에서 숟가락소리만 내는 아이들에게는 국을 많이 먹어야 궁량이 생긴다며 다독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반갑지 않은 국 하나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가을서부터 겨울까지 맨날 상에 오르던 호박된장국이 나는 지금도 싫다.

8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성산읍 삼달리에서 점심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처음 보는 국이 나왔다. 미역과 오분자기, 보말살이 들어 있었다. 바롯국이라고 했다. 중산간마을 태생인 나로서는 처음 보는 국이었다.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거기다가 오분자기라니... 갓 지은 밥과 김치, 나물 한 가지 정도였는데 잊을 수 없는 밥상이었다.

그 후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국을 먹지 못했다. 오분자기가 그렇게 자취를 감춰버릴 줄은 몰랐다. 오분자기 대신 양식전복을 넣고 끓여보지만 그 때 그 맛은 아닌 것 같다. 설령 오분자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입맛이 바뀌어 지금 먹으면 맛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국을 끓일 때는 자잘한 전복을 껍질째 넣는다. 보말살을 넣고 육수가 우러나게 끓인 다음 전복과 생미역을 넣는다. 육지지방에서는 미역이 푹 퍼지도록 끓이는 반면 제주에서는 미역을 많이 넣고 살짝 끓인다. 국간장으로 간한다. 바다 내음이 흥건한 국이다. 그렇다고 두 그릇씩 먹는 건 참는 게 좋다.

제주사람들의 염분섭취량은 평균적으로 많다고 한다. 이는 짜게 먹는 입맛 때문이 아니라 국물을 많이 먹는 식문화에 기인한다. 그런 반면 연중 넘치는 신선채소는 그 염분량의 배출에도 기여했을 거라고 자위한다.

요즈음 가공식품 섭취로 국보다 더 많은 염분을 섭취하고 있다. 거기엔 나물이 적다. 국이 나트륨 섭취 주범이라는 말에 이제는 동의 할 수 없다. 맛있는 재료에 기대어 나물을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이 국을 먹는 것이다. 이래보나 저래보나 제주의 식문화는 참 바람직하다. 전국의 밥상이 체인으로, 편이식품으로 하나 되는 요즘 그 많던 제주의 국들은 어디로 간 걸까. 추억의 음식 하나쯤 품어 사는 맛도 괜찮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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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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