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30) 낯선 현대미술 이해 도와야...제주비엔날레는?

영어 ‘큐레이터(curator)’는 사전에 따르면 ‘어떤 것을 보살피고 감독하는 사람으로 특히 뮤지엄, 동물원 또는 전시장을 맡은 사람’이다. 이 사전적 정의를 오늘날 현실에 맞게 해석하면 ‘미술관/박물관/전시장 등에 소장되어 있거나 전시하고 있는 것들을 책임지고 감독 관리하고 관객에게 선보이며 인류의 유산과 문명의 의미와 가치를 확산하는 기획자이자 매개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학예사라는 직업군이나 예술감독, 총감독, 커미셔너라고 불리는 이들이 바로 큐레이터 군에 속한다. 요즘은 영화, 책, 음악 등 다른 분야로 확산되며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큐레이터의 시대를 만들고 있다. 

현대미술 또는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에 국한시켜 보면 큐레이터는  댄스, 영화,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되면서 빠르게 변하는 양상을 포착하고 시대에 필요한 예술의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인재를 일컫는다. 한때 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독립큐레이터’라고 불렀는데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의 비엔날레는 그들이 틀을 만들고 근사한 문화행사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큐레이터(미술사, 정치학, 사회학, 영상, 미술 등 그 전공도 다양하다)는 딱히 무슨 시험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나, 맡은 프로젝트의 개념과 목표를 글과 이미지로 풀어내어 전문가와 일반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상당한 인문학적 사고를 토대로 ‘창의적 큐레이팅’을 요하는데 그중에서도 예술가와 관객을 잇는 중개자이자, 예술작품과 전시기획 개념을 유통시키는 ‘매개자(mediator)’ 역할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권위가 확보된다. 

하랄드 제만 (Harald Szeemann, 1933-2005)은 창의적 전시기획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60년대 후반 베른(Bern)의 한 전시관에서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과 같은 전시를 열어 전시기획이 단순히 예술을 배열하거나, 시대적 분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넘나들면서 폭넓은 맥락에서 사고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이후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비서구권 미술현장에 초대되어 실험적 큐레이팅을 통해 문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역할을 맡던 독립큐레이터들은 제만의 기획방식을 추종한 인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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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오쿠이 엔위저가 기획한 광주비엔날레. 사진=양은희.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학예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학예사를 큐레이터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당시의 큐레이터들은 창의적 큐레이터라기보다는 예술행정 업무와 전시를 준비하는 인력이었다. 이런 큐레이터들은 여전히 우리나라 미술관과 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 행사에 외국인 큐레이터들이 활용되면서 이들의 ‘창의적 큐레이팅’이 국내 인력에게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7년 2회 광주비엔날레의 전시기획실장을 맡은 이영철을 시작으로 포스트콜로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외국의 이론을 소화하고 한국의 상황을 분석하여 예술로 풀어내는 동시에 예술과 예술가의 창의성을 수호하고 전시 주제를 담론화하고 설명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창의적 큐레이터라고 부를 만한 인재는 아직 많지 않다. 한국의 작가들이 글로벌 미술의 현장에 빈번히 보이는 반면에 한국의 큐레이터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소수만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창의적 큐레이팅은 고도의 지적, 매개능력을 요한다.   

오늘날 한국처럼 제국주의의 폐해 속에서 근대화를 거친 나라는 서구식 모델인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에게 많은 능력을 요한다. 제국주의적 획일화, 비균질적인 모더니즘의 수용, 그리고 탈식민화 이후의 문화적 정체성과 같은 문제를 면밀하게 읽어내야 할 뿐 아니라 세금으로 그러한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 왜 타당하며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일반인의 의구심과 소외된 작가들에게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비엔날레와 현대미술은 일부 엘리트에게는 흔한 이름이자 익숙한 분야이지만 지역의 시민에게는 어색한 이름이자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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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비엔날레에 전시된 쉴파 굽타의 <우리는 서로를 변화시킨다>. 사진=양은희.

제주도립미술관이 의욕적으로 준비한 제주비엔날레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가 개막한지 3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투어리즘’의 맥락에서 전시장의 작품을 이해할 만한 설명이나, 리플렛과 홈페이지의 내용이 부실하고 전시도록도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제행사라는데 영어번역이 없는 곳도 있다. 외국어 영상은 한국어 자막도 없다. 전시장의 완성도를 책임진 예술감독은 이런 현장을 두고 해외 비엔날레를 보러 출국했다고 한다. 매개자로서의 임무와 책임을 저버리는 태도, 전시와 전시 작품을 설명하지 못하는 역량, 행사계획과 인력활용이 소화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무리하게 추진한 판단력의 문제까지, 과연 ‘전문가’에게 비엔날레를 맡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총감독과 예술감독은 제발 지금이라도 전시장을 매일 돌면서 꼼꼼하게 국제행사 수준에 맞게 미비한 점을 고치시길 바란다.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이런 저런 오류를 고치고 미진한 부분을 업데이트해서 ‘이것이 비엔날레다’라고 보여주시길 바란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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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스페이스 D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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