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23) 김홍구 오름보전연구회 대표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탐라순담[耽羅巡談] 스물세 번째 순서는 ‘올라보니, 그곳이 오름’을 주제로 김홍구 오름보전연구회 대표가 이야기꾼으로 나섰다. 

지난 26일 오후 2시 제주 대정읍 안덕면 소재 원물오름에서 열린 이번 탐라순담은 제주참여환경연대의 휴먼라이브러리와 함께 진행됐다.

김 대표는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때 서울로 이주해 직장까지 얻었다. 제주지사로 파견 오면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를 따라 고내봉에 다니긴 했지만 스스로 찾아다니며 오름에 오르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다. 제주에 오름이 이토록 많은 줄 그는 미처 몰랐다. 

그 후로 오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지금처럼 안내 표지판도, 지도도 없을 때였다. 심지어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오름이 넘쳤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모은 정보를 가지고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오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이미 절반이 깎여나간 오름도 있고, 상업화돼버린 곳도 있다. 이대로라면 지도에서 없어질 오름도 상당수다. 제주의 자연이 개발되고 나면 도민들은 가장자리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의식’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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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구 오름보전연구회 대표. ⓒ제주의소리

박유라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팀장
: 언제부터 오름을 다니기 시작했나?

김홍구 오름보전연구회 대표
: 나는 애월이 고향이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께서 낭 끊으러(나무 베러) 다니는 걸 쫓아다니다 초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를 가서 대학교까지 나왔다. 컴퓨터 시스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제주공항에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고 해서 제주도의 지사로 발령받는 조건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야 제주에 와서 오름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간 곳은 다랑쉬오름이었다. 여름에 반바지 입고 올라갔다가 반죽음이었다. 날씨가 진짜 좋았다. 거기서 두 시간은 더 앉아있었다. 정상에 올라 보니 주변에 오름이 여럿이었다. 하나씩 가볼까? 욕심이 생겼다. 

현향미 제주참여환경연대 회원
: 계절마다 오름 분위기가 다 다른데, 다 가봤나?

김홍구
: 그게 소원인데 불가능한 일이었다. 368개를 네 번 곱하면 그 수도 만만치 않다. 한 번 도전해보려고 했더니 도저히 어려웠다. 하루에 두 군데씩 오름을 매일 다녀봤다. 17일 만에 체력이 고갈돼 뻗었다. 체력이 굉장히 좋아도 힘들었다. 

박유라
: 오름이 좋아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름에 대해서 지도를 만든다거나 하는 일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어쩌다 만들게 됐나?

김홍구
: 1/5000 지도를 실제로 가져다 붙이려고 하면 엄청나게 크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아니까 등고선, 표고 등을 기입해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다닐 용도였는데 우연히 노출이 됐다. 만들어놓고 확인하러 다니는데, 큰바리메오름에 올라갔다가 대여섯 명 무리를 만났다. 일행 중 기자가 있었는데 공개를 하자고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졸랐다. 그 신문에 기사가 나가고 나서, 다음날엔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제가 오름 다니는 일이 드러나지 않고 음지에 있었는데 양지에 드러나게 됐다.

박유라
: 오름 지도의 가치란 어떤 걸까? 비고, 표고, 둘레 등 그런 것들인가?

김홍구
: 그 당시만 해도 이런 지도가 거의 없었고, 동서남복을 잘 모를 때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이름도 몰랐던 때가 있었다. 한문이었던 오름 이름도 제주어로 어지간하면 바꿔서 표기했다. 이 지도가 귀해졌다. 
몇 번 글을 쓰면서도 표현했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태어나서 초가집에 살다가 죽으면 무덤에 묻힌다. 초가집의 선과 오름의 선, 무덤의 선이 일치한다. 제주도 사람은 오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물도 얻고, 나무도 얻고, 목장도 하면서 살았다. 지금은 오름을 개발의 상대로 본다.

박유라
: 제주도에 개발된 오름이 얼마나 있나? 

김홍구
: 개발이라기보다 상업화된 오름 중에는 산굼부리가 가장 유명하다. 그 이후로는 제주도에서 없어지는 오름들이 있다. 깎여나가고 개발되고 오름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나 그 주위를 개발시켜서 고사시키는 오름이 있다. 예전에 모르고 했던 곳이 대기고등학교가 분화구 안에 생긴 학교다. 북쪽 사면만 조금 남아있다.  운동장에서 나오는 샘물을 먹고 살았다. 대기고등학교에 남아있는 오름에 올라가면 눈 온 한라산이 기가 막히다. 법 시행 전이어서 하자는 없었다. 한라대학교 사거리 인근에 월산정수장 근처에 조그마한 방일이오름이 있었는데 길 내면서 절반이 깎여나갔다. 그 주위에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오름보다 아파트 높이가 더 높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10개는 없어질 것이다. 이런 건 시대상황이다. 개발이 되지 않을 땐 그런 이야기가 없는데 도시가 팽창해 나가면서 그런 욕구가 생긴다. 이주민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도시에 사는 게 아니라 오름 주변을 개발해서 산다. 환경이 좋은데 살면서, 자연환경을 보전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아이러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에게 쓰레기 대책을 물으면 ‘자기가 가져온 쓰레기 자기가 가져가야한다’고 말하지만, 해봤냐고 물어보면 ‘나는 안 해봤다’고 말한다. 나는 안하면서 남들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현향미 
: 양애철이라 요즘 오름 다니며 양애 따가는 사람들도 많다.

김홍구
: 양애만 따 가면 되는데 아예 절멸시켜버린다. 길이 나 있는데, 좁다고 불편해서 옆에다가 또 길을 내고, 더 넓게 길을 낸다. 사람이 조금만 절제할 수 있으면 오름이 보전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행정에선 이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오름에 관한 조례가 10가지 정도 되는데 보전보다는 개발에 치우쳐 있다. 환경보전과 개발이 마주치는 경계선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데, 10개 중 9개는 개발로 해석한다. 자본가나 돈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렇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다 일어나버린 다음에 알면 힘들다. 제주도민들 의식이 깨어있다면, 내가 편안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면, 개발되어서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서 살면 제주도사람들은 점점 나쁜 지역으로 밀려난다. 저푸른 초원에서 바다가 보이는 벼랑에 살고 싶은데 거기는 다 넘어가버리고 우리는 아파트에 갇혀 산다면. 그걸 누릴 사람이 도민들이 아니라면. 그걸 막으려면 의식이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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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향미
: 산에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다니기 불편하더라도 길이 잘 지켜져 있는데 예를 들면 절물 같은 곳에 오랜만에 가보면 데크가 깔려있기도 하고 오름에 잘 정비가 되어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다. 나는 그걸 반대하는 입장이고, 같이 간 사람들은 불편했는데 너무 좋다고 이야기한다. 

김홍구
: 길 내는 거 자체에 반대는 하지 않는다. 조건을 다는 건 무엇이냐면 길을 낼 때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자연을 위한 길을 만들라고 한다. 길은 넓게 내면 낼수록 보전하기 힘들다. 생태계가 바뀌어버린다. 넓어지면 사람들이 너 많이 가고, 많이 가면 더 넓어진다. 길은 좁아서 한 줄로 가야 하는데. 우리나라사람들은 횡으로 같이 간다. 산에 올라가면서 노래를 막 틀어버린다. 자연은 사람들에 의해 망가진다. 인간이 자연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이 오름도 한 달이면 없애버릴 수 있다. 반대로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행정적인 의지보다도 생각을 가지면 막을 수가 있다. 제주도민 70만 명 가까워지는데, 10만 명이 한 부서에 전화를 하면 진행할 수 있을까? 싸우라는 이야기도 안 한다. 전화 한 통이면 개발도 막을 수 있다. 댓글 하나, 전화 한통이면 된다. 찾아가거나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하거나, 혼자 뭔가를 하는 적극적인 방식도 있지만 작은 것이어도 모이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박유라 
: 관광객들이 이렇게 와버리게 되면, 오름이 망가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김홍구
: 이걸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쉽지 않다. 오름 탐방 사전 예약제 같은 걸 도입하는 것이다. 하루에 100명만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식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힘들긴 하겠지만 입장료도 생각해봐야 한다. 큰돈은 아니더라도. 오름총량제나 오름휴식년제를 2~3개에서 50~60개로 늘리고 사람들이 올라가서 좋은 오름이 있고 밖에서 봐서 아름다운 오름이 있다. 이걸 구분을 해야 한다. 주도면밀하게 작업을 해서, 이런 건 사실 행정에서 하긴 힘들고 전문가를 참여시켜서 해야 한다. 외국에 가려면 몇 년 전부터 예약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 자연이 귀하다는 인식을 관광객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제주도정은 모든 걸 다 개방하려고 한다. 비밀스러운 곳은 몇 군데 남겨놔야 제주도를 오고 싶어 한다. 다 까발려버리면 한 번 오고 나면 두 번 안 온다. 사라오름 개방할 때도 반대했었다. 여러 모로 신비스러운 곳이었는데, 지금 사라오름을 신비롭다고 여기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면 한순간에 망가져버린다. 1년에 100만 명 이상 산에 올라가버리면 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망가진다. 한라산이 1년에 130만 명 올라간다. 예약제를 하라고 몇 년 전부터 이야기해왔지만, 아직 시행되고 있지 않다. 
망가지기 전에 예방을 잘하면 1억이면 될 일을 10억을 써버리게 된다. 한라산이나 오름이나 마찬가지로 전문가를 투입시켜서 미리 조치를 할 수 있다면 적은 돈으로 환경을 구할 수 있는 일이 많다. 항상 망가지고 부서지고 없어지고 난 다음에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또 하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환경경찰제도를 도입하는 걸 바라고 있다. 환경전문직에게 사법권을 주는 것이다. 오름에서만 사법권을 주는 것이다. 외국은 이런 경우가 많다. 벌금도 내게 하고, 쇠고랑도 차게 한다. 그런 것 때문에 환경을 지키려고 한다. 환경경찰제도를 제주도는 빨리 도입을 해야 한다. 처음엔 전문가에게 맡겨서 10여 년 같이 일하고 나서 전문직이 될 때까지 전문가들이 돕는다. 자체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면 민간은 빠져나가서 자문 역할만 한다. 곶자왈은 곶자왈, 오름은 오름에서만, 한라산은 한라산에서만 제한적으로 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쓰레기 버리고 하는 것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3년이면 5%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박유라
: 요즘엔 어떨 때 오름에 올라가나? 

김홍구
: 매주 올라간다. 10월엔 주중에도 간다. 회사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 실패하고 나서 몇 년 고생했을 때 그 때 내게 위안을 준 게 오름이다. 오름은 내게는 부분이다. 나를 살려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루에 한 끼 먹기도 힘들 때에도 종일 오름에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답을 준다. 너는 내려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 인생의 스승이 되어준다. 내가 다시 재기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지금도 정신적으로 오름에 많이 의지한다. 오름이 변화되는 모습을 확인하고 기록하기 위해서 온다. 1년에 150군데를 다니니 3년이면 거의 체크한다.  

박유라
: 추천할 만한 오름이 있다면?

김홍구
: 추천을 해주지 않는다. 많이 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다만 이런 곳은 이야기해준다. 야생화가 많은 오름은 어디인가? 경치가 아름다운 곳은 어디인가? 한 군데만 소개시켜주지 않고 열댓 군데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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