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46) 지름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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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름떡. ⓒ 김정숙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추석이 지났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말라던 것은 햇과일을 비롯한 음식만은 아닐 터. 조상을 뵙고 그 아래로 가지를 친 혈육들과의 정도 포함되는 거다.

넘쳐도 탈, 모자라도 탈인 게 음식이고 사랑이다. 갈수록 추석의 바람과는 달리 물질은 넘치고 정은 날로 여위는 느낌이다. 친척집을 돌며 차례를 지내고 나서 먹는 쌀밥과 떡은 참 맛있었다. 어르신들께서는 당신 몫의 떡이나 고기를 아이들에게 넘겨주셨다. 이를 제주에서는 ‘반 받아주신다’고 하는데 그때 할아버지나 삼촌의 내미는 손과 눈은 정말 따뜻했다. 떡이며 고기도 고마우셨지만 그 고마움을 넘어 얼마나 뿌듯한 사랑으로 다가오던지.

매일 먹는 쌀밥, 흔해져서 조리법을 바꾸어 가며 먹는 고기, 각양각색의 전과 생선, 떡에 이르기까지 명절이 아니어도 넘친다. 차례를 지내다 보면 음식은 먹는 타이밍을 놓쳐 오히려 맛을 떨어뜨리는 것도 있으니 추석을 기다리는 건 음식이 아니고 만남이어야 옳다. 먹는 타이밍을 운운 하는 자체가 참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 중에 제일 뒤로 밀리는 게 떡일 듯싶다. 아끼고 아끼다가 덥석 먹지도 못하게 딱딱 마른 떡도 맛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떡에는 의미가 있다. 하늘과 땅, 해와 달, 그리고 별이다. 시루떡 위에 네모난 인절미를 깔고 그 위에 동그란 떡과 반달모양의 절변, 솔변을 올린다. 맨 위에는 웃찍이라고 하는 별모양의 지름떡을 올린다. 여기에 송편이나 다른 떡이 더 얹어지기도 하는데 맨 윗자리는 지름떡이다.

제사상에서 떡은 우주인 것이다. 쌀이나 메밀가루를 익반죽하여 납작하게 민 다음 네모 ,동그라미,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찌거나 삶는다. 속도 넣지 않고 고물도 묻히지 않는다. 쌀 맛, 메밀 맛이 전부인 기본 떡이다. 더 정성을 들여 송편처럼 소를 넣은 떡이나 빵 종류를 더 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기본 외로 하는 것이다. 재료가 풍부해지고 집안마다 개성이 보태지면서 음식은 물론 방식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어서 머잖아 이런 이야기는 사라질 것도 같다.

언제 부터인지 이 우주를 의미하던 떡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것이다. 냉동실을 들락거리다가 굽거나 쪄서 꿀을 바르기도 하고 맛김에 싸서 먹기도 하고 떡볶이를 만들기도 하면서 먹는 공을 들이게 된다.

그런데 인기 있는 떡이 하나 있다. 별떡이다. 물에 불린 찹쌀을 가루 내어 익반죽한다. 4~5밀리 두께로 밀어 동그랗게 톱니모양으로 만들어진 틀로 찍어 낸다. 기름을 두른 팬에서 지져 익힌다. 그래서 ‘지름떡’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 같다. 찹쌀이 익으면서 퍼지지 않도록 한 쪽 방향을 다 익힌 다음 뒤집어 익힌다. 쟁반에 널어 식히고 설탕을 살살 뿌려 그릇에 담는다. 노릇하면서 바삭 쫀쫀한 식감과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딱 현대적 입맛이다. 아이 어른 다 좋아한다. 말랑할 때 냉동 해 놓으면 간식으로 꺼내 먹어도 좋다. 이 또한 요즘사람들의 취향저격이다.

변하지 않는 우주가 있어, 그런 조상이 있어 우리는 살아간다. 아침을 맞고 잠을 자고, 다시 새로운 만남을 기다린다. 오늘은 하늘을 쪄 먹고 며칠 뒤엔 땅을 구워 꿀 찍어 먹고 다음 주엔 해와 달을 먹으려 한다.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생각나는 밤엔 별을 보며 지름떡을 먹겠다. 어디서든 반짝이고픈 어린 것들과 그 별을 받치고 기꺼이 땅이 되고 하늘이 되어준 조상을 생각하며.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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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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