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평화봉사단(단장 강상철)이 지난 달 ‘2017 국제개발협력사업’ 일환으로 아프리카의 진주 우간다(Uganda)에서 ‘평화의 씨앗 나누기’ 봉사활동을 벌였다. 지난 8월 20일부터 8월 30일까지 10박 11일에 걸쳐 쿠미(Kumi) 은예로(Nyero) 지역에서 12명 단원이 ‘쿠미와 제주, 하나 되는 평화 캠프’라는 주제로 활동했다. 제주특별자치도 평화대외협력과 주최, 제주평화봉사단 주관으로 이루어진 이번 사업은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t, ODA) 사업의 일환으로 전쟁과 재난․재해 발생국가,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제주 평화의 섬 이미지를 제고하고 지구촌 평화 증진을 위한 실천사업이다. 우간다 쿠미에 ODA 사업을 통해 새 희망을 심고 평화 증진 활동에 함께 참여한 양영길 시인의 글을 10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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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간다 쿠미 지역의 전통 초가집인 ‘에또고이니야’와 멀구슬나무. 제주의 옛 초가집과 그 마당의 멀구슬 나무 풍경과 닮았다. / 사진 = 양영길 시인 ⓒ제주의소리

[양영길 시인의 우간다 이야기](3) 평화 캠프는 긍정적 에너지의 원천 

베이스캠프는 조이 팀장이 운영하고 있는 ‘HAPPY HOME SCHOOL’에 진을 쳤다. 해피홈스쿨에서는 CDP(Child Development Programme)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쿠미 지역에 10년 동안 지원하기로 하여 올 연말 종료된다고 했다. 대부분 종료를 예고하지 않고 시간이 되면 철수했는데, 조이는 자립할 마음의 준비도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생각하여 종료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했다. 종료 후 2년 동안 모니터링을 통해 자립 역량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현지 스탭진들과 지역 주민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단원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CDP 사업이 종료되면 내년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다는 이야기였다. 

쿠미는 우리의 행정구조로 보면 군(郡)과 같은 규모다. 쿠미 활동 이틀째인 8월 23일, 군청에 해당하는 쿠미의 행정관청과 보건소를 방문했다. 맨 처음 찾은 곳은 종합청사처럼 되어 있는 쿠미 군청의 교육장실. 존 마이클(John Michael) 교육장을 만나 쿠미 지역사회 문제와 교육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쿠미 지역에는 6만3000여 명의 학생이 있는데 초등학교 진학률이 매우 저조하며 졸업도 20살이 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또 부모가 자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조혼, 매매춘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평화 캠프가 긍정적 에너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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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미의 군수실을 방문하여 제주 초가 모형을 선물했다. 좌로부터 쿠미 교육장, 쿠미군수, 강상철 단장, 쿠미보건소장 / 사진 = 양영길 시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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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미 보건소장과 함께. 오른쪽부터 조이 팀장, 강상철 단장, 보건소장, 이지한 단원, 보건소 현지 직원 2명, 양영길 시인.  / 사진 = 양영길 시인 ⓒ제주의소리

우리 일행은 ‘Chief administrative officer’이라고 적힌 쿠미의 행정최고 책임자 사무실도 방문했다. 우리의 행정구조로 보면 군수와 면담한 것이다. 쿠미 군수는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교육, 의료, 농업, 관광, 건축 등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지속적인 도움을 통해 쿠미가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어 한국이 일구어낸 기적과 같은 발전을 이루고 싶다고도 했다. 강상철 단장은 자신들의 문제를 잘 인지하는 것은 자립기반 마련을 위한 역량이 될 것이라고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응접탁자 위에는 유니세프의 아프리카 자료가 우리 일행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보건소를 방문했는데 군수실에서 소개했던 보건환경국장 조셉(Joseph)이 소장을 겸하고 있었다. 조셉은 보건소의 진료실과 입원실 등을 안내하고 설명하면서, 우간다 보건과 의료 시설이 많이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한 현대화와 가족계획 필요성을 실감한다고도 했다. 인구 증가율이 매우 높다라면서 가족계획은 한국 모델이 아닌 제3의 모델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조셉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우리 일행을 더 환대해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 포스코와 의료시설을 방문하고 한국 농업도 배우고 왔다고 했다. 보건환경국장임에도 농업에 관한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한국의 관수 농사를 보고 관개시설 필요성을 실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특히 쿠미 지역은 관수 농사가 어려운 지역이어서 종자 개량, 농기계 도입, 저장시설 등 현대화 사업이 필요한데도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의식 개혁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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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데미 단원들과 평화봉사단이 흥겹게
합동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 양영길 시인 ⓒ제주의소리

23일 오후. 해피홈스쿨(베이스캠프) 교실에서 행사 때 공연할 드라마 연습이 있었다. 공연팀 ‘오크데미’ 단원 15명이 방문하여 ‘우간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연극과 공연을 함께 연습을 했다. 오크데미 단원들은 교육 대신 결혼을 일찍 선택하는 여자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아동 성매매 등 ‘조혼 문제’, ‘매매춘 문제’, ‘가정 폭력’ 등의 여성 문제와 ‘아동 폭력’, ‘어린이 인권 문제’ 등의 아동 청소년 문제, 그리고 보건 의료시설의 열악함 등을 우간다 스토리로 엮어 영화나 노래로 만들어 보급하기도 하고 드라마를 만들어 대중 집회에서 공연을 하는 등 지역사회 캠페인 활동으로 주민 계몽에 앞장서고 있었다. 

공연 연습에 등장한 ‘카얌바’라는 악기는 나무의 속을 파내고 그 겉에 쇠 젓가락 같은 것을 철사로 엮어 만들었는데, 소리의 울림이 강하고 파장도 컸다. 특히 “아~ 야 야 야 야 야~ 리 리~”하는 아프리카 여성 특유의 입소리는 아주 경쾌하고 높아 열정의 에너지를 교실 가득 채워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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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데미 단원들의 손수 만든 전통악기 / 사진 = 양영길 시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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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의 ODA 사업으로 교실 2실을 신축한 아포로우콜 기념 중등학교 전경 / 사진 = 양영길 시인 ⓒ제주의소리

희망과 평화를 나누기 위한 ODA 사업

희망과 평화를 나누기 위한 제주도 ODA 사업으로 2개 교실과 급식소를 짓고 있는 아포루오콜 기념 중등학교(DR. APORU-OKOL MEMOREAL SECONDARY SCHOOL)를 찾았다. 찾아가는 길은 험하고 멀었다. 도로는 매우 비좁아 자전거 하나도 마주하면 피할 공간이 없었으며, 물이 고여 움푹 팬 곳을 여러 차례 지나야 했다. 베이스캠프에서 한 시간은 더 걸려 찾아간 곳에는 근처에서는 보기 드물게 커다란 바위가 학교를 지켜주고 있었다. 원숭이가 사는 동네인지 바위 꼭대기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낯선 방문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단원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는 때를 기다려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단원들은 아이들과 노는데 열중이었고 단장과 실무팀장은 공사 상황을 살펴보고 설명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운동장 한쪽에 물통이 있었는데, 물통 위에 라디오가 ‘솔라’ 충전을 받으면서 혼자 놀고 있었다. 

교실과 급식소 공사 마무리가 한창이었는데, 우리 단원들이 오는 때를 기다려 페인트칠은 남겨놓고 있었다. 교실 외벽과 내부는 변태보, 류태우, 고향심, 문지숙, 김은아 단원이 앞장서서 페인트칠을 했다. 오른쪽 외벽에는 강상철, 오주영, 이지한, 강예솔, 강도휘 단원이 세계지도를 그렸다. 한반도는 하나의 색으로 칠하면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았는데, 색상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짙은 초록으로 칠했다. 세계지도 벽화를 그리면서 이 학교 교실에서 앞으로 우간다의 미래를 이끌고 갈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고 더불어 제주와 우간다를 연결하는 연대의 주체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제주도를 유난히 크게 그렸다. 

쿠미 지역의 서민들은 거의 초가집이었다. 초가집은 ‘에또고이니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초가집 마당가에는 제주에서도 자라고 있는 멀구슬나무가 있었다. 집집마다 한두 그루씩 키우고 있는 멀구슬나무는 자루가 긴 먼지떨이가 되어 하늘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 같았다. 필자가 2박3일 홈스테이한 옹고디아네 마당에도 있었고, 지나다니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집마다 마당 한쪽에 긴 모가지를 하고 우리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듯이 반겨 주기도 했다. 이 곳 사람들이 ‘데라’라고 하는 멀구슬나무는 속성으로 곧게 자라 기둥과 서까래가 없는 에또고이니야를 지을 때 천정을 굳게 받쳐주고 있었다. 내가 2박3일 묵었던 옹고디아네 에또고이니야도 침대에 누워서 보면 멀구슬나무 긴 가지를 많이 엮어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초가집은 오두막이라는 영어의 ‘hut’라는 말보다 열두 살 아캄이 말해준 ‘에또고이니야’가 더 정겨웠다. 


시(詩)

우간다에 멀구슬나무가 있었다  / 양영길

내 고향 제주도 마을 어귀의 멀구슬나무가
아프리카 쿠미에도 있었다.

집집마다 한두 그루씩 키우고 있는 멀구슬나무는 
사이몬네 마당에도 옹고디아네 마당에도 
은예로보건소 한쪽에도 
흙먼지 날리는 도로가에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데라’라고 하는 멀구슬나무
내가 어릴 적 긴 작대기로 칼싸움 하던 추억의 시간이
제주 초가집과 올레를 배경으로 지나갔다.

길게 자란 것들은 
자루가 긴 먼지털이처럼 흔들리며 
세상 먼지를 털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우간다 아이들이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를 굴리며
손을 흔드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적 제주에서는
딸을 나면 멀구슬나무 한 그루 심었다가 
시집갈 때 궤짝 하나 만들어 주었다던데
쿠미의 옹고디아네 데라는 
기둥도 서까래도 없는 에또고이니야
천정을 굳게 굳게 받쳐주고 있었다. 

멀리 멀구슬나무 데라 위로 
무지개 에딸루까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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