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31) 런던에서 배우는 ‘책읽는 제주’와 도서관의 미래

독서의 계절 가을. 식상할 정도로 자주 듣는 표현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책을 많이 읽는 달은 1월과 8월이라고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의 ‘도서관 빅데이터 플랫폼’이 2016년 도서 대출량을 분석한 결과이다. 가을에 해당하는 9월부터 11월까지는 도서 대출량이 가장 적은 시기라고 한다. ‘독서의 계절 가을’은 이제 출판회사나 언론의 마케팅 구호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왜 글을 쓰고 왜 읽는가? 프랑스의 한 문인은 글을 쓰는 이유가 ‘문명이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이 거창하긴 하지만 확실히 문자 문명은 우리가 가꾸어 나갈 중요한 자산이다. 책을 읽는 일은 지식을 늘리고 넓은 세상을 아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가진 유산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한 후 바쁘게 살다보면 책을 읽는 일이 점차 줄어든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답게 편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은 사치일 정도가 되었다. 통계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평균 하루에 6분 독서를 하는데 세계 192개국 중 166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인 4명중 1명은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에 책을 대체한 것들이 호기심을 채워준다. 신문은 바쁜 이들을 위해 신간소개를 넘어 요약과 해석을 제공한다. 지식을 해석해주는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이 큰 인기를 누린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이다. 

시티리드 런던의 홍보배너, 출처 시티리드 런던 홈페이지.jpg
▲ 시티리드 런던의 홍보배너.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영국의 런던은 독서를 통해 시민의 문화수준을 유지하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어서 시선을 끈다. 런던은 우리에 비해 독서량이 많기는 하지만 과거보다 줄어드는 현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후원으로 런던의 도서관들이 주도하는 독서축제 <시티리드 런던(Cityread London)>은 최근 5년 동안 런던의 독서문화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2012년 찰스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시작된 이 운동은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시작으로 매년 4월에 1권을 선정하여 시민에게 읽도록 권장한다. 그리고 그 책을 출발점으로 삼아 도서관, 서점, 뮤지엄 등 런던의 여러 문화 공간에서 1개월간 관련 이벤트를 진행한다. 

2017년 시티리드 런던은 패리스(S.J. Parris)의 소설 《예언》(2011)을 선정하고 1000권의 책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로 시작되었다. 이 소설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활약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비밀요원 브루노가 음모와 살인을 파헤치는 이야기라는 데 착안하여 행사 개막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분위기로 진행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인트 존스 교회를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은 저자 패리스가 직접 진행했고, 투어 후에 책 사인회와 질의응답을 통해 튜더왕조 시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한 도서관에서는 튜더왕조에 관련된 책, 지도, 판화 등을 전시하는가 하면, 다른 도서관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자수문화 전문가를 초대해서 당시의 자수문화에 대해 강연했으며, 당시의 종교혁명, 런던의 역사에 관련된 강의 등이 이어졌다. 이외에도 당시의 댄스를 배우는 워크숍, 게임, 전통과자를 맛볼 수 있는 가족단위 프로그램, 무기와 갑옷전시도 선보였다. 책 1권을 두고 런던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도시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축제가 가능한 것은 왕궁부터 도서관, 교회, 뮤지엄 등이 모두 시내에 있기 때문이다. 런던의 역사와 도시의 성장이 맥을 같이하면서 도서관도 시민이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들어서서 가능한 축제이다. 

아쉽게도 제주의 도서관은 멀리 있다. 한라도서관이나 우당도서관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고 그나마 바쁜 시간대에는 버스타기도 어렵다. 도시재생이 화두인 요즈음 원도심에 도서관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디지털도서관이나 ‘작은 도서관’이라도 좋다. 경찰서 옆도 좋고, 시장 근처도 좋다. 독서의 힘을 퍼트리는 문화공간이 절실하다. 

신례 예촌작은도서관에서 열린 최숙희 작가의 전시, 출처 작은도서관 통합홈페이지.jpg
▲ 신례 예촌작은도서관에서 열린 최숙희 작가의 전시.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최근에 ‘작은 도서관’이 인기를 끌면서 동네와 마을 곳곳에 생기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올 여름 제주의 작은 도서관협회가 도내의 40개 작은 도서관을 연결하여 통합홈페이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http://smlib.jeju.kr ).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도서 검색이 가능하고 덩달아 대출도 용이해진 것이다. 

다음 단계는 이런 작은 도서관과 큰 도서관이 함께 시민의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런던의 독서축제가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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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스페이스 D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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