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25) 제주청년네트워크 ①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결혼해도 괜찮을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탐라순담[耽羅巡談] 스물다섯 번째 순서는 제주 청년들의 ‘결혼’이 주제로 다뤄졌다.

지난 10일 오후 7시 제주 청년다락에서 제주청년네트워크의 진행으로 ‘결혼해도/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주제로 탐라순담이 열렸다. 이날 탐라순담에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세간에서 결혼적령기라 일컬어지는 청년들이 둘러앉았다.  

‘결혼을 해야만 할까?’,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식은 왜 하는 것일까?’, ‘출산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내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등의 물음에 다양한 답변이 오고갔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으로 새로 엮이는 가족 관계에서 각 구성원은 얼마나 평등한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히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소외당하지 않고 출산이나 육아에 대한 보장이 이뤄진다면 어떨까? 

지난해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남녀의 초혼 연령은 남성은 32.6세, 여성은 30세로 처음으로 남녀 모두 30대에 진입했다. 게다가 최근엔 결혼이 통과의례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주지역에선 결혼이 부모로부터의 독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별다른 사유가 없다면 결혼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따로 떼어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녀에게 결혼하라는 채근 대신 나가 살라고 독촉 아닌 독촉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더 좁게는 제주에서도 결혼은 점차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과도기에 놓였지만 결혼은 곧 출산으로 이어지는 인식은 여전하다. 계획에 따라 임신을 늦추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할 정도다. 

청년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주저하는 이유는 결혼식을 치르는데 들어가는 과도한 비용이나 주택 등의 현실적인 여건도 있지만 그에 배우고 익힐 기회가 부족한데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도 크다. 부부 학교, 부모 학교 등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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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순담 스물다섯 번째 순서는 제주청년네트워크가 '결혼해도/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주제로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 오늘 진행을 맡았다. 이 주제를 고른 이유는 세간에서 결혼적령기라고 칭하는 20대의 끝자락에서 결혼을 한 친구, 결혼을 할 친구, 결혼을 하지 않을 친구 등 갈래가 나뉘는 것을 보면서 꼭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스스로 결혼식을 코앞에 둔 입장이기도 하다.
몇 해 전에 국내에 소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만화의 질문 네 가지를 가져왔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이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주제가 주제이니,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박건도
: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도 하고 제주청년네트워크에서 활동도 하고 내년에는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는 사회초년생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연애는 하고 있다. 여자친구가 뉴질랜드에 있다. 

이금재
: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제주청년네트워크의 운영위원이다. 연애는 하고 있고 결혼은 아직 안 했다. 

정화빈
: 여자친구는 없다. 결혼하지 않았다.

강나루
: 곧 결혼하는 친구를 뒀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서 왔다. 연애는 하고 있지만 결혼은 잘 모르는 상황이다.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건 결혼이 필수적인 코스이고 내 남은 생애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제주도에 돌아와서 비혼이거나 아직 40대 후반이지만 멋지게 사는 분들과 만나면서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오연주
: 이 중에서 유일하게 기혼자이다. 결혼한 지 3년차이고, 16개월 된 건강하고 튼튼한 아이를 둔 엄마이다. 결혼 전에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유서영
: 제주청년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애는 6년차이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김태연
: 유일한 기혼자가 첫 번째 질문인 ‘결혼을 해야만 할까?’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오연주
: 결혼한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결혼을 하고 나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믿게 됐다. 연애를 하면서 얻는 감정이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한 것이라면 결혼은 그 이상의 감정을 얻을 수 있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에게 받는 행복보다 그 이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삶에 동지가 있다는 게 좋다. 나는 무엇보다 배우자의 조건이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받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결혼에 대한 환상보다는 결혼을 해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생각이 있다면 결혼은 무조건 일찍 하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추천하지 않겠다. 

박건도
: 결혼한 사람들 가운데 저렇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비율적으로 적을 것 같다.

유서영
: 성비도 있는 것 같다. TV를 보면 그런 게 유머거리이다. ‘와이프가 여행 가니 나는 자유다’이런 말들이 하나의 코드로 작용하는 게 우리 세대에 깔려있지 않나.

박건도
: 주변을 보면 남성들에겐 아내, 동반자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고 여성들에게는 시댁이나 다른 가족들의 문화에서 차별을 받는 상황이 오니 그게 또 힘든 것 같다.

이금재
: 오늘 메신저가 뜨겁지 않았나? 명절 연휴가 끝나서 그런지 친구들과 결혼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유부남들은 ‘경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결혼 전까지 돈을 모으지 못하다가 경제권 빼앗긴 이후로 돈을 모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하라고 권하더라. 나도 20여 년 동안 부모와 함께 살다 떨어져서 산 지 10여 년 동안은 경제에 대한 관념이 없다시피 살았다. 이제는 결혼을 해서 서로가 서로를 모니터링하다 보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서영
: 두 사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제테크를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못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꼭 남편과 아내여서가 아니라 둘 중에 잘하는 사람이 경제를 맡게 돼 있으니 그럴 수 있다. 

오연주
: 결혼한다고 꼭 돈을 모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돈 쓸 일도 많다. 돈을 모으기가 힘들기도 하다. 

김태연
: 멋모르는 시절, 사회초년생일 때는 결혼이 회사를 그만 둘 수 있는 방편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환상 혹은 기대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 생각. 이제는 당치 않다. 

강나루
: 만약 그런 경우에는 내가 돈을 벌지 않더라도 그에 상당하는 정신적인 노동을 수반하고 있다. 나는 그래서 사회생활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입이 비슷하거나 남자가 덜 버는 경우에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꾸준히 존경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의 가치를 높이면 그거에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공부하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었다.

김태연
: 중학교, 고등학교 때 교실에 그런 급훈이 걸려 있지 않았나? 1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아내 얼굴이 바뀐다. 

강나루
: 제주도는 감귤을 따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뭐라도 하면서 가정 경제를 지탱할 수 있지 않나? 배우자가 충분히 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경제적인 책임에 소홀해지는 상황이 오면 내가 상대방을 존경하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많았다.

유서영
: 가치관의 문제인 거 같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모 대학교 대나무숲에 글이 남겨져 있다. 여성인 것 같은데 ‘나는 잘 살고 월급도 제법 받고 나의 배우자가 집안일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게 비정상인가?’라는 글에 남성들이 댓글을 막 달았다. ‘나는 빨래를 잘한다’, ‘뭐든지 잘할 수 있다’ 그 댓글을 보면서 가치관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농담이고 유머이지만 하나의 현상처럼 보였다. 내가 집에 있다고 해서 무능력하거나 무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그걸 유머 코드로 쓰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나루
: 나는 결혼이 인생의 목표였다. 제주여민회에서 하는 페미니즘 강의를 들어 보니, 다르게 살 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예전엔 결혼을 잘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의 상당부분이 불행해질거라고 생각했다. 착하고 바른 사람이 되어야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경제적으로 갖춰야 충분히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직도 그런 마음은 남아있다.

정화빈
: 비용이 드는 결혼은 안 하고 싶다. 사랑보다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거 아닌가. 결혼이 전제와는 많이 떨어져 있는 의미가 있다. 그런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부모의 과업을 이뤄 드려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있다. 

유서영
: 자식을 결혼시키지 못한 것이 조선시대 3대 불효 중 하나였다. 아직도 어른들에게는 그런 게 남아있다.

정화빈
: 하나 걸리는 게 장남이다 보니 그렇다. 비용이 드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둘이 좋아서 하는 결혼에 복잡한 정치가 얽혀있다. 썩어문드러졌다. 요즘 트렌드가 혼인신고를 늦게 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게 사람들 앞에서 증인이 되어달라는 건데, 헤어질 걸 감안하고 결혼식을 한다는 건 창피할 일이 아닌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서영
: 대출을 받으려면 신혼부부여서 유리한 게 있고, 혼자여서 유리한 게 있다 그러다 보면 혼인신고가 무의미해진다. 법적으로 어떤 의미라고 하는 게 미약해 보인다.

오연주
: 주변을 보니 혼인신고는 아이 출생 신고할 때, 집을 살 때 많이 한다. 

정화빈
: 지금 많이 하는, 현대적인 결혼식은 안 하고 싶다.

강나루
: 그렇다면 화빈은 결혼식을 떠나서 결혼은 O인가 X인가?

정화빈
: 하긴 해야 한다. 증인은 필요하다. 연애와 결혼한다고 선언하는 건 다르니까. 

박건도
: 결혼이라는 단어 하나에 많은 것들이 포함되고 있는데 O, X로 가르기는 힘들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동반자로 가는 요소가 있을 테고, 안정감을 취하기 위한 선택이 될 수도 있고 그 밖에 가족과 가족이 만나서 새로운 문화 안에서 구조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그렇기에 결혼을 하고 안 하고보다는 결혼을 하게 되면 얼마나 그 구성원 안에서 평등한 관계와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지내면서 대화도 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건 결혼이 아니어도 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 상황이 그렇지가 않다. 평등하지 않다. 이번 연휴에도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유서영
: 이 질문으로만 놓고 보자면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 결혼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논해보자면 법적인 것이다. 대출을 받을 수 없고, 출생신고를 할 수 없고, 부모가 괘씸해할 것이다. 의무를 지지 않겠냐는 것이냐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유럽에선 사실혼을 인정한다. 제도에 들어가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괜찮을 거 같다. 
제주사회에서 대부분의 20대, 30대 청년들은 부모와 같이 산다. 결혼은 결혼 그 자체로의 문제도 있지만 독립의 문제도 있다. 웬만하면 생활 반경이 2~3시간 가야하지 않은 이상 살던 집에 계속 살고 있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서 자취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게 독립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나도 부모와 많이 부딪치게 된다. 아빠가 집에서 결혼을 하든, 자취를 하든지 키워줄 수 없다며 나가라고 한다. 독립을 하기를 원하는 말이기보다는 결혼을 하라는 말을 에둘러서 하는 것 같다. 다른 이유 때문에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 등 떠밀려서 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에 대한 욕구가 있을 때 하고 싶다. 최근엔 등 떠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정도의 마인드가 생기고 있다. 

정화빈
: 결혼을 왜 할까? 왜 이어져 오고 있을까?

유서영
: 해야 하니깐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집안에서의 무언의, 혹은 유언의 압박들을 받으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결혼을 왜 했느냐고. 엄마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통과의례인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해서 고등학교를 가야하는 것처럼. 남자친구가 생겼고 적령기가 됐으니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해야 할까?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질문인 것 같다. 그 전엔 의무였다면 선택의 문제로 전환되는 것 같다. 자발적인 분위기는 아직 아니기에 고민을 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결혼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강나루
: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항상 자발적이었다. 결혼하면 안정적일 줄 알았다. 가정을 이루게 되면 부모도 나를 지금도 주체이지만 더 주체로 다른 가정을 일군 주체로 대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게 누적돼온 약속의 집합인 것 같다. 상처받는 것들을 방지하고자 이런 저런 약속을 하다가 공통적으로 합의가 많이 되고 효과적인 것들이 사회적 합의가 된 게 아닐까. 지키는 것 안에서 보호되는 감정이 있을 테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나쁜 일이라고 정의내린 걸 했을 때 나만 상처받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부모도 아무리 자신의 딸이 나이가 많아도 외박을 마구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결혼을 하면 그런 초조하거나 불안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인정해주는 그런 사인을 주는 것 같다. 

정화빈
: 결혼하게 되면 주체로서 인정받는 느낌을 받을까? 

유서영
: 예전부터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고도 했다. 누구의 며느리이자 누구의 어머니, 아버지이기도 하니까.

정화빈
: 안정감이라고 표현했는데, 법적으로 구속된 상태가 되면 힘들지 않을까? 결혼하게 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나라에서 부부를 위해서, 출산하게 되면 2~3년 동안 외벌이가 되는데 아이가 생기고 난 다음부터는 다 클 때까지는 지켜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될 테고 이 불안감도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고민은 사랑해서 결혼하면 사랑이 또 오면 어떻게 할까? 결혼해도 사랑이 또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고 주변에서도 많이 봤다. 더 격동일 것 같다. 안정감보다는 오히려 억압되지 않을까? 

유서영
: 화빈은 결혼은 억압이고 이미 정해져버리면 그 범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는 거 같고, 나루는 그 밖으로 넘어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정감이 될 수 도 있다. 관점의 차이인 것 같다. 

이금재
: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면 결혼을 못 할 것 같다. (안 해봤지만) 이렇게 결혼을 해야만 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 질문을 스스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었고, 당연히 언젠간 할 거라고 생각을 해왔다. 결혼을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면 못 할 것 같다. 사촌 형이 스무 살에 결혼을 했다. 큰 아이가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다. 그걸 보면서 결혼을 해야겠다. 더 일찍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해야 한다, 최대한 해야만 한다. 이 고민은 해본 적이 없다. 

박건도
: 나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것 같다.

강나루
: ‘나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라는 표현이 내 인생을 이롭게 할 거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던 것 아닌가? 결혼을 안 하면 이런 게 좋아? 결혼을 하는 게 더 좋아보였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데서 주는 행복과 한사람과 깊어지는데서 느끼는 행복은 비교해봤을 때 더 좋을 것인지는 상상에선 다양한 사람들과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하지? 지금 나이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 사람과 만나면서 갖는 관계가 더 크다. 결혼이 안정감을 주는 장치일 수 있다. 아기를 낳으면 그걸 통해서 얻는 기쁨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지면 힘들 것 같다. 아이가 주는 행복을 보거나 느낀다면 더 마음이 가지 않을까? 

유서영
: 힘들겠지만 우리는 아직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지레짐작하는 게 어렵다.

오연주
: 화빈을 보니 안정된 삶, 놓쳐야 할 것에 대한 미련이 많아 보인다. 축구를 하러 가지 않아도 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육아는 매우 힘들다. 낮잠을 잘 수도 없다. 결혼을 해서 얻는 행복이라는 게 아이가 주는 행복은 다르다. 나도 술 마시고 놀고 싶지만 집에 가서 아이를 재워야 한다. 아이가 열이 오르면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아이 밥은 챙겨줘야 한다. 이게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아이에게 잘해주고 고마워하고 희생을 기꺼이 하게 된다.

박건도
: 결혼이라는 게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선택으로 반드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면 걱정이 되면 안 하면 된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사회적, 제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안 해도 되는 것이다. 이게 고민인 게 그런 연유에서다. 

유서영
: 지금은 결혼 자체로만 이야기를 하지만 한국사회의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고 이게 사회문제로 비화된다고 했을 때, 결혼을 선택의 문제로 밀고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막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에서 가임기 여성 분포 지도를 만들고 그랬던 게 이 사회의 인식인 거 같다. 

정화빈
: 그게 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면 답을 할 수 있는데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묻는 게.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위해서 헌신해서 바꿀 수 있다고 하면 육아가 힘들어도 아내가 힘들어도 더 안아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유서영
: 이런 사람이라면 결혼하고 싶다, 이런 사람은 없었나?

정화빈
: 없었다. 날 위한 연애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건도
: 너무 많이 사랑해도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제도와 문화에서라면. 제주도는 좁고 나는 집안이다 장남이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다.

오연주
: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결혼을 한다, 안 한다는 두 번째 문제다. 법의 테두리를 떠나서 이사람과 살았을 때 얼마나 눈을 감아주고 포기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이 사람과 함께 살았을 때 손잡고 끝까지 살았을 때를 그려봐야 한다.

강나루
: 동거를 해봐야 하는 거 같다.

오연주
: 서로의 공간에 가보기도 하고 깊은 밑바닥부터 다 알아갈 기회도 필요하다. 출산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성교육이 부족하다.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청년들에게도 부부교육이나 미리 좀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해보지 않았으니 두려울 것이다. 이혼을 하려고 결혼을 한 게 아니라 잘 살기 위해 결혼을 한다. 우리에게는 배움이 필요하다. 부부학교, 부모학교, 노인학교 등. 

유서영
: 동의를 하지만 여기의 전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연주
: 그게 아니다. 그걸 겪어보고 선택하는 것이다.

강나루
: 맞다. 배운 적이 없다. 막연하게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벅차다. 내가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르면 모를수록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이건 생각보다 겁내지 않아도 되겠네, 그런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 같다. 

박건도
: 결혼뿐만 아니라 토론을 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도 전혀 배운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반대편에 사람이 걸어오는데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런 고민이 든다. 뉴질랜드에선 서로 보면서 눈웃음을 한다.  

김태연
: 여태까지의 이야기로 미루어 결혼이 점점 선택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런데 출산이야말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라고 여겨지고 있다. 결혼을 하면 출산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계획보다 훨씬 일찍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출산은 부차적인 선택지였는데, 가족과 친지들은 일찍 결혼했으니 출산도 일찍 하라고 당연한 듯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당황스러웠지만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는 것이 마치 아이를 낳기 어려운 몸인 것처럼 걱정을 하는 게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체중과 출산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유서영
: 지인 중 결혼 4년차인데 합의하에 아이를 갖는 것을 미뤄왔다.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니 주변에서 ‘어느 병원에 다녔냐’ 물어봤다고 했다. 주변에선 난임인 줄 알았던 것이다. 충격을 받았다. 

박건도
: 일부의 사람들은 신혼을 즐기고 싶어서 아이를 갖지 않을 거라고 하면 아이가 생기지 않으니 그렇게 핑계를 대느냐고도 이야기를 한다.

정화빈
: 그런데 출산을 하게 되면 지역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주나?

오연주
: 혜택은 많다. 그런데 누릴 수가 없다. 나는 다문화가정도 아니고 외벌이도 아니라서 제약이 많았다. 맞벌이라면 조건이 안 된다. 출산 후 한약을 먹거나 출산 전후에 대한 급여, 아기 예방접종 무료 정도뿐이다. 나는 종합병원에서 출산을 하다 보니 다인실을 쓰지 못했다. 독방을 이용해야 하니 4~5일에 100만원이었다. 

유서영
: 출산을 선택하는 게 혜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100만원으로 여건이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화빈
: 그래도 돈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분유 값, 기저귀 값, 바우처 등 큰돈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은 것 아닌가.

오연주
: 월급이 100만원씩 나오다가, 50만원밖에 벌지 못하다. 이미 고정 지출이 있는데 이 돈으로는 살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마이너스 통장으로 가게 된다. 언제까지나 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말로 공돈이라면 더 많이 주지, 그런 생각도 있다. 나라에서 그토록 저출산 대책을 외치면서 따라가지 못하는 거 같다.

유서영
: 그게 공돈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내 입장에선 서운하다. 돈 때문에 낳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책임을 졌고, 그에 따른 지원일 것이다. 출산이 선택의 문제인가에서 지원이 더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 지원 때문에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화빈은 출산은 의무라고 생각하나? 

정화빈
: 사랑의 형태로 출산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선택도 할 수 있지만 낳고 기르는데 나라에서 조금씩 용돈 주듯이 한다면 기분도 좋아지니 육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강나루
: 공돈이라고 말을 듣고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당황했다. 계속 듣다 보니 조금 더 독립적인 마인드에서 생각한 것 같다. 이 돈을 주지 않아도 당연히 낳아야 하니, 나라에서 돈을 주다니 라는 생각이다. 

박건도
: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다. 전반적인 복지 차원에서라도. 

김태연
: 나는 그런 제도에 대해 궁금해본 적이 없다. 그런 지원 제도가 출산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전혀 주지 않는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막상 결혼을 앞두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주변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출산을 하고 나면 인생의 막이 달라져 버린다.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일상, 나의 생활반경 그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달라져버린다. 실행취소가 불가능하다. 

오연주
: 임신을 하는 과정에서는 감정기복이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울다가 웃다가 심각하다. TV에서는 임신을 입덧하다가 출산하는 짧은 과정으로 다뤄진다. 입덧도 종류가 많다. 출산이라는 것은 누가 책임져 줄 수 없다. 예측할 수도 없다. 첫째와 둘째만도 다르다. 게다가 개인사가 있을 수도 있다. 

정화빈
: 한국에서는 아이가 아빠의 성을 따른다. 다른 방법도 있나?

오연주
: 이제는 출생신고를 할 때 아빠 성을 따를지 혼용할지, 엄마 성을 따를 것인지 체크하도록 한다. 우리 아이는 아빠 성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 사람들이 성을 붙여서 부르는 게 싫었다.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아이인데. 

유서영
: 어릴 적에 엄마가 ‘이 집에 나만 문씨야’ 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이제는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금재
: 육아휴직을 할 때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곧 결혼적령기인 직원들이 있다. 유급 휴가를 얼마나 줄 수 있는가?

오연주
: 법적으로 2년까지 육아휴직이 가능하다. 최근의 트렌드는 엄마들이 애 낳고 1년, 초등학교 입학해서 1년을 쓰는 것이다. 나라에서 보조하는 유급 휴가이다. 그러나 굉장히 힘든 삶이 시작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또 다르다. 육아휴직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인데, 가정을 유지하고 아이를 키워야하는데 가스가 끊겼는데 아이를 키울 수 있나? 신혼부부들 대상으로 육아휴직 기간에도 대출금 상환을 멈출 수는 없나? 대출받는 사람 치고 1억 원을 상환한다 치면 한 달에 100만원을 갚아야 한다. 유예해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엄마에게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최대 15년만 살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기는 어떻게 하느냐 되물었더니 나라에서 부양해서 부모가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우스개 아닌 우스개를 했다. 
결혼의 비용 문제는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시작하면서 서로가 쌓아가며 해결할 수도 있다. 식을 치르기 위한 비용도 현명하게 줄여나갈 수 있다. 

강나루
: 그것도 그렇지만 육아나 결혼 생활을 학습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태연
: 질문들을 오고가며 나눠야 할 이야기는 나눈 것 같다. 이 자리 덕분에 뜻 깊은 브라이덜 샤워를 했다. 소감 한 마디씩 들으면 좋겠다.  

유서영
: 가까운 친구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준비하는 것을 지켜봐왔다.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 부정해왔다. 그런데 하나둘 씩 결혼하는 걸 보면서 막연했던 결혼 준비에 대해서 이렇게 해나갈 수 있구나 가시거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다양한 생각을 하게 돼서 좋았다.

오연주
: 나도 예전에 고민을 겪으며 나만 왜 이렇게 유난을 떨까 하는 고민도 했다. 이제야 그런 감정이 해소되는 거 같다. 결혼한 선배로서 결혼에 대한 궁금한 점이나 해소해주고 싶어서 왔는데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강나루
: 출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없던 두려움이 생겼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영유아기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교육이나 지식이 있다면 접해보면 좋겠다. 태연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좋겠다고 했던 것처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들어보니 배울 게 있는 사람이 내 인생을 이롭게 할 거라고 믿는다. 배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

정화빈
: 자녀의 성씨에 대해서 방법을 알게 돼서 얼마나 고민이었는지 모른다. 길이 조금이나마 보였다. 현실적인 문제라고 해야 할까? 돈과 시간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돼서 더 힘들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극복하기 위해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그런 사랑이 있다면 어떻게든 잘 버텨나갈 것 같다. 

이금재
: 참가하기 전과 후가 똑같다. 결혼 해야 한다. 출산도 해야 한다. (일동 웃음)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다. 고민을 너무 안 하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다는 생각이다. 고민은 하되 너무 깊게는 하지 말자고 바꾸도록 하겠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결혼에 한발 더 다가선 느낌이다.

박건도
: 나는 뉴질랜드에서 5년 유학을 하고 왔는데 한국에서 살 땐 느끼지 못한 외로움을 겪었다. 병원은 안 갔지만 우울증이라고 할 것 같은 것이었다. 딱 한사람이었다. 집앞에 커피숍에 가서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만 있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이 하고 싶다. 다만 현실적인, 사회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쳐나갈지. 정말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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