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제주인 김시종 시인이 13일 열린 전국문학인 제주포럼 기조강연자로 나섰다. ⓒ제주의소리
[전국문학인 제주포럼] 재일제주인 김시종 시인, “시가 있어야 할 위치는 낮고 평범한 이들”

시(詩)란 무엇일까? 미사여구(美辭麗句)? 내면의 성찰? 

평생을 한국, 북한,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살면서, 가슴 속에는 제주를 품고 머리와 손은 일본어를 사용한 시인.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던 재일제주인 김시종(88) 시인은 “시는 현실인식의 혁명”이라고 규정했다. 시가 있어야 할 위치는 화려하고 윤택하며 빛나는 양지가 아닌, 피폐하고 황폐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들 옆이라는 시론(詩論)도 더한다.

제주시가 주최하고 제주문화원·제주문인협회·제주작가회의로 구성된 ‘2017 전국문학인 제주포럼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2017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이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올해 처음 선보인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은 제주 문학 단체의 양대 축인 제주문인협회와 제주작가회의가 함께 준비한 행사다. 제주시와 제주문화원이 두 단체의 협업을 지원하면서 모처럼 제주 문학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의미 있는 자리가 됐다.

13일 오후 6시부터 열린 개막식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손님이 방문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재일제주인 김시종 시인이 고향 제주를 찾은 것이다.


# 경계에 서서 빛나는 김시종

김시종은 김석범, 양석일 등과 함께 일본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재일제주인 작가로 손꼽힌다.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고향인 제주로 옮겨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인민위원회,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예비당원으로 잠시 활동했고 4.3이 일어나면서 10대 끝자락에 일본으로 밀항해 가까스로 살아남으면서, 지금까지 일본에 머물고 있다. 4.3 이전 제주에서의 활동에 대해 김 시인은 김석범 작가와 함께 한 대담집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2007)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망쳤던 무리들(친일 부역자)이 활개를 치고 돌아왔다. 해산당한 인민위원회 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미군과 직접 알력이 발생한 사이에 그 무리들이 들어옴으로써 동족끼리 부딪치게 됐다. 그러니까 (해방이 됐어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민족의식이 없었기에 일본의 가혹한 통치를 몰랐던 나였지만, 일본이 져서 갔어도 똑같이 그 밑에서 운 좋았던 놈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겨우 자각을 하기 시작한 자신이 조선인으로서 정직하게 살자니 이런 놈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역시 해방은 제대로 돼야 한다. 그래서 남로당에 입당했다.” -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 중에서 일부.

일본은 김시종의 문학성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제40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1986년, 수상작 《재일의 틈에서》), 오구마 히데오 상 특별상(1992년, 《원야의 시》), 제41회 다카미 준 상(2011년, 《잃어버린 계절》), 제42회 오사라기 지로 상(2015년, 《조선과 일본에서의 삶》) 등 굵직한 상을 그에게 안겨줬다. 

김동현 문학평론가는 김시종의 시에 대해 ‘오염된 일본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마음은 언제나 고향 제주를 그리워 하면서 한국, 북한,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조선적'이라는 이질적이면서 독특한 신분으로 일본에서 살아간다. 그런 심정을 글로서 표현하는 수단은 일본어다. 

광주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다룬 시집 《광주시편》(1983)을 1984년 한국에서 번역하려 했지만 ‘시 속의 일본어가 너무 까다롭다’는 이유로 손을 뗀 일화가 있다. 오사라기 지로상 주관사인 아사히신문은 제42회 수상 당시 “저자(김시종)이 글에는 여분의 말이 한 마디도 없다. 쓰라린 심정을 본래보다 아주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로 말한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김시종의 시와 글은 개인의 슬픈 역사를 통해 유니크(unique) 함을 얻었다.

시인은 개막식 기조 강연에서 “내가 일본에서 살아온 ‘재일’의 삶은 유려하며 정교한 일본어에 등을 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감정이 과다한 일본어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저를 키우는 일본어를 향한 보복이었다. 난 빡빡한 일본어로 70년 가까이 시를 쓰며 살아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 김시종 시인은 '시는 현실인식의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제주의소리

# 시(詩), 시인은 무엇인가?

자신이 활동해온 일본 시단에 대해 김시종은 “어렵고 관념적인데다 대단히 추상적”이라고 바라봤다.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거세됐다는 식의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내 방과 복도에 산처럼 쌓이는 동인지, 시집 대부분은 평화헌법에 어긋나는 사태나 동향을 심각하게 사고하는 무장이나 작품을 조금도 싣지 않고 있다”며 “일본의 시적 서정성은 사회 동향이라던가, 자기 응시라고 하는 활동적인 문제의식은 시라는 형태로는 좀처럼 익숙하지 않아 이상하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난숙해진 경제력과 자의(恣意), 다양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눈앞의 이익과 지식에만 사로잡히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며 “시가 아니라, 시 안의 무언가가 간과돼 있다. 예를 들어 인권이나 공해 등의 문제도 간과되는 것 중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현실 문제에 등 돌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에 매몰된 일본 시단에서 김시종이란 존재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돈키호테'이자, 흡사 멸종된 동물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김시종이 생각하는 시는 단지 글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은 모두 각기 자신의 시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동식물이나 무기물 등 인간이 아닌 것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속에 시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린아이가 쓴 글에 우리가 깜짝 놀라는 이유는 돌이나 꽃과 벌레, 작은 새들과 아이들이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시처럼 사는 자신 주변의 실제 사례를 들었다.

일본 아베 정권의 ‘안보법제’ 제·개정을 반대하며 등 뒤에 항의 문구를 써넣고 금요일마다 열리는 데모에 참여하는 92세 노인. ‘우리도 어떻게든’ 이라는 마음으로 안보법제 반대 문구를 등에 붙이고 회사로 출근하는 70세 가까운 부부.

김시종은 “그런 존재들은 존재만으로도 통째로 시를 발현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의 언어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삶의 방식이 있음을 알고서 유대 속에 있으며, 그 유대 속에서 발휘되며 발생하는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관념적이며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념에 세계에 빠져버린다”고 강조했다.

▲ 원고를 낭독하는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 유언처럼 남기는 메시지 ‘시는 현실인식의 혁명’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김시종은 시를 ‘현실인식의 혁명”이라고 규정지었다. 나아가 시인은 "현실 인식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의식의 개척자"로 정의한다.

“시는 인간 의식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를 응축해서 새겨 넣는 예술이므로, 어떠한 입장에 선 시인이라 해도 통상적인 일상어를 부단히 체로 쳐서 골라내야 한다. 일상에 익숙해져서 완전히 무지러진 언어로부터 탈피하고 쇄신해야 한다”고 자신만의 엄격한 시 철학을 밝혔다.

특히 ▲이미 성립된 정의조차 의심하며 ▲선악과 미추(美醜)를 즉각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대다수가 쏠려가는 지점으로부터 이탈한 인간 ▲대부분이 찬동하며 흥겨워하는 것에는 머쓱해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많은 사람들의 그늘에서 홀로 웃음 짓는 사람 ▲결코 심술쟁이가 아니며 평소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사람이 좋으며 ▲유연하게 반골적인 기골을 숨기고 사색하는 것을 '시를 살아가는 사람'이 지닌 공통된 자질이라고 봤다. 

김시종이 생각하는 시인은 한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의 소금과 같은 존재다. 이는 재일제주인이란 스스로의 존재를 글로서만 증명해온 평생의 경계인으로서, 몸소 체득한 가치로 보인다.

김시종은 “우리는 좀 더 주변의 것, 더 나아가서는 변동하고 있는 시대, 꿈틀거리는 사회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대국에 사니 우리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칠 정도의 윤택함으로 인해 오히려 피폐해지고 황폐해져 가는 사람도 가득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그러므로 시는 성실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측에 있어야 한다. 시는 대저 언어만의 창작이라고 한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김시종이 일본 시단에서 주목받았던 이유는 오늘날 현대 일본 사회, 일본 시에서 지니지 못한 진정성을 품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그것은 지금 한국에 비춰봐도 어색하지 않다.

시인은 30분 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조 강연에서 미처 강연문을 전부 읽지 못하고 박수 갈채 속에 내려왔다. 그러면서 “강연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드시 읽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앞서 주최 측에 원고를 보내오면서 '유언이나 다름없다'고도 덧붙였다. 박물관 박제 동물처럼 시인이란 존재가 그렇게 남아질까 두려운 노(老) 시인의 진심 어린 당부이자 충고로 생각하자.

한편, 2017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은 14일 오전 9시부터 제주목 관아에서 둘째 날 일정을 이어간다. 시민백일장, 16개 단체 참여하는 북카페, 주제발표, 문학콘서트 등이 준비돼 있다. 마지막 날인 15일은 작가 문학 기행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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