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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경대 씨는 10월 14일부터 11월 14일까지 제주시 청소년문화카페 생느행에서 사진집 《이추룩 변헌거 보염수과? 1960~2017 - 제주 동부, 성산일출봉에서 관덕정까지》출판 기념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에는 고 씨와 그의 아버지 故 고영일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 함께 전시된다. ⓒ제주의소리
[화제] 고경대씨, 작고한 아버지 1960~70년대 풍광사진 속 현장 찾아 '찰칵'...11월까지 전시 

고경대(60) 씨는 10월 14일부터 11월 13일까지 제주시 청소년문화카페 생느행에서 사진집 《이추룩 변헌거 보염수과? 1960~2017 - 제주 동부, 성산일출봉에서 관덕정까지》(동문통책방) 출판 기념 전시회를 열고있다. 

전시회에는 고 씨와 그의 아버지 故 고영일 사진작가가 찍은 제주 풍경 사진이 함께 전시된다. 고영일 씨가 1960~70년대에 찍은 풍경을 아들인 고 씨가 2011년부터 거의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각도로 촬영한 것이 인상적이다.

나란히 배치돼 있는 흑백사진과 컬러사진 속 제주 풍경을 번갈아 보면 50년 넘는 시간이 훌쩍 스쳐간다. 중년 이상은 그들만의 추억으로, 젊은 세대는 신기함으로 한참 동안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2015년 제주에서 똑같은 방식의 전시를 한 차례 가진 적이 있지만, 공들인 준비를 따지면 이번이 사실상 제대로 된 첫 번째 전시나 다름없다. 

제주시 중앙로터리 한 쪽에 위치한 광제약국, 제주은행은 겉모습은 달라졌어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빨래터로 붐빈 산지천은 관광객들이 지나는 한적한 장소가 됐지만, 삼양동 큰물은 지금까지 빨래 든 아주머니들이 찾아온다. 맞춤복을 판매하는 ‘라사집’이 즐비했던 칠성로는 비가림 아케이드 시설을 갖추고 쇼핑거리의 명맥을 잇는다. 한때 MBC 방송국, 소라다방 등이 자리해 불야성을 이뤘던 한짓골은 조용한 골목으로 남아있지만, 우뚝 솟은 해병탑과 야자수 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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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제주시 중앙로터리 일대(위)와 현재 모습.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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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한짓골(왼쪽)과 현재 한짓골.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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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진 칠성로.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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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진이 돌출돼 있는 옛 버스(위)와 최근까지 운행하던 시내버스 내부 모습.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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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일출봉 인근 모습. 왼쪽은 옛 해녀복을 입은 해녀들이 도보로 이동하는 1960년대 모습. 오른쪽은 현재 모습.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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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뛰놀던 성산일출봉 인근.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버렸다.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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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위는 故고영일 씨가 찍은 옛 풍경. 가운데는 몇 년전 아들 고경대 씨가 찍은 풍경. 맨 아래는 최근 모습. 재선충병으로 고사해 지금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웅장한 성산일출봉 주변 한적했던 마을은 어느새 몸집을 한껏 키웠고, 해녀들이 나란히 줄지어 이동하던 해안가에는 그럴듯한 가건물이 들어섰다. 소들이 풀을 뜯는 오름 벌판은 수풀이 무성해졌고, 작은 돌하르방과 비석은 시간의 무게를 견딘 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변하는 것은 변한 대로,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는 대로 깊은 인상을 준다.

아버지 고영일 씨는 제주사진회, 제주카메라클럽,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주지부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족적을 남겼지만, 아들 고 씨는 전문 사진작가가 아니다. 출판사에서 일했고 현재 동국대 인쇄출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건 뒤늦은 2011년. 아버지가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유작을 정리하던 중, ‘아버지 사진을 따라해보자’는 단 하나의 생각만으로 카메라를 쥐었다. 

고 씨는 “(아버지가)암 진단을 받고 나서 함께 제주도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자고 아버지에게 제안했다. 흔쾌히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차마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떠나셨다”며 “집에 늘 카메라가 있었지만 내 의지와 목적으로 찍은 건 그때(2011년)가 처음이었다. 2013년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아예 제주에 내려올 계획을 세웠고 2014년부터 제주시 구좌읍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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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고경대(왼쪽) 씨와 아버지 故 고영일 씨.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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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이 된 고경대(왼쪽) 씨와 아버지 故고영일 씨. 사진=고경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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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경대 씨의 최근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에서 태어난 고 씨는 제주북초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 가족과 함께 서울로 떠난다. 그렇게 끊어질 것처럼 보였던 고향 제주와의 인연은 의외로 질겼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주를 방문했고, 1980년 군 복무를 제주에서 하면서 김수열, 문무병, 김창후 등 동년배 지역 예술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다. 삶의 터전을 서울에 뒀지만 꾸준히 교류를 이어갔고, 제주를 떠난 지 약 50년 만에 기어코 다시 돌아왔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어머니는 고향에서 고되게 살아온 기억 때문인지 그에게 “제주에 내려갈 생각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럼에도 고 씨는 제주를 잊지 못해 몰래 내려와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중·고등학교부터는 제주에서 보내지 않았기에 제주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다. 세찬 바람도 제주도니까 좋게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니 단단히 콩깍지(?)가 씌었던 셈이다.

고 씨는 아버지가 찍은 장소를 찾아가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그 자체가 즐거웠다고 했다. 어렵게 찾을수록 짜릿한 성취감을 안겨주고, 구석구석 마을에선 사진 한 장으로 주민들과 금세 친해졌다.

그는 “초행길은 잘 모르니까 아버지 사진을 주민들에게 보여준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진 속 위치가 어디냐고 물으면 ‘아이고, 잘도 옛날 사진이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풀린다. ‘이거 누구네 집 아이네’, ‘당시에는 이렇게 저렇게 놀았지’하며 이야기를 더 끄집어낸다”고 말했다. 전시 중에는 옛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훌쩍 자란 모습으로 찾아와 ‘이게 나였다’고 말하는 신기한 경험까지 겪었다.

과거와 조우하는 건 단순히 그리움과 추억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아버지가 다녔던 길을 따라가며 사진을 찍는 이유는 ‘역사’ 그리고 ‘기록’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고 씨는 “미래 세대들이 지금 이 모습만이 아닌 예전 제주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과정을 알게 된다면, 보다 충실히 오늘날을 살아가지 않겠나. 그들 역시 기록을 남기면서 자연스레 역사는 이어진다. 그래서 아버지 세대의 제주, 내 나이 세대의 제주, 그리고 자녀 세대의 제주를 기록해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아버지 덕분에 사진기를 잡은 그는 어느새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회도 열 수 있겠지만 그는 기꺼이 “평생 아버지 그늘에 살아도 좋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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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작품을 설명하는 고경대 씨. ⓒ제주의소리

“40년 가까이 사진을 연구한 분과 같아질 수 있겠나. 내 활동으로 아버지 사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담담한 소감을 남겼다.

또 “굳이 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옛 제주 풍경을 지금 똑같이 찍어보면서 아버지 사진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을 언젠가 세우고 싶다. 제주 동부에 이어 서부와 서귀포 지역도 차근차근 작업해 나갈 예정”이라고 포부를 남겼다.

전시는 10월 14일부터 11월 13일까지 청소년문화카페 생느행(일도일동 1298-6 명전빌딩 3층)에서 열린다.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는 서울에 있는 갤러리 브레송(중구 퇴계로 163)에서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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