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42) 자기가 내놓은 법에 자기가 매를 맞는다

* 지가 : 자기가, 저 자신이, 스스로
* 낸 : 만든, 내놓은

“지가 낸 법에 매 맞나”에 덧대어, 먼저 지난날 얘기 한 토막 해야겠다.  

나는 우리 나이로 29살, 그 해 말 12월 26일에 징집영장을 받고 입대했다. 그러니까 서른 살을 목전에 두고 군대에 간 것이다. 결혼(조혼)해서 7년째, 교직 경력 8년차였다. 보통 스물 한두 살에 입대하니 이만저만 늦은 게 아니었다.  

광주 변두리에 위치한 예비사단 31사 신병교육대로 입소했는데, 신병교육대 내무반장 전주 출신 하사(22세)가 군기를 독하게 잡는 바람에 아주 혼쭐이 났다. 차 하사, 자그마치 7살 연하라 사회 상식으로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다. 터무니없이 빠따(매)도 들었다. 나이 먹도록 사회에서 쓴맛 단맛 다 봤다며 빼딱하다는 게 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향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받으려니 여간 곤욕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상식 운운할 세상인가. 거기가 어딘가. 군대 아닌가. 끽 소리 못하고 6주 교육을 이 악물고 받아 냈다. 지금 반세기가 다 된 옛날 얘기를 하고 있지만 막무가내였다. 참지 않고 배길 재주가 없으니 참아 낼밖에. 나 자신 입대를 연기하다 그렇게 된 것이니 누굴 탓할 것인가. 자업자득인 걸. 그래도 추억은 아름답다. 

그때를 회상하노라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도 그럴 게, 사단 부관부에 배치돼, 행정병으로 낮엔 지내기가 편했는데 내무반 생활을 해야 하는 일과 후가 고됐다. 나이 차이가 커 나를 ‘영감’이라 부르는 건 그렇다 치고 호칭과 대우가 맞아 떨어질 리 만무다. 군대에 열외는 없는 법이다.  

언제면 내 밑으로 병 하나가 배속돼 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무반에 졸병 하나가 입소 신고하던 날, 자지러질 뻔했다. 오현고에서 가르친 제자 K가 아닌가. 7살 연하의 제자. 졸병 신세를 면하게 됐다고 신이 났더니 제자라니. 그런 해후도 있는 게 인생인가. 말이나 제대로 나누며 지내질 못하다 그가 두어 달 뒤, 고향 모 부대로 전속 명령을 받고 떠났고, 그 후 고향에서도 만나 보지 못한다. 만나면 그때를 떠올리며 소주 한잔 할 것을….

“지가 낸 법에 매 맞나.”

맞는 말이다. 내가 군대를 늦추다 그렇게 된 것이니, 일을 내고 스스로 매를 맞는 것이나 진배없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제 것 주고 뺨 맞는 격이었다.

우리 선인들, 무의식중 인과율(仁果律)에 반듯한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지 않은가.

자업자득이란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감을 뜻한다. 여기서 ‘업’은 나쁜 업을 일컫는다. 자신이 쌓은 업으로 자신을 묶는다 해서 ‘자승자박’이다. 자기가 꼰 새끼줄로 자신을 묶어 종국에 가서는 자기 꾐에 자기가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또는 전생(前生)의 선악이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에도 자업자득의 뜻이 녹아 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를 자신이 감수한다는 얘기다. 그러한 일의 결과에 대해선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 표현 또한 부정적으로 쓰인다.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거나 성과를 거뒀을 때는 자업자득이라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면서 실패했다면, “자업자득이지. 누굴 원망하겠어.”라 말한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나 전쟁에 패했다면 이야말로 자업자득이다.

박완서의 소설 〈도시의 흉년〉 중의 한 구절이 인상적다.

“자업자득이다 싶으면 일순 가슴이 찡하도록 수희 언니가 불쌍해졌다.”

“지가 낸 법에 매 맞는다“는 결국 고사성어 자업자득을 우리말로 풀어 낸 속담으로 우리의 상식 속에 녹아 있다.   

유래담이 있다.

한나라 무제는 성군으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지만, 노년에 이르러 포악한 정치를 일삼았는데, 이에 후경이 반란을 일으켜 성을 포위 함락시켰다. 86세의 노령이 된 무제로서 아무런 대응도 해 보지 못한 채 맥없이 무너져 죽음을 맞이했다. 비참했다.

무제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탄식해 가로되, “자업자득이로군. 이제 새삼스럽게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인가”라 했다는 것이다.

‘지가 낸 법에 지가 매 맞는’ 예를 전 정권 국정농단 사태의 한 켠에서도 눈에 질리게 봐 왔다. 그것도 지성이 첨예한 상아탑, 대학에서.

누구나 실수를 한다. 사람이기에 잘못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칠 때, 사회가 관용으로 용서할 것이다.

이화여대는 쑥대밭이 됐지만, 다른 사학들은 다행인가. 이화여대만 물 먹었는가. 다른 대학으로 갔다면 어쩔 뻔 했을꼬. 누가 감히 거절할 수 있었을까. 서릿발 같은 청와대 비선 실세인데.

추악한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렸으니, 평생 쌓아 온 명예와 그 모든 업적들이 삽시에 오욕으로 문드러지고 말았다. 하루아침 새, 역사 앞에 죄인이 돼 영어(囹圄)의 신세로 몰락하고 말았지 않은가. 인생 말년에 그 무슨 치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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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 곳곳에 ‘비선실세’ 최순실 딸 정유라(승마특기생)의 부정입학 및 학사 특혜를 규탄하는 각종 대자보가 붙어 있다. 한 건물 승강기 입구에 정유라 부정입학 사태를 비판하는 '말' 머리 상이 설치돼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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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자대학교 입시 및 학사비리 전반을 주도한 혐의를 받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이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결국 최 전 총장은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오마이뉴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저릿저릿 가슴을 저미고 뼛속을 후빌 터이다.    

경우에 따라 자업자득은 이처럼 처절한 것이다.

학문을 넘어 진리와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는 교수 아닌가.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선망의 적이요 존경의 대상이던 명문대 총장, 학장, 교수들. 시류(時流)에 편승하고 권력에 아부했다 참혹한 처지로 전락했으니, 그들은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자성하며 이 모두 자업자득임을 통렬히 깨닫고 있을까. 

수원수구(誰怨誰咎)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지가 낸 법에 지가 매 맞는’ 격이 아닌가. 저가 택한 길이고, 정의롭지 못한 길,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길, 역사 앞에 죄를 지은 길이다. 자업자득이었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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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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