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양용찬 열사 26주기 추모 모노드라마 <사랑 혹은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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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첫 공연을 마친 뒤 무대. 이날은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과 성직자들도 함께 관람했다. ⓒ제주의소리

열사(烈士). 나라를 위해 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을 일컫는다. 열사가 자신의 몸을 기꺼이 바치면서 희생할 수 있는 이유는 마음속에 뜨거운 사랑을 품어서다. 사랑이 있을 때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고 아파하고 눈물 흘린다. 사랑은 계량화 할 수 없다. 수치로 잴 수 없다. 말과 행동으로서 사랑의 크기와 간절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 

여기 제주도를 끔찍이도 사랑한 한 사람이 있다. 고향 제주를 위해서 생명까지 내던진 故 양용찬(1966~1991) 열사. 그의 삶을 다룬 연극이 최근 무대에 올랐다. 모노드라마 <사랑 혹은 사랑법>이다.

63만 제주도민 가운데 양용찬이란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 짐작한다. 1966년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서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외국 농·수산물을 개방 수입하는 우루과이 라운드(UR) 무역협상과 관광 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제주도개발특별법에 반대했고, 1991년 11월 7일 서귀포 시내 건물에서 분신 투신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연극 <사랑 혹은 사랑법>은 열사의 26년 짧은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어른이 되면 봉이 김선달이 되고 싶던 귀여운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좋아한 청소년 시절,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행동해야 하지만, 세상이 희망적이지만 않다는 사실을 몸소 겪는 성인시절까지. 생전 열사가 남긴 글은 배우의 대사가 됐다.  

“내 나이 18세, 내일 모레면 19세. 18년 동안 보살펴 주신 부모님께 죄스럽다. 18년 동안 후회 하나로만 보낸 것을 생각하니. 그렇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 그 무엇이 있는가? 저 바다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인내를 가지고 모든 일에 부딪치리라.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인재가 되지는 못 할지언정 인간 기생충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앞에 놓여 있는 모든 험난함을 끈기 하나로 이겨내리라. 불의와 싸우고 정의를 사랑하는 정의에 사도가 되리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리라.”

“우리는 결코 세계적인 제주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주민에 의한 제주민을 위한 제주다운 제주를 원할 뿐.”

너무나 찬란히 빛나 언젠가 산산이 깨질 것만 같은 고인의 순수함, 농민이 농민답게 살아가고, 제주가 자본에 휘둘리는 여느 관광지가 아닌 ‘제주답게’ 되길 원한다는 열사의 제주 사랑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사랑 혹은 사랑법>은 고권일 강정마을 부회장이 만든 문화 예술 단체 ‘구럼비유랑단’의 창단 작품이다. 고 부 회장을 모티브로 한 서귀포 강정주민 ‘고항일’을 통해 양용찬 열사를 추억하고, 동시에 강정해군기지에 대한 참담한 소회도 함께 밝힌다. 제주도개발특별법과 강정해군기지. 둘 사이에는 20년이 넘는 시간 간격이 있지만, 많은 이들의 반대와 논란 속에 강행되는 과정이나 문제적인 요소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작품은 배우 한 명이 혼자 연기하는 1인극, 모노드라마다. 고전 소설 《돈키호테》 이야기를 홀로 연기한 1인극 <너, 돈키호떼>에서 실력을 보여준 배우 양승한은 그 특유의 흡입력을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한다. 

열사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는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 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써, 생활의 보금자리로써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저지, 2차 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은 간다’고 비장하지만 안타까운 심정이 적혀있다.

안타깝게도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시간이 지나 제주국제자유도시로 몸집을 불렸고, 제주도개발특별법을 주도한 민자당(민주자유당)은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거쳐 자유한국당-바른정당으로 변신했다. 제주도 땅 곳곳은 자본에 의해 개발됐고, 해군기지에 이어 제2공항이라는 거대한 토목사업까지 예고된 상태다.

오늘날 제주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주에서 힘을 얻고 기분전환하고 위로를 받고 치유한다. 그러나 제주에게 받아가는 만큼 과연 사람들은 제주를 사랑하고 있을까? 끊임없이 쌓이는 쓰레기, 주체하지 못해 바다로 버려진 오폐수, 주택·호텔·카지노 등을 짓기 위해 쉴새 없이 파헤쳐 지는 숲, 제주는 신음을 내뱉는다. 

<사랑 혹은 사랑법>은 제주가 이렇게 아파하리란 것을 일찌감치 알았던 선구적 인물을 조명한다. 제주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파도를 작은 힘으로 도저히 막지 못해 스스로를 내던질 수밖에 없었던 그는,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제주도를 사랑하시나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촛불을 들고 시대를 바꾼 지금, 양용찬 열사는 25년 전에 도도하게 일어선 촛불이었다. <사랑 혹은 사랑법>은 삶이 무엇인지, 제주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세상을 알아가는 청소년과 부모세대가 함께 보면 더 좋을 것이다. 배우들에게 인정받는 '배우'의 연기력과 마주하는 기회도 흔치 않다.

다만 인물, 장소, 시간을 여러 차례 오가면서 일부 장면이 혼선을 주고, 급하게 성사된 일정 때문인지 공연 완성도가 다소 아쉽다는 인상은 있다. 그래서 감정이 몰입하려는데, 제동 걸리는 순간도 몇몇 눈에 띈다. 다만, 기자가 관람한 3일 첫 공연과 달리 다음 5일 공연에서는 이런 아쉬움은 보완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랑 혹은 사랑법>은 5일 오후 4시와 7시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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