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인간 지식 넘어선 숲의 기능, 숲과 함께할 때 지속가능한 미래 담보

가을 숲에 들어서는 느낌은 매일 다르다. 봄, 여름 꽃은 대부분 지고 찬 기온에 강한 가을꽃들만 가끔 눈에 띈다. 나뭇잎은 빨강, 노랑 등 강렬한 색으로 물들어 꽃이 핀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 소설가 카뮈는 ‘잎마다 꽃이 피니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라고 단풍잎을 묘사하기도 했다. 가을이 저물 무렵이면 나뭇잎은 땅으로 내려앉는다. 나무는 옷을 벗고,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게 될 것이다. 

숲은 열린 공간이며 누구나 다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광장이다. 숲에 존재하는 나무, 들풀, 동물, 돌, 미생물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호기심과 설렘이 가득한 숲 ‘오타쿠’들은 물론이고 숲의 문을 열고 들어 온 사람들은 제각기 다르게 느끼며 시간을 보낸다. 숲이 부르는 소리와 새들의 노래를 감상하고, 나무나 들풀을 상세히 관찰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 숲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우리의 감성은 숲이 보내는 신호에 응답한다. 숲은 인간의 황량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묘약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숲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다. 매일 매월 매년 시간단위로 관찰하는 숲은 한 단면만 보여줄 뿐이다. 무지의 폭과 깊이는 커지기 때문에 숲 앞에서 먼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숲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 갖고 있는 지식이 불완전한 것이라고 인식할 때 숲과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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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를 아름다운 행성으로 만들고 생명의 위대함을 전하는 숲과 함께해야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이 필요한 가을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숲은 빛과 그늘이 함께하며 형태와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숲은 천개의 얼굴로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는 여명부터 각양각색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늘이 빛을 껴안고 있는 형국이다. 낮에는 햇빛을 받아 화려한 색깔로 치장하고 강렬한 모습을 구현한다. 마치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이 비추는 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숲은 붉은 해가 지평선을 넘어 갈 때까지 햇빛이 짜낸 현란한 안무에 맞추어 춤을 춘다. 햇빛이 사라진 저녁에는 숲의 윤곽은 거의 사라지고 나무가 바람과 부딪치는 소리와 야행성 동물들의 움직임이 적막을 뚫고 지나간다. 

숲은 생명의 차원에서 생성 소멸하는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 숲은 사계절을 두루 겪으며 변모해간다. 봄바람은 사람을 설레게 하지만 숲에 사는 생명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봄기운이 언 땅을 녹이면 생명들은 비로소 깨어난다. 얼었던 물이 녹고 생명들에게 흡수되면서 비로소 대지는 봄 손님을 맞게 되는 것이다. 여름은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다. 숲속 생물들은 생존조건인 뜨거운 열기, 강렬한 햇빛, 물, 부드러운 바람을 차지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운다. 여름은 강자와 약자를 나누고 전쟁을 마감한다. 

가을은 겨울잠을 준비하는 시기다. 치열한 투쟁이 끝나고 혹심한 겨울에 대비하여 필요 없는 것을 정리한다. 낙엽은 흙으로 돌아가고 열매를 이웃과 나누면서 후손 번식의 희망을 품는 다. 겨울 숲은 다시 부활하기 위해 깊은 휴식에 들어간다. 남쪽의 훈풍이 불어오기를 고대하면서 눈과 얼음 앞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무사히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숲은 공간 차원에서 순례의 서사를 낳는다. 순례의 관점에서 숲은 역사와 스토리를 간직하고 인간과 소통하는 인류학적 장소다. 숲의 정령 신화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창궐한 중세 유럽에서 이단이나 마녀로 낙인 찍혀 처단되었다. 근대에 들어서서 개인화, 탈주술화, 세속화, 사회적 다양화가 보편적 상식이 되면서 숲은 개인의 정서나 공동체 정신의 함양을 위한 관조, 성찰, 대화, 놀이, 휴식 공간으로 변했다. 조선 왕릉의 숲은 신성한 공간으로 왕이 순례하며 왕정의 보존, 유지, 강화 측면에서 활용되었다. 왕릉은 발전시대에 개발 광풍으로 크게 훼손되었지만, 현재 남은 공간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시민들이 자주 찾는 순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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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숲은 경제 개발과 성장의 희생양 역할을 수행했다. 개발의 욕망이 커지면서 수많은 숲이 사라졌다. 지금도 숲은 도로, 공장, 아파트 개발 용도로 훼손되면서 과거의  흔적은 말끔히 치워지고 있다. 숲 안에서는 인간들이 숲의 주인들이 생산하고 공유하는 밤, 도토리 같은 열매와 나물들을 마구잡이로 탈취하여 숲 생명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인간이 숲에 가하는 필요 이상의 폭력은 지구 온난화와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지구를 아름다운 행성으로 만들고 생명의 위대함을 전하는 숲과 함께해야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이 필요한 가을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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