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해방촌에서 제주까지, 어떤 아트 투어 이야기

양은희 yangeunhee@yahoo.com 2017년 11월 07일 화요일 16:23   0면

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32. 해방촌 바꾼 예술가, 제주 터잡고 젊은 작가 네트워크 구축

서울 남산 언저리에 위치한 해방촌은 아파트보다 단독과 연립주택이 많은 곳이다. 행정상 지명인 후암동을 두고 해방촌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1945년 해방이후에 가파른 산동네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서부터이다. 북에서 월남한 실향민이 대거 오면서 해방촌이 입에 붙게 되었고 1970년대에는 지방에서 올라간 이들이 모여들면서 좁은 집과 방에 사람들이 넘쳐나며 사람냄새 나는 곳이 되었다. 

그런 해방촌이 지금은 외국인과 예술가가 모여드는 핫한 곳이 되었다. 당연히 싼 집세와 서울이라는 지리가 그들을 끌어들였다. 2014년 이 동네의 예술가들이 서로 무슨 작업을 하는지 보고 즐기자며 ‘해방촌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를 열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역시 열정적인 동네 작가가 시작하는 법이다. ‘오리여인’이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작가와 주변 인물이 시작했는데 첫해부터 대성공이었다. 대부분 디자인 솜씨가 좋고 SNS 활동이 활발했기에 홍보물 제작, 소문내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비와 재능기부로 시작한 행사는 올해 3년째를 맞는데 작업실 탐방에 그룹전에 옥션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띄게 되었다. 
 
3년 사이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바로 오픈 스튜디오를 같이 진행하던 오리여인의 동료 윤순영 작가가 제주 작가를 만나 결혼하고 작년에 제주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픈 스튜디오’의 열정은 바다를 건넜고 결국 올해 ‘HAO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는 제주에서도 열리게 되었다. 

하오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JPG
▲ 하오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고 몇 주 전 제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0월 21일, 22일 양일간 열린 행사 중에 날씨 좋은 22일을 골랐다. 아침 10시에 시청 앞에서 시작한 오픈 스튜디오는 밤 8시 40분에 다시 시청으로 돌아와 끝이 났다. 오픈 스튜디오에 참가한 작가들이 제주도 전역에 있었고 버스로 이동하며 보고 듣고 먹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해방촌에서는 동네 오픈 스튜디오였지만 제주에서는 ‘섬 아트 투어’가 된 것이다. 

시청 인근에서 피규어 작업을 하는 임현규 작가를 만나고 문화공간 양에서 이승수 작가의 전시, 조천에서 ‘18번가’를 운영하는 안세현 작가, 그리고 조조 작가의 사진 작업실을 본 후 엉또 작가의 일러스트 작업, 개를 그리던 작가, 공방과 작업실을 운영하는 달바 작가 등 젊은 작가들이 미래를 그리는 당당함을 보고 설명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 호텔에서 열린 전시까지 내용도 다양했다. 거기에다 맛있는 도시락 점심에 아름다운 가을의 제주풍광을 즐기고 따끈한 저녁식사로 하루를 마감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이런 행복은 분명 지난 몇 년간 변화된 제주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리라. 

18번가에서 도시락 점심식사.JPG
▲ 18번가에서 도시락 점심식사.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우리를 반긴 작가들은 저마다 제주에서 살아가며 작업하는 이유가 있었다. 조조작가처럼 뉴욕에서 활동하다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찾고자 제주에 온 후 서핑을 즐기며 애완동물과 같이 작업하는 이가 있었는가 하며,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농가주택을 직접 고쳐서 작업실로 쓰는 달바 작가도 있었다. 작업실이 없어서 해변 카페에서 우리를 만나 작품을 설명해준 작가도 있었고 최근 이사했다며 작업실 겸 주거공간을 기꺼이 개방하여 초대한 작가도 있었다. 

작업실에서 우리를 반기는 조조작가.JPG
▲ 작업실에서 우리를 반기는 조조작가.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작가들의 목소리에는 창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현실에서 약간의 불안감도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젊음의 힘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정말 젊음은 모든 것을 극복하는 초능력을 가진 것 같다. 그런 젊은 작가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은 중요한 자산이자 행복이다. 

참여한 작가들도 존경스러웠지만 이날 참가자 중에는 해방촌에서 오픈 스튜디오를 보고 제주 행사가 궁금해서 왔다는 관객도 2명 있었다. 다음날 서울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데도 기꺼이 비행기를 타고 온 그들의 적극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한다는 것의 힘일까?

무엇보다도 새롭게 자리를 잡은 제주에서 아직 낯설기 그지없지만 두려움 없이 그들을 찾아 연결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한 윤순영 작가의 초롱초롱한 눈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뒤에서 묵묵히 진행을 도운 남편도. 섬을 1일에 완주하는 야심찬 계획도 놀라웠지만 적은 소정의 참가비는 경비에 한참 부족했을 것이고 부부는 바쁜 시간을 쪼개 우리를 위해 봉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날 우리를 안내하며 작가를 소개한 윤작가의 목소리는 재능과 재능을 만나게 하는 일, 창작과 향유를 연결하는 일, 그 일 역시 창작처럼 수입이 보장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갈 수 밖에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 용기와 확신은 맛있는 식사를 얹어서 감동으로 다가왔다. 정갈한 도시락과 저녁식사는 제주 토박이 시어머니가 예쁜 며느리를 위해 기꺼이 준비해 주셨다고 한다. 그나저나 윤작가가 이틀 동안의 봉사에 몸살이 나지 않았길 빈다. 

 ▲필자 양은희는...

양은희-사진-2.jpg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스페이스 D 디렉터.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http://www.jejusori.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해방촌에서 제주까지, 어떤 아트 투어 이야기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