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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참여하는 예술의 최전선

김준기 관장 news@jejusori.net 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09:44   0면

[BOOK世通, 제주 읽기] (74) 파블로 엘게라, 《사회 참여 예술이란 무엇인가》 / 김준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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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엘게라, 《사회 참여 예술이란 무엇인가》, 열린책들, 2014. 출처=교보문고 홈페이지.

예술의 최전선이 정치인 시대가 있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사회변혁의 에너지로 분출하던 시대의 예술은 충분히 정치적일 필요가 있었다. 이제 그러한 정치적 화두가 둔각화하면서 바야흐로 예술의 화두는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해왔다. 이에 따라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관심 또한 이론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도 점차 커지면서 사회예술(social art)의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서 그 존재양식을 달리해왔다.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이 한몸이었을 때, 예술은 생활 그 자체였다. 전근대시기까지의 예술은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은 삶 속의 기술이었다. 근대주의예술이 태동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예술적 언어들은 공예로 분류되었다. 화공과 도공, 석공, 목공 등 수무하게 많은 물질을 다루는 기술들을 장인들의 기술, 즉 공예로 분류했다. 당시의 예술생산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누군가의 요청에 따랐다. 그것은 일종의 주문생산이었다. 

하지만 근대기 이후의 예술생산자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했다. 주문생산으로부터 자율생산으로의 전환은 예술노동의 지위를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영역으로 전환하게 해주었다. 예술(노동)의 독립은 위대한 근대성의 전취를 매개한 공론장의 주역이었다. 근대주의예술이 자리잡아가면서 예술교육과 예술시장이 확장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예술체제의 완성을 결과했다. 이제 예술의 생산과 매개와 향유는 독자적인 예술제도에 따라 작동하는 하나의 체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어진 것은 뜻밖에도 예술(노동)과 사회의 탈접점 현상에 따른 예술노동의 소외였다. 본격근대주의시대에 접어들어 이러한 현상은 더욱 극심해졌다. 예술의 자율성은 애초에 권력자들의 주문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갈망했던 순수주의자들의 열정에서 나왔지만, 그것이 결과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예술시장의 간접적인 지배에 호응하는 소수의 시장예술만이 주류를 이루고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이탈한 존재로 겉도는 일이었다.

사회예술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사회를 회피하는 예술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책 《사회 참여 예술이란 무엇인가》가 주목하고 있는 미국의 예술 흐름이 1960년대 후반 이후라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해프닝의 창시자 앨런 캐프로, 페미니즘 교육이론을 반영한 예술창작, 행위예술과 교육학을 탐구한 찰스 가로이언, 새장르공공예술의 수잔 레이시 등이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시기다. 미니멀리즘과 같은 본격근대주의예술(high-modernism)의 정점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회 참여 예술(socially engaged art)은 예술의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 책에서는 ‘사회적 행위’로 번역하고 있는데, 예술 담론에서 ‘행위’라는 용어는 ‘퍼포먼스(performance)’를 뜻하는 것으로 범용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행위보다는 ‘사회적 실천’이라는 말이, 예술의 장 너머 실재 사회적 장에서 작동하는 예술을 뜻하는 사회 참여 예술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멕시코시티 태생의 시각 예술가이자 행위 예술가인 파블로 엘게라(Pablo Helguera)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교육프로그램 디렉터로서 다양한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순회토론, 행동주의퍼포먼스, 시민모임 등을 조직했으며 다수의 저서를 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권위와 명성이 자자한 제도권 미술관에 종사하면서 사회적 시공간을 종횡무진하는 그의 관점을 통해 사회 참여 예술의 면면을 들어볼 수 있는 책은 우리사회에서 생각하는 제도예술의 크기나 방향이 얼마나 협소하거나 편협한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또한 미술관 종사자의 활동이 미술관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장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또한 시사하는 바 크다. 그는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탐구에 집중하기 보다는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통하여 사회에 참여하는 예술의 실재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둔다. 부제인 '재료와 기술 핸드북(A Materials and Techniques Handbook)'은 이 책이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위한 현장 지침서라는 것을 명확히 밝혀준다. 

‘정의, 커뮤니티, 상황 대화, 협력 작업, 부정성, 퍼포먼스, 기록, 교차 교육학, 탈숙련화’ 등에 이르는 이 책의 각 장은 사회 참여 예술의 성공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논쟁적인 비평의 토대를 마련한다. 예술이 감성적 소통기제라는 점에서 사회적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예술이 사회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회 참여 예술은 따라서 물질형식의 창작 결과물이 제시하는 소통만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을 거쳐 참여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서의 사회적 참여에 주목한다. 

이 책의 저자는 ‘개념적 과정 예술’의 전통에 언급하면서 그것이 사회적 교류에 대한 의존성을 가진다는 것을 사회 참여 예술에 대한 정의의 기초에 둔다. 관계의 미학, 공동체예술, 협업예술, 참여예술, 대화예술, 공공예술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 참여 예술 관련 개념들의 중심에는 ‘사회적 실천’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는 점 또한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상징적인 실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실천이 중요한 것이며, 비록 사회 참여 예술이 예술과 비예술 영역의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인 사회적 실천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아트는 긍정의 메시지를 지향하는 것이 정설로 자리잡고 있지만, 사회 참여 예술의 관점에서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예술계의 매우 세련되고 개념적인 방법으로 공동체의 개인들에게 이롭지 않은 행위를 통해서 결과론적으로는 공동체성을 재확인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일시적인 저항이나 긍정보다는 지속가능한 네트워크와 플랫폼으로 존재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관객 참여의 종류도 다양하다. ‘맹목적인 참여, 지시된 참여, 창의적인 참여, 협업 수준의 참여’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관객의 성격, 위치, 관계, 태도 등에 따라 유연하게 고려하는 것이 사회 참여 예술에서의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술가 개인이나 집단이 “상황”에 대한 인식도 중요한 관건이다. 협력이나 상반된 이해관계, 예술가의 기대치와 상황의 불일치, 행위 주체들의 신뢰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면서, 나아가 사회적 작업과 사회적 실천 양자 간의 차이를 언급한다. 전자는 사회적 규범 안에서의 일이고 후자는 예술적 규범의 일이다. 따라서 양자의 불일치나 불균형은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이럴 때일수록 사회의 주요 규범인 상호 존중과 포용술, 협력적 개입 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예술가와 공동체의 참여적인 “대화”와 상호 이해관계도 중요하다. 양자 간의 정확한 균형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의에 따른 온정주의나 비판적 대화를 포기한 순응주의로는 성공적인 사회 참여 예술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협업”은 참가자들에 대한 기대치를 분명히 파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주인의식을 불어넣고 적극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그 전제는 상호작용이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개개인이 협업에 부여하는 가치를 알아야 하며, 유연성 없이 계획을 관철하려는 생각 또한 위험한 것이다. “퍼포먼스"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연극이나 음악, 춤은 매력적이지만 그것은 관객은 구경꾼에 머무른다. 교육에서 이점은 ‘에듀테인먼트’라는 말로 비판 받곤 하는데, 일시적으로 유희적 과정을 거치더라도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엄정한 관점이 필요하다. ‘작가의 존재는 인지 가능한 결과물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는 물질형식의 작품 없이 존재하기 쉽지 않다. 

사회 참여 예술은 무형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핵심이다. 이럴 때는 “기록”이 예술가의 존재감을 높이는 근거일 수 있다. 하지만 기획자와 예술가, 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기록을 통하여 사회적 소통과 공통 체험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을 전시를 위한 최종결과물로 의도하는 것은 사회 참여 예술과는 무관하다. 예술 프로젝트로서의 교육은 관객의 민주화를 위해 대상자를 파트너, 참가자, 협력자로 만들지만 그것을 ‘교육학’에 종속하지 않으려고 한다. 엘리트예술 교육으로 예술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것만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자들에게 교육이라는 일방향성을 강요하지 않고 창의적인 소통을 매개하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는 점에서 “교차 교육학”은 사회 참여 예술의 중요한 덕목이다. “탈숙련화”는 예술교육이 창작이나 제작의 완성도를 지향했을 때의 문제점을 간파한 개념이다. 기술적인 지식이나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한편, ‘모든 비예술적인 전문성이 예술이나 디자인 과정에 접목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예술 개념은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socially engaged art)’다. 번역어는 ‘사회(적으로) 참여(된) 예술’이다. ‘소셜 아트(social art)’의 번역어로 ‘사회예술’을 써온 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 사회적 자본 등 사회‘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용어들을 범용하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개념적 예술이라는 말보다는 개념예술이 자연스러운 반면, 사회리얼리즘보다는 사회적 리얼리즘이 덜 낯설기도 하다. 따라서 ‘적’자 하나로 큰 틀이 흔들릴 일은 아니니 일단은 접어놓기로 한다. 문제는 예술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움직임들이 창작과 매개 영역에서 활발한 데 비해, 향유 영역의 요구를 집결할만한 사회의 주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예술은 사회화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회는 예술화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불균형 또한 예술의 몫이다. 

그것이 사회의 한 부분집합으로서 존재하는 예술의 처신이라는 점. 유구한 세월을 흘러온 역사가 말해주고 있거니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회적으로 참여한 예술가들의 즐겁고 유쾌한 일들을 살펴봐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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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관장

현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과정 수료.
전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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