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30) 제주 강정마을 미술관 '살롱드 문'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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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문희 (강정마을 미술관 살롱드 문 운영)
: 해군기지 저지 운동의 양상도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검열하게 된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돕는 일인가? 어느 정도 확신하면서도 이 공간만 생겼을 뿐이지 무엇으로 채워갈지는 내부에서도 옥신각신이 있다. 

배진희(제주대학교 SSK연구단 연구조교)
: 검열이란 무엇인가?

엄문희
: 강정의 문제로 대변될 수 있는 주제들이 있는데, 그것에 맞는 일인가? 운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작용이 있다. 한쪽으로는 마을 미술관으로 편안하게, 보편적인 미술관의 기능이 이 공간의 기능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친구들도 있다. 의외의 다른 의견이 많았다. 일의 방식이나 순서가 바깥에서 안으로, 안에서 바깥으로 되어가지 않나? 우리에게는 미술관이라는 명칭이 이슈인 것이다. 안에서는 미술관, 그 이름에 도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널리 통용되는 뮤지엄으로써의 미술관이 아니라 이런 공간은 왜 미술관이면 안 돼?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 살려서 그걸 통해서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 어제 전시 오프닝을 했던 두 분이 오셔서 좋은 것이 문지기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이 공간에 작품을 걸고 방문한 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홍영미(이재욱 엄마) 
: 인연인 것 같다. 전시라고 하면 미술관을 생각하는데 기억공간에서 했던 전시는 현실에서,  내가할 수 있는 공간에 드러나 있는 전시라 이곳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여기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다. 이 전시가 이렇게 멋지게 될지 몰랐다. ‘살롱드 문’ 이름이 멋지다. 환영받는 느낌, 아이들이 제대로 된 자리에 와서 빛을 발하는 느낌을 받았다. 

엄문희
: 이 공간은 여러 용도로 변신한다. 그러고 싶다. 또 더 촉진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키나와에 보면 <사키마 미술관>이라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특색 있게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다. 다다음주에 가보려고 하는데, 미군기지로 편입된 사람이 그 돈으로 작품을 구입하고 그걸 가지고 미술관을 만들었다. 담벼락이 딱 붙어있다. 큰 군사기지 귀퉁이에 작은 공간으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군사기지가 가진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평화를 이야기한다. 사실 군사기지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개념이 있는 친구들은 특성화된 공간, 문화공간, 강정에 있기 때문에 평화박물관의 형식으로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여러 용도로 사랑방으로써의 그림을 걸 수 있는 곳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홍영미(이재욱 엄마) 
: 전시를 부담 없이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자리가 잡히면 아 강정에 가면 살롱드 문이 있고 어떤 전시도 할 수 있다고 회자될 수 있을 것이다. 

정영신 제주대학교 SSK연구단 전임연구원
: 사키마 미술관에 가봤다. 장소자체는 반환받기 위해 싸우다 만든 것이라 그 과정 자체가 상징적인 곳이다. 상설전시를 하는데, 오키나와전에 지옥 같은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서 그 한 작품만 보고 나와도 가볼만한 곳이 되는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 곳과는 만든 과정과 상징적인 부분이 다르기는 하다. 마을안에 있고, 집의 일부를 공간으로 사용하다 보면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과정에 만들어져 있기는 하더라도, 내 생간엔 이왕에 만들어진 공간의 특징을 잘 살려서 사랑방이자 여러 사람이 와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홍영미(이재욱 엄마) 
: 어떤 식으로 유지를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지 않으면 좋겠다.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는 방식이면 좋겠다. 고민할 게 아닌 것 같다. 21세기, 오늘인 11월 8일에 맞춰서 이 공간을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진희
: 이게 가장 어렵다. 그래서 고민하는 것 같다. 마음은 이 공간이 효과적, 효율적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해 내면 좋겠는데 운동이라는 것도 변하지 않나? 그래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사랑방도 필요하고 복합적이어서 어렵기도 하지만 그래서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홍영미(이재욱 엄마) 
: 강정에 3년 전에 왔을 때의 느낌, 지난해에 왔을 때 느낌, 올해 왔을 때 느낌은 같다. 운동의 큰 기조는 같지만 퇴보하는 느낌이 있다. 해군기지가 급격히 들어오고 그런 변화에서 답답함은 있지만 사랑과 평화, 생명은 그대로이다. 마치 전략과 전술. 법과 시행령같은 것이다. 구심은 분명하다.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엄문희
: 그래서 고민이다. 어제도 30일 가까이 굶고 있는 제2공항 사태에도 마음이 힘들고 힘을 모아줘야 하는 공간이, 장면이 여러 곳에도 있었다. ‘검열’이라는 자체도 그걸 하면서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에 자칫 잘못하면서 이 공간 때문에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고정된 공간에서 바깥으로 열고 닫고 요동치게 할 수 있는지 스스로 그게 준비가 덜 된 게, 어제 문득 그것과 고민하고 있는 걸 느꼈다. 

배진희
: 주변에 다양한 가치관과 다양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니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 고민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정미아 (살롱드 문 문지기)
: 사적인 게 컸을 수도 있다. 비슷한 고민들을 해왔고, 처음엔 강정이라는 곳을 피해서 다녔다. 언제인가부터는 그게 부담이었다. 미안함과 더불어. 그러다 이 공간을 만든다고 하니 좋은 것 같다. 강정이 변하고 있고 원하든 원치 않든지 해군기지가 들어오고 그걸 남기고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건 의미가 있겠다고 했다. 지난해 2월에 와서 당시에 기억공간지킴이를 했다. 여기 공간 열고 문지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 

엄문희
: 이 공간의 계기가 됐던 게 기억공간이다. 수학여행으로 스쳐갔을 공간이 있는데, 기억의 위치가 국가가 기록하는 방식이거나 너무 큰 이야기, 큰 타이틀로만 남아버려서 자잘한 이야기가 남지 않는 곳만 봐왔다. 강정에 1년 살면서 느낀 게 뉴스 제목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들은 말질로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 무엇이 어떻게 됐다는 그 사이에 있는 그 내용이다. 그런 내용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방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제 지론 중 하나가 ‘시작해야 시작 된다’이다. 방 한 칸이더라도 명명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해군기지와 관련해 좋지 않은 일을 겪고 나서 이것을 대대손손 알릴 것이라고 해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해군기지를 마주보는 곳에 뭔가 만들겠다고 말하곤 했다. 권력이 지나갈 때마다 거처에서 나갈 때마다가 나를 만나지 않고는 못 지나가게 하고 싶었다. 돈도 한 푼도 없으면서 귤밭을 알아봤다. 그런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강정에 더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쯤에 이 공간이 생겨나서 앞뒤안보고 하겠다고 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그 날 이후와 그 전과 다르다. 감히 살롱드 문의 시작을 2014년 4월 16일이라고 했다. 이 날이 없었으면 강정에 살고 있지 않을 테고, 이 공간에 기어이 기억하고 기록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절박함이 없었을 것이다. 411번째 서명 상자를 들고. 매체로만 가족들을 만나다 처음 만들었다. 사람 이름이 써 있었다. 그때 완전히 무너졌다. 반걸음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살롱드 문이 문을 열게 된 과정을 일지로 일일이 써놓는데 이런 구절이 있다. 
‘앤디(아들) 머리 기르겠다고 선언함’

아들이 감기에 걸려 목수건을 하고 갔는데 남자애가 꽃무늬를 하고 왔다고 놀림을 받았다. 여기 학교에는 강정에 원래부터 살던 아이와 해군 부모를 둔 아이들이 섞여있다. 우리 아이는 마을에 있던 아이이면서 들어온 아이다. 어떤 때는 배제되기도 하고 어떤 땐 해군 부모 아이들의 편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애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변태라는 소문이 났다. 학교 친구가 지나가며 놀렸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이야기를 해줬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잘해서 이야기를 잦아들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아이가 머리를 기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이가 머리를 기를 수 있고 여자가 머리를 밀 수도 있는데 남자는 왜 치마를 입지 말아야 하지?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 있던 일에 대한 해결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머리를 기르고 펌도 해줬다. 복사를 하는데 남자 복사가 단정하지 못하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이런 게 중요한 이유는 ‘문’은 벽이었던 곳에 통로가 돼서 들어올 수도 있고 나갈 수도 있고 벽도 될 수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지난해 첫 해는 마을에서만 살았다. 예전엔 제주에 오면 몇 개도 올라가봤다. 집중해서 마을에 살았다. 이제는 마을에 잘 없는 사람이 됐다.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기보다 그 마음이 만들어졌는지 나와 있다. 

김영실(정차웅 엄마)
: 지금 현재 새로 발생하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그 전에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그 때는 그 때에 맞는 기록이 남아야 한다. 4월 16일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잘 표현이 안 된다. 그 때 처절했던 게 다시 표현이 잘 안 된다. 당사자들이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배진희
: 글로는 남지는 않지만 이미지로 남았던 것이 작품에 남아있는 거 같다. 

김영실(정차웅 엄마)
: 처음에 액자를 만들 때에는 꽃을 올려놓고 꾸미는 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 위주가 되었다. 처음엔 엄마가 좋아하는 색,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었는데 요즘엔 부모님 모셔다가 아이가 뭘 좋아했는지, 뭘 하고 싶어 했는지 물어보고 있다. 아이들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유가족들끼리 있으면 엄마들은 이야기를 하는데 아버지들은 밖에 나가 있는다. 그래서 아빠들의 작품은 에피소드가 많다. 몇 년이 지났어도 처음 오는 아빠들도 많다. 뒤돌아서 몰래 만들거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엄마가, 아빠가 뭔가 하나 해줬다는. 그것도 하나의 기록이다. 

엄문희
: 이런 걸 보면 작품이 연대기가 아니라 사건이나 관계된 글들로 그 아이가 기록되어 있는 느낌들이다. 다른 방식의 생애사가 남아있다. 신기하게 편지글에도 남아있다. 그게 참 감동적이었다. 언어로 표현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만든 사람의 주고 싶은 형태가 있다. 이 전시는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멀리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작품이 아니라 담아야하는 작품이구나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저에게 더 특별했다. 

홍영미(이재욱 엄마)
: 이 전시를 하게 해준 분이 항상 꽃 재료를 가지고 청운동 농성장에도 꽃 재료를 담은 캐리어 끌고. 엄마들의 이야기를 쓰고 뭘 하거나 엄마 메모지를 넣고 다닌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끔 한다.

엄문희
: 아픈 일을 겪은 사람은 발언함으로써도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된다. 마을 삼촌들이 시인, 작가가 된 분들이 계시다. 견딜 수가 없어서 글을 써서 마음을 체화시켜서. 그런 책들이 마을에서 나왔다. 

정영신
: 이 공간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강정마을이 많은 일을 겪고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림이나 시, 그런 것을 만드는 작업으로 치유 받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엄문희
: 먼저 와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은, 이 공간의 존재를 모르는 줄 알았다. 친한 삼촌들에게도 말을 못했다. 그런데도 전시하면서 현수막 걸고 문지기들이 커피 마시고 가라고 이야기를 한다. 의외의 순간에 다른 마을 삼촌들에게 해군기지 반대를 하는 우리와는 결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그 분들이 왔다. 미술관이라는 이름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평화 이름 들어간 게 중요해서 그 후에 생긴 이 공간도 평화를 달아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 이름을 버릴 때 힘들었다. 평화대신 가져온 이름이 마을미술관이다. 

배진희
: 세월호 이후로 사람들이 많이 변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여러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예술이라는 것을 통해서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나의 모습을 다르게 만나고. 모든 운동이 주는 기폭제, 원동력이 아닐까. 

엄문희
: 연세(사글세)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찾아야하는 고민들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대변하고, 대신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공식적으로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후원 같은 걸 받지 않는다. 그래도 힘들어서 상자를 뒀다. ‘내년에도 이 공간을 쓰기 위해서’ 라는 문구를 써 넣었다. 

서귀포에 있는 어떤 여성분이 옷을 줘서 바자회를 했다. 그 때부터 같이 있는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해서 어머니들이 부채와 엽서를 보내줬다. 완판을 했다. 그걸로 실제로 운영을 하고 있다. 전시 관련해서 오프닝 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자꾸 우리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홍영미(이재욱 엄마)
: 마음의 부담인 거다.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마음이라는 게 소소한 정성이다.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었으면 한다.

엄문희
: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그 결과물로 같이 했던 사람들끼리 재정사업으로 할 계획이 있었다. 전시했던 사람이 그림을 팔게 된 경우, 자발적으로 30%를 주겠다고 해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됐다. 운영하기 위해서 비품도 사야 하니 비율이 있다. 

배진희
: ‘세월호 가족 꽃잎 편지’ 전시는 고정된 갤러리는 따로 없고 전시가 있으면 다니는 건가? 

다른 엄마
: 현재 참여한 사람이 70명이다. 250명이니, 아직 멀었다. 50%만 해도 성공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엄문희
: 이런 작업이 너무나 중요한 게 어느 때부터 몇 명이 죽었다, 예를 들어 3명이라고 하면 얼마 안 죽었네? 하게 되더라. 그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이런 것들이 너무나 중요하다. 자본도 대형화되고, 체인화되고 통제하기 쉽게 가는데 이 가운데 작은 책방 핸드메이드로 하는 가게들이 힘겹지만 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지만 온전히 하나인 것의 힘. 절대로 숫자로 기록돼서는 안 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이 도달하려고 했지만 닿지 못한 제주에서 아이들을 기억하는 공간이 시작이었다. 세월호에 집중하고 있다. 세월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더 많이 하고 있다. 이 공간은 강정 안에 공간이면서 세월호도 강정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함께 하는 공간이다. 

홍영미(이재욱 엄마)
: 우리가 사실 슬프지만, 언제까지나 슬플 수는 없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옆으로 전달이 된다. 우리는 이걸 하면서, 전시를 하면 슬퍼서 못 보겠다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안 된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라 다르게, 밝게 접근하려는 의도가 있다. 주제가 꽃이기도 하니 슬프고 무겁기보다는. 

배진희
: 작품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공통된 게 뭘까, 여기는 보면서 치유가 되면서 내안에 씨앗 같은 것들이 움튼다. 기억공간에 가서는 분노의 씨앗이 된다. 아름다움이나 그런 감정이 씨앗이 된다. 공통되는 건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이다. 

정영신
: 그런 이미지였던 건 사실이었다. 공간을 만들 때의 상황이나 필요했던 면도 분명히 있다. 그런 걸 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차분해진 것도 있다. 공간을 새로 만든다고 하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일 테다. 

엄문희
; 본인들이 겪은 엄청난 일에 대항하는 게 아니라 그걸 넘어서서 앞으로 올 사회에 대한 길을 닦고 있었다. 그런 일들을 하고 있어서 나야말로 정말 미안하다. 

홍영미(이재욱 엄마)
: 밀양의 할머니들이 우리보다 먼저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해야겠구나, 배워가는 부분도 있다. 

엄문희
: 나는 감히 직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고 있어서 존경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김영실(정차웅 엄마)
: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우리는 해상 사고라고 생각했다.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어서 금세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지금도 앞으로 언제 될 지 모른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음모가 있고 뒤에서 뭔가 있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했다. 대구 지하철 유가족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팽목항으로 뛰어갔다. 부모들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줬는데 먼 이야기인 것 같아 잘 듣지 못했다. 21세기에 설마 이런 일이? 믿었다. 그래서 416TV가 생기고 전국에 간담회도 다녔던 것이다. 

홍영미(이재욱 엄마) 
: 부모들끼리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가 감지를 하고 먼저 한다. 가족들이 먼저 나선다. 활동가들도 나서다가 손 뗀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확신을 가진 게 1년 정도다. 돌아보니 4년 됐다. 우리는 4월 16일에 멈춰있는데. 조금 희미해졌다는 것뿐이지. 유가족이 직업이 될까봐 무섭다. 지금은 직업이 된 거 같다. 무보수직업. 아이들의 에너지가 우리에게 넘어와서 우리가 힘내서 다닐 수 있다. 내 이름을 쓰지 않는다. 내가 내 가슴에서 그만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쓰고 다닐 것이다. 그게 신념처럼 굳어지는 것. 이제는 우리가 웃는 게 내면에 있는 인간이 가진 본성 같은 것들이 발현되는 거 같다. 꽃으로 빛으로 이야기할 때 가장 반짝이는 이유가 그게 전달되는 것이다. 지금은 웃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진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보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자연 자체가 생명이고 인간도 자연에 속한 생명이다. 물, 빛, 공기, 소리. 음과 양의 조화를 하지 못해서 이러게 된 거다. 점점 생명을 좀먹어가는 상황을 보면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희망. 그 저항의 힘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영신
: 살롱드 문에 올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된다. 다음엔 누구의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기대하게 된다. 

엄문희
: 강정과 강정 바깥을 이어주는 문이 된다. 강정, 4.3, 세월호 이어져있다고 말하기는 하는데 공간이 있어서 보여주고 만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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