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44) 드세요 할 땐 들지 않았다가 입에 넣어라 해야 먹는다

* 잡숩서 : ‘잡수라(잡수세요), 드시라’의 제주방언
* 말앗당 : ‘말았다가’의 제주방언, 하지 않았다가
* 아가리 : 주둥이, 입의 속된 표현, 비속어
* 박으랭 : ‘박아라’의 제주방언, 여기서는 ‘먹어라’의 뜻
* 해사 : ‘하여야(해야)’의 제주방언

참 자극적이고 공격적이다. 도대체 어떤 정황일까. 어쨌든 이쯤 되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여간 험악해 있지 않을 것이다. 한때 지나가면서 한 말일지는 몰라도 일단 상호간의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테다. 서로 간 인간적인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욕설 탓이다.

‘아가리에 박으랭’이란 말, 이만저만 한 욕지거리가 아니다. 퍽 하면 입에 발라 나오는 '니미, 씨브럴' 하는 욕설에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영문을 알 수 없으나,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언사다. 까딱하다 욕이 거친 행동으로 옮아갈 낌새마저 엿보일 지경이 아닌가. 더욱이 다른 일도 아닌, '먹는 것' 음식을 가지고 윽박지르고 있으니…. 

movie_image.jpg
▲ 2006년 개봉한 영화 <구타유발자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속에 거친 욕설과 폭력이 독특한 매력을 선사하는 숨겨진 명작이다. '잡숩서 혼땐 말앗당, 아가리에 박으랭 해사 먹나'는 속담과 영화 사진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출처=네이버 영화.
‘입에다 넣어라 하니, 먹는다’라 하고 있다. 아무튼 이 욕을 듣고 먹을 것을 입에 갖다 대고 있으니 용하긴 한 사람이다. 욕을 들어 싼 건가.

여염가에서 주고받던 게 욕설이었다. 척박한 땅에 바람까지 거칠어 소출은 적은데다 몸은 지치고 삶이 고단한 판에 품위를 지키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제주 방언을 들여다보면 욕이 여간 무성하지 않다. 순화되지 못한 감정을 그대로 발설한 것들이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낯 따갑지만 몇몇 예를 들게 된다. 

“배아질 발로 차 불려”(배를 발로 차 버릴까부다), 
“주둥일 죄어 박아 불라”(입을 쥐어박아 버린다),
“대갈통을 모사 불라”(머리퉁을 깨어 버리라.)…. 

입에 담기가 거북하다. 표현이 노골적이고 거칠기 짝이 없어 이만저만 귀에 거슬리는 게 아니다. 악다구니 수준이다. 이런 욕설을 듣고도 어떻게 참아 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주의 관아에도 기록에 남을 만큼 특별한 욕설 장면이 있었다.

1651년 (효종2), 제주 암행어사 이경억 이야기는 흔치 않은 일. 정의현 수령이 제주목 관아에 들이닥쳐 목사 김수익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하극상이 벌어진 것이다.

신묘 새해다. 팔도에 나가 있는 관리들이 궁궐을 향해 임금의 만수무강을 빈다. 절해고도 제주 관아에서도 망궐(望闕)의 예(禮)가 진행됐다. 관덕정 왼편에 자리한 목관아에 제주목사 김수익 이하 아전들이 늘어섰다. 엄숙한 자리다. 목사가 큰소리로 불만을 터트린다. 

“정의현 안 즙은 끝내 불참이란 말이냐? 이런 불경스러운 일은 처음이로다. 전하의 만수무강을 기리는 일보다 더 중한 일이 또 있더냐? 고작해야 고뿔에 미열인 걸 큰 병이라 칭탁하다니….”

이때다. 대문 밖이 소란스럽더니 마당 안으로 웬 거지 하나가 장칼을 차고 들어섰다. 다 해진 모자, 누더기 행색이 흉측했다. 정의현감 안 즙이었다. 아전들이 개똥을 피하듯 물러선다. 그는 칼을 빼들더니, 대뜸 목사를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 자격이 있소? 한 치 부끄러움도 없단 말이오? 눈과 귀가 있는 자들이라면 제주목사 김수익의 죄상을 모를 리 없을 터. 죄상을 낱낱이 밝히리라. 첫째 목사는 재물에 굶주린 개처럼 제주고을 백성들의 피땀을 쥐어짜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종6품 현감이 목사에게 퍼붓는 욕설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판에, 목사가 덜덜 떨며 소리 질렀다.

“여봐라,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의 칼을 빼앗지 못할까.”

안 즙, 카악 침을 뱉고는 대문 밖으로 훠이 훠이 몸을 휘저으며 걸어 나갔다.

사건 전말이 조정에 날아들었다. 급기야 암행어사 이경억이 제주에 내려왔다. 그의 눈에 비친 제주민의 삶은 실로 곤궁하기 짝이 없었다. 어린 비바리에서 나이 든 잠녀(潛女)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자맥질, 먹을 물을 길러 물허벅 진 채로 수 십 리를 걸어가는 여인네들의 발걸음을 눈으로 목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진실을 파헤쳤다. 가렴주구(苛斂誅求: 조세 등을 가혹하게 거둬들여, 백성을 못살게 들볶음)한 목사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결국 이경억이 올린 서계(書啓)에 의해 왕은 제주목사 김수억을 가둬 다스리다 울산으로 유배시키고, 정의현감 안 즙 역시 하극상의 죄를 면치 못해 옥에 가둔 뒤 유배됐다.

우리말에 욕설이 심심찮다. ‘아가리에 박으라고 해야 먹는다’의 ‘아가리, 대가리, 주둥이 등의 비속어뿐인가. 남녀의 성기며 성행위를 지칭하는 따위, 개‧짐승을 가리키는 쌍스러운 표현에다 ’뒤져라, 꺼꾸러져라‘ 같은 사나운 말로 남을 흠집 내고 욕보인다.

욕이라고 다 나쁘게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경상도 지역의 “아이구, 이 문등아!”나, 호남 지역의 “오매 이 잡것!”처럼 욕말이 다정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종의 ‘애칭욕’이다.

“똥물에 빨아서 오줌에 튀길 놈.” 

주고받는 사람이 친구끼리이고 자리가 술판이 된다면 농으로 통하고 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을 테다. 이런 농욕은 이를테면 불의의 당돌함, 기상천외의 즉흥성을 내보이는 기발한 맛이 우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이 품격을 놓아 버리면 너절하거나 지저분할 우려가 다분히 있다. 말에는 일정 수준의 품위가 자리해 있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표출이기 때문이다. 그게 말이다. 우리에게 해학성의 결핍이 이런 어거지식 극단적 표현을 빌리게 된 건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욕을 쌍소리 혹은 아가리질이라고 굳이 훼폄(毁貶: 헐뜯고 깎아 내려 말함)되기만 할 것을 아니지만, 흉측하고 더러운 소리, 추잡하고 사나운 소리는 삼가는 게 바람직하다.

“시원하게 욕 한 번 했다”고 말한다. 상처 받는 자의 자기치유행위라는 면도 욕의 기능에 함축될 것이로되, 지나치게 가학성(加虐性)을 극대화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예를 들면, “뒈져라, 망해 버려라, 지랄 염병하네”처럼 사설이 끼어드는 경우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저런 경을 칠 놈 같으니라고, 병신이 육갑하고 있네, 급살 맞고 뒈져라.”

이쯤 되면 성현군자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주먹질 같은 행동단계로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단순한 일이 아니다.

설령 어쩌다 감정이 몹시 상했다 치더라도 음식인데 “아가리에 박아라” 할 건 아니다. 언짢더라도, “여러 번 얘기하는데, 어서 좀 드시지요”라 하면 좀 좋은가. 듣는 쪽에서 자신이 너무 심했구나 하고 미안한 맘이 들게.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증명사진 밝게 2.png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