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52. 청춘의 폐허에서 쌓아올린 금자탑을 보라

1972년, 제주시 소라다방에서 태동한 ‘골빈당’의 결성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20대 떠꺼머리 총각이었던 골빈당의 당원들은 10여년 후 줄줄이 시인과 작가로 데뷔했고, 20~30년 후에는 중앙지 사장, 국회의원, 대학교 총장 등 우리 사회의 중추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골빈당은 해방 이후 제주사회에서 젊은이들로 구성된 최초의 ‘에꼴 드 제주’(제주학파)였고 ‘누벨 바그’(새 물결)에 다름 아니었다.

1973년 골빈당의 준동(?)에 격분한 도내의 부잣집 자식들이 ‘골찬당’을 조직했으나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다. 이념적 동일성이나 지적 수준에서 골찬당은 골빈당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엘리아 수필집》이라는 명저를 남긴 차알스 램은 우자동맹(愚者同盟)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우자동맹의 멤버는 당대 영국의 지성계를 이끈 예술가, 학자, 정치가들이다. 그러니까 이 모임의 명칭은 ‘현자동맹’의 역설적 표현이다. 런던의 발상법과 같은 맥락에서 골빈당이 창당됐다는 사실을 골찬당의 멍텅구리들이 알 턱이 없다.

골빈당원들은 1970년대에 소라다방을 아지트로 삼고 칠성통과 원정로, 남문로의 술집을 누비며 낭만을 구가하던 로맨티스트들이었으며, 암울한 군사 독재시대의 엄숙주의와 압제적 분위기에서 오로지 문학과 술로, 열정과 광기를 분출하려고 했던 데카당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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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제주시 원정로 거리 풍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처럼 동시대적 감수성을 공유했던 당원들의 연대의식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차 희석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들의 가슴 속에는 잃어버린 세대의 통렬했던 기억들이 향수처럼, 화인(火印)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2014년, 골빈당의 멤버들 중 일부가 참여한 ‘예담길’이 창립됐다. 예담길은 ‘예술에 대한 담론을 길 위에서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러한 모임의 원조는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가 아닐까 한다. (소요학파에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리더가 있었지만 우린 모두 평등하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친구 열 사람과 ‘죽란사’라는 시회(詩會)를 만들어 살구꽃, 복숭아꽃, 매화가 필 때나 홍시가 익을 때 모여서 정담을 나누고 시를 지었다. 《속음청사》에 보면 제주에 유배 온 구한 말 외부대신 김윤식도 제주토박이 지식인들과 함께 ‘귤림시회’를 만들었다. 필자의 조부도 이 시회의 멤버였는데, 풍광이 좋은 경승지를 찾아다니며 주흥(酒興)이 무르익으면 시로 자연을 노래하던 풍류객들의 모임이었다. (옛 사람들은 이런 여유와 운치가 있었다)

근래의 영국에서도 《반지의 제왕》의 저자 톨킨과 《나니아연대기》를 쓴 루이스의 걷기 모임이 있다고 한다. (명작은 골방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제주의 예담길은 이 같은 동·서양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는 예술가들의 걷기 모임이다. 예담길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첫째, 아동문학을 제외하고 문학의 전 장르가 참여하고 있다. 김병택(평론), 문무병(시), 장일홍(희곡), 김가영(수필), 김석희(소설), 나기철(시), 김대용(번역), 김광렬(시), 양원홍(시).

둘째, 김대용을 제외한 전원이 현역(직장)에서 은퇴한 60대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멤버 9人 중 4人이 금년에 책을 발간해 11월 26일 오후 5시부터 신제주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북 콘서트’를 연다. 춤과 노래,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 보일 예정이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한 때 아나키스트였고, 세상의 변혁을 꿈꿨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은 성실한 생활인일 뿐이다. 이제껏 우리는 이기주의, 배금주의, 속물주의를 배격하고 경멸해 왔다. 그리고 권력, 명예, 돈 같은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해 우리의 순결한 영혼을 팔지 않았고 더럽히지도 않았다. 이게 우리가 지켜온 최후의 마지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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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데카당스를 탐미적 퇴폐주의라고 정의한다면 길 위의 방랑자요, 유목민인 우리는 자신을 여전히 데카당이라고 명명할 것이다. 남은 여생도 이태백처럼 마시고 배호처럼 노래하고 이사도라 던컨처럼 춤 추리라. 그러면서 생의 절정을 향해 시지프의 포복을 계속할 것이다.

골빈당이 ‘20세기의 데카당’이라면 예담길은 ‘21세기의 데카당’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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