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내 대학생에 ‘교자채신(敎子採薪)’으로 쓰이는 복권기금의 가치 / 고봉운 교수 

숱한 미디어를 통해 청년 실업에 대한 염려스러운 보도가 연일 쏟아지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사실 학년말 대학가는 취업과의 전쟁 중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 중국어 등의  어학점수는 물론이고 해외 인턴십, 해외 어학연수, 수많은 자격증과 교육 이수증 등 그야말로 그 동안 쌓아 놓은 스펙들을 취업 서류에 담느라 동분서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주함을 모든 대학생이 공유하지는 못하고 있다.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생업 일선에서 일하고 땀 흘리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 장학제도 등을 통해서 등록금의 조달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요즈음 대학생들처럼 스펙을 쌓기 위한 자기만의 시간을 내는 것은 고사하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일터에서 지내야 하는 그야말로 학습과 생계의 이중고에 노출되어 있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최근 이런 젊은이들에게 신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제주특별자치도 평생교육과에서 운영하는 ‘해외 무료 어학연수 프로그램’이다. 대학의 형편이나 여건에 따라 운영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해외 어학연수는 고사하고 어학관련 학원조차 다니기 힘든 형편의 저소득 계층 대학생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해외 연수에 따르는 학비, 항공료, 체재비 등을 전액 지원해주고, 일부 선발을 통한 일반 학생들에게는 체재비를 제외한 약 50%에 해당하는 항공료와 학비만을 지원해 주는 전국 유일의 프로그램 인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애로사항도 많았다. 저소득 계층 대학생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인지라 아무리 무료라고 해도 해외어학연수가 엄두가 나지 않는 다는 가슴 시린 사유부터, 지금 대학생활을 하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한다는 안타까운 고백까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줄탁동기(啐啄同機)’의 가르침으로 수차례의 상담과 설득을 통해 지난해에는 단 7명의 저소득 대학생만을 참여 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해 참여했던 학생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아서인지 그들이 파수꾼이 되어 올해 모집에는 선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제주국제대학교에서도 지난해의 2.5배에 해당하는 16명의 학생이 호주 브리즈번에 있는 명문 그리피스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

최근 10월에 이들 학생들의 생활을 살피기 위하여 중간점검을 다녀왔다. 물론 생전 처음 경험하는 외국 생활이라 낯설기 마련이고, 비싼 물가 등의  애로도 많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만면의 웃음이 떠나지 않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 번 더 오고 싶다. 나중에 학교에 돌아가면 주변 친구들이나 선ㆍ후배들에게 적극 권유하고 싶다.”는 간절한 작은 바람들을 쏟아내는걸 점검기간 내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점검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서 들은 포부는 “제주에 투자하고 있는 해외기업이나 다국적 기업 등에도 지원을 해보고 싶어요!”였다. 자신감 충만한 외침이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해외 무료 어학연수의 재원은 복권기금에서 가져온 20억 원으로 제주도내 대학생 수백 명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귀하디 귀한 재원이다. 
 
제주도의 내년 복지 예산은 최초로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청년 실업의 가장 큰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도 있지만, 이 보다 취업을 일찌감치 포기 해버리는 소위 ‘취포생’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을 들여다보면 가정형편이 넉넉하여 굳이 일자리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서부터 회사가 요구하는 다양한 스펙 등을 갖출 엄두를 못 내거나, 갖추기 위하여 아르바이트와 같은 임시직으로 전전긍긍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물고기를 주기보단 낚시 하는 법을 가르쳐라”라는 사자성어 ‘교자채신(敎子採薪)’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물론 해외 무료 어학연수와 같은 방법만이 저소득 계층이나 취포생들의 취업에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2년간의 시행을 통해서 느낀 바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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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봉운 제주국제대 교수 ⓒ제주의소리
이들에게 장학금이나 생활비 보조, 취업수당 보조 등의 물고기를 쥐어 주기 보다는 시기에 맞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낚시 법을 터득 하는데 지원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일자리 대책이고 진정한 복지가 아닐까?

혹여나 제주의 대학생들에게 이제 막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 ‘신바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멈춰버린다면 캠퍼스에서 내년을 기약하며 준비해온 수많은 청년들의 눈망울을 어찌 피해야 할지 대학의 취업을 담당하는 부서장으로서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 고봉운 제주국제대 교수, 제주국제대 취·창업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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