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76) 남종영·손택수 『해서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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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영·손택수 『해서열전-97권의 책에서 건져 올린 바다 이야기』글항아리. 2016년.
정확히 1년 전 이맘때이다.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인류가 공감할 만한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된 것이다. 유네스코는 산업화와 지구화 과정에서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2001년부터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지정·등재해 오고 있다. 

세계가 인정한 제주해녀문화라 하면, 해녀들의 자연친화적인 물질기술을 비롯하여, ‘불턱’을 중심으로 한 해녀공동체 문화, 바다로 나가기 전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해신제(잠수굿)', '해녀노래' 등 해녀와 관련한 모든 문화적 행위를 통칭한다. 그런데 이를 달리 말하면, 지난 해 유네스코 등재 결정은 위의 다양한 제주해녀문화가 소멸과 전승 위기에 놓여 있음을 암암리에 알렸다고도 볼 수 있다.

등재 이후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제주해녀문화와 관련하여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얼핏 접하는 소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올해 4월, 102개 어촌계 제주해녀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사단법인 제주특별자치도 해녀협회의 창립, 5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제주 해녀의 날'로 지정, 그 외 해녀 문화전승 및 의료, 산업 관련 조례 등도 제정되었다. 또 도는 해녀문화에 관한 정책을 전담할 조직인 '해녀문화유산과'도 신설했다. 거기다 제주해녀어업을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어업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방안들 또한 추진 중이라 한다.

그리고 해녀문화의 가치와 국내외 위상을 높이자는 큰 틀에서 제주해녀문화를 보전하고 전승하기 위한 2차 5개년(2017∼2022년) 기본계획도 수립되었다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 기간 총사업비 약 1200억을 투입, 해녀의 전당 건립 사업,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해녀들과의 연결망 구축, 일본 '아마'(海女)와의 교류, 사라져 가는 해녀문화 복원, 제주해녀 문화체험마을 조성, 해녀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실질적 소득보전 대책 마련 등 69건의 사업이 추진된다는 소식이다.

큰 틀에서 보면 이상 언급한 것이 현재 국가 및 도 차원의 행정(정책)이 추진하는 ‘제주해녀문화’ 육성과 보전의 현주소라 하겠다. 

그런데 필자만의 기우일까? 위의 정책과 미래비전엔 해녀는 있는데 바다가 없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바다를 이야기하지 않고 어찌 해녀를 논할 수 있을까? 자칫하면 바다는 해녀문화를 부각시키기 위한 운명적·서사적 배경이나 장치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다 없는 ‘제주해녀문화’에 미래가 있다 할 수 있을까?

이번에 소개할 책《해서열전》을 읽으며 내 뇌리를 떠나지 않은 점이 바로 저 지점이었다. 이 책은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97권의 책, 즉 해서(海書)에서 건져 올린 바다 이야기다. 국내외 대표 해양 픽션과 논픽션 해양도서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이 각각에 대해 국내 문인, 번역자, 평론가, 역사학자, 언론인 등이 개인적 체험을 녹여 각 책들의 핵심을 박진감 넘치게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계 주도권 싸움 속 바다 위에서 탄생한 문명들, 바다를 수산자원이나 낳는 경제수단 정도로 격하시킨 현대의 해양산업의 현주소, 불확실하고 예측 불허한 자연=바다와 싸움을 펼쳐온 파란만장한 인류의 삶들, 갯마을과 섬사람들이 바다에서 꾸려온 원초적인 삶들, 우리 선조들이 발견하고 기록한 전쟁의 바다, 실학의 바다, 표류의 바다 이야기, 그리고 바다가 여전히 인류에게 미지의 수수께끼임을 되새기게 하는 미지의 바다, 광기의 바다들, 실로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97권의 책이 한 자리에 모여 감동의 쓰나미를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전 6부로 구성된 이 책 각 부 부록에는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외국의 해양서적들도 다수 소개하고 있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이 책은 글항아리 출판사가 앞으로 선보일 '바다의 인문학'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그 서문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지금 이 행성은 지구(地球)가 아닐지 모른다. 바다가 이 행성 표면적의 72%를 차지하고 있으니 바다로 둘러싸인 해구(海球)이지 않은가? 대륙은 수면 위로 솟아난 땅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주탐사보다 심해탐사가 더 늦었고, 해저 지형이 달 지형보다 더 늦게 알려진 정보이며, 온갖 동물의 핏속에 바닷물과 비슷한 비율의 나트륨과 칼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서문, 5쪽 요약)

특히, ‘우리를 둘러싼 바다’란 주제를 다룬 제2부는 필자의 주목을 크게 끌었으며, 제주해양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그 중, 이브 파칼레의 책《바다나라》(이세진 옮김, 2007)를 소개하는 장을 보자. 이브 파칼레는 프랑스의 자연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파칼레는 젊어서 쿠스토 함장이 지휘하는 해양탐사선 칼립소호를 타고 전 세계 바다를 20여 년간 누비며 바다와 밀착된 삶을 산 장본인이다. 그런 그이기에 해양 환경오염의 문제를 누구보다 피부로 느꼈다 한다. 자신의 바다 지중해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동족혐오를 금치 못한다. 하수처리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바다의 자정능력’을 믿는 인간들에게 분노한다. 


그러니 이브 파칼레에게 인간은 바다를 아프게 하는 주범으로 원망의 대상인 것이다. “어떤 생명도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거나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인간이 현재 누리고 있는 특권은 가당치 않다”(156쪽)고 힘주어 말한다. 인간은 바다를 사랑하든, 돌고래를 사랑하든, 물고기를 사랑하든 대개 ‘인간중심적으로’ 사랑할 뿐이란 것이다. 그런 그이기에 파칼레는 “수시로 다른 생명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인간을 보는” 가치관을 가졌다고 평가된다.

한편, 찰스 클로버의 책《텅 빈 바다》(이민아 옮김, 2013) 도 살펴보자. 저자는 무엇보다도 바다 생태계의 황폐화에 주목하고 있다. 대형 어선에 의한 트롤어법이 바다를 점령해 바다 밑바닥까지 그물이 내려가 목표 어종이 아닌 생물종까지 긁어 죽이고 그물에 걸린 것은 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히 인간과 참다랑어의 공존이 무너지고 있다. “방탕한 모험주의가 국가의 이익과 자본의 욕망의 물결을 타고 바다의 주인공으로 나선 이래 참다랑어를 비롯한 지구의 물고기는 사라졌고, 바다는 ‘텅 빈 바다’가 되었다.”(177쪽)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원칙에서 보면, 해역 소유권 개념의 불분명, 부적절한 정부의 어업 보조금 과다 지출, 무제한 어획량 허용, 무료 어장이용 등등이 그 원인으로 점쳐졌다. 

그래도 FAO기준에 비쳐 어느 정도 성공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어업국”으로는 아이슬란드가 꼽히고 있다. 어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니만큼, 공유지의 황폐화를 막는 하나의 방법으로, 공유지(어장)의 사용량과 사용방식을 엄격하게 정하고, 거기다 감시와 통제로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한다. 

같은 맥락에서 미번역본으로 소개된《바다의 이상야릇한 역사》(캘럼 M. 로버츠, 2007) 또한 흥미롭다. “바다의 포용력 있는 환경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게 아니라 서서히 진행될 필연적 결과였다는 점이다. 오늘날 어업은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해양생물에게 인정사정없는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123쪽)는 메시지다.

또 한권의 책으로 ‘물고기 박사’ 황선도의《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2013)도 놓칠 수 없다. 황선도 박사는 30년 이상 어류를 연구해 온 ‘물고기 박사’로 알려졌고, 이 책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구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183쪽) 이 책의 주인공은 평범한 생선들이라 한다. 우리들 밥상에는 익숙하지만, 실상 이들 물고기들의 바닷속 삶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는 그런 생선들 말이다.

“원래 바다는 비가시적 세계다. 인간은 바다를 우주만큼도 알지 못했다. 밤이 되면 별은 빛나지만 바다는 암흑에 빠져버리지 않는가?……바다에 던지는 그물은 비가시적 세계에 던진 생존을 위한 작은 투망일 뿐이었다. 물고기들이 어디에서 나서 어디로 가는지, 어떤 짝을 만나 어떻게 가족을 이루는지. 이제 과학자들은 비가시적 바다에 지식의 투망을 던진다.” (185쪽)

저자 황선도는 우리가 물고기에 대한 과학정신을 함양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바다를 자연이라는 연구대상으로서보다는 수산물을 생산하는 경제수단으로 보는 데 치우쳤다고 지적한다. 과학의 목적은 보전인가? 이용인가? 20세기 환경운동의 발흥과 함께 육상생물에 대해서는 보전과학이 주류로 부상했지만, 수상생물은 아직 자원으로 보는 관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187쪽)

동해의 명태는 씨가 말랐고, 자연산 실뱀장어를 잡아 키우는 뱀장어 산업은 붕괴 위험에 처했다. 저자 황선도의 논지는 무작정 보전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해서라도 바다를 불가지론의 성역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앎의 확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기적 경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수산물에서 수산생물로 관점을 확대해 폭넓고 깊은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상 그 자체를 이해해야 그 활용 방안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188쪽) 

한편, 여담이지만 97권의 책을 소개하는《해서열전》엔 제주바다와 관련해서 조선시대 최부와 장한철의 표류의 바다를 기록한 책은 소개되었지만, ‘제주해녀’와 쌍을 이룬 바다 관련 책은 없다. 물론 출판사 측의 기획 의도나 여러 여건상 실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제주인 우리들 스스로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출간된 책들 중에 고고학, 전기, 문화사, 해양문학, 해양사, 해양영화, 해양과학 모든 장르를 통틀어 제주해녀가 바다와 긴밀히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 온 본격적인 기록물이 있다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들을 수렴하여 목록화하는 작업도 나름 의미가 있으리라.

바다는 다양한 문화권 속에서 다양한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에서 바다의 정의는 무엇일까? 

혹여 우리는 여전히 섬이면서도 성리학적 세계관에 따른 대륙적 시각(대륙사관)으로 바다를 정의, 땅에서 벌어지는 해녀문화에만 치중하여 그 실체를 축소하거나 왜곡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제주해녀의 문화적정체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다보니, 해녀들의 작업장, 즉 바다밭의 해양생물다양성(marine biodiversity)에는 관심소홀과 각 부처 간 엇박자를 내고 있지는 않은가?

‘해녀공동체’와 ‘친환경’을 팔아 마을 바닷가를 축제장이나 관광지로 둔갑시키는 우는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능사만도 아닌 것이다. 등재 종목에 걸맞은 위상을 지키려면 제주해녀문화를 둘러싼 역사, 언어, 민속, 풍습, 실천, 교육, 전승을 한 축으로 하되, 또 한 축으로는 해양사학적 시각(해양사관)에서 각 마을 바다지식이 담긴 ‘바다과학’ 연구물들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다. 

체계적인 해녀 대사전, 해양생물사전, 제주해양문명교류사, 제주바다 물때 사전, 각 마을 ‘여’의 분포와 변천사, 해양생태계 조사, 생태기록(어류 및 패류 보고서, 자원고갈 측면에서) 등, 인문과학에서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별 개별연구는 물론 향후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연구물들이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반드시 마련되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저자 레이첼 카슨처럼, 이야기와 과학 언어의 행복한 교감. 생명의 신비를 잃지 않고 엄격한 과학적 태도를 흐트러트리지도 않으면서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드는 문체를 구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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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자(미학자·번역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및 재일제주인센터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미학론, 제주 ‘이미지’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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