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처럼 그냥 좋아서 달리는 사람. 북극 등 극지를 달렸고, 제주에 국내 최초로 트레일러닝 대회를 만든 안병식씨. 트레일러너이자 제주 국제트레일러닝대회 레이스디렉터인 안 씨가 난이도 조차 책정되지 않는다는 남미 최고의 비경 파타고니아 레이스 참가기를 <제주의소리>에 전해왔다. [편집자 주]


▲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 트레킹.
파타고니아로 향하는 길

대회가 열리는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로 향하는 길은 멀고 긴 여정이었다.

제주에서 서울, 서울에서 뉴욕,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24시간이 넘는 비행시간과 공항내에서의 오랜 기다림 끝에 이른 아침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긴 비행시간 동안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던 건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듣는 음악과, 책읽기, 영화보기 등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그동안 바쁜 일상에 지친 육체와 영혼의 ‘쉼터’ 같은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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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5대 미봉(美峰)인 피츠로이 트레킹.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루를 머무르고 다시 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San Carlos de Bariloche)에 도착했다. 바릴로체는 안데스 산맥 동쪽 나우엘아피호의 남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며 ‘남아메리카의 스위스’라 불리는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이다.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안데스 산맥을 기준으로 서부의 칠레 파타고니아(Patagonia chilena)와 동부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Patagonia argentina)로 된다.

바릴로체의 숙소에서 참가자들의 선수등록과 장비검사가 끝난 후 약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가우쵸스 목장(Gaucho’s ranch) 으로 향했다. 이번에 진행되는 파타고니아 레이스는 4 Deserts(중국 고비사막, 칠레 아타카마사막, 이집트 사하라 사막, 남극 레이스)를 운영하는 ‘Racing The Planet’ 에 진행하는 대회이며 사막마라톤 처럼 일주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서바이벌 레이스’이다. 참가자들은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과 옷, 침낭, 장비 등을 배낭에 메고 달려야 한다. 이번 대회는 세계 48개국 320여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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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5대 미봉인 피츠로이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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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익숙함과의 이별

이른 아침 5시가 넘어 잠에서 깨니 아직 텐트 밖은 깜깜했고 날씨도 차가웠다. 대회 측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물을 제공하는데 가지고 온 건조식품에 물을 부어 식사를 해결한다. 사람들 마다 차이가 있어 가지고 온 음식들이 다양한데 통조림이나 즉석 가공식품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있고 최소한의 건조 음식만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을 배낭에 짊어지고 달리는 서바이벌 레이스에서는 음식을 많이 가지고 간만큼 배낭이 무겁고 힘든 레이스가 진행되며 음식을 적게 가지고 가면 일주일 내내 배가 고파서 힘든 레이스가 진행돼 적당히 음식을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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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의 레이스는 일상 속 익숙함과의 ‘이별의 시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파타고니아내 인적이 드문 고원지대라 와이파이 등 인터넷과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 매일 핸드폰을 손에 들고 사는 익숙함과의 이별이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먹고 싶은 음식들과의 이별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직 레이스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한국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나 벌써부터 한국 음식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먹고 싶은 거 참고 침대에서의 편안한 잠과 안락함, 인터넷과 핸드폰에 익숙해져 있는 일상에서의 이별을 통해 광할한 자연 속에서 육체적인 고통을 견뎌내며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이 대회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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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5대 미봉인 피츠로이 정상에 선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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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5대 미봉인 피츠로이 정상.

첫날은 거리가 41km라 10kg의 배낭을 짊어진 참가자들에게는 힘겨운 레이스가 될 것이다. 예전 대회에 참가할 때 처럼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레이스는 다치지 않고 하루하루를 즐기며 즐겁게 레이스를 마치는 게 이번 대회의 목표이기도 했다. 오늘 하루 부상없이 몸이 잘 버텨주기를 바라며 이렇게 나의 파타고니아 레이스는 시작됐다. 세계 각지에서 온 320명의 참가자들은 목장을 빠져나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산을 향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여정을 시작됐다. 첫 날이라 레이스 초반 대부분의 러너들은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지만 CP1, CP2를 지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뒤쳐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은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첫 날 부터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번 레이스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기에 그리 많은 시간이 소비되지는 않았다. 무겁게 짊어진 배낭은 천근만근 어깨를 짓누르고 낮동안 무더워진 날씨 또한 레이스를 쉽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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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에 여러 번 참가하면서 다음에는 배낭을 더 가볍게 하고 운동을 많이 해서 즐겁게 레이스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건 그때의 다짐으로 끝이났고, 나는 또  지금 이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현실에 부딪혔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고행 길’. 견디기 힘들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과 몸은 전체가 근육통으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좋지 않던 발목도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준비가 안 된 자에게 따른 고통이 아니던가. 생각보다 짧지 않은 첫 날의 레이스는 내 자신에 대한 원망과 반성으로 힘겹게 견뎌내며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41km의 긴 여정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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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들어오면 대회 측에서는 텐트와 따뜻한 물을 제공해준다. 따뜻한 물에 스틱 커피 하나를 풀어 마시고 누워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니 쌓인 피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주자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지기 시작하면서 파타고니아에서의 첫 날 레이스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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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는 고원지대, 산악지대, 빙하지대 등 지형이 다양하다. 초반 레이스는 고원지대에서 진행돼 밤에는 날씨가 쌀쌀하지만 낮에는 무더운 날씨였다. 오늘은(Stage2) 32km의 그리 길지 않은 코스라 어제 보다는 쉬운 레이스가 될 것 같았다. 코스는 어제와 비슷한 고원지대 내의 작은 산, 언덕, 계곡 등을 건너는 코스였다. 고원지대는 가끔 마주치는 목장 내의 허름한 시골 집 말고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광할한 지형이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라 강수량이 적은 고원지대지만 건조한 기후와 푸른 새싹들, 노랗게 피어나는 이름모를 꽃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풍경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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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날 대회가 열리는 파타고니아 고원지대로 들어가기 위해 보트를 타고 건너는 모습.

cp1, cp2를 지나니 지금은 운영되지 않은 오래된 철길을 따라 피니쉬라인까지 가는 코스가 이어졌다. 이번 레이스처럼 하루에 끝나지 않고 며칠 동안 나누어서 진행되는 스테이지 레이스에서는 서로 다른 국가와 나이, 직업,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레이스를 통해 친구가 되어 가는 계기가 된다. 레이스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같이 달리기도 하고 캠프에 들어오면 같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배우며 친구가 되어 간다. 가끔 나는 레이스가 비슷한 친구들과는 레이스를 같이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냥 혼자라는 게 좋았다. 누구의 간섭도 없었고 뛰고 싶으면 달리고 쉬고 싶으면 천천히 걷고, 파란 하늘의 구름과 벗 삼고, 바람과 친구가 되어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들이었다. 사람들을 크게 앞서가려 하지도 않았고 뒤쳐지면 발걸음을 재촉하며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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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보다 거리가 짧아 이른 시간에 캠프에 들어왔다. 넓은 고원지대의 목장 내에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캠프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안데스 산맥에서 만년설이 녹아 내려오는 강물에 몸을 담그니 금새 몸이 얼어버릴 만큼 강물은 차가웠다. 하지만 피로가 쌓인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강물에 누워 한 참을 참고 견디었다. 몸속으로 스며드는 강물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몸에 전율이 느껴질 만큼 짜릿함도 있었다. 30분 정도 강물에서 놀다 캠프 안 침낭 속으로 들어와 잠시 잠을 청했다. 바람소리에 2시간 정도 잠을 자고 깨었지만 해는 아직 높게 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틀 동안 쌓인 피로와 배고픔. 하지만 침낭 속의 포근함은 시간이 이대로 멈추기를 바랄만큼 행복했다. 날이 어두어져도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세차게 바람이 불어댔는지 밤에 몇 번을 잠에서 깨어났다. 텐트가 날릴 것 같은 바람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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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 번째 날. 날씨도 춥고 바람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몸은 다시 무거워졌다.

레이스도 어느새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어제에 이어 철길을 따라 레이스는 시작됐다. 철길은 cp1까지 10km 가 넘게 이어졌다. 철길을 지나고 강을 지나는 사이 풍경은 어제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고원지대에서 출발한 레이스는 이제 안데스 산맥이 가까워지면서 푸른 초원지대와 빙하가 흐르는 강을 건너는 코스가 자주 나타났다. cp2를 지나 cp3까지 이어지는 언덕은 다시 레이스가 힘들어지게 만들었다. 그동안 좋지 않았던 발목도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날씨도 더 무덥게 느껴지고 배도 많이 고팠다. 아픈 발목도 조금씩 부어 오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더 느려지고 37km의 코스가 많이 힘겹게 느껴졌다. 캠프가 가까워질 수록 발목은 더욱 아파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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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 고원지대의 목장 지형을 건너는 참가자들.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 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걷고 또 걸었다.

멀리 대회 깃발이 보이고 하얀 텐트가 보이기 시작 할 때쯤 오늘의 레이스도 끝이 나고 있었다.

오늘은 들꽃이 노랗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초원 위에 캠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배낭을 풀고 캠프 옆 강가로 가서 아픈 발목을 차가운 강물에 담그고 한 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오늘은 맥주 한 잔이 사무치게 그리워 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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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신디.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우리 삶의 무게

네 번째 날. 레이스는 42km 의 코스였지만 코스 내 강물이 넘쳐 강을 건널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코스가 변경 되면서 거리가 30km로 줄었다. 아쉬워하는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발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나에게는 시간을 아끼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코스는 15km의 산악지대를 오른 후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거리도 줄고 지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레이스가 끝난 후 잠시 쉬고 난 후 버스를 타고 캠프5로 2시간가량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잠깐 들린 어느 작은 시골마을의 휴게소에서 몇 명의 참가자들이  화장실이 아닌 슈퍼로 들어갔다. 버스에는 운전사와 참가자 뿐 다른 대회 운영 스텝이나 자원봉사자들은 없었다. 버스 창가 너머로 슈퍼에서 캔 맥주를 마시는 참가자들이 보였다. 버스 안에 남아있는 참가자들도 누가 먼저 일어나 슈퍼로 들어가기를 바래는 눈치였다. 물론 내 마음도 많이 흔들였지만 나는 계속 버스에 앉아 참고 기다렸다. 대회에 참가하다보면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날 때가 있데 이런 모습은 가끔씩 볼 수 있다. 물론 레이스 중 하나의 ‘추억과 미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레이스 중에는 배낭에 가지고 있는 음식 외에는 먹을 수 없는 게 서바이벌대회의 룰이다. 사무치도록 먹고 싶은 캔 맥주 한 잔이었지만 ‘순간의 충동’을 견뎌냈다고 자부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캠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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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대회에는 세계 48개국 32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이 출발하는 모습.

캠프는 산으로 둘러쌓인 협곡 밑이었지만 고지대이고 비까지 내리면서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다. 어느새 레이스는 후반으로 접어들었고 이제 대회에서 가장 긴 코스인 롱데이(72km)코스가 남았다.

밤새 내린 비는 출발 전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비 옷을 챙겨 입고 출발선으로 향했다. 롱데이는 캠프장을 벗어나 흐르는 큰 강줄기를 따라 산을 오르는 코스가 반복 되었다. 비도 내리고 이번 대회 코스 중 가장 긴 코스라 조금은 긴장이 되면서도 오늘 하루 다치지 않고 잘 버티면 레이스가 끝난다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으며 레이스를 했다. 롱데이 코스는 나우엘우아피 국립공원(Nahuel Huapi National Park)지대에서 진행됐다. 산속 풍경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고목과 울창한 숲, 그리고 몇 백 년은 홀로 서 있었을 것 같은 고목들이 있었다. 이번 레이스 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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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펼쳐진 고원지대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cp1.cp2 을 지나고 1,000m가 넘는 큰 산을 두번 오르는 동안 일본의 히로아키상과 함께 달렸다. 작은 몸집의 히로아끼상을 뒤에서 보면 본인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큰 배낭을 메고 레이스를 했다. 배낭의 무게는 15kg은 되어 보였다. 캠프에서 그가 가지고 온 음식을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했다. 물론 레이스 내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배낭의 무게가 무거운 만큼 체력소모도 많고 힘든 레이스가 진행된다. “히로 상! 가방이 너무 무겁게 보여. 음식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에!” 이미 나는 몇 번에 레이스에서 이 말을 여러 번 했지만 히로상의 가방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하지만 음식을 배낭에 매고 달리는 이런 종류의 서바이벌 레이스에서 배낭의 무게는 중요하다. 가지고 있는 배낭의 무게만큼 레이스는 힘들어 지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 먹고 싶은 ‘욕심’을 버린다는 게 쉬운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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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에 들어와 물집이나 다친 곳을 체크하는 한국 참가자.

많은 것을 가지고 싶고 먹고 싶은 욕심과 욕망들. 내 마음 속 ‘비움’은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산을 넘고 cp3를 지나고 부터는 코스의 난이도가 조금 쉬워졌다. cp4 부터는 플라야 네그라(Playa negra) 호수를 따라 레이스가 진행됐다. 플라야 네그라는 스페인어로 ‘검은 해변’이라는 뚯 인데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모여 커다란 호수가 되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멈추기 시작했고 구름이 거친 파란 하늘 사이로 태양이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도 레이스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 긴 시간을 달렸지만 아픈 발목을 제외하고는 그리 힘들지 않은 레이스였다.  cp5를 지나고  cp6를 지나 피니쉬가 가까워질수록 발목의 통증은 조금씩 커져 갔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이제 조금만 참으면  끝’이라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했다. 롱데이의 마지막 cp7를 지나면서 부터는 배도 많이 고파지기 시작했고 앞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도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음식을 적게 가지고 와서 먹고 싶은 것도 많았고 매일 배가 고팠다. 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들을 참는 연습, 배고픔을 견뎌내는 연습,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직 내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 않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나아진 나를 찾아 가는 연습의 시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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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은 캠프에 들어오면 모닥불 앞에 앉아 식사를 하며 레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해가 붉게 물들어 갈때 쯤 힘을 내 마지막 피니쉬 라인을 향해 달려갔고 72km의 긴 여정의 시간도 끝이 나고 있었다.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하루 종일 달려 몸이 피곤해서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금세 잠이 들 것 같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거센 바람이 불어 왔고 눈까지 내렸다. 몇 번이고 뒤척이다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새벽 4시가 넘은 시간 텐트 밖으로 나와 모닥불로 향했다. 참가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날이 밝아올 때까지 그렇게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모닥불은 몸을 녹일 수 있을 만큼의 온기가 있었다. 날이 밝고 마지막 주자가 들어오고 난 후 롱데이의 긴 여정도 모두 끝이 났다. 롱데이가 끝 난 후 모든 참가자들은 하루 종일 쉬면서 지난 레이스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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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 지역에선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물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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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라 들판에는 늦은 봄 꽃이 한창이었다.
[참가자들과 나눈 이야기들 중에서]
△ 윤재상(46/재미교포)
1. 자신 소개
국적은 한국이지만 현재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서 Art Management NYC LLC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회사에서 주로 하는 일은 예술 공연 기획과 자문을 합니다.
2 .이번 레이스는 사막마라톤처럼 Self-Support Race(서바이벌 레이스)이고 힘든 경기이다. 이런 종류의 레이스에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이런 레이스 참가를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안의 본성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레이스가 힘들고 거리가 길어질수록 나의 동기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낀다.  
3. 대회가 끝난 후 당신이 얻은 것은 무엇인지?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대자연의 품에서 레이스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 참가자분들과 세계에서 온 여러 선수들을 만나게 된 게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4. 이런 종류의 레이스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동기와 목적은 모두 다를 것이다. 비록 동기와 목적은 다르더라도 하나 된 목표는 “부상 없는 완주”이다. “부상 없는 완주”를 이루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계획된 상태로 대회에 참가하라고 권하고 싶다. 6일간 250Km를 오지에서 달린다는 것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꼼꼼하고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는 선수는 레이스 기간 내내 즐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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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을 소개 한다면?
나는 Cindy 야.  나이는33 세이고 영국의 캠브리지 근처에 살고 있어. 지금은 제약 업계에서 일하면서 제품의 품질을 검사하는 일을 하고 있고. 달리기, 걷기,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
2. 이번 레이스에 참가하게 된 동기는?
나는 달리와 여행을 좋아해. 그리고 이런 레이스를 통해 나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그 과정을 극복해가는 것이 좋아. 이 대회는 그런 기준을 충족시켜주는 레이스야. 또한 이 대회는 스테이지 레이스인데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아.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달리고 친구가 되어 가면서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고 생각해. 하루에 끝나는 논스톱 대회와는 다른 특별한 레이스지.
3. 이 레이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은?
72km를 달리는 롱데이 날. 체크포인트2에서 나의 텐트메이트 2명과 함께 도착했는데 내 친구가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어. 많이 힘들고 지쳐있었는데 나는 더 강해져야한다고 다짐하면서 힘을 낼 수 있었어. 친구의 응원이 너무 고마웠고 나는 다시 힘을 내고 용기를 내는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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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의 레이스를 마친 참가자들이 머무는 캠프의 풍경
4. 레이스가 끝난 후 얻은 것은?
가장 힘든 롱데이가 끝난 후 나는 모든 것에 자신감이 생겼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지. 6일동안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사람들은 나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감사하게 생각해. 나는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을 찾고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
 5. 이러한 레이스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꼭 도전해라! 우리는 일상에서 매우 바쁘게 일하면서 살아가지. 하지만 인생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리고 준비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수 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자신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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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의 고원지대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다음 날, 마지막 7km 레이스를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레이스는 4:시 30분에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엘 트론도르(EL Tronador) 공원의black Glacier(검은 빙하) 지역이다. 이곳은 바릴로체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이며 커다란 만년설 밑으로 빙하가 녹아 호수가 형성되어 있었다. 파타고니아의 고원지대에서 출발한 레이스는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이렇게 만년설이 있는 커다란 호수 밑에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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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 내 숲속을 건너고 있는 일본 참가자들.

파타고니아의 멀고 낮선 땅에서의 레이스는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 경험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더 이전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나약한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했고 ‘육체적인 고통은 순간’이라며 힘들 때 마다 스스로를 위로했다. 배가 고프고 힘들고, 맥주 한 잔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적이 있었지만 그 ‘고행의 시간’은 커다란 성취감으로 보상했다. 일상에서처럼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해주는 집은 없었지만 나는 여기 파타고니아에서 충분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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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 내 숲속을 건너고 있는 참가자들.

그것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실에서의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외로움과 슬픔이 찾아올 때. 그럴 때 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연습. 이런 과정들을 통해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트레일 러닝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오랜 시간 산 속에서 달리다보면 혼자만의 명상의 시간도  되고 내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어제의 나에 대해서. 오늘의 나에 대해. 그리고 내일의 나에 대해서. 행복은 누군가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파타고니아 레이스는 행복지기 위한 시간, 더 나은 나를 찾기 위한 시간 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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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5km마다 체크 포인트가 있고, 그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물을 나누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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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여행 정보> 
파타고니아 여행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빙하 중 한 곳인 모레노 빙하와 세계 5대 미봉 중 한 곳인 피츠로이 트레킹이 유명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엘 깔라파떼(El Calrapa) 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이 소요 된다. 엘깔라파떼에는 일본인 남편과 한국인 부인이 운영하는 후지민박이 있다. 마을에서 차를 타고 1시간 가량 이동하면 모레노 빙하(Moreno Glacier)를 구경할 수 있다. 후지 민박에서 빙하 투어 및 엘 찰튼으로 가는 차량을 예약 할 수 있으며 엘 깔라파테에서 3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 엘 찰튼(El Chalten)에 도착한다. 엘찰튼에서 머무르며 피츠로이와 세로토레 트레킹을 할 수 있다.
<레이스 준비물 >
25~30리터 배낭, 헤드렌턴, 나침반, 재킷, 티셔츠, 트레일러닝 신발, 바지, 침낭 , 양말, 구급약품,일주일간의 음식(건조 비빔밥, 라면, 누룽지, 건조과일, 비스켓, 에너지보충음료, 쵸콜릿, 통조림 등)
(대회 지원 : 대한항공, 노스페이스, 페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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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교포 윤재상 씨.

-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 – 극지방을 제외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로 꼽힌다.
- 피츠로이(Fitzroy) –3,405m의 파타고니아 최고봉이며 세계 5대 미봉 중 한 곳이다.연기를 뿜어 내는 산’이라고 불릴만큼 뽀족한 봉우리에는 구름이 걸쳐 있다. 산 정상에는빙하가 있고 밑으로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게 특징이다. 특히 아침 일출은 최고의 장관이다.
- 세로토레(Cerro Torre) –  높이가 3,128m이고 피츠로 산 바로 옆에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봉우리 중 한 곳이다. 전망대까지는 엘찰튼 마을에 오전에 도착하면 오후 트레킹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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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 레이스 250km를 완주한 한국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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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 레이스 250km를 완주한 필자(안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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