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49)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탐라순담[耽羅巡談] 마흔아홉 번째 순서는 제주에서의 장애인의 삶과 장애인 인권 운동을 다뤘다.

지난 12월 28일 오후 2시30분 제주장애인인권포럼(제주시 천수동로 30)에서 ‘제주와 장애인 인권’를 주제로 탐라순담을 진행했다. 

장애, 장애인이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국어사전에서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장애인과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표현으로 정상인,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가 어디에 있느냐 관점을 달리하면 정의도 달라진다. 장애가 신체가 아니라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사회적·문화적·환경적 배제의 의해서 사회 참여의 역할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장애인이다. 외국에 나가 언어 장벽을 느끼는 경우도 환경 변화에 따른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 헬렌 켈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들에게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인간 승리'를 요구하지만 서구와 한국 사회는 놓여있는 여건 자체가 다르다. 제주에도 저상 버스가 도입되었지만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이용하기에는 여건이 다 갖춰지지 않았다. 도입된 저상 버스가 지역사회에 안착하기까지는 지역의 충분한 인프라와 주민들의 인식 등 다양한 제반 사항이 뒤따른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의 의미도 단순하지 않다. 장애인들도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다수가 보편적이라고 ‘믿고 있는’ 일상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노멀라이제이션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이지, 사회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 탐라순담에서는 장애와 장애인의 의미와 제주에서 진행되어 왔던 장애인 인권 운동의 흐름, 제주에서 장애인의 자립 생활과 장애인들의 요구 사항이 어떻게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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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유용한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팀장, 권오상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 김미영 서귀포시장애인자립센터 위원장, 이연희 서귀포시장애인자립센터 사무국장,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대표, 최희순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공동대표.

김태연 제주의소리 기자(진행)
: 오늘 자리를 마련하기 전에 고현수 대표와 이야기 나누면서 간략히 질문을 추렸다. ‘제주에서 장애 인권을 말하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사실 한 질문만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모자라다. 며칠도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활동과 제주에서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한다는 것,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겠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최희순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공동대표이자 2대 대표를 맡았던 최희순이라고 한다.  

고현수 
: 우리 체제는 공동 대표 체제이고 그 중 한 사람이 상임 대표다. 나는 2,4,5대 대표를 연임했다. 

이연희 
: 서귀포시장애인자립센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연희라고 한다.

김미영 
: 서귀포시장애인자립센터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미영이라고 한다. 

권오상 
: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으로 11월부터 일하고 있다. 개관은 내년 2월경이다.

유용한 
: 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유용한 팀장이다.

김태연 
: 장애인인권포럼에 소속된 분도 계시고 다른 단체로 활동하시는 분도 있나?

권오상 
: 다 부설 기관으로 있다. 

유용한 
: 산하로 있다.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사업들을 맡다 보니 점점 커졌다.

김태연 
: ‘장애’라고 하면 영어로는 handicap, challenged 등 사전적인 의미로 불편하다 혹은 더 뭘 해야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의 의미는 결함이 있다는 내용이다.  장애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고현수 
: 장애인은 사회적·문화적·환경적 배제의 의해서 사회 참여의 역할의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다. 신체가 아니라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태연 
: 언론들도 그런 잘못을 많이 하고 있다. 장애인과 구분 짓는 표현으로 정상인,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떤 표현이 올바른 표현인가? 

김미영 
: 둘 다 맘에 안 든다. 개인적인 생각은 비장애인 쪽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 

김태연 
: 제3의 단어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고현수 
: 장애인인에 대한 개념 정리가 인권적 가치에서의 개념 정리와 용어적인 측면이 다르게 비춰지는 것 같다. 앞으로 최희순 대표께서 말하겠지만 장애가 어디에 있냐의 관점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심리적 핸디캡이나 참여를 배제하고 거부하는 사회가 장애를 갖고 있는 거 아닌가? 
인권적 가치에서 볼 때는 사회적 장애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장애를 참여를 허락하게 하고, 제약을 배척하고 것을 없애려고 하고 중심적으로 관심영역 혹은 운동의 영역이 사회권 쪽이다. 참정권, 접근권, 이동권 기타 등등이 있다. 주변의 환경권, 정보통신권, 그런 부분들이 아닐까 싶다. 그게 장애 개념이 그렇게 좀 보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것도 법률에서 비장애인이라는 것은 없다.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상이라 하는 것은 비정상 집단으로 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장애우라는 표현을 굳이 요구하면서 맞느냐, 이게 인칭 성립이 안 된다는 말도 있다. 장애자라는 표현과 장애인을 놓고 본다면, 장애자도 거부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끼리 합의한 단어가 아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라고 했을 때 계급적 가치를 갖는 고귀한 단어이다. 노동자라는 단어가 성립되는 이유는 노동자들이 만들어서 그렇다. 기업 관점에서 근로자라고 표현하고 이를 통용한다. 그런 부분들이 노동자와 장애인 개념에서 다르다.

권오상 
: 기자도 있고, 근로자도 있고, 장애자도 있는데, ‘자(者)’자 앞에 붙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기자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 뒤에 자가 붙으면 장애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했을 때 하층민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듣는 이에겐 거부감이 있지 않을까 한다. 

김미영 
: 장애를 사람에 맞추느냐 혹은 환경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차이를 보인다. 사람으로 한정해서 장애를 생각하지 말고 사회 환경을 봐야 한다. 외국에 나갔을 때에 그 사람이 해당 외국어를 못하는 것도 장애이다. 사람으로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전체적으로 봐야한다. 

고현수 
: 스웨덴에서는 일시적 언어장애를 장애라고 본다. 

이연희 
: 선진국에서는 사회적 장애도 본다. 비만도 장애로 본다. 장애를 인정하는 케이스다.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지원하고 지지해서 뭔가 나올 수 있게 하는 행정적인 측면으로 본다. 뭘 판단 할 때, 정상의 기준은 없는데, 정상인에 대한 모호성이 있다. 어디 기준에 정상인인지 그런 것이 있다. 일반인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뭐가 일반적인가? 비장애인 용어도 장애를 가지고 같지 않은 분들은 이 용어를 싫어한다. 관련해서 엄청난 댓글들이 나왔다. 그럼 임산부와 비임산부로 나누는 것이냐는 댓글도 달려있었다. 권오상 관장 말처럼 부정적인 이미지처럼 비쳐지는 것도 있다. 비장애인을 세게 표현하면 ‘예비 장애인’이라고 된다. 그런 용어를 싫어하는데, 사회적 관점에서는 비장애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유용한 
: 나는 유일한 비장애인이다. 이 말이 익숙해졌다. 장애인들 사이에서 가끔은 내가 타자화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단은 우리 조직의 장애인 비장애인을 일상적으로 쓰는데 내가 타자화 되는 건가. 구별되나 생각한다.

이연희 
: 아무래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김태연 
: ‘장애’라는 표현에 대한 사회에서의 충분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고현수 
: 사실 장애인이라는 말 자체도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 노동자라고 하는 것은 노동자 계급이 사회적 합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근로자는 박정희부터 써왔다. 완전한 단어로 되었다. 변호사의 사도 서민 사다. 사회 복지사의 변호사의 사나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라고 하는 단어는 앞에서 말하는 동료들의 말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주도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 운동의 역사적 관점을 보면, 1981년에 심신장애자 복지법이 제정되었다. 최초다. 장애인에게 어떤 서비스를 구축하고 책임지는가? 라는 내용들이다. 일본의 장애자 법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때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다. 전두환 등장 시기랑 비슷하다. 전두환이 5․18의 피로 정권을 가지면서 취약한 자기의 정통성을 가지기 위해서 복지와 민주 이야기 꺼내게 했다. 그러면서 복지 부분에 무언가를 해야지 하면서 장애인 쪽으로 가져온 게 ‘장애자 복지법’이다. 우리가 만든 법이 아니다. 전두환 정권이 자기의 권력 정당성 위해 일부 학자들을 이용해서 만들었고, 그 내용은 보나마나하다. 우리의 민중의식과 인권의식이 고양된 게 1987년 민주항쟁 이후다. 민주항쟁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크다. 인텔리 장애 운동이 처음 시작했던 단계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 학생 운동을 한 사람 중에 장애인도 있고, 그 사람들이 계급적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그 그룹들이 장애운동청년회, 지체부자유학생연합으로 있었다. 나중에 ‘심신장애자 복지법을 폐기하라’면서 장애인 고용과 관련된 법을 만들었다. 심신장애자 복지법이 폐기는 안 되고 개정이 됐다. 장애인 고용 촉진에 관한 법, 일명 장고법이 1988인가 1989년에 제정되었다. 여기에서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바꾸자고 했다. 우리의 요구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 정부에 요구해서 바꾼 것이다. 시간이 지나다보면 바뀔 유연성도 있지만 그 때 당시 까지도 장애인이라고 하는 것을 으레 생각했다. 5개 영역의 지체·시각·농아·정신 지체 등 이런 식으로 나눌 때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인권의 가치가 변화하고 발전했다. 장애란 어디 있는 것인가로 보았을 때, 사회에 있는 것이라고 바뀌었다. 자립생활 운동이 1990년대 말쯤 나타나면서 이 영향도 굉장히 컸다. 이제는 장애 사회적 환경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서 장애등급을 폐기하자고 나왔다. 

김태연 
: 역사적 관점의 여러 의미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설명해주었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이라는 것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잘못된 인식에 대해 개개인은 인지하고 있지만, 정작 감수성은 미미한 수준이다. 아까 장애인 운동에 이야기 해주셔서 다음 질문하려고 한다. 전국적인 장애인 인권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면 제주에선 전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고현수 
: 집단적으로 행정을 대상으로 우리의 권리를 요구한 첫 싸움이 있었다. 장애인이 운전면허를 취득하려고 하면 장애인 운동 측정기가 필요했다. 그 기계가 제주에는 없었다. 1997~8년도 즈음이었다. 제주에 사는 장애인이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재정적 심리적 비용이 드는 것이다. 지체장애인협회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경찰국 앞에서 데모도 했다. 경찰국 안에서도 데모 했다. 이른바 점령 시위다. 그들도 우리가 불쌍하니깐 현관 앞에서 하라고 했던 것이다. 당시에 신구범 제주지사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정부에서 못해준다고 하면 제주도가 해주겠다’고 해서 설치했다. 비용은 제주도에서 대고 설치는 운전면허장에 설치했다. 나도 당시 현장에 있었다. 마이크 들고 발언도 했다. 그 뒤에는 제주장애인운동청년회라는 단체가 비합법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서 오더를 내렸다. 

김태연 
: 재야의 조직인가? 

고현수 
: 맞다. 나도 거기에 있었다. 당시에 소비에트 무너지는 거 보면서 이념 지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던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물고기는 물에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지체장애인협회로 들어갔다. 청년 모임에 들어가서 나는 직원으로 들어갔다. 
다음에 집단적인 사회운동적 성향으로 이슈파이팅을 처음 해봤다. 1999년도쯤에 ‘자립 생활’이라는 이 개념이 미국과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게기가 있었다. 2000년에 자립생활이 오면서 새롭게 찾아야 하는 운동 같은 것이고 이 과정에 대해서 실천 모임에 선두에 있던 두 분이 설명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이연희 
: 많이 알려졌다고 하지만 나는 2002년도에 그 단어를 처음 접했다. 나는 신생장애인으로 사회에 처음 나와서 접한 것이었다. 운이 좋았던 게, 재활 패러다임이나 자립생활 말하는 그 과도기에서 사회 활동 했다. 재활에 대해서 접하기 전에 자립생활에 대해 먼저 접하게 된 케이스이다. 자립생활이라는 용어가 내 삶에 대해서 컨트롤하고, 주체적으로 발전하는 뜻인데 그렇다고 모든 걸 다 하지 않는다. 지역이나 사회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책과 서비스를 지원하면서 자립 생활이라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엔 한자 용어 그대로에 치중했다. 스스로 산다는 개념으로 알았던 것이다. 젊은 층에서 중심적으로 섭외할 시점에 만나게 되었다. 당시엔 들으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하라고 하지?’ 글자 해석에만 치중했다. 그러다 매주 금요일, 토요일에 스터디 하고 같이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2002년 4월에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어디를 가게 되면 주변에 항사 어머니와 조카가 있었다. 혼자 가는 것이 두렵고 해서 둘과 함께 다녔다. 제일 먼저 그 당시 이동 복지 사업을 했다. 직접 예약을 하고 혼자 병원을 간 게 자립생활을 제대로 받은 첫 번째 시작이 되었다. 그 후에 다양하게 하다가 2003년도에 장애인자립지원센터가 설립되면서 직원으로 채용도 되었다. 
집에만 있는 장애인들을 골방 장애인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해보고 내가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직원들을 롤 모델로 이야기 했다. 내가 무언가를 전달하고 뭘 하라고 하는 것보다는 나의 자립 생활자체가 다른 분들에게는 롤 모델이 되었다.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보면서 ‘주변에서 어떻게 신청했어?’ 하면서 물어온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자립생활이라고 느꼈다. 

최희순 
: 신선하게 느꼈던 점은 자립생활이 내가 사회에 적응하고 잘 성장하는 것이 인간승리라고 비춰지는 분위기에서 30년 넘게 살아왔는데, 자립 생활 이념은 장애가 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환경의 문제라는 걸 보면서 30년 동안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김미영 
: 선천적인 장애인들에게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진짜 심하다. 집에서도 ‘넌 장애인이니 가만히 있어’라고 주입을 하면서 자랐다. 자립생활센터를 만나면서 ‘장애인 것이 너의 죄가 아니고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들었다. 머리를 맞는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우리 엄마에게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자신감도 없었고, 위축되는 생활을 했다. 이 이념을 알고 받아들이면서 시야가 환해졌다. 구부리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희순 
: 학교 다닐 때도 그 많은 계단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면서 느꼈는데, 왜 고쳐달라고 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든다.

이연희 
: 나는 그 계단 때문에 자퇴했다.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서 검정고시를 보게 되었다. 이것도 하나의 사회가 주는 장애이다. 

김미영 
: 계단이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삶이 지속이 되었을 건데, 그런 것이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고현수 
: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 모범적인 척도를 인간승리적 관점으로 한다. 스티븐 호킹 박사나 헬렌 켈러 그리고 여러 인물들을 모범으로 삼도록 한다. 장애인도 이런 사람 될 수 있다고 극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한 장애인상’ 뭐가 장한지 모르겠다. 스티븐 호킹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어디 있을 것인가? 만약 그가 강원도 산골에 태어났다면 강원도 생활 시설에서 어릴 때 들어가서 노인 될 때 까지 살았을 확률이 매우 크다. 우리가 가진 사회적 환경이 그렇다. 당신들이 말하는 인간승리가 되는 것은 영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장에서 기인하는데 우리 분위기와는 다르다. 영국에서는 사회적 지지가 있었다. 교육적인 배려도 있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에게 필요한 것들, 눈으로 홍채로 인식 되는 컴퓨터 이런 것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굶어 죽지 않을 선에서 국가 체계에서 지지와 지원이 이뤄진다.

김태연 
: 출발하는 지점과 둘러싼 배경도 다른데 너희도 스티븐 호킹 박사가 될 수 있다, 장애를 극복하라고만 하는 게 모순이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은 어떤 과정에서 필요하면서 성립되어 왔나? 다들 목소리를 내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는가? 

권오상 
: 나는 다른 케이스이다. 2005년, 군대 다녀와서 이렇게 되었다. 장애인이 되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대해 찬찬히 생각했다. 그 동안 갖고 있던 장애에 대한 이미지는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런 인식이 있어서 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전문가 주도의 삶의 살아야 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나의 인생을 맡겨야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었다. 당시만 해도 밖에 나와 있으면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장애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고 나의 인생은 전문가가 끌어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이나 지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연히 인간으로서 옳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운동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기회를 말할 때, 그 기회가 말 그대로 기회만 균등하게 주는 것이냐? 균등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인가? 생각해보자. 다양한 서비스들이 제주도 단위에서는 없었고, 전국 단위 투쟁이었다. 법도  없어서 “제정해라 혹은 규칙을 만들어라” 이렇게 주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하고 있지 않단 생각을 한다. 

고현수 
: 센터에 여러 가지 계기로 입문하게 된 케이스가 있다. 권투 선수하다 혹은 축구 선수하다가 사고로 입문한 케이스도 있다. 

이연희 
: 자립생활 입문이 2002년이다. 인권적 측면에서 이게 자립 생활이구나 하는 깨달음은 있었지만 인권과는 결부가 안 되었다.  2001년도에서 건강보험공단에서 전동휠체어를 지원해 준다고, 이것을 공적영역으로 가져가고자 했을 때 금액에 대해서 협의 한 적이 있다. 금액을 산정했는데 이 금액은 도저히 안 된다고 해서 장애인들이 모여서 중앙건강보험공단에 점령했다. 하루 종일 있다가 경찰에 잡혀가고 했다. 당시에 느낀 게 ‘내 몸에 맞는 전동 휠체어 타고 싶다는 게 죄인가’ 싶었다. 전경들에게 둘러싸인 채 울었다. 우리는 도망갈 수도 없었다. 휠체어 타고 있어서 빠져 나갈 수 가 없었다. 전경들이 휠체어 한 대를 건져갔다. 그 느낌은 그물에 갇힌 물고기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내 몸에 맞는 휠체어를 요구하는 것이 죄인 것인가 싶어서 자립과 인권 키워드에 눈을 뜨게 됐다.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생두부를 먹었다. 

고현수 
: 2003년도 저상 버스 도입에 대해 주장했다. 사회권이다, 이동권이다 이렇게. 실제로 이동권이라고 자각해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말하는 저상버스를 도정에서는 이해를 잘 못했다. 저상 버스 이야기를 하면 리프트 버스로만 이야기 한다. 아직도 그렇다. 도에서는 저상버스가 아니라 리프트 버스 그나마 몇 대로 하려고 한다. 지자체 항의 방문, 도청 항의 방문을 하고 저상 버스 운행 참관 하고 감시 활동을 해서 2004년에 저상 버스 3대를 일반으로 편입했다.  

권오상 
: 전국적으로 버스타기 운동이 있었다. 이전에 용산역에서 지하철 기차 타다가 떨어져서 죽은 장애인이 생기면서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탈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게 저상버스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국토교통부에서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제주도에 몇 대 도입이 있었는데, 당국에서 이해도가 없어서 그냥 리프트 버스로 하려고 했다. 몇몇의 활동가들이 항의 방문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저상버스에 대한 생산되는 것이 없어서 설명을 했다. 정작 도입을 3대 했는데, 문제가 발생 했다. 과속방지턱 이런 문제들이 있었다. 정작 버스는 돌아다니지만 장애인들은 탈 수 없었다. 정류소 점검,  그 기사 분들 역시도 버스만 들어왔지, 장애인분들이 타면 어떻게 돕고, 안전처리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없었다. 그런 것에 대한 모니터링 조사에서도 도에 이야기 했었다. 작년까지도 늘려서 제주시에 3대, 서귀포에 7대가 고작이다. 올해 천연버스로 해서 여러 대 들어왔다. 그 이후로 계속적인 요구를 했지만 예산 핑계, 도로의 현실성을 들면서 생산할 수 없다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올해 들어서 원희룡 제주지사가 대중교통 개편하면서 천연버스를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저상버스에 문제가 있었다. 계속 요구를 했다. 그렇게 한 과정이 있다. 

이연희 
: 저상버스 탈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도입만 해서는 탈 수 없다. 제주시의 정류소를 전수조사 했다. 장애인들이 직접 조사했다. A부터 D까지 타입을 정리했다. 도로의 폭으로나 저상버스의 슬로프가 나올 수 있는 정류소가 전무 했다. 제주시 자료 가지고 항의 방문도 했다. 그런데 도로와 교통 담당과가 다르다. 왔다 갔다 하면서 전수 조사한 통계 자료가 흐지부지 되었다. 전기버스를 도입하며 저상버스 다니긴 하는데 슬로프가 나와야 저상버스다.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장애인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구축이 되어 있어야 하지만 아직도 안 되어 있다. 동서교통에 방문해서 말했는데,  환경도 중요하고 운전자의 인식도 중요하다. 그리고 버스에 함께 타는 주민들도 중요하다는. 캐나다 갔을 때 출발할 시간인데도 운전기사가 오래 기다린다. 장애인이 멀리서 오는 게 보이니깐 차가 기다린다. 안에서도 원성이 거의 없다. 서귀포는 배터리 교체하는 시간이 길어야 1분인데도 원성이 자자하다. 슬로프를 타는 시간을 5~10분으로 잡을 때, 지역주민들의 반응이 어떨까 싶었다. 육지의 경우는 장애인들이 바쁜 출근 시간에 왜 나왔냐고 한다. 여유 있게 사람들 없을 때 다니라고 한다. 다들 9시까지 출근하는데 나만 장애인이라고 그 이후에 출근 할 수는 없다. 도입도 중요하고, 도입된 차가 지역사회에 안착하고 사용되는 과정도 중요하다. 정책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삼각구도 형식들이 같이 이뤄져야만 제대로 된 정책을 낳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시적으로 ‘그냥 시끄러우니 해줄게’는 안 된다. 제주도에는 동산이 많아서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기다린 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의 질의 갭은 더 많이 벌어지게 된다. 흔히들 정보화 시대, 문화 여가의 시대라고 한다. 정보화 시대와 문화 여가 시대가 될 수록 격차가 줄어들 것 같지만, 경험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간 사람의 안 간 사람의 예를 들겠다. 문화 여가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구축이 잘 되면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실생활 들어가면서 하나하나에 경험의 갭이 어떠한 접근이 갭이 더 멀어지고 있고, 높아지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일본 삿포로는 제주도와 내리는 눈이 다르다고 하다. 나는 못 간다. 가려고 해도 엄청난 준비가 필요한 점에서 그런 격차가 느껴진다. 

최희순 
: 지체장애인인들이 집에만 있다 보면 지적장애인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지체 현상이 일어난다.  

김태연 
: 최 대표께서는 인권 운동에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나? 

최희순 
: 처음에는 지체장애인협회에 있었다. 그곳에서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사회 참여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배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에서는 장애인도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라고 한다. 가져야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인권의 차원에 있어서 요구하는 권리가 기본적인 사람의 권리하고 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장애인인권포럼이다. 

김태연 
: 유용한 팀장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가?

유용한 
: 회사 생활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 어떤 일을 할까 고민했다. 그 전까지는 솔직히 장애인 인권에 큰 관심을 없었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을 알게 되고 여기에선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 지원했다. 다행인지 경쟁률이 낮아서 입사하게 됐다. 외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측면에서는 편견일수도 있지만 장애인들의 이익집단화, 혹은 목소리만 크게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없잖아 있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에 잘 들어와 알게 되었다. 시민사회에서 느낀 부분 등 인권 가치적인 부분들을 추구하는 부분들이 사업의 중심이 되어서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한 활동을 한다. 여러 측면에서의 가치관이 맞아서 생각보다 오래 근무하게 되었다. 

김태연 
: 몇 년 정도 근무했나?

유용한 
: 거의 8년 정도 근무했다.  

권오상 
: 장애인은 배려를 받아야 한다는 대상이라고 장애 당사자도 그렇게 생각했고, 사회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본다.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배려다. 그러다 보니 배려를 해주라는 것은 해 줄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해 주는 것인데, 더 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서 떼쓴다고 보이는 면이 있다. 인권 측면에서 권리로 보면 나와의 삶과 비교해서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라서 그렇게 갭 차이가 없을 텐데, 배려라고 생각해서 도움을 준다고 해서 도움 하는 게 자체가 이기적으로 인식이 된 것 같다.   

고현수 
: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나서 보도가 됐다. 기사 제목에 ‘배려 해줘야 한다’고 쓰였다. 나는 배려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

이연희 
: 이 단어는 장애인과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을 수직적 관계로 보고 있다. ‘관용을 베풀고, 양보를 하고, 배려를 해줄게’ 양보심, 배려, 관용들이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하게 되면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갑과 을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들도 현장에서 “강의 잘 들었지? 장애인 잘 배려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태연 
: 언론사에서도 그런 감수성이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나부터도 조심해야겠다. 너무 쉽게 표현하는 것이 있다. 

김미영 
: 여성 정책이 있고, 아동 육아 정책이 있는데, 왜 장애인은 장애인 복지 정책으로 ‘복지’라는 단어를 붙이는가 하는 부분도 있다. 장애를 도와줘야 하는 인식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고현수 
: 교수들도 그렇다.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이라는 단어를 정상화라고 표현하는데 우리가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간의 사회 통합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러니하다. 이들이 말하는 정상화는 ‘장애인도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일하고 12시에 밥 먹고 6시 퇴근하고 나머지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노멀라이제이션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는 있지만, 인권의 가치에서는 그게 아니다. 중증장애인에게 작업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하루 8~9시간 노동하면 일 자체가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장애인에게 직업은 옵션이 되어야 한다. 노멀라이제이션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이지, 사회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이마저도 인건 포럼의 직원들은 훈련되어서 경험적으로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연희 
: 어릴 때 주변에서 ‘너도 사람 노릇을 해야지’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여기에서 사람 노릇은 노동이다. 일하지 않으면 사람 노릇을 하지 않은 것으로 된다. 직장을 다닌다고 하니까 사람 다 됐다고 한다. 

권오상 
: 이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인 것 같다. 

최희순 
: 장애인 연극단이 있는데, 공연하고 나서 소정의 출연료를 지급했다. 굉장히 좋아했다. 문화 생산 활동도 일이라고 말을 했다. 장애인들이 사회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다양하다. 꼭 출퇴근 하지 않아도 많다. 

고현수 
: 일이 중요하긴 하다. 일을 할 수 있으면 그 쪽으로 보내지만, 도저히 신체적으로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자립생활에서 강조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여러 가지 이념과 스킬이 있는데, 우선 이념은 “누가 뭐래도 나의 삶은 내가 책임지겠다” 이것이다. 나의 삶 그 선택과 결정의 과정에서 주로 전문가 집단이 방해하고 간섭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너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규정시켜 버린다. 외출하는 경우에도 “너는 집에 있어라”이렇게 한다. 잔치에 가야할 때면 집에 있으라고만 한다. 그러다 보니 수동적이되고, 사회가 돌아가는 건 모르게 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보면 사회적 지체현상이 벌어지고, 자기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임파워먼트가 없어진다. 그냥 살아가게 된다. 거주지도 선택해야 하는데 부모가 지쳐서 장애인 수용시설에 보내는 경우가 있다.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다. 시설에 들어갈래?”라고 물어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권오상 
: 들어가고 나가고 본인의 선택이 없다. 

고현수 
: 자기 선택과 결정이라는 부분이 어떠한 공간과 시간, 사회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 의사나 사회복지사 혹은 가정에 의해 통제되는 것은 곤란하다. 삶을 사는데 위험성도 있다. 고스란히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경험을 해야 한다. 실수해야 한다. 온실의 꽃처럼 커서는 안 된다. 이것이 자립 생활의 이념이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센터도 만들어진 것이다. 장애란 사회 환경의 문제가 있다고 보는 관점이기 때문에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접근쪽으로 무게 중심을 맞춘다. 매우 중요한 인적 접근이다. 
그리고 장애연금인데 외국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도 좀 되었지만 한화로 150~200만원을 받는다. 그 정도면 웬만한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다. 정부에서 국가가 그 사람들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안 믿는다. 바우처는 통제 개념에서는 복지 서비스라고 본다. 영국은 개인별 예산제라고 해서 장애인 스스로에게 예산 통제 권리를 준다. 알아서 쓰고 정산해서 주라고 한다. 우리가 그럴 가능성은 아직은 없다. 자기 선택권과 결정권에 있어 민주적 각성 전도를 믿고 있다는 전제가 있고, 자립 생활을 해나가는 여러 가지 중요한 수단 주어야 한다. 민주적, 인권적 가치라고 해야 한다.

김태연 
: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하자면, 정치 참여 이야기를 했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정관 목적에도 ‘정치 참여 보장하기 위하여’ 라는 문구가 있다, 사업 중에서도 정치계를 포함한 교류 협력 사업 같은 것들을 나열을 했는데, 당사자의 정책 참여는 얼마큼 이뤄져 있고, 함의하는 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최희순 
: 우리가 장애 운동을 하면서 많은 변화 있지만, 가장 빠르게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정치 참여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가 안에 있으면 쉽게 바꿀 수 있겠다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권오상 
: ‘장애인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한계점이 있다. 지역사회 문제도 같이 요구했었다.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해서 장애인 문제만이 아니고 지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같이 논의하고, 연구하기도 한다. 또한 같이 운동 전개도 한다. 요즘엔 정치의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어찌됐든간에 정치를 하는 곳에 장애인 권리를 직접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라는 것들이 정치로서의 입문이 아니라 시민사회 모든 것들이 정치 활동이다. 

이연희 
: 두 가지 분류이다. 그 위치에 서서 대변인 역할을 하거나 또는 생활적인 정치 형식으로 모든 것을 관심을 가지고 모니터링 하고 집단이 또 형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치인으로 올려만 놓고 잘했다고 내버려 두면 뒤에 힘이 없으면 나가지 못한다.

김미영 
: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그런 면에서 장애인의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권오상 
: 전문가들 정책을 결정하는 행사는 사람들은 전문가들의 하는 이해의 정도로만 정책을 결정하고 생산하고 있다. 당사자가 직접 결정하고, 이런 것들이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영역 안에서도 우리를 빼고 우리를 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태연 
: 어제 탐라순담은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다뤘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비례대표로 나오는 후보가 과연 여성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오늘 나눈 이야기와 하는 맥이 비슷하다. 당사자들 중에서도 얼마나 당사자성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가는가. 장애인이라고 장애인을 다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이슈도 있을 것 같다.

이연희 
:  장애를 가진 그룹이라고 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다. 장애를 가지면서 재활 패러다임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혹은 비장애인이지만 이를 탑재한 분도 있다. 장애인이라고 모든 걸 대변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동의 한다. 생물학적 당사자라고 표현을 한다. 

고현수 
: 장애인의 아니더라도 당사자 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생물학적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거부하거나 제어할 필요가 없다. 박주희 전 도의원이다. 그 분은 인권의 복지의 가치를 가지고 도의회에 들어간 케이스다. 장애인 당사자의 정치 세력화는 결국 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정책 입안을 못하니깐 그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저상 버스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피터지게, 노숙하면서 싸워도 될까 말까이다. 
이제는 우리끼리도 정치세력화라는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참여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고 또 현장 활동가로 남는 사람도 중요하다. 아마 제주여민회도 비슷할 것 같다. 우리 모두가 도의회에 갈 이유가 없듯이 그런 부분들의 상호 필요한 지점에 같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세력화 과정에는 입법 기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능력과 여력이 된다면 도청이나 정부 기관을 포함한 개념이다.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는 정치적 과정이라고 보기에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는 이유를 덧붙이자면, 제주 사회의 모든 정치·사회·문화적 충돌이나 그 과정들이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나비 효과 이야기처럼 연결되어 있다. 다 관계 설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와 인권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시민단체와 교류, 협력해야 한다. 

유니버셜리즘을 이야기 할 때 관점의 차이가 있다. 우리도 노동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지배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에선 ‘노동 하지 않는 자는 밥도 먹지 말라’고 한다. 민중가요도 있다. 이런 부분들이 소통해야 한다.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해서도 장애계 내에서도 다를 수도 있다.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있다.  

예전에 고관철 전 대표가 한라산 케이블카 도입 찬성했다. 당시에 ‘장애인도 한라산 가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후의 고 대표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나는 반대다. ‘우리라고 꼭 가야 되는가? 도민사회가 지켜야 할 환경적 자원이라고 한다면 장애인이라고 해서 꼭 가야된다고 하는 것이 유니버셜 디자인 철학과 맞지 않다. 중요한 것은 케이블카 설치의 찬성과 반대라는 토론 조성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꼭 맞다, 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도 분분하다.

김미영 
: 다 같다고 보면 안 된다.  

이연희 
: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다. 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었지만, 자연보전이라는 이유로 못 가는 것과 안 해 하는 것은 다르다. 물론 나도 반대 입장이긴 한데, 또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케이블카가 정답이 아니라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갭은 다르다. ‘안’은 내 선택이지만 ‘못’은 선택의 영역이 없다. 온전하게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선택과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예를 들면 가족을 모여서 ‘힘들면 시설 들어가는 게 어떠니?’ 라고 내 의견을 물어봤을 때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뭘까? 온전하게 내 의지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택과 결정을 하는 시점을 맞이하여 결정을 하는데 온전히 100% 내 의지를 구현하는 환경 구축도 같이 되어야 하지 않나 요 근래에 생각한다. 

권오상 
: 선택 가지 수를 여러 가지를 그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해야 하는데 이거 아니면 없어 어떻게 하냐고 하는 것이다. ‘놓을 것이냐’, ‘안 놓을 것이냐’ 한다. 어떻게 놓을 것이며, 무엇을 놓을 것이냔 얘기가 아니라.

이연희 
: ‘케이블카를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케이블카 놓지 말자’는 제한적인 선택이다. 그로 인해서 ‘안가’, ‘못가’로 판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캐나다에 빙하를 보러 갔다. 나는 차에만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 한명이 붙었다. 모든 절차가 빙하를 관리하는 사무소의 담당직원이 매칭이 되었다. 같이 가는 사람들과 같이 자유롭게 휠체어를 끌고 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다. 

고현수 
: 유니버셜 디자인이 주요 개념이 중점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제도화도 이뤄질 것이다. 앞으로 제주시 화북과 서귀포시 법환에 시범 모델을 만들겠다고 한다. 향후 내년 지방 선거에서 이 부분에 대한 연속성에 대한 공약이 나올 것 같아 제대로 가야겠다.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신제주에 드림타워가 들어오는데 완벽하게 유니버셜 디자인을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는 것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개발 논리가 아니라 휴머니즘인데 이것을 층수를 올려주는 도구로 사용한다. 논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한림공원이 2000년대 초에 동굴에 장애 편의시설 한다고 하니까 환경단체에서 동굴을 파괴한다고 반대를 했다. 그래서 내가 같이 갔다. 가봤더니 한림공원에 설치를 이렇게 하면 환경 파괴가 된다고 했지만, 일부는 파괴 여지 있어서 피해서 했다. 서로 좋아진 예가 됐다. 유니버셜 디자인 라는 것도 도민과 소통, 공감을 전제로 해야 한다. 디자인 왜곡시키는 것은 행정을 곤란하게 한다. 

김태연 
: 질문 하나만 가지고도 하나의 주제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었다. 못 다한 이야기를 덧붙여서 소감 한 마디씩 한다면?

최희순 
: 앞으로 장애인 인권포럼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 소외된 사람이 있는가, 뒤돌아보는 단체로 발전하려고 한다. 

고현수 
: 시민 소통과 공감 없는 장애인 인권은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배려, 시혜, 동정 사랑 등에 있어서 우리가 엄마의 젖을 더 달라고 하는 것처럼 비춰져서는 안 된다. 일부 장애인들도 반성해야 할 것이 있다. 도민들에게는 떼로 보일 수 있는 이기주의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보편적인 권리와 복지를 견인할 수 있는 인권포럼으로 정제하겠다. 

이연희 
: 원래 말 많이 안하려고 했다. 복지예산을 비용이 아니고 투자의 관점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또 줘야 돼?”가 아니라 세금으로 들어가는 사이클에서 투자의 개념으로 봤으면 한다. 육지 출장 갔다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보고 공감했다. 청소년, 장애인, 노인을 다 떠나서 개개인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김미영 
: 나도 같이 도와서 잘 노력하겠다. 

권오상 
: 지역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해졌으면 한다. 내가 맡고 있는 학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것이 과연 학대인가? 전통적으로 해온 행위나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대해 학대를 학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권리를 권리로 바라보지 못하고 떼쓰는 걸로 보고 편견을 낳는다. 그런 것들에 대해 예민한 시각으로 주변인들을 봐야 된다는 생각을 해봤다.

김태연 
: 프로 예민러가 되자. 

유용한
: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하는데 인권운동이 다시 한 번 다른 방식으로 변화에서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사회가 변화 하면서 삶이 각박하다보니 인권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서 소외되지 않으면서 나를 포함해서 새롭게 도약해 가는 새해가 되었으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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