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보화기기 보급 낙찰업체 교육청 권유대로 사업포기 후 문닫을 위기...내부감사 진행

제주도교육청이 학교 정보화기기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을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애먼 도내 중소기업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해 10월 12일 도내 초·중·고에서 사용중인 낡은 컴퓨터를 신기술 기반 장비인 크롬북으로 교체하는 내용의 '학교 정보화기기 구매' 입찰공고를 냈다. 총 9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크롬북 180대를 3개 학교에 보급하는 내용이다.

이 경쟁입찰에는 도내 5개 업체가 참여했다. 그 결과 낙찰 하한선에 미달된 업체를 제외한 4개 업체가 제시한 투찰률(예정가격 대비 투찰가격의 비율)에 맞춰 순위가 매겨졌다. 그런데, 1순위 업체인 H사는 현재 '부정당 업체'로 낙인이 찍혔고, 2순위 업체인 S사는 수백만원의 피해를 보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납품계약을 이행해야 했다.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결과는 교육청의 허술하고 무책임한 행정에서 비롯됐다. 특히 단순한 업무 착오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정황도 포착됐다.

# 업체 피해 예상하고도 강행된 공개입찰...왜?

이번 사업은 입찰공고 단계에서부터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과거 사례로 볼때 통상적인 정보화기기 납품 경쟁입찰의 경우 투찰률 85% 안팎에서 마진이 좌우된다. 또 85% 안팎을 기준으로 ±3% 범위 내에서 투찰이 진행되고 낙찰 여부가 결정되곤 했다. 실제로 1순위 H사는 84.678%, 2순위 S사는 88.279%로 투찰했다.

하지만, 이번 크롬북 입찰건의 경우 입찰소요액 산출시 예정가격의 97% 선을 맞춰야만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였다. 제품 특성상 특정 제조사만 납품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제주의 경우 크롬북은 T사가 사실상 판매를 독점하고 있다. 실제 T사는 이번 입찰에서 97.566%에 투찰했으나 3순위로 밀렸다.

교육청과 크롬북 공급업체 간 맺은 '기술지원협약서'의 세부내용도 입찰 업체의 혼란을 부추겼다. 보통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를 판매할 경우 본체 외에도 마우스, USB 어댑터, 랜카드 등 주변기기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사업에 대한 기술지원협약서에는 달랑 본체만 포함돼 있어 마진율이 상당히 줄었다.

즉, 일반적이지 않은 사업 내용으로 인해 예상됐던 피해자가 발생한 셈이다.

사업 내용을 사전에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H사와 S사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교육청 사업 담당자도 입찰공고를 띄우기 전부터 이같은 문제를 어느정도 예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 담당자는 "공고 전부터 낙찰 취소 가능 여부를 검토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고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굳이 문제가 예상되는 사업을 밀어붙인데 대해서는 앞으로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론적으로 이 사업은 T사 외에는 입찰이 어려운 구조였다. 일각에서 이번 입찰공고 자체를 두고 애당초 T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다.

# "교육청 안내 따랐을 뿐인데..." 하루 아침에 '부정당 업체' 낙인

더 큰 문제는 개찰 이후에 불거졌다.

같은해 10월 20일 오전, 입찰함의 뚜껑을 열자 84.678%에 투찰한 H사가 1순위로 매겨진 것이 확인됐다. 교육청 계약부서 담당자는 확인 즉시 사업부서 담당자에게 관련 사실을 알렸고, 사업부서 담당자는 곧바로 H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입찰 취소' 방법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관련 서류 양식까지 첨부하면서 입찰 취소를 종용했다. H사는 교육청이 안내해 준 대로 입찰 취소 서류를 제출했다. 

그런데, 관련법상 입찰 취소 절차는 '개찰 이후'에는 유효하지 않았다. 교육청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을 안내해준 것이다. 더구나 교육청은 적격 심사 포기각서까지 제출토록 사업자에게 권했고, H사는 각서를 제출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H사는 손해만 없다면 교육청의 제안에 귀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H사는 나름 '교육청 설명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차마 문제가 생길까'하는 믿음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결국 H사는 '부정당 업체'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개찰 결과가 난 이후에 낙찰을 포기했다는 이유에서다. 철저하게 교육청의 안내대로 움직였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올해 1월 11일자로 부정당 제재를 받게 된 H사는 앞으로 2개월 간 공공기관이 실시하는 공개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제주도교육청 외에도 도내 여러 공공기관과의 납품거래를 주로 하는 H사는 사실상 하루 아침에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공개입찰 제한 2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2년 간 참여하는 입찰에 감점 패널티가 부과된다. 공공기관 공개입찰이 소수점 하나로도 낙찰 여부가 결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직원 13명의 건실한 기업은 사실상 연명하기 어렵게 됐다.

H사 대표 A씨는 "부정당 제재를 받게될 줄 알았으면 1000만원 이상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납품을 완료했을 것"이라며 "낙찰 결과를 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입찰 취소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교육청의 안내를 따랐을 뿐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2순위 사업자인 S사는 500만~600만원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크롬북 납품을 완료했다. 이 또한 특정 업체가 독점한 크롬북의 특성 탓에 기한을 넘겨서야 간신히 납품이 이뤄지게 됐다.

교육당국의 이상한 입찰공고와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대처로 애꿎은 업체만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 도교육청 자체감사 진행중 "잘못은 인정하지만..."

현재 제주도교육청은 이 문제에 대한 자체 감사를 진행중이다.

교육청 측은 "감사중인 사항"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이미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청문 절차까지 진행된 상황이다. 당사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했다.

계약부서 관계자는 "규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나름대로 업체의 사정이 딱해서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고 (입찰 취소 방법을 사업부서에)소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정당 제재를 받게 된 업체의 사례는 안타깝지만 절차대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H사에 입찰 취소 방법을 설명했던 사업부서 관계자는 "개찰 공개 전이어서 입찰 취소 방법을 업자에게 알려줬다.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방법을 안내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을)인정한다"며 "나 또한 부정당 제재까지 가게될 줄 몰랐다. 업체에 피해가 안가도록 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H사에 대한 소명 과정에서 이 관계자는 "잘못은 인정하지만,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H사는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H사의 법률대리인은 "행정기관으로서의 대원칙인 신뢰보호의 원칙을 명백하게 위반한 사례"라며 "사용자인 제주도교육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공무원 개인의 과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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