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2.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인터넷교보문고.png
▲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출처=교보문고 홈페이지.

저는 중학생을 만날 때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추천합니다. 읽어보았는지 물으면 열에 둘 정도는 읽었다고 답하죠. 제제는 여섯 살에 불과하지만 중학생을 뛰어넘는 조숙함을 보이는 독특한 아이입니다. 감정 기복이 심한 중학생이 읽기에 적합한 책이죠. 이 책을 읽으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중학생의 감정은 초등학생과 마찬가지로 방치돼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알아줄 정도로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어른들은 그럴 것이니, 중학생은 스스로의 감정을 지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같은 성장소설을 읽으면 감정의 근육이 단단해져서 어른에게 상처를 입어도 예전처럼 치명적이지는 않아요. 그리고 어른들의 폭력을 여러 가지 학습할 수 있으니 여러 모로 도움이 됩니다. 

어른을 위해서 한 가지 변명을 대자면, 어른들도 어릴 적에 어른들에게 온갖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감정을 알아주기는커녕 마치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취급받았죠. 어릴 적에 마음을 알아준 어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었다면, 아이들의 마음을 어느 틈으로 알아줄 수 있겠어요. 슬픈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이런 어른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천연기념물보다 드문 어른들만이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 들어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음속엔 정말 악마가 있나 봐요. 충동이 일면 참을 수가 없어요. 이번 주엔 에우제니아 아줌마네 집 울타리에 불을 냈어요. 꼬르델리아 아줌마한테는 안짱다리라고 했더니 화를 불같이 냈어요. 또, 헝겊 공을 찼는데 그 바보 같은 공이 창문으로 날아가서 나르시자 아줌마네 큰 거울을 깨버렸어요.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가운데 일부

제제가 하는 장난은 스케일이 크고 상상을 불허합니다. 저도 어릴 적에 장난 꽤나 쳤지만 제제를 따라가려면 멀었죠. 제제는 또 어떨 때는 천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가끔 저 대신 그 애한테도 돈을 주셨으면 좋았는데. 그 애 엄마는 남의 집 빨래를 하세요. 애들이 열한 명이나 된대요. 게다가 모두 아직 어리구요..(중략) 저도 엄마가 작은 것이라도 더 가난한 사람과 나눠야 한다고 하셔서 제 생크림 빵을 나눠 먹은 거예요.
- 같은 책

쎄실리아 빠임 선생님은 제제의 말에 감동받아 ‘황금 마음씨를 가진 아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한 아이의 마음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아이들에게 이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천사와 악마가 되는 원인도 분명하죠. 제제는 자신을 몰라주거나 괴롭히거나 냉대하는 어른에게는 악마처럼 반응하지만, 자신을 알아주고 존중해주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어른에게는 더없는 천사의 모습이죠.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남자 중학생이 가출하고 싶을 때

중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가출을 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을 때가 언제인지. ‘화가 났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해서 아이들의 용어를 빌려 소통했습니다. ‘개빡침’. 낱말의 마술 때문인지 아이들이 마음속 이야기를 술술 적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읽으면서 같이 막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부당함에 몸서리쳤습니다. 무당처럼 과장된 몸짓이었지만 또한 진심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저의 ‘격한 반응’에 감동했는지 “진짜 어이 없죠?”, “대박이죠?”, “선생님이 봐도 이해 안 되죠?”라고 감정을 토로했습니다. 위로와 치유의 순간적인 느낌이 눈물 나게 행복했습니다. 감정의 열기가 지나고 차분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글을 되짚어봤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분노를 일으키는 감정선이 달라서 구분해서 소개합니다.  

남학생들은 그 누구보다 전자기기에 애착을 보입니다. 만약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사용에 대한 제재가 일관적이지 않다면 중학교 남자 아이는 스트레스 폭탄을 맞은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스마트폰 게임의 세계는 크고 넓어서 잘 용어조차 알기 어렵지만 듣고 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롤 승급 전 때 엄마가 컴퓨터를 껐다.”

“내가 핸드폰으로 모르는 걸 찾아보려고 할 때 엄마가 와이파이를 끈다. 그래서 내가 왜 끄냐고 항의하자 엄마는 '너가 게임을 했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아이들의 글을 보면서 얼굴이 확 붉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인정이라는 걸을 모르는 사람처럼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하려고 한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찾아보려고 핸드폰을 켰다면 어른도 잘못을 인정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게임을 하지 않았느냐 의심하는 것도 모자라 ‘네가 얼마나 게임을 했으면 엄마가 와이파이를 끄겠냐’며 과거의 일을 갑자기 꺼내며 정당화의 논거로 삼는 모습은 듣는 제가 볼 때도 부당해 보였습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만약 미리 말을 했더라면 갑자기 와이파이를 끄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부모의 반응으로 봐서 아이에게 검색을 할 때는 미리 얘기를 하라는 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롤 게임을 잘 모르지만 승급 순간의 짜릿함은 알 것 같습니다. 승급 전에 컴퓨터가 꺼지면 롤 승급이 취소가 되는 건지, 아니면 초기화가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학생들은 전자기기 외에도 게임이나 놀이, 조립 관련된 사항에 매우 민감합니다. 

"내가 예전부터 만든 장난감들을 모두 한 번에 상자에 넣어서 모두 부서져버렸다. 아주 슬펐다."

조립장난감의 보관은 섬세해야 하는데 부모님들이 청소를 하면서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학생들은 자신의 조립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에 서투릅니다. 만약 어른이 ‘제대로 보관하지 않은 너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매우 부당하게 느낄 것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안전한 보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장난감을 계속 놀 수 있도록 해준다면 어른과 아이가 장난감으로 연결될 수 있겠죠. 

여학생들에 비해서 남학생은 자신의 감정이나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서 해명하는 기술이 부족합니다. 그 사이에 크게 혼나면 기분이 상하죠. 한 학생이 친구의 신발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돌려주는 상황을 선생님에게 들켰습니다. 선생님이 다짜고짜 혼내자 학생은 해명을 하는데 선생님이 듣기에는 핑계처럼 보였나 봅니다. 학생은 핑계를 댔다는 이유로 한 번 더 크게 혼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조금 안타까운 제안을 하나 합니다. 혼나지 않을 수는 없지만 1/10 정도로 줄일 수는 있습니다. 인정하고 사과만 하는 겁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틈을 보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그 자리에서 해명하려고 하면 핑계 댔다는 이유로 10배로 더 혼날지도 몰라요. 원래 이것은 어른이 파악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늘 그랬듯이 아이들이 알아서 피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안타까운 제안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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